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핑턴이 어떤 날은 프론트 페이지 반이 페미니즘 관련 기사일 정도로 신난 곳인데..
웬일로 그나마 중립적인 기사가 실렸네요.
시사인 사태 때문에 혹시 우리가 뭔가 잘못 생각헀던것도 있는걸까 라고 느낀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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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한남충이다.
요즘에는 말할 것도 없고, 지난 10~20년 동안 어떤 분야에서건 여성이 1등을 하는 건 더 이상 놀랄 일이 아닌 게 됐다. 그리고 어찌됐든, 지금 중장년층보다는 그래도 젊은 남성들이 단 1%라도 더 성평등 의식이 나은 편일 것이다. 대놓고 성차별을 해야 한다고 말하는 정신 나간 놈이 아닌 다음에야 누구든 물어보면 대부분 평등해야 한다고 말할 것이다(물론, 아직도 부족한 게 참 많다).
아무튼 이렇게 살아왔는데, 근래에 여성혐오 이슈가 부각되면서 이들을 다그치는 목소리가 커졌다. 평소에 여성과 사적인 만남을 아예 가지지도 못하며 지지리 궁상으로 살아가고 있는데, 갑자기 여성혐오니 한남충이니 하며 이들을 압박한다. 여성혐오에 대해 깊이 고민해본 적도 별로 없고, 한남충 짓을 할 생각도 없었는데 난데없이 네가 잘못했다는 얘기를 듣는 것이다. 무신경과 무관심도 잘못이긴 하지만, 그래도 소외된 젊은 남성 입장에서는 좀 섭섭할 만하다.
신체건강한 젊은 남성 입장에서는 어떻게든 여성과 만나서 따뜻한 대화를 좀 나눠보는 게 인생의 작은 소망인데, 내가 직접 하지도 않은 일들에 대해 책임을 지라고 한다. 나는 지금 여성을 만난다면 정말 잘해줄 자신이 있는데, 그런 건 아무런 관심도 없이 그저 너의 잘못을 사과하란다. 안 그래도 여자친구 있는 녀석들한테 질투가 나는데, 데이트폭력이 어떻고 저떻고 하며 한남충 소리를 듣는다. 그러면서 결국, 이렇게 엉뚱한 대화가 오간다.
"나는 여자 좋아하는데, 내가 왜 여성혐오야?"
"여성혐오는 그런 게 아니라 학문적 개념이야. 넌 그런 것도 모르고 이제까지 편하게 살아왔지?"
"........."
여자친구가 있는 것만 해도 감지덕지 해야 될 놈들이 데이트폭력을 저질러서 나도 화가 나는데, 너도 똑같은 놈이라고 그런다. 이건 여성혐오의 학문적 개념을 설명해서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지식의 영역이 아니라 감정의 차원이고, 이성보다는 본능에 가까운 부분이다. 물론 이런 평범한 남성들이 무조건 잘못이 없다고 말할 수는 없다. 개인적으로야 약간 억울할 수도 있겠지만, 사회적인 문제는 엄연히 존재하는 것이고 어쨌든 관심과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하지만 그렇다고 이들에게 여성혐오를 따져 물으며 선택을 강요하는 게 그리 좋은 방법인 것 같지는 않다.
매번 "여성혐오는 학문적 개념이다"라고 말하는 페미니스트들에게, 그럼 과연 '낙수이론'은 학문적 개념이 아닌가 라고 묻고 싶다. 학문적 개념이라는 것 자체가 무슨 진리의 표식도 아닌데, 왜 자꾸 여성혐오는 학문적 개념이라고 강조하는지 모르겠다. 대한민국의 대학진학률이 80%를 넘은 지도 상당한 세월이 지난 듯한데, 누가 그런 걸 읽을 줄 몰라서 이렇게 우리 사회의 성평등 문제가 혐오의 악순환에 빠진 건 아니지 않은가?
상대방에 대한 관심도 없이, 그냥 학문적 개념이나 이론을 들이대는 게 도대체 무슨 소용이 있나? 여성학을 배워서 알고 있는 것과 사회를 바꾸는 건 다른 차원의 문제다. 여성혐오와 관련해서 각종 매체에 목소리를 내는 이들은 나처럼 못난 사람의 실태에 대해서 전혀 얘기하지 않는다. 통계적으로도 분명이 나같은 남성들이 적지 않게 존재하는데, 맨날 판에 박힌 얘기만 반복하는 게 과연 여성혐오 문제 해결에 도움이 될까? 여자든 남자든 이 세상 그 누구든, 서로에 대한 이해 없이 변화는 불가능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