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의 : 극의 내용상 부적절한 표현이 포함되어 있을 수 있으니 주의 바랍니다.
필요시 자삭하겠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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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동안 올라왔던 제 다른글들을 재밌게 읽으셨던 분들이라면 이번 괴담도 재미있게 느껴지시리라 생각됩니다.
재밌게 읽어주세요
극중 등장인물의 이름은 실존인물과 관계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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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 같은 년..."
지연은 오늘도 화영을 바라보며 나직히 욕설을 내뱉는다.
개강 초기만 해도 뭇 남자들의 시선은 모두 지연을 향했다. 비컵과 씨컵을 오가는 풍만한 가슴, 쭉 뻗은 다리와 적당한 골반의 비율, 언제 어디서나 지연은 사람들의 관심 대상이었다.
부모님의 이혼으로 어려서부터 아버지 없이 전적으로 엄마 손에 키워져서 였을까? 지연은 늘 남자들에게 관심 받는 것을 좋아했다.
본래의 성격에 화려한 외모가 합쳐지니, 실제로도 늘 퀸카 대접을 받으며 많은 남자들의 구애를 받곤 했다.
학교는 지연에게 하나의 성이었다.
그 성 안에서 지연은 공주이자 여왕이었고, 언제고 그녀를 위해 봉사하고자 하는 수많은 남자들이 있어 그녀는 행복했다.
20대 후반의 젊은 조교는 알아서 시험 족보를 뽑아서 그녀에게 주었고, 돈 많은 과 대표는 아침 저녁으로 차를 가져와 지연을 실어 날랐다.
밥을 사주겠다. 영화를 보여주겠다. 좋은 곳에 놀러가자는 제의는 하루에도 수차례 그녀의 카톡에 올라오는 단골 제의 였기에,
그녀는 아무런 부족함을 느끼지 못하며 살아왔다.
적어도 화영이 편입해 들어올때 까지는...
동갑내기인 화영은 말 수가 많은 아이는 아니었다.
조용한 편인데다, 화려한 미인도 아니라 지연으로서는 그냥 좀 청순하게 생긴 애 정도로 생각하고 별 경계도 하지 않았는데,
어느 순간부터 남자들의 시선이 자신이 아닌 화영에게로 향함을 느끼며, 무언가 잘 못 되어가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화영은 지연과는 정 반대의 성격이었다.
콧소리와 애교로 남자들을 넉 다운 시키는 지연과 달리 화영은 무뚝뚝하면서 남성적인 성격이었다.
그 흔한 레포트 부탁도 하지 않고, 절대 선배들에게 밥을 사달라는 이야기도 하지 않는 소위 다가가기 힘든 스타일이었는데, 왠지 남자들은 화영을 한번 접하고 나면 화영의 주위를 맴돌았다.
"분명 나 모르게 뒤에서 꼬리를 치고 다니는거지... 안봐도 뻔해 순진하게 생겨가지고는 그런 것들이 부뚜막에 먼저 올라간다더니"
지연은 자신의 카톡에서 차츰 줄어드는 어장속의 물고기들이 화영의 곁을 맴도는 것을 보며 분해하고 있었다.
"나랑 화영이랑 누가 더 예쁜거 같아?"
"글쎄 누가 봐도 예쁜거는 지연이 니가 예쁘지..."
"근데? 내가 예쁘면 예쁜거지 왜 말끝을 흐려!!"
"근데 뭐랄까? 화영이 쟤는 남자들이 좋아하는 스타일이랄까? 남자들이 청순하면서 좀 털털한척 하는 스타일 좋아들 하잖아. 쟤는
진짜로 착한거 같더라구 얘기 들어보니까 개념녀? 뭐 그래서 좋다고 하던데?"
"개념??"
"밥 값 지가 내고, 레포트 지가 해온다 이거지 뭐 여튼 남자애들도 웃겨 돈 쓰는게 그렇게 아깝나? 쫌생이들"
"그치? 돈 안드니까 좋다고 꼬이는구나?"
"그리고 뭐 사실 키도 크고 비율은 확실히 좋잖아 청순한것도 사실이고... 왜? 천하의 명성대 퀸카 이지연이 저깟 편입생때문에 밀릴까봐 걱정돼?"
"아니 난 그냥 파리떼들이 꼬이길래 악취가 어디서 나나 싶어서 물어본거야! 됐고 우리 오늘 클럽이나 가자 내가 물 좋은데 알아뒀어"
"오예!!"
지연은 급히 화제를 돌리며 말을 끊었지만, 친구의 말에 부글부글 끓어 오르는 속을 주체할 수 없었다.
"병신 같은 거지새끼들, 돈 안쓰게 해준다고 거기 가서 꼬여있니? 아름다운 걸 곁에 두려면 그만한 댓가를 치뤄야지! 거지새끼들"
지연은 그렇게 혼잣말을 하며 화영의 곁을 맴도는 남자들을 흘겨 본다.
늘 과 탑을 다투는 석현이나 작년에 복학한 복학생 오빠나 다들 얼마전까지는 지연의 레포트를 대신 해주거나 맛집을 알아뒀다며 추근거리던 치들이었는데, 요즘은 카톡을 보내도 대답이 통 시원치 않았다.
지연은 이 모든 것이 다 화영때문이라고 생각했다.
사실 거기까지만 해도 지연이 못 참을 수준은 아니었다.
어차피 추근거리는 남자들은 많았고, 지연도 그 중 몇몇은 몹시 귀찮아 쳐내 버리고 싶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으니까
하지만 딱 한명...
그 남자만은 예외였다.
송지섭
그는 완벽한 남자였다.
재단 이사장의 손자이면서, 외국 유학파로 영어는 물론 일어도 능숙했다.
잘 생긴 얼굴에 큰 키를 가졌고, 농구등 스포츠까지 만능인 그 남자는 다른 모든 면면을 봐도 완벽했지만, 가장 지연의 마음에 들었던 건
지연을 유혹하기 위해 달려드는 그 무수히 많은 날파리중에 그가 없었다는 사실이었다.
여자에 관심이 없는건지, 아니면 지연이 마음에 들지 않았던 건지
지연이 작심을 하고 술자리에 동석해도 지섭은 별다른 동요가 없었다.
그 흔한 전화번호도 묻지 않고, 사소한 행동 하나하나까지 다른 평범한 여학생을 대할때와 동일했다.
지연으로서도 자존심이 상해 더 이상의 대쉬는 하지 않고 아무렇지 않은척 그를 놔두었지만, 내심 누군가와 사귀게 된다면 바로 지섭일꺼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런 지섭이 최근 유독 화영과 함께 있는 모습이 자주 목격된 것이 문제였다.
"더러운 암캐 같은 년... 어디서 꼬리를"
화영과 지섭이 다른 일행과 함께 웃으며 지나는 모습을 보며 지연은 화가 부글부글 끓어 올랐다.
다른 버러지 같은 남자들이야 다 줘도 상관없지만, 지섭만큼은 화영에게 보낼 수 없다는 것이 지연의 마음이었다.
"복학생 진기오빠를 시켜서 술 먹인후에 자빠뜨리라고 할까?"
"아니면 전기과 진호한테 말해서 차로 받아버리라고 할까!!"
"사체과 동수 오빠가 데려다가 얼굴이 묵사발이 되게 패줘도 좋은데 키킥"
지연의 머리속에서 화영은 마치 헝겊 인형처럼 찢기고 범해진다. 지연은 상상만으로도 흐뭇한지 누군가 자신의 등뒤로 다가오는 것도 모른 채 의미심장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저기 예쁜 학생 미안한데 껌 하나 사줄 수 있겠나?"
"깜짝이야!! 아 뭐야!! 진짜 짜증나게"
지연이 돌아보자 그 곳에는 오래전부터 학교내를 들락거리며 껌을 파는 껌팔이 아저씨가 바닥에 엎드려 있었다.
껌벌이 아저씨는 두 다리를 잃은 듯 고무덩이로 허벅지 아래를 감싼채 작은 소형 수레를 끌고 다니며, 교내 이곳 저곳에서 껌을 팔았다.
