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어릴 적, 아직 '국민학생'일 무렵의 이야기다.
내가 나고 자란 곳은 서울이지만 서울 안에서도 꽤나 변두리인 한적한 동네였다. 학교는 산 중턱에 있어서 매일 20분 넘게 걸어 올라가야만 했고, 학교 운동장에서 산 쪽을 보면 무연고 묘지가 몇 개나 보이는 그런 곳이었다. 산그림자가 짙게 드리워져 학교 건물 1층은 항상 어두컴컴했으며, 해가 떨어지는 것도 빨라서 친구들과 나는 학교가 끝나면 빨리 집으로 돌아갔다가 동네 놀이터나 골목길에 모여서 놀곤 했다.
아직 지금처럼 개인주의가 심화되지 않았던 때였기에 주민들 간의 유대도 어느 정도 풍부했던 기억이 난다. 옆집 숟가락 개수까지 다 알고 지내는 정도까지는 아니었지만, 어머니와 동네 아주머니들은 자주 모여서 함께 부업을 하시거나 고스톱을 치시며 담소를 즐기셨다. 자식들도 그런 어머니들을 따라 옆에서 함께 개당 10원 짜리 냉장고 부품의 전선을 끼우거나 점 10원짜리 고스톱에서 크게 딴 아주머니가 사주는 짜장면을 먹거나 하며 남매처럼 지냈다. 요약하자면 여느 동네와 다를 바 없는 평범한 동네였던 것이다.
그리고 어느 동네에나 그렇듯, 우리 동네에도 '동네 바보 형'이 있었다. 늘 꼬질꼬질한 얼굴에 잔뜩 낡아서 너덜너덜한 추리닝을 입고 다니던 바보 형이.
사실 국민학생 입장에서는 형이라기보다 아저씨에 더 가까운 연배였을 것이다. 20대 후반에서 30대 초반으로 보이는 그 형은 동네에서도 종종 보였지만 주로 나타나는 곳은 우리 학교 운동장이었다. 나른한 낮 무렵에 수업을 받다가 창밖을 언뜻 보면 그 형은 어느새 운동장 가장자리의 벤치에 앉아 있었다. 특별히 뭘 하는 것도 아니고 그냥 짧은 낮 동안의 햇빛을 받으며 멍하니 앉아 있는 것이다. 때로는 한쪽 발을 질질 끌며 운동장을 끊임없이 걸어다니기도 했다. 그러다가 창밖을 보는 어린이들과 눈이 마주치면 씨익 웃으며 손을 흔들어 준다. 가끔은 눈이 마주친 사람을 향해 절룩거리며 다가오기도 했다. 바꿔 말하면, 행동을 읽을 수가 없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정신적, 그리고 육체적으로 문제를 안고 있는 보통 사람이었을 것이지만 그 당시에는 지나치게 무서운 존재였다.
하지만 어디에서나 그렇듯 그 나이대의 남자아이는 종종 자신의 용기를 이해할 수 없는 방향으로 표출하고 싶어하기 마련이다. 나는 그럴 용기조차 없어서 되도록 그 형을 피해 다녔지만 내 친구들 중 개구진 아이들은 그 형을 마주치면 바보라고 부르며 욕을 하기도 했다. 그러다가 씨익 웃으며 다가 오려고 하면 도망을 쳤다. 그리고 어느샌가 이 '놀이'는 또래 아이들에게 있어 용기의 상징처럼 받아들여지기 시작했다. 다들 경쟁이라도 하듯이 놀이에 참가하고 있었다.
한 번은 함께 있던 친구 한 명이 그 형에게 욕을 하고 도망치기 시작했다. 어색한 걸음으로 다가오려 하던 그 형의 모습에 화들짝 놀라 함께 도망치던 내가 뒤돌아 봤을 때, 그 형은 제자리에 서서 여전히 씨익 웃고 있었다. 자기에게 욕을 한 꼬마에게 화를 내는 것도 아니고, 자기로부터 도망치는 아이들을 잡으려 하는 것도 아니고, 평소처럼 그냥 웃고만 있었던 것이다. 나는 왠지 마음이 아파오는 것을 느꼈다.
