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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급진 페미니스트들에게>
메갈리아에게 무너진 페미니즘, 어디로 가나?
최악의 넷 커뮤니티 ‘메갈리아’로 촉발된 급진 페미니즘 현상이 우리 사회를 휩쓸고 있다. 이제 페미니즘이 가리키는 곳에는 급진 페미니즘만 존재한다.
메갈리아가 가진 본모습인 남성혐오를 앞세운 패륜, 혐오, 증오의 힘은 페미니즘을 송두리째 삼켜 버렸다. 이 광풍 앞에 진보 언론으로 불리는 대다수 매체의 용인아래 , 급진 여성주의자들과 콜라보레이션을 이루었다.
왜 이렇게 되었는가? 메갈리아가 주장하는 ‘여성혐오에 대항하기 위한 남성혐오’는 들불처럼 우리 사회 곳곳에 번져 이제는 페미니즘은 메갈리아식 페미니즘만 눈에 보일 뿐이다.
내가 메갈리아를 주목하게 된 계기가 2015년 6월 무렵부터였다.
극단적인 남성혐오 언어를 남발하는 메갈리아 사이트가 개설 된 후, 메갈리아 게시판에 녹색당 당원이 글을 올리면서 였다. <녹색당 영업한다>라는 제목으로 , 내용은 “야밤에 정당 영업하러 왔다.......” 이었다.
그리고 다음 날 한국여성민우회와 메갈리아가 연대하고 있다는 내용의 글이 올라왔다. 2015년 8/11~10/31일 기간 동안 몰카 금지 스티커 배포 캠페인이 그 시작이었다. 여성민우회에서 스티커를 인쇄하여 메갈리아 회원에게 배포하여 함께 오프라인 시위를 하면서, 메갈리아는 페미니스트로 변모하는 계기가 되었다.
페미니스트? 메갈리아로서는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 가뜩이나 패륜 사이트로 악명을 날리던 차에 이미지 개선, 페미니즘으로 포장하는 것은 한마디로 밑질 게 없는 장사였다.
그러자 이른바 ‘꿘’으로 불리우는 진보 정당의 여성 당원 중 여성주의자들이 메갈리아의 리더를 잠식하기 시작했다. 물론 대다수의 메갈리안은 ‘꿘’을 노골적으로 반대했고, 현재도 마찬가지나 이미 메갈리안 리더는 ‘꿘’이 차지하고 그들의 방향대로 흘러가고 있는 중이다.
진보정당의 여성주의자들은 급진 성향의 여성단체와 네트워크를 형성하고 있었고, 진보 언론 매체와도 연결점이 있어 , 메갈리안 세력은 순식간에 집단세력을 만들었다.
촉이 빠른 진보 언론들로서는 메갈리안들의 실체를 알고 모르고 별로 중요하지 않았다. 막강한 파워를 가진 여성단체와, 여성단체 출신 정치인 , 메갈리아를 지렛대로 삼아 급진 페미니즘의 전도사 역할을 하던 여성학자와 페미니스트 문화평론가 등은 물 만난 물고기처럼 때를 만난 것이다.
이러자 평소 여성주의에 별다른 생각 없이 살던 남성들이 하나둘 메갈리안 옹호에 가세하기 시작했다. 이들의 심리는 무엇을 나타내는가? 어쨌든 한국 사회는 그동안 남성중심의 가부장제 구조였고, 그 속에서 살아 온 대다수의 장년층 남성들은 그제야 마치 속죄하듯 메갈리아는 사회적 약자이며 신체적 약자임을 내세워, 메갈리아의 혐오도 이해한다는 식이었다.
대표적인 인물이 바로 고려대 박경신 교수가 경향신문에 쓴 칼럼이다.(경향신문/2016/8/1)
박경신 교수는 여성은 신체적 약자, 사회적 약자라는 생물학적 결정론으로 메갈리안을 말했다.
박경신 교수의 주장은 페미니즘 관점에서는 지극히 가부장적 사고방식이다.
페미니즘은 가부장제 타파가 보편적 이론임에도 여성은 약자이기 때문에 어떤 경우에도 보호받아야 한다는 것은 완전히 모순된 주장이다.
급진 페미니스트들은 호기를 만났다. 강연회, 세미나, 토론회 등을 통해 그들의 급진 페미니즘을 전파에 열을 올리며, 여대생,젊은 여성층 상당수가 여기에 경도되어 급진 페미니즘이 진짜 페미니즘이 가야할 길로 착각하게 되었다.
이들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대부분 고학력자에 먹고 살만한 여성층이다.