평소 잘 씻지도 않는지 꽤재재 한데다 몸 여기저기에 피부평인듯 보이는 욕창이 잔뜩 나 있어서 어린 여학생들에게는 기피의 대상이기도 했다.
"아 짜증나 이건 또 무슨 냄새야 아저씨 똥쌌어요! 짜증나니까 얼른 저리로 가요!!"
"아 저기 학생 그러지말고 하나만 사줘요... 오늘도 내가 이 학교 안 올려고 했는데, 정말 하루종일 하나도 못 팔아서 점심도 못 먹었어, 그러지말고 불쌍한 사람 돕는다 생각하고 하나만 사줘요 응?"
"시팔 제가 욕을 해야 갈꺼예요 꺼지라구 이 거지새끼야!"
"아가씨 내가 그래도 학생 아버지뻘은 될껀데 그런식으로 말하면 안되지! 그럼 못 써요"
껌팔이 사내는 지연의 욕지거리에 조금 화가난 듯 진지한 말투로 이야기했지만, 지연의 태도는 조금도 달라지지 않았다.
"아버지? 누가? 당신이? 어디서 말같지도 않은 훈계야! 당신이 뭔데! 껌이나 팔러다니는 앵벌이 주제에 어디서 주제도 모르고 꺼져 안꺼질래? 내가 경비아저씨라도 불러야 꺼질꺼야!!!"
안그래도 아버지에 대한 컴플렉스를 가지고 있던 지연은 껌팔이 사내의 말에 한층 더 격노한 표정으로 입에 담지 못할 욕까지 퍼붓고 있었다.
"뭐야 지연아 너 여기서 뭐하냐?"
"어머 동수오빠!"
지연과 껌팔이 사내가 옥신각신하는 것을 보았는지 어디선가 동수가 다가온다. 동수는 사회체육과, 그 중에서도 유도를 전공하는 사람 답게 다부진 체격과 덩치가 인상적이었다.
"오빠... 흑흑 저기 있잖아 나 여기 그냥 서 있었는데 저 껌팔이 아저씨 아니 앵벌이가 갑자기 다짜고짜 나한테 욕을..."
여자는 요물이라고 했던가? 지연은 지금까지의 기세 등등한 모습은 어느샌가 날려버리고, 연약한 피해자의 모습으로 변신한 채 동수의 품에 기댄다.
내심 전부터 지연을 마음에 두고 있었던 동수는 그런 지연의 모습에 지금이 자신의 남자다운 모습을 어필할 수 있는 기회라고 여겼는지, 껌팔이 사내의 해명은 커녕, 지연의 말이 채 끝나기가 무섭게 바닥을 기고 있는 껌팔이 사내의 멱살을 쥐고 번쩍 들어 올린다.
"뭐야 이 새끼야!! 땡볕에 기어다니면서 껌이나 팔러다니니까 머리가 돌았니?"
"컥컥... "
동수가 움켜쥔 멱살에 힘을 주자 컴팔이 사내는 변명도 못한 채 숨이 막힌다는 듯 허공에서 허우적 거렸다.
"어디서 이쁜건 알아가지고 감히 우리 지연이한테 치근덕 거려!! 이 새끼야 너 어디 한번 혼좀 나봐라!!"
동수는 안그래도 너덜너덜한 껌팔이 사내의 옷깃을 붙잡고, 유도선수답게 메치기로 가볍게 패대기친다.
그나마 화단 앞이라 바닥이 흙이었으니 망정이지, 콘크리트 바닥이었다면 아마도 목숨조차 부지하기 힘들었으리라
"어이쿠... 사람살려..."
"그 정도론 안돼 이 새끼야!!!"
자신의 등 뒤에서 흐뭇한 미소를 짓고 있는 지연을 본 것인지 동수는 한층 더 힘을 실어 사내를 향해 발길질을 해댔다.
"헉!!! 흡!!!!! "
껌팔이 사내의 얼굴이 일그러질 수록 지연의 입꼬리가 점점 올라갔다.
그렇게 한참을 흠씻 두들겨 패고난 뒤 동수가 이마에 흐르는 땀을 닦아내자, 지연은 짐짓 감탄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동수의 팔짱을 낀다
"어쩜 오빠 완전 멋있다. 오빠같이 든든한 사람이 내 남자친구라면 얼마나 좋을까?"
"아 그래? 하하하하 내가 좀 든든하긴 하지, 지연아 엄한 놈들이 와서 너한테 치근덕 거리면 언제든지 말해 오빠가 언제든 달려올께!!"
"어머 오빠 완전 멋져, 어떡하지 나 오빠한테 막 반할라 그러네"
"그... 그래? 하하하 그럼 저기 지연아 이따가 오빠랑 요 앞에 맛있는 순대볶음집이 새로 생겼다는데 같이 갈래 응?"
"에이 오빠는 나 순대 징그러워서 못 먹는거 몰랐어? 지연이는 그런거 못 먹어요"
"아 저기 순대 볶음이 싫으면 부대찌게도 있는데..."
"그리고 미안한데 나 오늘 급한 레포트가 있어서 과사에 가서 레포트 해야돼 미안 오빠 밥은 나중에 먹자 오늘 정말 고마워 잊지 않을께 오빠 또 봐..."
지연은 [저 둔한 곰같은 새끼 또 엉길려고 그러네]라고 혼잣 말을 하면서도 입가엔 억지로 미소를 지어보이며 손을 흔든다.
동수는 동수대로 아쉬운 표정을 지으며 저 멀리로 사라지는 지연을 바라보며 중얼거린다.
"그냥 바로 좋아한다고 말해버릴껄 그랬나? 오늘 나한테 뻑 같거 같은 표정이던데 히히히"
지연과 동수가 떠난 자리에는 껌팔이 사내만이 검붉은 피를 뱉어내며 쓰러져 있었다.
동수의 발길질에 얻어맞으며 벗겨졌는지 고무로 된 가림막이 떨어져 나가 허벅지 아래쪽이 공허한 그의 흉칙한 두다리가 그대로 드러나 있었다.
갈비뼈가 부러진건지 아니면 타박상에 의한 통증인지 사방으로 흩어진 껌들을 주어모으려 바닥을 기는 그의 표정은 비통함이 가득차 있었다.
"아저씨 괜찮으세요?"
한참을 기어서야 겨우 반정도의 껌을 작은 손수레에 모아 놓은 껌팔이 사내를 향해 누군가 다가와 안부를 묻는다.
화영이었다.
그녀는 들고 있던 전공서적도 바닥에 내팽개친 채 그에게로 다가가 흙이 묻은 껌들을 입으로 후후 불며 함께 껌을 주워든다.
"아이고 학생 고마워요 더러우니까 그건 놔둬요 내가 닦아도 되니깐"
껌팔이 사내는 극과 극을 달리하는 폭력뒤의 환대에 어쩔줄 몰라하며, 화영을 만류하지만 화영은 아무렇지 않다는 듯 바닥에 흩뿌려진 껌들을 모아준 뒤 가방에서 티슈를 꺼내 피를 닦으라며 건네준다.
"어쩌다가 이렇게 되셨어요! 많이 다치신거 같은데"
"괜찮아요 살다보면 노상 있는 일이지 뭐, 학생 같은데 정말 고마워요 아까 그 누구랑은 천지차이네... 똑같이 얼굴은 이쁘게 생겼는데..."
"아니에요 다쳐서 쓰러지신분 보면 다 이렇게 하죠 뭐... 근데 어떻게 하죠 많이 다치신거 같은데 제가 차나 그런게 없어서 병원에 모시고 가거나 그렇게는 힘들꺼 같아요"
"아니야 아니야 그냥 파스나 사다 붙이면 되지 뭐 괜찮아 병원갈 돈도 없어 신경쓰지말고 가던길 가요 깨끗한 옷에 더러운거 묻을라"
"아저씨 잠시만 기다리세요"
화영은 잠시 기다리라는 말만을 남긴채 어딘가로 달려갔다.
