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이야기는 처음부터 끝까지 실화이며
2011년도 이야기임을 밝힙니다
1.
어릴 때부터 보통 아이들보다 의심이 많은 여자아이였어요.
표정이 않좋거나 분위기가 이상한 사람들이 있으면 피하는게 습관이었죠.
전 그런 의심 많은 성격을 콤플렉스라고 생각했어요.
하지만 그 성격이 나를 살리게 해줄거라고는 생각지도 못했죠.
내가 가장 생명의 위협을 받은 그 사건은
2011년 중학교 3학년 여름 때였어요.
아침에 허겁지겁 학교 등교할 준비를 하는데
그날 뉴스에서
[최근 엘레베이터에서 여학생을 노리는
연쇄강간살인사건이 연달아 일어나며...]
라는 말이 스쳐 지나갔어요.
얼마전에 같은반 친구가
스쳐지나가는 말로 우리 앞 아파트에서
강간살인사건이 일어났단 소문은 들었지만
어차피 뭐 나한테는 일어나지 않을 일이잖아 라고 생각하며
등교준비에 만차를 가했었죠.
2.
그렇게 평소와 똑같은 학교 생활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
아파트 엘리베이터 앞에서
내려오는 층수를 멍하니 보고 있었어요.
이대로면 혼자 엘리베이터를 탈 수 있겠다.
항상 아주머니든 아저씨든 같은 학생이든
엘리베이터같은 밀폐된 공간에서
낯선 사람과 함께 타면 숨막히는 기분이였던 저는
기분 좋게 1층으로 내려오는 엘리베이터를 바라보고 있었죠.
문이 열렸고
엘리베이터에 들어가 우리집 층수를 눌렀어요.
15층.
혹시나 다른 사람이 들어올까 닫힘 버튼을 꾸욱하고...
누르는 그 순간,
문이 닫히려다가 다시 열리며
싸한 분위기와 함께 한 남자가 타더라고요.
검정색 머리, 검정색 바지, 검정색 슬리퍼, 검정색 옷...
검정색 모자, 어두운 피부, 뻗치고 떡진 머리, 긴바지.
긴 후드집업에 손을 꾹 집어 넣은 채
저와 함께 엘리베이터에 타는 것이었어요.
살면서 수 많은 사람을 의심했고 피해 왔던 나지만
닭살돋는 그 기분은 아직도 잊을 수 없었어요.
그 밀폐된 엘리베이터에서
정가운데 서있던 날 옆으로 지나 굳이 CCTV를 등지고
스는 그의 의도가 궁금했고
어째서
내가 누른 층 수를 뚫어지게 쳐다보는 지가 궁금했어요.
순간적으로 저는
'...설마 엘리베이터 버튼이 꼭대기층에 눌러져 있어서?
이 사람이 범죄자라서 6층에서 7층 누르는 범죄 수단을 쓰다가
우리집이 꼭대기인걸 보고 고민하고 있는 거 아닐까?
아래층을 누르면 위로 올라가는 게 숨가쁘다고 생각...'
속으로 와 난 정말 병이구나 싶어 생각을 지웠다.
같은 층에 사는 사람일 수도 있지
그래 괜한 의심이야라고 생각하는 순간
엘리베이터 문은 닫혔고
그 남자는 아직도 엘리베이터 층을 누르지 않더라고요.
'아 근데 내가 이 집에서 10년간 살았는데... 저런 사람은 한번도 본 적 없는데 ...?
그리고 이제 여름이 다가오는데 왜 긴팔에 긴바지...'
아차하는 사이
엘리베이터는 쉴세없이 올라가고 있더라고요.
아무리 봐도 수상한 남자와 단 둘이 함께 탄 채.
3.
엘리베이터 거울을 통해 그 남자를 훔쳐보았어요.
아직도 제가 누른 층 버튼을 뚫어지게 보고 있더라고요.
'뭐야, 우리 층 수에 사는 사람이 엘리베이터 버튼을 왜 계속 쳐다봐?
그리고 저 사람은 내가 여기 살면서 한번도 본 적이 없는 사람인데.....'
이런 생각을 하면서 폰으로 엄마한테 문자를 보냈어요.
