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나를 열 받게 한 인물, 전여옥 대변인
[오마이뉴스 2004.12.16 15:26:51]
[오마이뉴스 고태진 기자]
▲ 전여옥 한나라당 대변인(자료사진)
ⓒ2004 오마이뉴스 이종호
올 한해는 사상 초유의 대통령 탄핵 사태까지 있었던 정치 격랑의 해였다. 따라서 어느 때보다 갖가지 독설과 비난의 '말 화살'들이 난무하였다 할 수 있겠다. 인간사라는 것이 대부분 말에 의해 이루어지는 법이라 대체로 사람들이 열 받는 것도 상대의 말 때문이다. 아내의 사소한 말 한마디에 세상 끝장을 보듯이 열 받는 남편들 많지 않은가?
올 한해 독설로 둘째가라면 서러운 인물이 있다. 그녀는 일찍이 "기쁨 못 준 대통령 물러나길"이라는 칼럼을 <조선닷컴>에 썼지만, 그녀야말로 한나라당의 대변인이 된 후 국민들에게 기쁨을 주지 못하고 나 같은 사람들을 내내 열 받게 만들었다.
한나라당 전여옥 대변인이 그 사람이다. 대통령 물러나라는 그 칼럼은 전 의원이 한나라당의 비례대표 공천을 받는 데 결정적 공헌을 했을 것이므로 분명 전 의원에게는 기쁨이 되었을 것이다. 전 의원은 한나라당의 기대대로 2004년을 초심을 잃지 않고 자신의 역할에 최선을 다해왔다.
전 의원의 '기쁨'이 된 칼럼
전 의원은 2002년 대선 때 정몽준 캠프에서 연설문 작가로 일했고 국민통합21 창당대회 때는 정 후보 추대발언까지 했다. TV토론에 통합21측 패널로 나와 이회창 후보 불가론을 강하게 주장했었다. 또한 2004년 2월에는 <조선닷컴>의 칼럼 '포스트 최병렬이 박근혜라니!'에서 박정희 대통령의 딸이라는 '정치적 유산'의 상속자로서 살고 있는 박근혜 의원이 대표가 된다면, 한나라당은 화약을 지고 불 속에 뛰어드는 격이라고 비판했다.
하지만 전 의원은 한나라당의 비례대표 제의를 받고 한나라당의 국회의원과 대변인이 되었으며, 박근혜 대표의 충성스럽고 용감한 '입'이 되었다. 화려한 변신이다. 물론 전 의원이 일관성을 가진 부분도 있다. 노무현 대통령에 대한 반감이다. 한나라당의 대변인으로서의 전 의원의 정체성이자 효용성이라 할 수 있겠다. 전 의원의 변신이 한나라당이나 전 의원 자신에게 있어 '무죄'인 이유일 것이다.
전 의원에게 있어 거대 야당의 대변인이라는 자리는 그녀가 뱉어내는 언어에 '대변인의 논평'이라는 이름의 면죄부와 날개를 달아주었다. 그녀가 등장함으로써 대변인의 논평이라는 것이 상대방을 욕하는 데에 그럴듯한 논리와 수사로 포장하는 기술을 경연하는 수단이 되어버렸다. 그것을 정당의 대변인의 논평이랍시고 지켜보고 있어야 사람은 열 받는다.
"노무현 대통령의 정치스타일로 볼 때 탄핵도박설은 결코 불가능한 대본이 아니라는 것이 민심", "국민들은 자신의 정치생명을 위해 국가를 거는 도박사가 아니라 국민을 위해 희생하는 대통령을 원한다", "열린우리당이 탄핵가결 때까지 아무런 대응을 하지 않은 점과 11일 기자회견에서 노 대통령의 탄핵가결 자초 발언 등이 탄핵도발설의 증거"
이것이 3월 19일 한나라당 대변인으로서 그녀의 첫 작품이었다. 그녀의 화술은 계속 빛이 난다. 탄핵에 반대하는 촛불 집회의 배후를 은근히 열린우리당으로 지목한다.
"현장을 가보면 알겠지만 거대한 인원이 조직적으로 움직이고, (집회에 쓰이는) 기기와 장치를 보면 개인적·자발적·사적 집회라고 볼 수 없다", "과연 자발적·평화적 집회인가에 대해 상당한 의문을 표시한다", "탄핵정국 속에 전국 44곳에서 100만명으로 추산되는 집회를 여는 것이 민생안정과 사회평화, 경제안정을 위해 도움이 되고 나라를 위한 것인지 열린우리당의 공식 답변을 요구한다"(3월 19일 주요 당직자 회의 브리핑)
또한 탄핵 정국의 와중에 대통령 친형의 인사 청탁 건과 관련해서 일어난 남상국 전 대우건설 사장의 투신에 대해 전 의원은 "공개석상에서 남 전 사장을 모욕했고, 또 가해자가 피해자에게 엄청난 권력을 행사, 자살할 의도가 없던 피해자를 자살로 몰았다는 점에서 자살교사죄에 해당한다"고 독설을 퍼부었다.(3월 18일 cbs 라디오) 현직 대통령을 자살교사죄로 모는 대단한 야당 대변인이다.