그리고 다시 돌아온 화영의 곁에는 지연이 그렇게 바라마지 않던 지섭이 서 있었다.
"오빠 죄송해요 생뚱맞게 이런 부탁드려서"
"아니야 사람이 사람 돕는데 무슨 이유가 필요해 내가 재단 부속 병원에 모시고 가 볼께 아저씨 차 바로 저기에다 세워놨으니까 제 등에 한번 업히실 수 있으시겠어요?"
지섭은 껌팔이 사내를 향해 업히라는 손짓을 하며 등을 가져다 댄다.
껌팔이 사내는 연신 어쩔줄 몰라하는 표정을 지으며 만류했지만, 화영의 부축을 받으며 지섭의 등에 업혔다.
"고마워 고마워 내가 이 고마움을 어떻게 갚지 이거..."
"아니예요 치료 잘 받으시구요 다치지 마세요 참 깜빡 할뻔했네"
화영은 손에 들고 있던 비닐봉지를 사내에게 내밀었다. 봉지에는 상처에 붙이는 밴드와 타박상에 붙이는 파스가 들어 있었다.
"아이고 내가 참 눈물이 다 나네... 고맙수 고맙수 저기 이거 약소하지만 내가 줄게 이거 밖에 없네 저기 이거"
사내는 화영의 손을 잡아 끌며 무언가를 쥐어준다.
화영이 손을 펼쳐보자 거기에는 후라보노 껌 한통이 들려 있었다.
"미안하고 고마워요 내가 줄게 이거 밖에 없어요, 여기서든 밖에서든 날 보면 언제든지 말해요 내가 껌은 달라는대로 줄테니까"
"고맙습니다."
그것을 마지막으로 사내는 지섭의 등에 업혀 병원으로 향했다.
그제서야 바닥에 내팽겨쳐 두었던 전공서적을 주워들고 다시금 강의실로 향하는 화영...
하지만 같은 건물 3층에선 그런 화영을 바라보는 이글거리는 눈빛이 있었다.
"망할년 지섭오빠한테 저런 부랑자를 업게해? 지가 무슨 천사야? 아주 가식이 쩌네 쩔어 여우같은년! 두고보자 내가 너 가만히 두나"
지연은 자신을 목석 취급하던 지섭이 화영의 부탁에 선뜻 달려와준 것이 못 마땅한 눈치였다.
그리고 이틀 후
"야 박화영 나랑도 한잔하자"
화영은 조금 놀란 눈치였다. 모처럼의 과 단합대회 날이어서 다들 서로 주거니 받거니하며 술을 마시고 있긴 했지만, 편입 초기부터 유독 자신에게만은 찬바람이 불 정도로 냉랭하게 대하던 지연이 먼저 다가와 말을 붙였기 때문이었다.
"어 이지연이 너 그 맥주 어디서 났어! 회비 적다고 과대가 무조건 소주만 깔아달라고 했다든데! 반칙이야 너!!"
어디선가 나타난 복학생 오빠 한명이 끼어든다. 하지만 지연은 그를 무시 한채 입을 다문채 머뭇거리고 있는 화영을 바라보며 다시 한번 말한다.
"에이 여자들은 좀 봐줘야지! 안그래 박화영? 너 편입하고 나서 별로 친해질 기회도 없었고 해서, 내가 특별히 맥주 가져왔는데, 같이 마셔줄꺼지?"
"나야 좋지 고마워 지연아"
동갑내기임에도 불구하고 평소 대화할 기회도 없었던 지연이 호의를 베풀며 가져온 맥주인데다 워낙 술을 잘 마시는 편은 아니었던 화영이었기에, 지연이 가져온 맥주는 꽤나 반가웠다.
"오빠들 여자꺼 뺏어먹으면 안되는거 알죠? 박화영 그 맥주는 내가 너 생각해서 특별히 가져온거니까 너 혼자 마셔 다른 오빠들 주지 말고 알았지?
꼭.니.가.마.셔.야.돼.이.맥.주!!!!"
"그래 고마워 지연아"
화영은 지연의 호의에 감사를 표하며 지연이 건네준 맥주를 벌컥 들이킨다. 차가운 맥주와 하얀 거품이 꿀꺽 소리를 내며 화영의 목구멍을 넘어간다. 뭔가 쓴 맛이 나긴 했지만 제법 취기가 올라있던 화영이었기에 딱히 이상하다는 느낌은 없었다.
그리고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화영은 자꾸만 눈커풀이 무거워지며, 몸을 가눌 수 없을 것처럼 심신이 미약해짐을 느꼈다.
"어머 얘 술 잘 못 마신다고 하더니 진짜인가 보네, 얘 박화영! 박화영 정신 좀 차려봐!"
누군가 자꾸만 잠들려하는 화영의 어깨를 흔들어본다.
하지만 그런 행위에도 불구하고 화영은 점차 나른해지며, 의식이 희미해짐을 느낀다.
"박화영! 완전히 취했나보네, 고맙게도... 어떡하지 내가 바람 좀 쐴 겸 잠깐 데리고 나가야겠다."
"지연아 무겁지 않겠어? 내가 도와줄까?"
몇몇 남자들이 화영을 부축하듯 들쳐멘 지연에게 달려든다.
"아이고 응큼하게 정신 못차리는 애 데리고 어쩌시려구요! 가만히 계세요 내가 잠깐 데리고 나가서 바람 좀 쐬게 한다음에 데려올테니까 도와줄꺼면 오빠들 말고... 어디보자"
지연이 술자리 주변을 두리번거린다.
그러자 마치 미리 약속이라도 한 듯 술자리 한쪽에서 누군가 천천히 걸어나오며 말했다.
"아 마침 나도 갈려고 했는데 내가 저 앞까지만 같이 부축해줄께"
복학생 진기였다.
"그래 진기 오빠면 좀 믿을만 하겠다. 내가 다른 오빠들은 도통 믿을 수가 없어서.. 오빠가 좀 도와줘"
지연은 마치 짜논 각본처럼 화영의 한쪽팔을 진기에게 내밀었고, 진기는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으며 지연과 함께 화영을 부축해 술집 밖으로 나간다.
"너.... 어제 나한테 수면제 한알만 달라고 하더니, 이거였냐? 난 또 니가 불면증인줄 알고 줬더니..."
"뭐랄까 내가 먹을까도 했는데, 생각해보니 박화영 이 기집애 하는 짓이 꼴사나워서 말이야. 오빠는 모르겠지만 이 기집애 보통 아니야, 들어보니까 전에 다니던 학교에서도 ㅇㅇ동 걸레 하면 박화영 모르는 사람이 없었데, 이 남자 저남자 홀리고 다니면서 어휴... 난 불결해서 말도 못하겠네..."
"그래서 골탕 좀 먹어봐라하고 수면제를 멕인거야? 재운건 좋은데 이제 어쩔건데?"
"그야 뭐 난 모르지 그래서 오빠한테 미리 얘기한거 아냐, 내가 신호하면 잠깐 나와달라고, 난 모르겠고 오빠가 어디 조용한데 있으면 데려가서 좀 눕혀줄래? 알다시피 난 또 약속이 있어서 말야"
지연이 진기를 바라보며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어보인다.
"그 약 한알 다 갈아서 넣었으면 적어도 4~8시간은 정신 못 차리고 잘텐데... 어디보자 얠 눕혀 놓을만한데가 있을라나..."
"왜 있잖아 모텔같은데... 어차피 이 걸레 같은 기집애는 자기집 안방처럼 드나들었을텐데 뭐... 난 모르겠고 암튼 오빠 좀 부탁할께"
지연은 부탁한다는 말만을 남긴채 골목밖의 인파속으로 사라진다.
진기는 정신을 잃은채 쓰러진 화영을 바라보며 입맛을 다신다.
"어차피 유명한 걸레라는데 뭐 어때? 한강에 배지나갔다고 티나겠어?크크크 이거 간만에 몸보신하겠네 꽐라는 내 취향이 아니지만 이 정도 되는 와꾸면 뭐 히히히"
진기는 화영을 다시금 들쳐 업으며 슬며시 두 손으로 화영의 엉덩이를 주무른다.
