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르스로 전국에 비상이 걸렸다. "세월호에서 아무 것도 배우지 못했다"는 자조섞인 불평이 판을 친다. 공무원들은 아무 것도 달라지지 않았다. 삼성병원을 삼성병원이라 부르지 못하는 홍길동이 사방에 난무한다.
공무원들은 아주 큰 실수를 저지르지 않는 이상 직장을 잃지 않는다. 큰 실수는 메뉴얼대로 하지 않는 것이다. 메르스로 몇 명의 사상자가 나오든 메뉴얼대로만 찬찬히 하면 욕은 먹어도 직장에서 잘릴 일은 없다.
세월호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몇 명의 인명을 구조하느냐보다는 메뉴얼대로 움직여서 구조작업 중 사고가 안나는 것이 훨씬 중요했다. 세월호에 접근하려던 123정이 메뉴얼대로 큰 배에 휘말려들어가지 않기 위해 배에 사람이 있는 것을 뻔히 보고도 물러난 것이 대표적인 예다.
가성비를 따지려는 문형표 장관
문형표 장관은 유펜 출신의 경제학자다. Risk/benefit analysis를 기본으로 해서 사는 보험, 연금 전문가이지 보건 전문가가 아니다.
Risk/benefit analysis는 인명마저도 가격으로 산출하는 제도다. 사고 이후 평가에서 써볼 수는 있어도 인명을 구조하는 일에 가격대성능비를 따지는 것은 미친 짓이다. 정치인이라면 일이 되는 방향으로, 경제학자라면 위험편익분석을 하려 할 것이다.
Risk/benefit analysis로 폭망한 사례
1970년대 포드에서 생산하던 핀토는 달리다 충돌할 경우 연료통이 폭발하는 결함이 있었다. 포드는 이 결함을 고칠 경우 대당 11불의 비용이 발생하고 180명의 인명피해를 줄일 수 있다는 결론을 얻었다.
포드는 이 숫자에 근거해 risk/benefit analysis를 한 결과, 결함을 고칠 경우 1억3,700만 불의 비용이 발생하는 반면, 180명의 사망 사고 배상비용이 4950만 불만 든다는 것을 확인했다.
포드는 비용적인 측면을 고려해 차량 recall을 하지 않았고, 사상 사고가 이어졌다. 1972년 릴리 그레이가 13세의 그림쇼우와 차를 타고 가다 차량 간 충돌로 핀토가 폭발하여 릴리 그레이는 사망하고 리차드 그림쇼우는 심각한 부상을 입었다.
배심원들은 재판 과정에서 포드가 risk/benefit analysis를 해서 결함 수리 비용보다 보상금이 적게 든다는 이유로 리콜을 하지 않았음을 밝혀내고 격분하여 배상금 외에 1억2500만 불(한화 1300억 상당)에 달하는 징벌적 배상을 그림쇼 가족에게 지불하도록 평결했다. 자세한 내용은 아래 링크에서 확인.
http://users.wfu.edu/…/Law&V…/Papers/1999/Leggett-pinto.html
1978년에 1300억원은 무지막지한 돈이었다. “돈 갖고 장난치면 망하게 해버리겠다.”는 정신을 잘 보여준 예라 하겠다. 이것이 징벌적배상제도이다.
목숨값이나 따지고 있는 공무원과 병원
문형표 장관이 포드 사장이었어도 리콜 비용을 지불하느니 배상금을 물어주는 편이 비용을 아낄 수 있다고 결정을 내렸을 것이다. 그것은 이번 정보 비공개 방침에서도 볼 수 있다. 페이스북하고, 주변에 여의도나 증권가에 친구 하나 있는 사람들은 일주일 전 d병원이 삼성병원인줄 다 알고 있었다. 하지만 정부는 지금 이순간까지 삼성병원을 공개하지 않고 있다.
청와대는 대한의사협회 대신 대한병원협회장을 민간전문위원으로 끌고 들어와 태스크포스를 구성했다. 메르스 병원에 대한 정보 공개로 인한 위험편익비용에 대해 분석해보고 병원을 공개했을 때 병원이 입을 손실과 이로 인해 감염될 사람들의 배상금을 비교 분석해봤을 것이다.
징벌적손해배상제도가 없는 우리나라에선 3~5억원 안팎 정도를 물어주면 어떠한 사망사고도 덮을 수 있다. 병원도 메르스균이 떠돌고 있다는 사실을 지금 밝히지 않아도 추후 소송에 휘말릴지라도 3억 정도의 비용을 들이면 사망사고도 처리할 수 있으니 병원이름 공개를 어떤 식으로도 막으려 드는 것이 매우 자연스러운 경제적인 사고다.
가만히 있으면 중간은 가는 나라
공무원들이 아무리 무능해도 메뉴얼대로만 차근히 따라가면 정년을 보장해주는 제도와 기업이 아무리 큰 잘못을 해도 법원에서 용인하는 범위의 배보상만 마치면 사망사고도 기업입장에선 푼돈으로 처리할 수 있는 제도가 계속되는 이상 우리는 이런 종류의 재난을 피할 길이 없다.
기업이 의도적으로 위험편익비용 계산을 통해 인명을 등한시 한 것이 발견되면 징벌적손해배상으로 망할만큼의 타격을 줘야한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돈을 빼앗는만큼 큰 처벌은 없다. 기업이 윤리적으로 움직여줄 것이라는 꿈에서 깨어나 “사람 목숨가지고 장난치는 기업은 망하게 해준다”라는 미국식 자본주의 징벌 제도의 도입이 시급하다.
능동적으로 움직이는 공무원에겐 승진, 보너스 등을 충분히 줘야한다. 깃수가 어쩌고 행시인지 7급 출신인지가 중요한 게 아니고, 일 잘하면 승진시켜줘야 한다. 반면에 메뉴얼대로만 하면서 보신주의에 빠져있는 공무원들은 강등, 해직, 조기 퇴직 등의 벌을 줘야 한다. 그저 사고나 안치면 정년보장이라는 안이한 사고로 눈 앞에서 사람이 죽어나가도 ‘VIP보고가 먼저’라는 생각이나 하는 놈들에겐 뜨거운 맛을 보여줘야 한다.
세월호 참사에 이어 메르스가 전국을 강타했다고 해도 제도를 바꾸지 않으면 참사는 반복된다. “정부는 뭐하는거냐”라고 욕만 할 때가 아니고, 실질적으로 제도를 바꾸기 위한 연구와 대안 제시가 절실한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