댓글에서도 지적하신 바와 같이 의식의 흐름에 따른 서술을 하다보니 평소 짧은 뻘글만 쓰다가 생각했던 것보다 길어진 글에서는 의미망이 느슨하게 연결되어있었던 점이 큰 문제로 작용하여 많은 오해를 산 듯 합니다.
우선 많은 분들이 "우리는 미치지 말자"는 대목에서 불편함을 느끼셨는데, 저는 폐제라는 개념을 통해, 애비X이라는 표현까지 일삼으며 부성적 기호를 거부하는 메갈 등의 현 행태는 라캉에 의하면 정신병의 원인이 된다는 의미에서 사용하였습니다. 대타자를 소타자로 대치한다 한들 결국 상상계를 현실계로 인식하여 망상적 세계에 고립될 뿐이니까요. 그래서 "우리는 미치지 말자"는 표현이 메갈을 향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은 메갈 또한 현대 한국사회를 함께 살아가는 사람이라는 개인적인 입장에서의 사용이었습니다.) 절대 오유에서 이루어지는 메갈에 대한 비판이 미친짓이다는 뜻으로 연결될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리고 폐제를 떠올린 까닭으로는 논어의 자로편에 나오는 부위자은(父爲子隱) 자위부은(子爲父隱)이 문득 생각났기 때문입니다. 이 말은 <노(魯)나라 섭공(葉公)이 공자에게 말했습니다. “우리 마을에는 정직한 사람이 있습니다. 아버지가 양을 훔쳤는데 아들이 증인이 되었습니다.” 그러자 공자가 말했습니다. “우리 마을의 정직한 사람은 이와 다릅니다. 아버지는 아들을 위해 숨겨주고, 아들은 아버지를 위해 숨겨줍니다. 정직함은 그 가운데 있는 것입니다.” >에서 온 것인데, 메갈이 천륜을 거부하는 것에 대한 부당함을 말하고자 한 것입니다.
미러링에 관한 지적도 있었습니다. 기자의 입장에서는 미러링이라는 것이 혐오행위가 아니라고 보기에 그들을 혐오의 주체로 상정하지 않지만, 미러링을 전가의 보도로 여기지 않는 제 입장에선 그들이 말하는 미러링은 혐오를 발산하는 행위에 지나지 않기 때문에, 메갈을 그들의 관점을 최대한 수용해 혐오의 대상으로 여긴다 치더라도, 혐오의 주체이기도 하다는 의견이었습니다.
왜 제목에 "변명"이라고 했냐는 의견도 있었습니다. 남성에게 원죄가 있는 것으로 여기는 이들에게 반하여 적는 글이기에 문학적 수사에 가까운 방식으로 "변명"이라는 단어를 사용하여, 약간 비꼬고자 했습니다. 그래서 제 글을 보면 진보의 논리를 거의 다 수용한 상태에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메갈을 대하는 방식에 문제가 있다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제 문장이 범박하고 논리가 박약하여 많은 오해를 샀습니다.
아무튼 오늘 오유에서 글 쓴 이래 처음으로 비추를 (그것도 많이...) 받게되어 당혹스럽습니다만, 다수가 오해를 하였을 시에는 오해를 하게 만든 제게 책임이 있다고 생각 합니다.
그리고 몇 시간 동안 생각해본 결과 제 개인적으로는 제 글에 반대를 주신 분들에 비해 상대방의 논리(라 쓰고 어거지라 읽는...)를 많이 수용하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 메갈을 다루는 언론과 진보세력에는 문제가 있다는 것이 장황한 제 글의 요지 입니다.
아무튼 신나는 뉴스하나 없는 분노의 시절에, 깊은 빡침 하나 더 추가해드린 점 송구스럽게 생각하면서, 다시 눈팅러로 돌아가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