두툼한 화영의 엉덩이 살 아래로 진기의 탐욕스러운 손길이 분주하다.
"여튼 진기오빠 아니 저 새끼 발정난건 알아줘야해. 과 동기중에도 안건드린 애가 별로 없다드니 개 버릇 남 못주네... 이걸로 박화영 저 년은 아웃이야 내일 단톡방에 쫙 올려야지 아무한테나 몸 맡기는 걸레 씹창년 박화영 히히히"
골목길 한편에 숨어 조용히 진기를 바라보던 지연이 흐뭇하게 미소짓는데, 그 미소가 왠지 섬뜩하게 느껴졌다.
진기는 진기대로 얼굴 가득 미소를 머금은 채 골목 한쪽 끝에서 제일 가까운 모텔이 어디일지를 떠올리며 싱글벙글이다.
"아 이거 말라보이는데 엉덩이랑 가슴은 꽤나 육덕지네, 기다려라 정신 차릴때까지 아주 좆나게 따먹어 줄테니까"
하지만 그때...
어둠속으로 나아가려는 진기의 발목을 잡아 채는 사람이 있었다.
"그 학생 거기 두고가게"
"으으! 뭐 뭐야!!! 이거!!!"
진기는 깜짝 놀라 발을 빼려 했지만 어둠속의 무언가가 너무도 완강하게 진기의 발목을 붙잡고 놓아줄 생각을 안했다.
"뭐야 이거 껌팔이 새끼 아냐!!!"
진기의 말대로 진기의 발목을 붙잡고 있는 것은 종종 교내에 나타나 껌을 팔던 사내였다.
"그 학생 착한 학생이야 그냥 좀 놔줘!!"
사내는 진기의 발목을 붙든 채 간절히 애원했지만, 화영과 같은 미인을 어떻게 해보겠다는 욕심으로 들 뜬 진기에게 그런 애원은 하등의 가치도 없이 묵살되었다.
"이런 미친새끼!!! 니가 뭔데 여기서 얼쩡거려 놔! 안놔!!!"
진기는 거침없이 붙잡히지 않은 다른 발로 사내의 머리통을 머리통을 짓밟았다.
[빠각!!]
"으으으..."
무언가 깨지는 소리와 함께 사내의 머리통이 보도블럭에 부딪히며 피를 튀겼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손은 조금 전보다 더 굳건히 진기의 발을 붙들고 있었다.
"미친놈!! 개새끼 어딜감히 놔!! 놓으라고 이 거지 새끼야!!!"
진기는 연신 발로 사내를 짓이긴다. 발로 짓밟는 것도 모자라 손으로 그의 머리칼을 잡아당겨봤지만 사내는 요지부동이었다.
피까지 질질 흘리면서도 그는 도무지 진기의 손을 놓아줄 생각을 안했다.
"뭐야... 저기 누가 사람을 치나봐..."
"그러게 뭐지? 경찰 불러야 되는거 아냐?"
"저 사람 피 흘려... 뭐지?"
화가 난 진기가 소리를 질러서 일까? 아니면 복날에 개 패듯이 얻어 맞는 사람에 대한 일말의 동정때문일까?
사내를 짓밟는 진기 곁으로 지나가던 행인들이 하나둘 모여 바라보고 있었다.
"아 씨발... 뭘 봐!! 뭘 보냐구!!! 이건 왜 이렇게 끈질겨 놔! 놔 이새끼야!!"
"하... 학생 ... 그 학...학생 놔아 줘어...."
사내는 연신 피를 쏟아내면서도 진기를 향해 애원하고 있었다.
"뭐야 경찰에 신고해 이상해 저 사람"
"죽는거 아냐?"
사람들이 하나 둘 씩 더 모여들기 시작하자 사내를 거칠게 폭행하던 진기도 조금씩 당황하고 있었다.
정신을 잃은 화영에 대한 것도 그렇고, 자신이 두들겨 팬 이 껌팔이 사내에 대한 것도 경찰이 나타나기라도 하면 꽤 골치 아프겠다는 생각이 든 모양이었다.
"놔! 놔 이새끼야!! 간다고 그냥 갈테니까 씨발!! 좀 놔 이새끼야!!"
진기 역시 당황했는지 악에 받쳐 소리를 지른다.
그 소리가 꽤나 컷는지 술집 안에 있던 화영과 같은 과 학생들이 하나둘씩 술집 밖으로 나오기 시작했다.
"뭐야 화영이잖아?"
"저건 뭐야 진기오빠?"
"하... 학생... 두고...두우고 가아아..."
[뻑!!!]
진기의 발길질이 다시 한번 사내의 안면에 정확히 적중하자 사내는 외마디 비명조차 지르지 못한 채 손을 놓고 쓰러져버렸다.
"씨팔 두고보자 껌팔이 새끼!!! 죽여버릴꺼야"
진기는 악에 받친 표정으로 중얼거렸지만, 몰려든 사람들의 모습에 위축이 되었는지 화영을 골목 구석에 내버려둔 채, 인상을 잔뜩 찌푸리며 자신의 앞에 늘어선 사람들을 헤치고 인파속으로 사라진다.
"화영아 괜찮아? 화영아!!!"
"이거 병원에 데려가 봐야하는거 아니야?"
"내가 업을께 내가 업을께"
같은과 학생들의 우왕좌왕하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근데 저 사람은 누구지?"
"그 왜 있잖아 가끔 껌팔러 오는 앵벌이 아저씨"
"아.. 근데 왜 진기한테 얻어맞은거야 도대체?"
"몰라... 근데 저 아저씨도 병원 데려가야되나?"
"왜 니가 병원비 내줄라고? 몰라 니가 데려가든가"
"난 싫어... 저 아저씨 냄새도 나고..."
"뭐 누군가 어떻게 하겠지 일단 화영이부터 데리고가"
몇몇 남학생들이 득달같이 달려와 이때다 싶었는지 쟁탈전을 벌이다 한 학생이 화영을 업고 병원을 향해 달린다.
그러자 화영을 업지 못한 다른 남학생들이 어딘가 부러운 눈빛으로 그를 바라보며 함께 병원으로 향했다.
남은 학생들과 행인들은 마치 모처럼의 좋은 구경거리가 사라졌다는 표정으로 순식간에 뿔뿔이 흩어져버렸다.
**
[퍽퍽!!]
"미친새끼!!! 니가 뭔데 나타나서 산통을 다 깨놓니!!!"
모두가 사라진 어두운 골목길에 한 여자가 나타나 정신을 잃고 쓰러진 사내를 걷어 차기 시작했다.
반대쪽 골목에 숨어 진기와 화영을 훔쳐보며 즐거워하던 지연이었다.
"미친놈!!! 쓰레기 같은 인간!!"
지연은 신고 있던 하이힐 굽으로 사내의 손등을 짓이긴다.
"흐으으으윽!!"
극심한 고통때문인지 정신을 잃고 쓰러져있던 사내가 나지막히 신음하며 몸을 떨어댄다.
"거지새끼야 한가하면 나가서 동냥질이나 할일이지 여긴 왜 기웃대니! 이 미친새끼야!!! 너 한번 죽어봐라!!"
"아아..."
밟힌 손등을 부여잡고 신음하는 사내를 놔둔 채 지연이 누군가에게 전화를 걸기 시작했다.
"동수 오빠? 흑흑흑 오빠 나 무서워..."
"왜 그래 지연아!!"
"있잖아 그때 그 미친 거지새끼가 또 나를 희롱하는거 있지 오빠 빨리와줘 여기 로데오 거리 맨 끝 골목에 역삼 곱창 맞은편 골목이야 응! 응! 걱정마 그 거지새끼 다리도 성치 않은 병신이라 멀리 못 갈꺼야 와서 좀 어떻게 해줘 나 무서워서 못 살겠어 오빠! 흑흑"
처량한 목소리와 애달픈 울음소리는 전화통화가 끝나자마자 순식간에 낄낄대는 웃음소리로 변해버렸다.