며칠 뒤 학교에서 혼자 집으로 돌아가던 중이었다. 마침 내가 주번이었던 날이라 친구들은 모두 돌아간 뒤였고, 가을에서 겨울로 접어드는 쌀쌀한 날씨 탓에 걸음을 서두르고 있었다. 집에 조금이라도 빨리 돌아가고 싶어서 지름길인 산길로 접어들었지만 오히려 얼마 전에 내린 비로 낙엽이 젖어 미끄러운 탓에 더 시간을 잡아먹고 있었다. 미끄러지지 않기 위해 발밑만을 보며 걷던 내가 문득 고개를 들었을 때, 바로 앞에 바보 형이 있었다. 주위에는 당연히 아무도 없었고 산 속의 지나친 정적은 귀가 따가울 정도였다. 이미 해는 반쯤 기울어 내 쪽으로 길게 뻗은 그 형의 그림자가 나를 잡아먹으려 드는 괴물로 보였던 기억이 난다. 머리속에서는 장마철에 불어난 강물처럼 잡다한 생각이 흘러 넘쳤다. 어떻게 하지? 어떻게 한담? 도망가야 하나? 나를 기억하고 있을까?...... 그 와중에 갑자기 생각난 건 며칠 전에 있었던 사건이었다. 웃고 있었지만 왠지 마음이 아팠던 그 형의 표정이 내 입을 움직였다.
"아... 안녕하세요?"
"아, 아, 아안, 니,어..."
내심 부들부들 떨며 쥐어짜낸 목소리로 건넨 내 인삿말에 돌아온 것은 그 형의 어눌하고도 탁한 목소리였다. 그리고 환한 미소가 덤처럼 딸려 왔다. 내가 지금까지 봐온 어떤 웃음보다도 밝은 웃음이었다.
"지, ㅂ,...에 가, 니,?"
"예? 예......"
"느, 늦지 안케... 빠, 빨리 가......"
말을 마친 형은 좁은 산길에서 옆의 나무에 바싹 붙어 길을 비켜 주었다. 마음 같아서는 뛰어서 그 자리를 벗어나고 싶었지만 다리가 후들거려 걷기조차 어려웠다. 뒤도 돌아보지 못하고 산길을 걷는 내 등에 그 형의 시선이 와서 꽂히는 느낌이 들었다.
......하지만, 대체 그 형은 해가 지려는 늦은 시간에 산길에서 뭘 하고 있었던 걸까?
그 답은 혼자 아무리 생각해 봐도 알 수 없었고, 나는 점차 이 일을 잊어 갔다.
고등학생이 된 나는 집에서 좀 떨어진 학교에 다니게 되었다. 당연스럽게도 이미 어릴 때 겪었던 일은 잊고 있었고, 그 형에 대한 기억도 희미해져 있었다. 고교 진학 이후 집보다 학교에 있는 시간이 길어지며 마주치는 일이 없어진 탓이리라. 학교에는 주로 버스로 통학을 했지만 3학년이 되고 학교의 야간자율학습에 참여하면서 버스 막차를 놓치는 일이 종종 있었다. 아버지께서 간혹 태우러 와주시기도 하셨지만, 내일 아침에도 출근하실 아버지께 못난 아들을 마중나오라고 하는 것도 어쩐지 죄송스러운 마음이 들어 집까지 종종 걸어오기도 했다. 어차피 버스 5정거장 정도의 거리, 운동이 부족한 고3이니 운동한다고 생각하면 크게 문제될 것도 없었다.