하지만 역시 전 의원의 독설의 백미는 노무현 대통령의 해외 순방에 대한 환송사였다. 이해찬 총리의 '한나라당 폄하' 발언으로 국회를 13일간 놀리던 한나라당이었지만 대통령에 대한 가시 박힌 환송사는 잊지도 않았다.
독설의 백미, 대통령 해외순방 환송사
전 대변인은 '노 대통령의 해외순방에 기대한다'는 논평에서 "노 대통령이 탄핵으로 직무가 정지됐을 때, 휴가를 갔을 때, 그리고 해외 순방 때 등 세 가지의 상황의 공통점은 '그래도 나라가 조용했을 때'라는 시중의 농담이 있다"고 비아냥댔다. 전 대변인은 "노 대통령의 부재는 모처럼 나라가 조용해질 기회인 것은 분명하다"며 "되도록 오래 머무시라고 권하고 싶을 정도"라고도 했다.
전 대변인은 이어 "노 대통령의 내치는 말할 것도 없지만 외치 역시 오랜 친구도 내쫓다시피하고 새 친구도 사귀지 못하는 고립무원의 처지, 즉 왕따 외교가 되고 말았다"고 독설을 퍼부었다. 그는 또 "노 대통령의 임기는 무려 3년이나 남았다"며 "노 대통령에게 3년은 긴 시간이지만 고통 받는 국민에게는 30년과도 같다"고 말했다.
제목은 '해외순방에 기대한다'였는데 내용은 '해외순방을 조롱한다'가 됐다. 아무리 노 대통령을 공격하는 게 자신의 정체성일지는 모르겠으나 나라안에서는 싸우더라도 나라의 대표로 해외 순방에 나선 대통령의 등 뒤에까지 꼭 그런 말을 해야 하나? 다른 나라를 방문한 대통령은 우리나라의 얼굴이다. 스스로 대한민국의 얼굴에 침 뱉는 전 대변인 때문에 또 열 받았다.
열받게 하는 전여옥 의원은 반드시 대변인으로서 뿐만이 아니다. 전 의원은 국회 상임위에서 정동영 통일부장관에게 미국의 북한 선제공격설의 근거를 고집스럽게 캐묻기도 했다. 주고받는 문답을 지켜보면 말의 논리에 있어서는 전 의원이 더 맞다고 할 수도 있다. 누가 봐도 정 장관은 대답을 회피하고 있었다. 그런데 이 사건의 본질은 국익을 위해 거론되어서는 안되는, 따라서 장관이 답변을 회피할 수 밖에 없는 문제를 국회의원이 자신의 질문의 정당성을 증명하기 위해 한사코 강요하고 있다는 데에 있었다.
문제는 여기에 있다. 전 의원의 말은 최대한 상대를 상처내고 공격하고 약올리는 본질을 가지고 있지만, 화려한 수사와 논리적 구조로 포장되어 있다는 것이다. 마치 군대 가는 친구에게 "내가 보기에 네 성격상 군대에서 말뚝 박으면 네게나 사회로 보나 유익할 것 같아"라고 말하는 식이다. 노 대통령의 해외 순방에 대한 논평을 보면 알 수 있는 일이다.
정치, 특히 국회가 국민들을 열 받게 하고 있다. 정치인들이 행동으로 일하는 것도 없으면서 뱉어내는 말조차도 국민들을 짜증나고 열 받게 한다. 특히 각 당 대변인들은 어떻게 하면 더 상대를 열 받게 하고 상처를 줄 것인가를 골몰하는 듯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나는 이러한 문제에 한나라당 전여옥 대변인에게 큰 책임이 있다고 생각한다.
전 대변인은 나같은 사람이 열 받을수록 스스로 더욱 만족감을 느끼는 '나르시시즘'에 빠져 있는지 모르겠으나, 그럴수록 정치는 점점 '말의 테러전'이 되어가고 있다. 국민에게 기쁨을 주기는 커녕 열 받게 만드는 대변인은 물러나야 하는 것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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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기자소개 : 고태진 기자는 고정칼럼니스트 겸 편집자문위원 입니다. 경북의 한 소도시에 살고 있는 평범한 시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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