"병신 새끼야 낄데 안낄데 모르고 나대면 죽는거야! 알겠어!!! 화영이 그 개 썅년을 내가 오늘 아주 조져버릴려고 했는데, 니가 다 망쳐놨어 알아!!! 기껏 작업을 다 쳐 놨는데 오지랖도 유분수지 미친 병신새끼!! 퇫!!! 퇫!!"
지연은 곧 이 자리에 달려올 동수가 사내를 짓이겨 놓을 생각에 뭐가 그리 즐거운지 미소를 띄며 사내의 면전에 침을 뱉었다.
"동수 이 새끼는 왜 이렇게 늦어! 빨리 달려오라는데, 만약에 나한테 무슨일이라도 생기면 어쩔려구!!"
지연은 팔짱을 낀 채 핸드폰을 만지작 거리며 뭐가 못 마땅한지 투덜거린다.
자신의 발밑으로 검은 무언가가 천천히 기어오는 것도 모른채
"아악!!!!!"
순간 지연의 비명소리가 골목안에 울려퍼졌다.
어느샌가 지연의 곁으로 기어온 사내가 지연의 발목을 물어버린 것이었다.
"이 미친 새끼가 개도 아니고... 아야야 아파 죽겠네 이 미친새끼!!"
지연의 발목에는 선명한 이빨자욱과 함께 물리면서 까졌는지 약간의 피가 흐르고 있었다.
"천형의 죄를 지어서 그런거라고 생각했어, 아님 전생에 업이 많아서 그런거든가... 너무 괴롭고 고통스러워서 죽어버릴까 했는데, 사람 목숨이란게 그렇게 쉽게 끊어지는게 아니데? 그래서 죽지도 못하고 살아남았어... 그래서... 그래서 이 죄는 아무도 주지 말고, 나 혼자... 나 혼자... 온전히 가져가야겠다고, 아무도 원망하지 말자고, 나 하나 죽고 없어지면 다 없어지는 거라고.... 그렇게 생각해서 혼자 품고 있었어... 근데 그게 아니네... 전생이 아니라 현생에 업이 많은 너 같은 악마를 벌하라고 나한테 그렇게 힘든 길을 보내셨네... 나한테 그렇게 많은 독을 품게 하셨네 그래..."
껌팔이 사내가 자신의 발목을 물었다는 사실에 화가 났는지 악다구니를 내지르는 지연을 앞에 두고 사내는 무언가 알 수 없는 말들을 지껄이고 있었다.
그의 눈에는 무언가 짙은 회한과 한이 어려 있었다.
"뭐야 지연아 괜찮아!!"
때 마침 달려온 동수가 헐떡이며 지연의 어깨를 붙잡는다.
"오빠 이거 봐 저 새끼!! 저 병신 새끼가 내 다리를 이렇게 물었어!!!"
"뭐!! 어디봐 진짜네!!! 이런 미친 개새끼!!!"
동수는 지연의 발목에 나 있는 상처와 이빨자욱을 보고는 불같이 노하며 사내에게로 달려들었다.
"죽어 이 미친놈아! 그렇게 패줬는데도 아직도 정신을 못 차렸네!!! 니가 개야? 이 미친놈아!!!"
진기에게 걷어차이고 짓밟힌 상처가 역력함에도 사내는 또 한번 동수에게 짓밟히기 시작했다.
얼핏 봐도 진기보다 20~30킬로 이상은 족히 더 나가보이는 동수인지라 진기때와는 차원이 다른 발길질이 사내에게로 가해졌다.
"학상... 나는 가오... 내가 뭔 죄를 지었는지 쿨럭... 처... 천형의 벌을 받았지만... 고마...우운거언 아는 사람이오, 나 야...약속을 깨고 죄의 씨앗을 남기고 가지만, 욱!! 이번 생에 업을 깨끗이 다 씻었으니 다음 생은 깨끗하게 태어나 학생같은 참한 처자도 만날 수 있겠지? 그치?"
사내는 두드려맞으면서도 연신 알 수 없는 말을 멈추지 않고 내뱉었다.
아니 되려 동수에게 두드려 맞을 때마다 그의 목소리는 더 힘이 서려 있는 듯한 느낌이었다.
얻어 맞으면서도 계속 무언가를 지껄이는 사내가 탐탁치 않았는지 동수는 쓰러져있던 사내의 멱살을 움켜쥐고 딱딱한 아스팔트위로 내 던진다.
"아아악!!!!!!!!!!"
유도의 업어치기 기술이었다.
사내는 몸과 목이 기억자로 구부러진채 그대로 땅에 곤두박질 쳤다.
"제... 젠장... 모... 목부터 떨어졌네 씨팔!! 좆됐다..."
그 순간만큼은 동수도 깜짝 놀란 표정이 역력했다.
"오... 오빠! 뭐야 주... 죽은거야?"
"씨팔 몰라.. 나도... 수... 숨을 안쉬는거 같은데... 아 씨팔 씨팛!!!! 나 다음주면 국가대표 상비군으로 뽑히기로 했는데 아... 어떻게 해!!! 씨팔!!! 어떻게 하지? 야 지연아! 너 나 못 본거다!!! 우리 오늘 만난적도 없는거야 알았지?"
"오... 오빠... 나... 난 몰라..."
"씨팔 나 좀 살려줘라 암튼 나... 나도 모르겠다 여튼 안본걸로 해 이깟 거지새끼 하나 죽는다고 누가 관심이나 가지겠어? 나 갈께 나 간다!!!"
동수는 그 큰 덩치에도 불구하고 얼굴이 하얗게 질려서는 지연을 그 자리에 놔둔 채 어둠속으로 사라졌다.
제 아무리 운동선수에 큰 덩치를 가졌다고는 해도 사람을 죽인다는 건 겨우 20대 초반에 불과한 동수에겐 엄청난 사건이었으리라
"나... 나도 몰라..."
지연은 사람이 죽었다는 생경한 광경에 섬뜩함을 느끼며, 허겁지겁 핸드백을 챙겨들고 동수와 마찬가지로 골목 바깥 어둠속으로 사라졌다.
그리고 그렇게 두어달의 시간이 흘렀다.
***
화영이 갑자기 쓰러진 사건은 수면제를 먹은것 같다는 의사의 소견이 있긴 했지만, 평소 학우들과 막역한 사이로 모나지 않은 화영이었기에 그냥 좀 신기한 헤프닝 정도로 끝이 나버렸다.
그 후 화영이 절대 금주를 선언하여, 같은 과의 수많은 남학생들이 아쉬워 하긴 했다지만, 그닥 큰 반향은 없었다.
"화영아 근데 그때! 너가 취하긴 했어도 확 맛이 갈 정도는 아니었는데, 맥주 마신 다음에 꽐라 된거지?"
"잘은 기억 안나지만 그랬던거 같애 난 쏘맥은 안 맞나봐, 앞으론 절대 술 안 마실꺼지만, 혹시 마시더라도 소주면 소주 맥주면 맥주 하나만 파기로 했어!"
"키키키 기집애 여튼 진기 오빠는 그 사건 이후에 휴학했다더라, 그 오빠 손버릇 안 좋고 이 애 저애 건드린다고 소문이 자자했었는데 어쩜... 그럴 수가 있는지... 참 그나저나 그때 너한테 맥주 줬던 걔 있잖아.. 이름이 뭐였더라"
"지연이?"
"그래 지연이... 걔 좀 안됐더라"
"왜?"
"나도 잘은 모르는데 지연이가 갑자기 도와달라고 통사정을 해서 그 왜 있잖아 지연이랑 베프였던 효인이가 지연이 자취하던 그 원룸에 찾아갔었는데, 글쎄 그 예쁘던 지연이가 온몸에 무슨 피부병처럼 발진같은게 나고 발목에 상처가 완전히 썩어 있더래"
"그래? 어떻게 된일이지? 지연이 피부 정말 좋았는데 무슨 병같은거에 걸린거야?"
