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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가 말하는 명국이랑 보통 애기가들이 말하는 명국이랑은 차이가 있습니다.
프로가 흔히 말하는 명국은 두 기사의 큰 착오 없이 깔끔하게 둬지는 바둑이라면, 애기가들이 하는 명국은 두 기사의 수읽기가 팽배하게 부딪혀, 화끈하게 둬지는 바둑이라고 할 수 있죠.
오늘 소개해드릴 대국은 그야말로 수읽기와 전투라면 한국과 중국, 각 나라를 대표하는 기사인 이세돌과 구리의 대국입니다.
관전 포인트는 급소는 절대로 놓치지 않는 이세돌이 어떻게 구리의 급소를 족족 찔러가는 지와 그걸 방어는 구리. 그리고 두 기사의 수읽기가 어떤 식으로 격돌하는지 보시면 됩니다.
비하인드 스토리
이 대국은 구리와 이세돌의 두번째 대국입니다. 첫번째 대국은 같은 해에 이뤄진 중국 갑조리그 였습니다. 그때의 승자는 구리였죠. 그래서 이세돌은 복수의 칼날을 갈았을 겁니다. 그야말로 단번에 구리의 목을 자를 수 있는 칼날을요.
지금이야 세기의 라이벌을 이야기 할 때, 이세돌과 구리가 바로 떠오르지만 이때엔 둘의 네임 밸류 차이가 좀 있었습니다.
이세돌은 당시에도 세계 대회 우승을 몇 번을 했을 정도로 세계적인 기사로 인정 받고 있었지만 (바로 전 년도에 이세돌이 세계 대회에서 이긴 기사가 바로 이창호), 구리는 중국 내에서 엄청난 성적을 낼 기사일 뿐 세계 대회에서 뚜렷한 성적은 내지 못했습니다. 뭐, 이건 당시 이창호가 건재했던 시기라 커리어 적으로 별 문제는 안 됩니다.
비록 구리가 세계 대회 성적은 없었지만 중국 내에서 분명한 강자였고, 그렇기에 삼성화재배 준결승은 사실상 결승전이 되었습니다. (다른 준결승은 상대적으로 약체로 평가되던 왕시랑 저우허양) 거기에 4강전 당시, 한국인은 이세돌 밖에 안 남았고, 3명은 전부 중국인이었기에, 중국인들은 4강전에서 구리가 이세돌을 끝장내줬으면 하는 마음이었죠.
이세돌은 복수전과 마지막 남은 한국 기사의 짐을 엎은 채, 구리는 중국의 우승을 결정 짓기 위해 대국에 임합니다.
본격적인 대국
흑이 구리이고, 백이 이세돌입니다. 덤은 6.5
흑은 1~3의 양소목을 준비 했습니다. 지금은 소목에 바로 날일자 굳힘 포석은 조금 느리다고 생각되는 경향이 있지만, 당시엔 꽤 좋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이세돌은 빈 귀를 냅두고 바로 4과 6으로 흑의 굳힘을 방해를 합니다. 이 수법은 덤이 없던 시절에 정말 자주 나온 포석이죠.
한가지 재미있는 것은 1~6까지는 이세돌이 구리에게 패배했던 그 첫번째 대국과 (흑, 백 똑같음) 똑같다는 점입니다. 이것에서도 이세돌의 기세가 느껴지는 점이죠. 첫번째 대국에선 구리가 7로 A로 붙혀서, 백이 B로 젖히고 흑이 C로 끈다음에, 백이 D의 호구로 모양을 잡는, 즉 위붙힘 정석이 이뤄졌습니다.
이번엔 구리가 먼저 꼬아서 슈사쿠류로 불리는 7을 둡니다. 그렇게 백이 8로 자리를 잡자, 9로 협공을 합니다.
<위, 실전보. 아래, 장쉬 정석
11로 끊는 것은 분명한 정석이지만 요즘은 프로는 안 쓰는 경향이 강합니다. 이유는 잘 모르겠습니다만, 프로는 장쉬 정석으로 불리는 아래의 정석을 더 좋아합니다. 저 정석은 그야말로 장쉬가 이룩한 최고의 업적이라고 불릴 정도니까요.
15는 나중에 나오겠지만 결론적으로 말하면, 이 대국을 끝까지 흑이 어렵게 만든 정석 실패입니다.
바로 20이 성립 됐기 때문입니다.
<참고도>
21로 이어야 할 때, 백이 22~24로 몰면 25로 백 두 점을 축으로 잡아야 하는데. 지금은 축이 안 됩니다.
이렇게 되면 흑이 망한 결과로 바로 돌을 던져야 합니다.