그 날도 그렇게 막차가 끊긴 시간에 집까지 걸어가는 길이었다. 같은 동네에 사는 친구가 없지는 않았지만 대부분 학원을 다니거나 과외를 받아서 돌아가는 길은 늘 혼자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혼자서 걷는 인적이 끊긴 밤거리는 생각보다 더 스산했다. 무서운 생각이 들려는 걸 애써 무시하며 걸음을 재촉했다. 정 무시할 수 없으면 얼마 전에 본 만화책이나 판타지소설의 내용을 회상하며 무서운 생각을 머리 밖으로 몰아내려 노력했다. 어차피 수 십 번은 오간 길이라 딴 생각을 해도 집까지 가는 데 어려움은 없었다. 아니, 없어야 했다......
이상함을 느낀 것은 그로부터 한참이 지나서였다. 평소보다 더 한참을 걸었다고 생각했는데 아직도 집에 도착하지 못한 것이다. 손목시계를 확인하자 시간은 이미 1시간이 넘게 지나 있었다. 평소라면 40분 정도 걸릴 거리였는데, 뭔가 잘못돼도 단단히 잘못됐다는 생각이 들어 주위를 둘러 보았다.
......어딘지 알 수 없는 곳이었다. 우리 동네 같기도 했지만 어딘가 달랐다. 무엇보다, 길 양 옆으로 불이 켜진 집이 하나도 없었다. 가로등은 하나 건너 하나가 꺼져 있었고, 켜져 있는 가로등조차 지지직 소리를 내며 곧 꺼질 듯 깜빡거렸다. 가로등 빛이 나갈 때마다 내 발치조차 보이지 않는 어둠이 덮쳐 왔다. 이미 머리속이 완전히 혼돈에 빠졌지만 그나마 남은 마지막 이성을 붙들어 필사적으로 생각했다. 그리고 왔던 길을 다시 가야 한다는 결론을 이끌어냈다. 그리고 뒤로 돌아 10m나 걸었을까? 나는 믿기 어려운 현실에 부딪혔다.
길이 막혀 있었던 것이다. 방금전까지 걸어왔음이 분명한 길이 막혀 있었다. 아니, 막혀 있었다는 말에는 어폐가 있다. 그 길은 단순히 막혀 있는 것은 아니었다. 분명히 몇m 앞을 분간하기 어려운 어둠 속에서도 그 막다른길은 옆의 벽과는 뭔가가 달랐다. 더... 검었다. 블랙홀을 맨 눈으로 직접 본 적은 없지만 (당연하게도) 실제 블랙홀이 눈 앞에 있다면 그런 느낌일 것이다. 그리고 아마도 블랙홀은 이만큼 사람을 기분나쁘게 만들지는 않을 것 같았다. 벽은 아닌 것 같았지만 도저히 손을 내밀어 만져 볼 엄두는 나지 않았다.
다시 발걸음을 돌린 나는 빠른 걸음으로 그 벽으로부터 도망치려고 했다. 그렇게 몇 십 분은 걸었을까. 다시 뒤를 돌아본 내가 본 것은 그 시꺼먼 벽이었다. 분명히 방금 걸어서 지나친 자리에 그 벽이 있었다. 나를 따라오기라도 했다는 듯이. 소스라치게 놀라 골목길로 뛰어들어 한참을 달렸다. 고3의 저질체력이 허락하는 한계까지, 목구멍에서 신물이 나고 구역질이 날 때까지 불 하나 켜져 있지 않은 밤거리를 뛰어다녔다. 숨이 턱밑까지 차올라 주저앉아서 나도 모르게 뒤를 돌아본 그곳에는...... 여전히 벽이 있었다. 심지어 아까보다 더 가까이에.