"모르지... 암튼 걔도 진기 오빠처럼 이 남자 저 남자 다 꼬리치면서 레포트다 뭐다 다 받아먹기만 하고 완전 어장관리 쩔었었는데, 벌 받은거지 뭐 여튼 피부가 완전 망가져서 어디 나가지도 못할 정도래 그래서 학교도 안나오는거고"
"어쩜 어떻게해 병문안이라도 가야되나?"
"너두 참 병이다 지연이가 평소 너를 얼마나 씹고 다녔는데 니가 병문안을 가 괜히 갔다가 병 옮으니까 아서라 기말시험이나 잘 볼 생각해!!"
"별로 친하질 않았어서 좀 그렇긴 하네"
*****
"뭐라구요!!!!"
"아 그러니까 이 병은 한센병의 일종이긴 한데 뭐랄까? 학계에 보고가 필요한 변종이랄까? 뭐 그런셈이지 상체의발진하고 하체의 피부조직이 괴사하는걸로 봐선 분명히 한센병이 맞아 다만 이렇게 빠르게 전이되고 고통을 유발하는 경우는 한번도 본적이 없어서..."
"한센병? 한센병이 뭔데요?"
"나병이라고 해야 알려나? 아 그렇지 그렇게 말하면 보통 잘 알지 문둥병이라고들 많이 하는데, 이게 보통 나병 환자들은 따로 수용해 놓거나 모여 살아서 접촉할 기회도 없을텐데... 이거 참... 잠복기도 너무 짧고..."
"그래서 고칠 수 있어요 없어요!!!"
얼굴 전체에 붕대를 두른 여자가 의사를 향해 격앙된 목소리로 소리치고 있었다.
"한센병은 아주 오래된 병이긴 하지만, 사실상 불치병이라고 보는게 맞지, 게다가 이렇게 잠복기가 짧고 극렬한 고통을 유발하는 한센병은 선례가 없다시피해서 뭐랄까... 일단은 항생제하고 진통제를 맞으면서 경과를 봐야 할꺼 같아... 치료는 아마 어렵겠지"
"씨팔 아저씨 지금은 21세기예요 에이즈도 아니고 에볼라도 아닌데 못 고친다구요!! 니가 그러고도 의사야 봐봐 내 몸이 이렇게 흉칙하게 변해가고 있다구!!!"
여자는 자신의 얼굴을 두르고 있던 붕대를 뜯어내다시피 하며 풀어 냈다.
욕창과 발진으로 얼굴 자체가 흉칙하게 부어 있었고, 일부 부위는 종기와 고름같은 것치 터져서 괴기스럽게 변형되어 있었지만, 자세히 들여다 보면 그녀가 바로 최근 의문의 피부병으로 학교에서 자취를 감춘 지연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어허 환자분 나이도 어려보이는데 나한테 이러면 안되지! 내가 의산데!!! 어디서 감히!!"
"아니예요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선생님 제발 제 병 좀 고쳐주세요 네?"
지연의 욕지거리에 의사가 언성을 높이자 지연은 급작스레 어투를 바꿔 의사에게 매달리기 시작한다.
"아까도 말했지만 아직 한센병을 확실히 치료할 수 있는 약은 없다고 보는게 맞으니까 말했듯이 항생제와 진통제 처방하면서 경과를 지켜보자고..."
"그럼 나을 수 있을까요?"
"일단 상체에 발현하고 있는 발진과 피부 괴사는 어느정도 진행을 막을 순 있을지도 모르겠어, 근데 문제는 하체야 발목에서 부터 시작된 피부조직 괴사가 아주 심각해... 이대로 놔두면 2~3주 이내에 이 조직괴사가 상체까지 올라올 수가 있어요!!"
"그게 도대체..."
"안타깝지만 허벅지 아래부터는 더 이상의 이상괴사를 막기 위해서라도 절단을 하는게 안전할 것 같으니까 하루라도 빨리 보호자랑 같이 수술 준비하는게 좋겠어요
"이 미친새끼야!!! 멀쩡한 내 다리를 자른다고!!! 날 병신으로 만들겠다고!! 이 개새끼야 사람 병신만드는 그런 말 말고 내 병이나 고쳐내란 말이야!!"
다리를 절단해야 할 것 같다는 의사의 말에 지연은 다시금 미친 사람처럼 소리를 버럭지르며 욕지거리를 해대기 시작했다.
"자 봐 보라고!! 똑똑히 보란 말이야!!!"
지연은 의사 앞에서 자신이 입고 있던 옷의 단추를 거칠게 풀어 내린다.
한때 탄력있는 풍만함을 자랑하던 지연의 가슴이 잔혹한 모습으로 주저 앉아 있었다.
"이... 임신한 것도 아닌데... 젖꼭지에서 누런 고름이 계속 나온다구... 가려워서 하도 긁어 댔더니 상처난 자리가 계속 썩어나간다구 ... 흑흑 제발... 흑흑 제발 선생님 선생님! 제발 저 좀 살려주세요 이 병 좀 고쳐주세요 네? 이 미친 의사새끼야 내 병 고쳐내라고!!!!"
"어허 이거 한센병 균이 뇌까지 침범했나!!! 김간호사 사람 불러 이거 끌어내야겠어!!!"
"개 새끼들아 나야 나 명성대 퀸카 이지연!!! 어딜 만져 이 개새끼들아!!!"
지연은 의사의 호출에 급히 달려온 두명의 건장한 남성 인턴에 의해 진료실 밖으로 끌려 나갔다.
밖으로 끌려 나간 뒤에도 지연은 한참동안 악다구니를 질러댔지만, 그녀에게 돌아 온 것은 의사의 말이 현실로 다가오고 있다는 공포뿐이었다.
왜냐하면 인턴들에게 끌려 나간 그 순간부터 왜인지 두 다리가 말을 듣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
[오빠 나 좀 잠깐 봐]
[야 이지연 내가 연락하지 말라고 했지?]
[왜 또 번호 바꾸시게? 살인자 주제에]
[시팔!!! 썅년아 내가 그 얘긴 다신 꺼내지 말라고 했지? 죽이긴 뭘 죽여, 그 거지 새끼가 죽을 팔자니까 죽은거지!! 그리고 니 년이 시켰잖아!!!]
[시켜? 누가 시켜? 발목을 물렸다고 하니까 어떻게 한번 잘 보여 볼까 하고 그 병신새끼를 냅다 돌바닥에 메다 꽂은게 누군데?]
[쉿!! 조용히해!!! 씨팔 누가 들으면 어쩔려고!!! 나 이제 국가대표야!!! 쓸데 없이 허튼소리 지껄이고 다니면 너도 메다 꽂아버릴꺼야!!!]
[조용히 입 다물어 줄테니까 나 딱 한번만 만나 오빠!!! 응?]
[개 같은 년 지금 나 협박하는거야?]
[뭐래도 좋아! 오빨 딱 한번은 만나고 싶어! 오빠 나 좋아했잖아! 오빠 그 뒤에도 나한테 사귀자고 사랑한다고 했던거 기억 안나?]
[시팔 그건 니가 ... 그렇게 되기 전이고, 암튼 딱 한번이야!!! 딱 한번 다시는 연락하지마!!!]
[딩동!]
일련의 전화통화가 끝난지 채 십여분도 지나지 않아 원룸 오피스텔의 초인종이 울렸다.
건장한 체구에 구릿빛 피부...
국가대표 유니폼까지 입은 모습이 제법 다부진 동수였다.
"오빠 왔어?"
"야야 용건만 빨리 하고 끝내자!"
"왜그래... 오빠 나 좋아했잖아!"
"시끄럽고... 용건만 말하라고!"
"나 오늘 오빠한테 허락하기로 했어!"
"뭘 허락해!!!"
동수는 자꾸만 알 수 없는 말을 내뱉은 지연이 짐짓 짜증스러운 듯 투덜거린다.
지연은 거실 한가운데에 있는 의자에 앉아 있었는데 무릎 위에는 핑크색 담요를 덮고 있었다.
"한 여름에 덥지도 않냐? 왠 담요야!"