그래서 흑은 어쩔 수 없이 21로 둬서 22를 교환 시킬 수 밖에 없고, 23으로 잡아야 했습니다.
26은 지금보면 정말 알파고가 좋아할 자리네요. 흑 석점을 압박하면서 30으로 자리까지 잡았습니다.
이 수가 이세돌의 기풍을 드러내는 수라고 생각합니다.
이세돌은 파괴적인 공격보다는 그때 그때 급소를 찾아내서, 상대 모양을 우그러트리고 기형을 만드는 쪽입니다. 이 수를 당한다면 숨이 잠시 멈춰질 것입니다. 손을 빼면 백 A에 흑B 등등의 순서대로 흑의 모양이 그야말로 우그러지고, 한집도 안나는 모양이 됩니다. 흑은 말그대로 버틸 수가 없게 됩니다.
흑 37이 한집을 보장해주지 않지만 어쩔 수 없습니다.
흑은 어쩔 수 없에 41~ 47로 백을 밀어주지만 아직까지 미생이란 것이 걸리는 무거운 돌리 됐습니다. 그와중에 백은 48로 흑의 한 집을 완벽히 없에 놓네요. 그야말로 흑의 모양이 우그러졌습니다.
흑도 계속해서 쫒길 수 만은 없기에 51~ 55로 공격할 모양을 갖춥니다만, 흑의 모양이 그리 완벽하지는 않습니다.
일단 56~ 60등의 교환을 아낌 없이 한 후에…
백은 62로 모양의 틀을 잡습니다.
63은 흑의 급소 자리로, 거꾸로 백에게 당한다고 생각하면 흑 두 점이 외로워 집니다.
그래도 공격의 끈을 놓을 이세돌이 아닙니다. 64는 흑 모양의 급소 자리로, 정말 급소라면 절대로 놓치지 않는 이세돌의 기풍을 그대로 보여줍니다. L11로 찔러가면 곤란하기 때문에 흑은 65로 최대한 모양을 잡습니다.
흑은 어떻게든 탈출을 시도하고 있지만 안형이 그렇게 좋은게 아니라서 여전히 곤마라는게 괴롭습니다.
75는 구리가 급한 마음에, 좀 더 공격적으로 이끌려고 둔 수지만 엷은 수가 됐습니다. 정수를 말하자면 A로 뛰는게 무난했죠.
나중 수순을 보면 알겠지만 75의 수는 후에 있을 전투에서 큰 악수가 되게 됩니다.
전성기의 이세돌은 급소를 찾아내는 능력이라면 정말 그 어느 기사를 데려와도 이길 수 있는 기사입니다. 이 수는 그런 능력을 잘 알 수 있는 수입니다.
처음 이 수가 나왔을 때, 기사나 사람들은 이세돌의 실수라고 생각했습니다. 일견엔 제자리 걸음같이 보이기 때문입니다. 인터넷으로 보던 사람은 순간적으로 마우스 미스로 착각할 정도였습니다.
<참고도>
기사들은 처음에 "이세돌이 77이 되는 줄 알고 착각한거 아냐?" 생각했습니다. 흑이 78로 두면 한눈엔 안 되보이거든요.
그러나 검토가 계속될수록, 76은 극찬을 받는 한 수가 됐습니다.
79로 끼우는 수가 너무 좋습니다. 80로 잡을 때, 81로 찝으면…
<참고도>
쉽게 82로 잡으면 83으로 나와서, 흑 두점이 완벽히 잡히면서, 백 상변이 크게 집이 됩니다. 이건 흑이 필패의 길입니다.
82로 한점 잡으면 쉽게 83으로 끊어서, 백 상변이 전부 집이 되면서 흑 망하게 됩니다.
<참고도>
흑이 80으로 전도와 반대쪽으로 단수 쳐도, 81로 찝고 84까지 진행 시키면
<참고도>
85로 먼저 잇고, 86으로 이어야 할 때, 87로 툭하고 끊어버리면 전도랑 비슷하게 상변 전체가 백 진형이 됩니다.
즉 흑이 아무런 조치를 안하면 백이 상변 전체를 먹어서, 필패의 진행이 된다는 거죠.
77은 어쩔 수 없지만 프로기사라면 정말 두기 싫은 자리입니다.
일단 공배를 둔다는 것부터가 참 기분이 나쁩니다.
거기에 이세돌이 정말 얄밉게도, 그냥 이어주는 것이 아닌, 78로 A에 끊는 약점까지 노립니다. 한마디로 보강하라는 의미이죠.
그걸 다 받아줬다간 필패라고 생각했는지, 구리는 79로 들어갔지만, 그걸 또 80으로 협공하는 이세돌입니다.