울고 싶어도 눈물조차 나지 않는 공포에 사로 잡힌 나는 벽으로부터 고개조차 돌릴 수 없었다. 가만히 보고 있는데 왜인지 벽이 조금씩 다가오는 느낌이 들었다. 온몸이 달달 떨리고 이가 제멋대로 춤을 추며 딱딱 소리를 냈다. 벽은 점점 내쪽으로 다가오고 있다. 그리마가 기어오는 속도처럼 조금씩, 조금씩..... 그 어둠이 마치 그리마가 우글거리는 벌레의 소용돌이처럼 느껴져 비명이 터져나올 것만 같았다. 그때였다. 누군가 주저앉아 있던 나를 힘껏 잡아당겨 일으켜 준 것은.
"이, 이, 이리... 오아......"
나를 일으켜준 손은 내 왼팔을 붙잡고 벽이 있는 반대방향으로 걷기 시작했다. 간신히 고개를 앞으로 돌린 내 눈에는 어릴 때 종종 봤던 다 해진 추리닝이 보였다. 그 형이었다. 정신이 없어서 어딜 어떻게 가는지도 몰랐지만, 내 팔을 잡은 손의 주인은 거침없이 골목길을 빠져나갔다. 손아귀힘이 지나치게 세기도 했지만, 그렇지 않아도 나는 저항할 생각도 못했을 것이다. 절룩거리는 걸음에도 불구하고 그 형은 엄청나게 빠른 속도로 나를 끌고 걸었고, 나는 하염없이 끌려가기만 했다.
정신이 들었을 때는 집에서 몇 골목이 떨어진 익숙한 동네의 가로등 불빛 아래였다. 내 주위에는 아무도 없었다. 다만 꽉 잡혔던 왼팔에는 빨갛게 사람의 손자국이 남아 있었다. 분명히 기억은 안 나지만 내 팔이 풀려날 때 언젠가 들었던 '늦지 않게 빨리 가'라는 말을 들었던 것도 같았다. 그렇게 집으로 돌아간 나는 기절하듯 쓰러져 잠이 들었고, 다음 날 아침에는 푸르스름하게 멍으로 변한 왼팔의 자국이 어젯밤에 겪은 일이 꿈이 아님을 말해 주었다.
아침을 먹으며 지나가는 말로 어머니께 물었다.
"엄마, 전에 우리 동네에 바보 형 있지 않았나?"
"응? 바보 형?"
"왜 그 있잖아. 국민학교 운동장에 자주 올라왔던......"
"아, 그 저 아랫동네 사는 김 씨 할아버지네 아들 말이지?"
어머니는 뒤늦게 생각나신 듯 질문에 답해 주셨다.
"그 청년 3년인가 전 쯤에 죽었다. 몸은 불편해도 외동아들이라고 김 씨 할아버지가 금이야 옥이야 했는데, 그 목욕탕 앞에 종종 교통사고 나는 건널목에서 트럭에......"
어머니가 무슨 말씀을 하시는 건지 순간 알 수가 없었다. 그럼 내가 어제 본 사람은? 어제 날 도와주고 사라진 사람은 누구였지?
어머니께서는 지난 밤에 내 귀가가 평소보다 한참 늦었던 것, 그리고 집에 도착하자마자 기절하듯 쓰러졌던 것에 대해 내게 캐묻고 싶으신 모양이었지만, 나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어차피 말해도 믿기 어려운 일이니까. 나 역시도 사실 믿어지지 않는다. 그래서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고 내 마음 속에 묻어두기로 했다.
그리고 벌써 그 때로부터 13년이란 세월이 흘렀다. 하지만 그 형이 죽었고 이 세상에 없다는 사실은 썩 내게 와닿지 않는다. 그 형은, 아직도 그 어둠이 쫓아오는 골목길에 있을 것이다. 길을 잘못 들어 어둠에 쫓기는 사람을 도와주기 위해서, 바보처럼 기다리고 있을 것이 분명하다. 한 번 인사를 나눴을 뿐인 꼬맹이를 구해줬을 정도로 바보 같은 사람이니까......
작가의 한마디 : 좀더 생생하게 쓰고 싶었는데 필력이 부족해서 잘 안 된 것 같네요. 읽어주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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