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민아 칼럼]문재인, 목표가 대통령인가
지난 27일 더불어민주당 전당대회장에서 카메라에 잡힌 문재인 전 대표의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웃음 띤 얼굴이 환했다. 돌이켜보면 꿈 같기도 할 터다. 안철수 의원의 탈당으로 당이 두 조각 나고, ‘전직 새누리당 비상대책위원’에게 당권을 헌납하고, 4·13 총선 참패가 기정(旣定)으로 여겨지던 시절을 떠올리면 말이다. 총선의 기적 같은 승리는 극적 반전을 몰고 왔다. 문 전 대표는 더민주의 수도권 압승과 부산·경남 약진에 기여한 공로로 다시 일어섰다. 마침내 김종인 비대위 체제도 종료되고 명실상부한 친문재인(친문)계 지도부가 출범했다. 누가 상상이나 했을까. ‘이보다 더 좋을 수 없다’는 생각이 들 것 같다. 그러나 정치는 생물이다. 한 번 반전이 있었다면 언제든 반전은 재연될 수 있다. 대통령 선거까지는 1년3개월여가 남았다. 어떤 변화가 일어나도 놀랍지 않은 시간이다.
친문 주류 성향의 지도부 등장을 놓고 여러 가지 해석이 나온다. 먼저 분명히 밝혀둔다. 선거에서 부정행위가 발생하지 않은 이상 모든 표심은 존중받아야 한다. 표심에 대한 존중 없이 대의민주주의는 존립할 수 없다. 지난해 말부터 올해 초 입당한 온라인 권리당원 3만5000여명이 전당대회 결과에 큰 영향을 미친 건 사실이다. 하지만 이들이 개별적 판단 대신 특정 세력의 ‘오더’에 따라 투표했다는 식의 관점은 천박하고 위험하며 비민주적이다. 비문재인 세력 상당수가 안 의원과 동반탈당한 터라 더민주에 ‘의미 있는 비주류’가 사실상 존재하지 않는다는 점도 감안할 필요가 있다. 제1야당 주류인 친문을, 온갖 권력을 독점하고 있는 새누리당 친박계와 동일선상에 놓고 비교하는 데도 동의할 수 없다.
중요한 건 이제부터다. 문 전 대표와 추미애 신임 대표가 어떻게 하느냐가 관건이다. 문 전 대표는 “경쟁은 끝났고 단결이 남았다. 다시 하나가 돼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려면 냉철하고 이성적인 현실 인식이 우선이다. 주류 독점에 대한 우려를 ‘경선 불복’ 프레임으로 바라봐선 안된다. 절차적으로 문제없는 선거였으니 입을 닫으라는 건 협소한 인식이다. 문 전 대표 비서실장을 지낸 김현미 의원이 “대선까지 길이 더 복잡하고 험난해졌다. 소탐대실”이란 글을 트위터에 올렸다고 한다. 김 의원의 판단이 맞을지, 강력한 단일대오가 유리하다고 본 당심이 맞을지는 아무도 모른다. 하지만 문 전 대표와 추미애 지도부는 김 의원 같은 시각이 당내는 물론 야권 지지층 내에도 존재함을 인정하고 이들의 우려를 해소할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 이들을 왕따로 만들어선 안된다. 그것이 현명한 승자의 길이다.
승자의 또 다른 과제는 당내 다른 대선주자들에게 ‘공정 경선’에 대한 믿음을 갖게 하는 일이다. 문재인 대세론이 확산될수록 다른 주자들은 들러리나 불쏘시개에 그칠까 염려해 경선을 포기할 가능성이 있다. 문 전 대표 진영에선 경선 과정에서 큰 내상을 입지 않고 본선으로 직행하면 유리하다고 여길 인사들도 있을 법하다. 그런 이들을 위해 오래전 이야기를 꺼내본다.
2002년 상반기, 한나라당(현 새누리당) 출입기자로 대선후보 경선을 취재했다. 당시 새천년민주당 경선은 노풍(盧風·노무현 바람)의 영향으로 연일 흥행 대박이었다. 반면 한나라당 경선은 이회창 대세론 속에 파리만 날리고 있었다. 최병렬·이부영·이상희 후보가 함께 경선에 나섰지만 ‘무늬만 경선’에 불과했다. 지역별 경선 취재차 출장길에 오르면서도 신바람은커녕 긴장감조차 느끼지 못했다. 결과가 뻔하다보니 제대로 된 쟁점이 부각될 리도 없었다. 오죽하면 부산·경남 경선에서 최 후보가 2위인 자신의 누적득표수가 이회창 후보의 7분의 1밖에 안된다며 “키가 커도 내가 더 큰데, 왜 이런 결과가 나왔는지 이해할 수 없다”고 ‘만담’을 했겠는가. 띄우려던 분위기는 안 뜨고 이 후보의 마음만 상하게 했다는 후일담이 떠돌았다. 그해 대선의 승자가 누구였는지는 모두가 안다.
문 전 대표와 측근들이 이런 경선을 원하지는 않을 것이다. 추미애 지도부는 경선의 공정성을 넘어 역동성과 다양성을 담보하기 위한 특단의 방책을 강구해야 한다. 정치적 상상력을 발휘해 멋진 한판 승부를 연출해야 한다. 문 전 대표는 경선규칙의 유불리에 개의치 않겠다는 비상한 각오가 필요하다.
문 전 대표는 스스로에게 물어보기 바란다. 제1야당 대선후보 ‘재수’가 목표인지, 청와대에 들어가는 게 목표인지. 전자는 아니리라 믿는다. 후자가 목표라면 꽃길 대신 가시밭길을 자청할 일이다. ‘내가 아니어도 좋다’고 생각할 때, 비로소 내 앞에 길이 열린다. 문재인에게 기회가 왔다. 정치적 역량과 배짱, 포용력과 확장성을 입증하라. 권력욕이 아닌 권력의지를 보여라.
<김민아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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