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년동안 매번 똑같이 꾸던 꿈이 있었다. 이 글을 여기 쓰는 이유는 살면서 꿨던 꿈 중에 가장 무서웠던 꿈이였기 때문이다.
항상 시작은 회색빛 교실에서부터였다. 나는 교실에 홀로 앉아있지만 알 수 있었다. 이 세계의 모든 사람들은 나의 적이라는 것을. 모두가 나에게 등 돌리고 나를 멸시했다. 나는 그리고 그 공간에서 필사적으로 도망쳤다. 교실을 뛰쳐나와 긴 계단을 내려가면 커다란 공중 목욕탕이 있었고, 그 곳에서 또 다른 계단으로 올라가면 휘황찬란한 칠성급 호텔의 로비가 나왔다. 데스크 정면에 자리잡은 커다란 유리문을 열고 나가면 나를 반기는 것은 회색빛으로 죽어버린 도시의 모습이었다. 나는 매번 그 꿈에서 거기까지였다. 결국 도망치지 못해 사람들에게 붙잡힐 즈음, 땀에 흠뻑 젖은 채 헉헉대며 꿈에서 깨었다. 그러나 얼마 전 나는 이 지독한 꿈에서 벗어났다. 여느 때와 다름없이 회색 교실에서 눈을 떴는데 이번에는 나에게 친구가 있었다. 색이 있는 사람. 그것은 나에게만 해당되는 사항이였는데, 그 친구 또한 색이 있었다. 나는 평소와 다르게 꿈에서 즐거웠던 것 같다. 하지만 즐거움은 그리 오래가지 못했다. 나의 행복을 시기한 세상 사람들이 나와 친구를 죽이려 달겨들기 시작했다. 나는 다급히 친구의 손을 붙잡고 평소와 다름없는 방법으로 도망을 쳤다. 그런데 이게 왠 일인지 나는 그 지긋지긋한 회색 도시에서 벗어나게 되었다. 그리고 내 눈 앞에 펼쳐진 모습은 푸른 하늘과 넓은 논, 그리고 잘 닦인 아스팔트 양 옆으로 곧게 난 인도, 그 옆에 자리한 커다랗고 청명한 가로수들까지. 색이 있는 세계였다. 나는 친구와 한참을 뛰면서도 신기해하며 바닥을 보았다. 인도에 뭉그러져있는 버찌들이 생소했다. 그렇게 한참을 뛰다가 세상의 막다른 곳에 도착했다. 그 곳은 세 면이 분홍색이고 천장이 높은 곳이였다. 정면과 좌측 상단에는 조그마한 문이 있었는데 그 문이 이 세상에서 벗어날 수 있는 유일한 문이라는 것을 직감적으로 알 수 있었다. 조금만 더 가면 드디어 이 미친 곳을 벗어날 수 있는데 친구가 그만 넘어지고 말았다. 나는 젖먹던 힘까지 다해 친구를 일으키려 했지만 사람들이 벌써 코 앞으로 다가와 있었다. 친구는 나를 퍽퍽 때려대며 너 정신이 나갔냐, 너는 여기서 나가야 된다, 라고 나에게 소리를 질러댔다. 싫다고 저항하는 나를 친구가 넘어진 채로 밀어댔다. 나는 결국 눈 앞이 뿌옇게 흐려진 채로 돌아서야만 했고, 뒤는 돌아볼 수가 없었다. 그렇게 도착한 세계의 막다른 곳에서 도저히 닿지 않는 정면의 문을 열기 위해 근처에 있던 박스를 디디고 올라섰다. 그러나 문은 굳게 잠겨있었고, 사람들은 벌써 내 친구가 있던 곳을 지나쳐 나에게로 다가오고 있었다. 간절하게 문을 두드려 대고 있었는데, 좌측의 문에서 엽기적으로 생긴 색동 애벌레가 쑥하니 나와 문을 열어주었다. 나는 정말 펑펑 울면서 그 문을 안간힘을 다해 넘어갔었다. 갖은 고생 끝에 세계의 막다른 곳의 건너편에 나는 건너갔다. 2m 쯤 되는 곳에서 툭 떨어진 나는 푹신한 들판의 풀 덕분에 아무런 상처도 입지 않았다. 넘어오면서 흐리던 시야로 본 그 곳은 다소 엽기적인 장소였다. 분홍색 하늘에 동화처럼 펼처진 너른 초록빛 들판, 옆에 흐르는 맑은 개울물과 들판의 언덕 꼭대기에 위치한 큰 사과나무까지. 그 곳은 '유토피아'였다. 하지만 나는 웃을 수 없었다. 내가 넘어온 문은 '유토피아'에서는 공중에 난 네모난 공간일 뿐이였는데, 건넛편 세계에서 날 죽이러 몰려온 사람들이 싸늘한 눈빛으로 나를 내려다 보고 있었다. 나는 아직도 그 눈빛을 잊을 수가 없다. 이윽고 색동 애벌레가 문을 닫아 버렸고, 나는 그 꿈이 끝날 때까지 떨어진 그 자리에서 울기만 했다. 그리고 그 날의 나는 땀에 젖어 일어나지도, 헉헉대며 두려워하지도 않았다. 그저 조용히 눈을 떠 밤새 흘려 댄 눈물을 훔쳤을 뿐이였다. 그 이후로 그 꿈을 꾼 적이 단 한번도 없다. 아직까지도 왜 그 꿈을 꿨는지 잘 모르겠다. 만약, 그 끔찍한 꿈을 다시 꾸게 될 날이 오게 된다면, 나는 나와 같은 사람을 위해 색이 있는 친구가, 색동 애벌레가 되어있으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