구리는 81로 들여다 보면서 이어달라고 하면서 리듬을 구하지만, 이세돌은 정말 강공 일색으로, 82,84로 툭하고 끊어버립니다.
그래도 85까지 흑이 자리를 잡아서는 흑이 좋아보이긴 합니다만…
정말 급소란 급소는 다 찌르겠다는 심보를 보여주는 오늘 대국에서, 이세돌은 또 급소를 놓치지 않습니다.
일단 모양 자체는 빈삼각이라서, 모양을 중시하는 프로는 잘 떠오르지 않는 수입니다.
우선 87로 그냥 잇는 것은 88로 끼우면서 버립니다.
<참고도>
그리고 이렇게 뒤를 메우면, 중앙 흑 대마가 너무 위험해 보이지 않습니까?
그래서 흑도 87로 보강을 할 수 밖에 없습니다.
92로 끊고, 93까지 되었습니다.
여기까지 오자, 프로기사들 사이에서는 이세돌이 너무 잘됐다는 말이 나오기 시작합니다.
<참고도>
우선 94로 늘기만 해도, 흑이 95로 탈출해야 합니다. 그때 백이 96을 두면 흑 넉점을 잡으면서, A까지 위험한 상황이 됩니다.
<참고도>
흑이 먼저 95로 밀고, 97로 탈출한다고 해도, 98의 마늘모면 좌변 흑이 아주 괴로워 보이지 않습니까?
여기에서 A의 흑 한점. 즉 75번의 수가 왜 엷은 수라는 평을 들었는지 알 수 있습니다. 만일 A가 아닌 98번 자리에 있었으면 이 일은 사단은 일어나지 않았겠죠.
어쨌든 백이 참고도의 94대로 늘기만 하면 백이 안 좋은 결과는 나오지 않습니다만…
어째서인지 이세돌이 착수를 하지 않습니다. 프로기사들은 "이세돌이 설마 94로 안 늘고, 최강수를 준비하나?" 라고 짐작합니다. 왜냐하면 두고 있는 사람은 최강수를 잘 두는 이세돌 이니까요.
이 수가 바로 백의 최강수 입니다. 그리고 이 대국의 제일 하이라이트이기도 하죠.
우선 단순히 늘면 잡을 수도 있던 흑 4점엔 아무런 영향이 없다는 것부터가 불안한 수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렇기에 이세돌다운 매력이 느껴지는 수죠.
그러나 대국 내내 몰리고 있던 구리에게 이세돌의 최강수는 구리의 기회 이기도 합니다.
96~98로 끊는 것은 여기까지 온 이상 당연한 수.
103은 절대 자리입니다.
<참고도>
괜히 103으로 밀었다간 104로 먹여침 당한 후, 106으로 몰면, 흑 넉점을 살릴 수 없습니다. 이럼 중앙 흑 대마가 몰살 당합니다.
흑이 A로 젖히면 좌변 백이 다 죽으니, 일단 104로 살렸는데, 105가 아주 좋은 수 입니다.
<참고도>
105로 단순히 나오는 것은 106~110까지 백 두 점을 버리면서 112로 하변을 다 잡는 진행이 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백은 어쩔 수 없이 106으로 이어야 하고, 흑이 107로 이어버리자, 흑도 불안 하지만 백 석점도 살아있지 못 합니다. 즉, 흑이 죽던지 백이 죽던지, 박터지게 수상전을 해야한다는 겁니다.
110은 흑의 수를 줄이는 조이기입니다.
백은 흑의 수를 계속 조여갑니다.
118이 백의 수를 늘릴 수 있는 유일한 수입니다.
<참고도>
단순히 118로 잇는 것은 119에 한칸 뛰는 것이 급소. 이하의 순서로 백이 느립니다.
<참고도>
다음 수로 119로 막는 것이 순간적으로 가능해 보이지만, 120의 수가 급소로 흑이 다 잡혔습니다.
<참고도>
119로 단순히 느는 것은 120이 좋은 수입니다. A로 흑을 조이는 수하고 B로 좌변 흑의 급소를 노리면서 건너가는 수가 맛보기입니다.
119가 구리가 찾아낸 유일한 노림수입니다.
<참고도>
120로 느는 것은 121로 먼저 조여서 잘 안 됩니다.
120, 121은 쌍방 최선인데, 122가 정말 보여 어려운 수상전 와중에 보여준 좋은 수였습니다.
<참고도>
단순히 122로 치받는 것은 123으로 백이 안됩니다.
125까지는 어쩔 수 없고, 126까지 치받는 곳까지 진행됐습니다. 정말 한치 앞도 예상할 수 없는 수상전. 당시 이 대국은 사실상 결승전 취급을 받고 있었기 때문에, 한 중 양국에서 네임드 기사들이 검토실에 모여 검토를 하고 있었습니다.