[엄마 나 이상한 사람이랑 엘리베이터 탄 것 같아...ㅠ어떡해?]
숨 막히는 공기
불안한 촉
제발 아니길 빌며 핸드폰을 손에서 놓지 않았어요.
"띵-"
그런 제 맘과 다르게 쉴 틈도 없이 올라가던 엘리베이터는
어느새 우리 집 꼭대기 층으로 도착해 있었어요.
저는 내리지 않고 멈춰 서 있었고
정적이 흐른 듯 아무도 엘리베이터를 내리지 않고 있었죠.
'그래, 이 아파트 사는 사람이면 알아서 집에 들어가겠지.'
망부석처럼 서있는 나를 힐끔 보던 그 남자는
주춤거리며 먼저 엘리베이터를 나섰어요.
그러고는 엘리베이터 앞에 우두커니 서있는 거에요.
'뭐지? 왜 집에 안들어가지?"
참고로 우리 아파트는 복도식 아파트로 엘리베이터가 총 2개였어요.
저의 집은 제가 탄 엘리베이터 바로 옆이었고요.
바로 집에 들어가면 이 사람이 날 어떻게 할지도 모른다는 망상과
내가 지금 이 엘리베이터에서 안내리고 문이 닫히면
이 사람이 다시 열어서 나를 칼로 찌르지 않을까 하는
쓸데없는 두번째 망상으로 인하여
무거운 발걸음을 띄어 엘리베이터에서 내렸어요.
저는 왠지 모르는 공포에 엘리베이터 남자의 시선을 피하며
우리집과 반대쪽 복도로 걸어가버렸어요.
복도 끝 두번째 엘리베이터로 향하면서
'헐 내가 왜 여기로 발이... 어쩌지 이대로 반대쪽 엘리베이터를 탄다고 해도
그 반대쪽 엘리베이터가 바로 도착한다는 보장도 없고...'
마치 누군가가 내 맨몸을 바라보는 듯한 소름끼치는 시선.
화재가 나면 사람이 정신이 피폐해져 고층에서 뛰어 내리는 것처럼
제 걸음은 멍청이처럼 아래층 계단으로 향해 가더라고요.
'아 미친...내가 왜 아래층으로 왔지? 아 나도 진짜 의심병이다.
설마 그 사람이 막 강간살인범이겠어. 다시 우리집 쪽으로 가야겠다.
지금쯤이면... 없겠지.'
떨리던 속가슴과 제 이상한 행동을 비웃으며 아래층 복도를 지났어요.
우리집 쪽 엘리베이터 계단을 오르며
'...아직 있진 않겠지?'
하고 생각하는 순간,
내 시선 위로는 검은색 옷차림, 검은색 그 남자의 눈이 있었고
소리도 지를 새 없이
소름끼치는 그 기분을 껴앉은 채
나도 모르게 아래층으로 뛰어내려가기 시작했어요.
"아 이 개씨X년아!!!!!"
'뭐지? 뭐야? 뭔데? 왜?'
욕섞인 괴음,
뒷발걸음 소리와 내 발걸음소리가 난도질 하듯
내 귀청을 때리고 있었고
내가 쫒기는 입장임을 인식하기 까지는
긴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어요.
4.
어쩌지? 이게 무슨 일이지?
도망가는 그 순간 살려달라 소리지르는 건
본드라도 입술에 바른 듯 열어지지 않았고
만약 소리 지른다고 하더라도 요즘같은 시대에 누가 나올까
경찰? 112? 막상 상황이 되니 경찰보다는 가족을 찾게 되었어요.
아빠한테 전화해보자
받지 않으셨고
엄마?
받지 않으셨죠
언니?
고등학교라 전화가 꺼져있었고요
친구?
아무도 받지 않았어요.
(지금은 쫒기는 그 순간 경찰에게든 가족에게든
전화한들 무슨 소용이었겠냐고 생각하지만...)