동수는 짜증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지연에게로 다가가 그녀가 덮고 있던 담요를 잡아 챈다.
"제...젠장!!! 너 어떻게 된거야 이게!!!"
동수가 걷어낸 담요 뒤에는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았다.
의자에 앉아 있는... 아니 두 다리가 절단되어 그저 의자위에 얹혀져 있는 지연만이 있을 뿐이었다.
"씨팔 전에 마지막으로 봤을때는 이정도까진 아니었잖아! 썅 완전 병신이 돼버렸네!!"
"훗! 괜찮아 다리야 뭐 어때 얼굴은 여전히 예쁘니까"
동수의 찌푸린 표정에도 불구하고 지연은 아무렇지 않다는 듯 웃으며 제 얼굴을 가리고 있던 붕대를 천천히 풀어간다.
"우.... 우웩!!!"
연신 헛구역질을 해대는 동수
지연이 풀어낸 붕대 뒤에는 징그럽게 썩어버린 기괴한 몰골의 피사체가 모습을 드러냈다.
눈썹위의 살에 종기가 나고 그 종기위에 또 다른 종기가 나 한쪽눈이 아예 파묻혀 버리고, 코는 얼마나 긁어 댄 것인지 한쪽이 아예 형체 조차 없었다.
거기에 하얗던 피부는 온통 발진과 짓무름으로 벌겋게 변해 있었는데, 중간 중간 벌어진 부위에선 노오란 고름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나 결심했어! 그 동안 오빠가 나를 위해 노력해 준것도 있고, 사람을 죽이긴 했지만 그것도 뭐 결국 나를 위한 거였으니까!"
"주.. 죽이긴 누가!! 뭘 죽여 이 기집애야!"
"그래서 나 오늘 내 모든걸 오빠한테 주기로 했어! 오빠 몰랐지? 나 발랑 까져 보여도 사실 경험 거의 없어... 오빠 늘 내 가슴 보고 싶어서 힐끔힐끔 훔쳐보곤 했었잖아 자 봐 실컷 봐도 돼"
지연은 온통 고름투성이인 손으로 자신이 입고 있던 가운을 풀어낸다.
스르륵 하는 소리와 함께 의자 밑으로 떨어진 가운 뒤엔 얼굴보다 흉칙한 지연의 몸이 차마 말로 형용할 수 없는 모습으로 동수를 바라보고 있었다.
"우욱!!! 꾸웨에엑!!"
"왜? 그렇게 예뻐 오빠? 내 가슴 너무 예쁘지? 만져봐도 돼!"
지연은 바닥에 주저앉아 토사물을 쏟아내고 있는 동수의 손을 억지로 잡아 끈다.
풍만했던 가슴이 있어야 할 위치에는 무언가 바람이 빠진듯한 살쪼가리가 주름진 채 늘어져 있었는데, 그나마 살짜기 튀어나와 유두의 흔적임을 추측할 수 있는 부위에서는 샛노란 고름이 연신 흐르고 있었다.
"한번 빨아볼래?"
"뭐? 우웨에에에액!!!!!!!!!"
지연이 잡아 끈 동수의 손이 그 샛노란 고름이 닿아서일까?
동수는 마치 식중독에라도 걸린 사람처럼 연신 토사물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하지만 지연은 그런 동수의 모습이 뭐가 그리 재밌는지 깔깔 거리며 웃기만 했다.
"하하하하 오빠 너무 귀엽다. 부끄러워서 그래? 괜찮아! 그리고 나 다리는 없지만 밑에는 다 그대로야! 무슨 말인지 알지? 오빠 마음대로 해도 된다구!"
"씨발 미친년아!!! 거울 좀 봐!!! 니미 씨발 완전 토나와서 미치겠는데 뭘해? 개같은년 이거 완전 미쳐버렸네!!!"
동수는 제멋대로 이상한 소리를 지껄이는 지연에게 화가났는지 구토가 멎자마자 버럭 악다구니를 내지른다.
"왜? 나랑 하고 싶어서 안달 난거 아니었어? 실컷 하게 해준다니까! 그것도 이지연의 진짜 남자친구가 되는거야! 히히 하지만 임신하면 안되니까 사정은 꼭 밖에 다 해야해!!"
"에라이 미친년 천하의 상 또라이 년!! 아오 혹시나 해서 와봤더니 완전 미쳐버렸네!! 괜히 시간만 낭비하고 툇!!! 씨팔 마지막으로 말하는데! 너 다시는 나한테 연락하지마! 알았어!!"
"......오빠 미안해..."
"씨발 이제야 정신이 돌아왔나, 그래 이제 정신 차렸으면 귓구녕에 정확히 쑤셔넣어! 다시는! 절대 네이버 연락하지마!! 알았지!!!"
"그래 알았어..."
지연은 고개를 떨군채 나직히 말했다.
"씨팔 괜히 시간만 낭비했네"
"오빠 잠깐만... 그럼 나 마지막으로 딱 한 마디만 할께"
"뭔데!!"
"가까이와봐... 이제 오빠가면 다신 안오고 연락처도 바꿀텐데 딱 한마디만 해주고 싶어..."
"씨발 썅년 가지가지 하네! 후딱 말해"
"좀 더 가까이 와봐..."
"아 진자 짜증나게 하네 자 됐어! 이렇게 바짝 붙으면 됐냐!! 뭔데!!"
동수는 잔뜩 짜증스러운 표정을 지은채 자신의 왼쪽 머리로 지연의 이마를 신경질적으로 툭 친다.
그러자...
"개 같은새끼!!!!"
힘없이 내리깔렸던 지연의 눈동자가 갑작스레 부릅떠지더니 지연의 두 손이 동수의 머리통을 부여잡는다.
"한번만 만나자고 사정할땐 언제고 이제와서 나를 병신 취급해 이 개새끼야!!!"
"아아아 이 미친년이!!!"
동수는 자신의 머리칼을 잡아당기는 지연을 향해 거칠게 주먹을 날린다.
동수의 커다란 주먹이 흘러내린 짓물로 축축한 지연의 복부에 닿는다.
"꺄아아아악!!!"
지연의 외마디 비명소리...
동수는 깜짝 놀란 표정으로 뒷걸음질 친 후 말했다.
"썅년이 사람 놀래키네! 씨발 다시는 연락하지마... "
동수에게 복부를 맞은 탓에 숨이 막히는지 의자에서 굴러 떨어져 끽끽 거리는 지연...
그리고 그런 지연을 두고 매몰차게 오피스텔 밖으로 나가버리는 동수
[툭!!!]
"아 씨발 뭐야 형씨 눈 좀 똑바로 뜨고 다녀!!!"
지연을 두고 오피스텔 밖 복도를 서둘러 빠져나가던 동수는 누군가와 어깨를 부딪히자 방금 자신이 당한 곤혹스러움을 애꿎은 상대에게 퍼붓는다.
"아 죄송합니다."
사내는 모자를 푹 눌러쓴 채 얼굴엔 마스크를 쓰고 있었는데, 그렇게 얼굴을 온통 가리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동수는 왠지 그 남자가 낯이 익다는 느낌을 받았다.
"아 이건 뭐지?"
동수는 문뜩 쓰라린 느낌을 받아 제 귀를 만져본다.
동수의 귀는 무언가에 살짝 물렸는지 피가 흐르고 있었다.
"방금 전 그새끼랑 부딪힐때는 아니고, 지연이 그 썅년이 머리칼 잡아 뜯을 때 물어버린건가! 암튼 썅년 가지가지 하네!!!"
동수는 몇 달전 그날도 그렇지만, 오늘도 참 재수없는 날이라고 투덜거리며, 그렇게 서둘러 오피스텔 밖으로 빠져나갔다.
두달 뒤 있을 아시안게임에서 금메달을 따는 자신의 모습을 상상하면서...
"이 개 걸레같은 년아 도대체 이게 무슨 병이야!! 너 혹시 매독이냐!!!"
한 남자가 오피스텔 안으로 들어오자 마자 버럭 소리를 지른다.
