어릴때부터 바쁜부모님을 대신해 할머니 손에 컸다
부모님한텐 미안한 말이지만 부모님보다 할머니를 더 사랑했다
사춘기를 넘어선 나이에도 할머니와 있는것이 불편하거나 어색하지않았다
할머니에게 틱틱대는 사촌오빠한테 죽일듯이 달겨들어 기어코 코피를 내고서야 나는 주저앉아 울음을 터트렸다
스무살 여름 할머니가 넘어져서 다쳤다
걷는데에 많은 불편함이 따를거라했다
대소변을 받아가며 뜬눈으로 밤을 지새워가며 밥도 굶어가며 병원에서 간병인 노릇을 했다
수술전날 밤 독한 약에 취한건지 알수없는 말들을 끊임없이 중얼대는 할머니옆에서 기도하고 또 기도했다
할머니가 퇴원후 주말을 반납해가며 내 유흥생활은 전혀 즐기지 못한채 할머니를 간병했다
스물한살 여름에 할아버지가 돌아가셨다
주말저녁마다 할머니 할아버지가 좋아하는 음식을 만들어다주면
잇새로 바람빠지는 소리를 내며 웃던 할아버지
그렇게 웃으며 너를 아까워서 누구한테 시집 보낼수있을까
하던 할아버지
내가 시집가는것까진 꼭 지켜보겠다며 나와 새끼손가락을 걸던 할아버지

내 할아버지

멍하니 영정사진 속 할아버지의 더 젊을적 모습을 건너다보았다
나는 사실 믿지못했다 할아버지의 죽음을
결국 나는 장례 마지막날에서야 절을 올리고 향을 피울수있었다

내방에는 침대가 두개 생겼다 할머니것, 내것
잠귀가 밝은 나는 할머니의 기침소리에도,딸꾹질 소리에도 기겁을 하며 일어났다
새벽에 할머니가 나지막히 나를 불러 깨우면 할머니를 업고 화장실을 갔다
할머니가 좋아하는것들을 사는것이 내 지출계획에서는 1순위였다

하지만 나는 이제 살고싶지가 않다
우울증치료도 내 알바비로 하느라 빠듯한 내게는 단한번도 준적없는 용돈을 사촌오빠들에게는 퍼주는 할머니때문에
안그래도 부모와 사이가 좋지않은 나의 행동을 부풀리고 과장해서 부모에게 전달하는 할머니때문에
알바가기전 차려놓고간 식사를 입맛이없다며 먹지않은채
부모님이 돌아왔을때 온종일 굶었다며 말하는 할머니때문에
남동생이 할머니에게 하는 철없는 행동을 혼내는 나를, 역으로 혼내는 할머니때문에
나는 너무 지쳤다
난 불면에 시달린다
우울증을 동반한 그것은 때로는 나를 사지까지 몰고간다
오늘은 잠들 수 있을까 
이제는 반줌의 약으로도 잠들지 못하는 나는 어쩌면 영원히 잠들고 싶어하는건 아닐까
불면에 시달리느라 피곤에 쩌든 내모습을 빈정대는 엄마
우울증을 치료받는 나를 비아냥대는 아빠

벗어나고싶다
벗어날수 없는 나약한 내가 원망스럽다

십년간 치료를 받는 외숙모보다도 내상태가 심각하다 말하는 의사앞에서 엉엉 울며 살고싶어요 저 정말 너무 살고싶어요 소리내 말하고싶었다

나는 밖에서 예쁘다고 착하다고 상냥하다고 늘 칭찬받는 사람인데, 왜 나는 집에만 들어오면 구제불능 문제덩어리가 되어버리는걸까
나는 오늘도 반줌의 약을 삼켰다
이것이 나의 상태를 더낫게 만들어줄거라 믿으며

오늘은 잠들수있을까
부디 오늘은 잠들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