내 뒤로 몇발자국 뒤에 그 남자가 있는지 전혀 모른 채
겹치는 발자국 소리만으로 따라오고 있다는 걸 느끼고 있던 전
점점 숨차오르는 그 순간까지도 일층까지 뛰어야 한단 생각과
잡히면 무조건 머리로 핸드폰을 내리 찍자는 생각으로 대행책을 생각하면서
심장이 막 아파오는데 눈물은 나오지 않더라고요.
꼭대기 15층에서 9층으로 내려오면서 진짜 끝이구나하고 생각했어요.
숨이 막혀 왔고 점점 눈물이 나려고 하고 뒤로 들려오는 발자국은
반층정도의 차이에서 더 가까워져 오고 있었거든요.
"삐리릭-"
그때 바로 아래층 오른쪽에서 도어록 소리가 들리더라고요.
"사..살려주세요 살려주세요!"
넘어질 듯 아래층으로 내려가 도어록 소리가 난 쪽으로 몸을 돌렸어요.
누군지는 모르겠지만 팔을 움쳐 잡고.
살 수 있단 희망에 그제야 울음이 터졌어요.
"사..하..살려주세요..이상한...아저씨가 쫒아와요 제발요."
어렴풋이 박스더미를 든 할머니가 보였고
제가 이건 더 위험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는 순간
제 귀 뒤로 발걸음이 들려왔다.
"탁, 저벅저벅"
위로 올라가는 발걸음
"뭔일이여 학생..? 울지말고 말을 해봐"
할머니의 다독임과
공포와 안심, 위층에서 느껴지는 무서움에
휴대폰을 꽉 쥔 채 긴장을 풀지 않고 울고있는 나...
엘리베이터가 올라가는 소리
윗층에서 멈추는 소리
엘리베이터가 다시 내려가는 소리
전 그대로 자리에 주저 앉아버렸어요.
5.
할머니의 다독임과 집으로 같이 데려다주신다는 말에
그 사람이 아직도 있을지도 모른다는 공포와
할머니가 되려 휩쓸릴 수 있단 생각에
괜찮다고 사양했지만 할머니께서는 같이 동행해주셨어요.
다행히 그 남자는 더이상 저희 집 앞에 서있지 않았고
저는 그제야 집 문을 열었다.
집에서 이게 뭔 일인가 싶고 눈물은 멈출 줄 모르는데
그제야 아빠한테 전화가 오더라고요.
가족들은 긴가민가하고 처음엔 내 말을 믿어주지 않았어요.
저희 가족에게 이런 일이 일어날거라 생각하지 않은거죠.
다음날 아빠와 경찰에 신고를 하고 CCTV 녹화본과 동네 주변 범죄자들의 몽타주를 보여주는데
눈마주쳤던 그 남자와 비슷한 사람이 있더라고요.
강간연쇄살인범.
범행 수법은 최근에 뉴스에도 많이 나오는
여학생들과 엘리베이터에 같이 탄 뒤 여학생의 집 위층을 눌러
집에 들어설 때 같이 들어가
강간과 살인, 강도짓을 하고 나오는 것.
다시 나를 찾아 보복하는 건 아닐까
일주일간 밖에 나가지도, 밥도 못먹을 정도로 무서움에 떨었지만
그 남자는 저를 다시 찾아오지 않았고
증거도 없이 미수로 그쳐서 그런지
경찰에서도 그 남자에 대한 이야기를
제게 전해주지 않았어요.
한번도...
물론 저도 더이상 떠올리고 싶지 않았고
듣고 싶지도 않았지만...
6.
3년이 지난 사건이지만
전 아직도 그 엘리베이터와 계단에서의 공포를 어렴풋이 기억하고 있어요.
미수로 그쳤던 제가 이정도인데
실제로 범행을 당한 사람은 얼마나 힘들지 감히 생각도 못하겠더라고요.
누구든 범행을 당할 수 있고
누구든 그 범행에서 구제해주는 사람이 될 수 있어요.
그렇기에 이 글을 읽은 많은 분들이
나에게도 이런 일이 생길 수 있다는 걸 인지하고
아니다 싶을 때 저처럼 멍청하게 가만히 있지 않고
도망을 가든 뭐든 해서 그 상황을 모면하셨으면 좋겠어요
긴 글을 읽어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우리는 세월호를 아직 잊지 않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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