그 기사들은 바둑판에 놓아볼 수 있었고, 이세돌과 구리는 눈으로만 생각을 해야하죠. 거기에 반외팔목 (직접 대국 두는 사람보단, 곁에서 지켜 본 사람이 더 대국관을 넓게 본다) 이란 말이 있듯, 검토실에 있던 기사들은 냉정하게 분석할 수 있었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많은 기사들이 이 수상전을 검토하고 있었고, 그중 한 중국 기사가 말합니다.
"이거 백이 안 될 거 같은데. 구리가 이 대국 잡았어."
<참고도>
그 중국 기사가 본 수는 바로 127입니다. 이때 백이 128로 이어야 한다면, 127을 둬서 흑의 수가 자체적으로 늘어났습니다. 그런 다음에 129로 막으면 수상전은 백이 느립니다.
한국 기사들도 그 의견에 동의하고, 이세돌이 망했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구리가 127로 바로 막았습니다.
"어? 구리가 착각했나?"
프로기사들은 처음엔 구리의 착각을 의심하지만, 더 검토를 해보니, 구리와 이세돌의 수읽기에 놀라고 맙니다.
<참고도>
백은 128로 받지 않고, 먼저 1선을 밉니다. 이것만으론 수가 크게 늘었다고 볼 수 없습니다.
그런데 흑이 129로 차단할 때, 130에 껴붙이는 수가 희대의 묘수였습니다.
<참고도>
131로 차단을 하면 132와 133을 교환 시킨다음에 134을 둡니다.
<참고도>
그러나 이러한 수순으로 인해, 흑 좌변이 몰살 당합니다.
<참고도>
그 이후에 139로 둬서, 중앙 백 대마라도 잡고 싶지만, 140으로 찔러 두고, 142로 안형을 만들면, 143으로 연결해야 합니다. 그때, A로 한집을 더 만드면 백은 살아 있습니다.
<참고도>
다시 되돌아 가서, 131로 두는 것은 132를 당합니다.
<참고도>
134를 교환하고, 136으로 계속 조입니다.
<참고도>
이렇게 백이 계속 조일 때…
143으로 조여보지만, 144가 최강의 버팀으로 패가 됩니다.
패는 흑의 절대 무리로, 중앙 방면에 절대 팻감이 많아서 버틸 수가 없습니다.
여기까지 검토한 기사들은 단순히 눈만으로 여기까지 수읽기를 한 구리와 이세돌에게 감탄을 하게 됩니다.
결국 128의 맥점을 당해, 이하 패의 모양이 만들어집니다.
하지만 당장 흑이 패를 들어가는 것은 무리입니다. 그래서 일단 139~ 141로 팻감을 만들어 가봅니다.
후에 146까지 당하자, 구리는 참지 못하고 147로 패를 걸어갑니다만, 국후 기사들은 일단 147로는 A를 막아야 했다고 합니다.
148로 백이 먼저 패를 들어가고, 149의 팻감은 일단 받아줍니다.
152 부근은 절대 팻감. 흑은 당연히 받아야 합니다.
흑은 155의 팻감을 섰지만 바깥 쪽에는 거의 영향이 없기 때문에, 저정도는 줘도 된다 라고 생각한 이세돌은 156으로 시원하게 따냅니다.
실제로 형세 차이가 많이 벌어졌습니다. 거기에 더욱 껄끄럽게도 158로 좌하까지 괴롭힙니다. 만약 이 대국을 친한 친구랑 두고 있고, 여기까지 몰리게 했을 때, 친구 얼굴을 쳐다본다면, 알파고에게 진 커제의 울상을 실시간으로 볼 수 있을 겁니다.
이 이후에도 꽤 수순이 진행 됐고, 좌하귀는 죽지 않았지만 승부는 사실상 여기에서 결정 났기에 뒤의 수순은 생략하겠습니다.
백 228수 끝 불계승
에필로그
이 이후에 2국은 구리가 이겨서 준결승 최종국 까지 갔지만, 3국을 이세돌이 이겨서 결승전은 이세돌 대 왕시가 됩니다.
왕시와의 결승전 전에, 이세돌이 주최측 사람이랑 한 대화 중에서 희대의 명언이 탄생합니다.
이세돌: 아, 죄송해요. 몸이 너무 나빠서 3국까지 못 갈 거 같아요.
주최측: (이세돌 몸이 그렇게 나쁜가?)
이세돌: 그냥 2국에서 끝내야 할 거 같아요.
즉 이세돌은 왕시를 2:0으로 KO 시킨다는 말이었고, 이건 현실이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