그리고 남자의 시선이 쳐박힌 원룸 오피스텔 바닥엔 한 여자가 기괴한 표정으로 웃음을 터트리고 있었다.
"큭큭큭큭... 한번 준다니까 좋다할땐 언제고 이제와서 뭐? 매독? 왜!! 나랑 할땐 내가 처녀일줄 몰랐다며 좋아 죽더니 이제와서 후회돼? 응 그런거야 진기오빠?"
기괴한 미소를 짓는 이는 바로 지연이었고, 지연 앞에 모자를 푹 눌러 쓴 채 마스크로 얼굴을 가린 남자는 바로 진기였다.
"야 이 썅년아 니가 성병 걸린 개 걸레년인줄은 몰랐지 이 개같은 년아!!"
"그거 성병 아니야... 무식하긴... 뭐 허구헌날 수업은 안 듣고 여자애들 따먹을 궁리나 해댔으니 알게 뭐야 잘 들어 그건 한센병이란 거야... 이 문딩아!!"
"조까씨발... 이건 성병이 확실해 이거 봐 이 썅년아!!"
진기는 끓어 오르는 분노를 참지 못하겟다는 듯 두 주먹을 불끈 쥐더니, 이내 자신이 입고 있던 바지의 버클을 풀기 시작했다.
"자 봐!!!"
진기가 바지를 무릎까지 내리자 거기엔 마치 똥처럼 고약한 냄새를 풍기며 썩어버린 고깃덩어리가 축 늘어져 있었다.
밑둥은 상처가 곪았는지 1/3쯤 파인채 새빨간 핏물이 흘러내렸고, 나머지 그나마 멀쩡한 거죽 부분은 발진과 이상 증식한 종기들로 공포영화에나 나올법한 흉칙한 형태로 변형되어 있었다.
"씨팔 안 서는건 둘째치고... 가려워서 미칠것 같아... 죽어버릴것 같다고, 여자들 근처에 서기만 해도 썩은내가 난다고 나를 피해!! 씨팔 도대체 어떻게 된거야!!! 앙!! 너는 알꺼 아냐!!!"
"뭐긴 뭐야 벌을 받은거지.... 크크크 사람을 괴롭히고 구타하고 죽인 죄, 누군가를 시기하고 질투하고 미워한 죄..그리고 사람을 기만하고 겁탈하려한 죄..."
"뭔 개소리야 이 미친년아!!! 너 때문에 내 인생은 완전히 박살이 났어 이 개같은년아!!"
"왜? 여자들이 만나주질 않아? 크크크 하긴 그 서지도 않는 썩은 고깃덩어리를 빨아주고 받아줄 여자가 있을리가 없지 크크크크 왜 이런 나라도 좋다면 내가 한번 더 해줄까?"
지연은 엎드려 있던 제 몸을 뒤짚어 진기를 바라보고 뒤짚어 눕는다.
"우우욱...."
뒤돌아 누운 지연의 썩은 몸뚱이에 진기도 구역질이 나는지 연신 토악질을 하기 시작했다.
"나랑 그렇게 하고 싶어 했잖아 한번 더 해도 좋아! 크크크 내 레포트 다 해주던 석주나 복학생 희영이 오빠한테도 한번씩 하게 해줘야 하는데... 다들 연락이 안되네... 히히히 "
지연은 뭐가 그리 기분 좋은지 신이나서 연신 중얼거린다.
"나 항생제랑 진통제 꾸준히 먹고 있어, 의사 선생님이 열심히 잘 관리하면 꼭 나을 수 있댔어, 다리는 없지만 다 나으면 다시 학교 복학할꺼야 오빠도 알지 나 명성대 퀸이었던거, 모르긴 몰라도 내가 복학만 하면 다들 나만 볼껄? 그러니까 헉!!!!!"
지연은 말을 채 끝내지 못한 채 두눈을 부릅뜬다.
지연의 허리에는 언제 준비해왔는지 갑작스레 꺼내든 진기의 칼이 박혀 있었다.
"개 같은 걸레년!!! 아주 미쳤구나 너같은 병신같은 년을 누가!!!"
진기는 지연의 허리에 박아 넣었던 칼을 뽑아들며 소리쳤다. 하지만 지연은 제 허리에서 피가 흘러나옴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애절한 표정으로 진기를 향해 기어간다.
"헉... 하아... 오... 오빠.... 차라리 죽여줘! 차라리 죽여줘!!"
"히이이익!!"
"차라리 죽여줘... 뛰어내려 자살하려고 해도 다리가 없어 못 올라가... 내 손으론 나를 죽일 수가 없어... 내가 자살할까봐 엄마가 칼도 다 치워버렸어 오빠 나 좀 죽여줘..."
지연이 피를 흘리며 바닥을 기어 진기를 향해 다가간다.
"오지마! 오지마 이 미친년아!!"
"오빠 죽여줘.... 사는게 더 괴로워 나 좀 죽여줘!!!"
바닥에 온통 붉은 피를 쏟아내며 지연이 진기에게로 온힘을 다해 기어온다.
바닥에 주저 앉은 진기는 그런 지연의 모습에 놀라 뒷걸음질 치려 해보지만, 왠지 다리가 그의 말을 잘 듣지 않는다.
마치 지연이... 그리고 껌팔이 사내가 그러했던 것처럼...
문득 진기는 제 눈 앞에서 차라리 죽여달라고 애원하는 지연의 모습이 곧 다가올 자신의 미래가 아닐까 하고 생각했다.
자신이 두들겨 팼던 껌팔이 사내의 비참한 모습도 떠올랐다.
"아... 안돼!!! 씨팔!!!! 으윽!!!"
진기는 제 손에 들고 있던 칼을 지연이 아닌 제 복부를 향해 고쳐쥔다.
피묻은 칼의 손잡이를 쥔 진기의 손이 부르르 떨려왔다.
"나부터 죽여줘... 오빠 나부터 죽여줘..."
"헉!!!! 썅년아 넌 더 벌 받아야돼!!!"
진기는 제 복부에 칼을 박아 넣은 채 쏟아지는 피 만큼 의식이 흐려짐을 느꼈다.
"꺄아아아악!!! 어머 이걸 어째 누가 119좀 불러줘요!!!"
문득 열려진 오피스텔 문밖에서 비명을 지르는 것이 들려왔다.
아마도 이웃 주민이 우연히 지나다 지연과 진기의 모습을 본 모양이었다.
"씨팔.... 제발 안돼 119만은... 차라리 죽어버리게 놔둬줘..."
진기는 떨리는 목소리로 중얼거린다.
그의 눈 앞에는 여전히 꿈틀거리는 지연이 스멀거리며 다가온다.
왠지 쉽게 죽을수는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진기의 머리속을 스쳐간다.
찰나의 실수... 그리고 죄...
하지만 그것의 속죄에는 너무도 길고 긴 지옥의 시간이 필요할 것만 같았다.
****
갑작스레 내리는 소나기를 뚫고 차량 한대가 쏜살같이 질주하고 있었다.
[삐뽀삐뽀]
커다란 사이렌 소리와 함께 황급히 달려가는 119 구급차...
운전석에 앉은 경력 15년차 황철수 응급구조원은 이러한 급박한 상황에는 이미 이골이 났는지, 빗속에서도 100킬로가 넘는 속도를 유지하며 연신 하품을 해댄다...
"하아아암 지루하다 지루해... 뭐 재미있는거 없나... 아 그래 라디오나 들어야 겠다"
그는 능숙한 손길로 쳐다보지도 않고 라디오 볼륨 버튼을 찾아 돌린다.
파아란 불빛이 새어나오며 치직 거리는 소리와 함께 라디오를 통해 뉴스가 흘러나왔다.
[아시안게임을 불과 며칠 앞두고 유력한 금메달 유망주였던 85킬로그람 급의 한동수 선수가 급작스런 괴질로 낙마, 아시안게임 메달전선에 먹구름 치지직]
끝.
주변 환경 문제로 스마트폰에 익숙치 않은 블루투스 간이 키보드를 연결해 타이핑하다보니 띄어쓰기나 오타가 많습니다. 이해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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