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노트: 아잇적 우리는. 훌륭한 것으로, 아름다운 것으로, 세상을 위해 간직해야 할 것으로 여겼던 것들을. 현실이란 잣대 아래 박제가 된 외피로 치장해 둔다. 가끔 냉혹한 현실의 모퉁이에 모여 앉아 악세사리로 꺼내 놓을 뿐.

작품설명:

영어 제목이 ‘박제된 순수’입니다. 좀 더 설명적인 제목인 셈인데요.

어느 누구도 쉽게 정의내릴 수 없는 ‘순수’라는 것에 대해 어려서부터 오랫동안 생각해 봤습니다. 아무것도 모르는 아이를 ‘때 묻지 않은 순수’라고 얘기하곤 하는데, 그는 다듬어지지 않은 순수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욕구는 이기심으로 보이기도 하고 이타심의 학습이 되어있지 않은, 다듬어지지 않은 상태 말이죠. 내 것과 네 것의 경계를 이해 못하는 아가는 자신의 마음에 드는 물건을 ‘자기 신체의 일부’라고 느낍니다. 어른들과는 다른 이기심인 셈이죠. 적절한 욕구충족과 관심과 넘치는 사랑을 받으며 유아기를 보낸 아이는 이기심만큼 이타심을 중히 여길 줄 압니다. 하지만 욕구가 충족되지 못하고 사랑을 받지 못한 아이일수록 탐욕적으로 성장할 가능성이 높고, 폭력적 환경에서 성장한 아이는 커서 폭력을 휘두르는 범죄자가 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이것이 사회와 부모어른의 몫인 게죠. 공감력과 이타심이 높은 사람으로 성장하는 것은 개인의 노력뿐 아니라 사회환경이 뒷받침되어야 가능한 복잡한 얘기입니다.

경쟁력 있는 사람이 되어야 돈을 잘 벌어 남부럽지 않은 물질을 누릴 수 있는 자본주의사회, 우리는 어려서부터 타인의 마음을 잘 헤아리는 것 보다는 동료와의 경쟁에서 이기는 훈련을 받습니다. 이런 사회에서 이타심을 중히 여기는 것은 끊임없는 스스로의 훈련밖에 없는 셈이죠.

물론 순수가 이타심만을 얘기하는 것은 아닐 겁니다. 나의 순수한 본심과 행동이 남에게 끼치는 영향에 대한 이해가 있어야 합니다. 끊임없는 지식의 축적과 고민, 그리고 경험 속에서의 반성과 체득이 있어야만 가능한 것이죠. 그리고 불합리한 사회와 맞서 싸울 줄도 알아야 합니다. 용기와 지혜와 힘이 필요한 일이죠. 이는 어느 날 완성되는 것이 아니고, 될 수 있는 것도 아닙니다. 인생 전반에 걸쳐 스스로 갈고 닦아야 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수많은 사람들은 ‘순수’를 어릴 적 추억 속에 박제해 놓고 삽니다. 우리 어른의 삶과는 무관한 것처럼 말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