메갈리안들도 좋은 대학출신이 많고, 먹고사는 데 지장 없는 이들이 많음을 알 수 있다. 그럼에도 극단적인 남성혐오, 이땅에 태어난 죄는 여성이라는 점을 들며 자신들을 자학하는 여성들로 넘쳐난다. 여기에 페미니스트로 자처하는 이들의 이중성, 허위의식, 가식이 드러난다. 실제 생활은 먹고 사는 데 아무 지장 없으면서 , 봐라! 한국 여성들의 삶이 얼마나 비참하냐, 얼마나 많은 성희롱, 성폭력, 강간에 시달리는지 아느냐! 목소리를 드높인다.
여기에는 자신의 사회적 위치와 이러한 이슈로 먹고사는 밥벌이와 연관이 있다.
물론 한국 여성들의 성격차 지수는 여전히 낙후된 점은 사실이다.
그러나 과거 10년, 15년 전보다 엄청나게 여성 인권, 성평등은 신장되어 온 점도 사실이다. 세계에서 가장 성평등 국가인 스웨덴 등 스칸디나비아 국가 역시 '성평등지수'는 세계 순위에서 최고로 높으나, 남녀 임금의 격차는 여전히 존재한다.
한국의 경우 비약적인 발전을 거듭하며 양성불평등을 줄여나가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마치 한국 여성의 인권이 중동 혹은 인도 여성들의 수준에 비교하며, 한국 여성들의 삶을 지옥처럼 과장해서 말하는 메갈리안들은 정상적인 사고방식에서 벗어나도 한참 벗어났다. 이는 서구에서는 이미 정치적 담론에서 사라진 여성해방론을 내세운 급진 페미니즘의 영향에 물들었음을 보여준다.
메갈리안들의 남성혐오는 증오를 넘어 광기로 치닫고 있다. 메갈리안인 어느 여성은 한남패치, 강남패치를 만들어 선량한 이들의 신상정보를 털어 SNS에 올려도 죄의식이 없다. 누가 이들을 이토록 광기의 집단으로 만드는데 일조했나?
그저 일탈행위로 남성혐오를 하던 메갈리안에게 페미니즘이라는 사회이론을 주입하여 정당화하게 만들은 집단은 누구인가?
나는 요즘 메갈리안에게 연민을 느낀다. 또한 소위 급진 페미니스트들을 향한 분노가 치솟는다.
먹고 사는 데 아무 지장 없는 우아한 페미니스트 공주들이 바로 그들이다. 이들은 진정으로 페미니즘의 발전을 위해서 실천하고 있나? 페미니즘의 근본적인 딜레마는, 페미니즘은 애초부터 서구의 백인 중산층 여성들이 중심이 되어 이끌었으며, 이는 한국의 페미니즘도 마찬가지다.
페미니즘의 모순점 중 중요한 부분은 '여성들 간의 계급차이는 간과'되고 있으며, '여성이 여성을 착취하는 문제'는 빠져있다.
급진 페미니스트들은 현실적으로 여성들의 인권 향상에 얼마나 이바지 하는지 묻고 싶다. 한국의 수많은 미혼모들이 생계, 육아, 취업 문제로 고통을 겪고 있고, 빈곤층 여성들의 삶의 질 향상을 위해 얼마나 노력하였는가?
여성인권 향상, 성평등을 외치는 급진 페미니스트들은 실제로 가정폭력을 피해 집을 나와 잠시 피신해 있는 각 지자체의 ‘여성쉼터’의 환경이 얼마나 열악한지 알고나 있는가. 지자체마다 여성쉼터 시설이 차이가 나긴 하지만 모 광역시의 경우 단 1곳이며 여성쉼터가 아니라 수용소나 마찬가지의 환경이다.
프라이버시 보장은 커녕 가장폭력을 피해 나온 여성들이 또 한 번 상처를 입게 된다. 시설이래야 그저 큰 방 2개에 열 명가량이 한 데 무더기로 잠을 잔다. 화장실은 공동으로 사용하며 곰팡이가 까맣게 핀 불량한 환경이다.
페미니즘의 진정한 실천은 이런 곳에서부터 이루어져 한다. 입으로만 여성인권을 외치고 성폭력 건수 성희롱 문제, 강간 등 성간의 대결에서 벗어나 소외된 여성들의 삶을 돌아보는 것이 페미니즘이 가야할 방향이다.
급진 페미니스트들 정신 차리기 바란다. 그대들의 사상은 자유다. 하지만 메갈리안들을 불쏘시개로 삼아 지적 허영심을 채우는데 방편으로 페미니즘을 이용하지 말라.
출처 | www.facebook.com/permalink.php?story_fbid=642494645925801&id=10000495814586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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