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류 | 게시판 |
베스트 |
|
유머 |
|
이야기 |
|
이슈 |
|
생활 |
|
취미 |
|
학술 |
|
방송연예 |
|
방송프로그램 |
|
디지털 |
|
스포츠 |
|
야구팀 |
|
게임1 |
|
게임2 |
|
기타 |
|
운영 |
|
임시게시판 |
|
옵션 |
|
어둠속에서 K의 얼굴에 노트북 모니터의 빛이 쏟아졌다. 낮은 소리로 돌아가는 노트북의 냉각팬소리, 열어둔 문틈으로 들리는 가전제품들이 내는 낮은 소리가 적막한 K의 밤을 흔들어 놓고 있었다. 아주 잠시 동안 화면에 머물러 있던 K의 시선은 화면의 다른 구석으로 옮겨갔다.
K는 흔히 말하는 괴담을 읽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이었고 일을 하고 돌아오면 맥주 한 캔을 놓고, 더위에 땀을 흘리며 괴담사이트에 들어가 사람들이 쏟아내 놓은 괴담들을 읽는 것이 취미였다. 아주 간간히 더위를 잊을 만큼 머리털이 일어서는 무서운 이야기들이 있었고, 대부분은 학창시절 수련회나 야자시간에 모여 아이들이 떠들어 대는 괴담 같은 것들이었지만, K는 그 커뮤니티에 시간을 쏟는걸 아까워하지 않았다.
괴담 사이트에 들어가 뜻밖에 손에 쥔 물건처럼, 신선하고 모골이 송연한 이야기가 있기를 바라며 반쯤은 무의식적으로 인터넷 창을 열고 즐겨찾기에 저장해둔 괴담사이트에 들어갔던 K는, 가장 추천수가 많은 글들을 상위에 보여주는 섹션에서 ‘거울너머의 세계를 보는 법 후기’라는 글에 시선이 갔다. 제법 큰 괴담 커뮤니티일지라도 덧글 수가 세 자리를 넘어서는 글은 아주 드물었고, 후기라고 적은 글에는 세 자리 숫자의 덧글을 자랑이라도 하듯 흰 글씨로 된 숫자가 붙어있었다.
반쯤 궁금함에 반쯤은 무의식적으로 K는 그 글을 클릭하곤, 막 딴 맥주를 한 모금 마셨다. 글재주가 그렇게 있는 사람은 아닌지 작성자의 글은 간혹, 샛길로 빠졌다가 돌아오곤 해서 K의 주의를 흩뜨렸지만 큰 줄기는 일주일전 올라왔다는 ‘거울 너머의 세계를 보는 법’이라는 글에 나온 내용과 그걸 심심풀이 삼아 실행에 옮겼고, 정말로 성공했다는 내용이었다.
거울 너머의 세계에서 사는 사람들을 잠시잠깐 만났다던 작성자는 어설프지만 그래도 세세하게 본 사람들의 얼굴을 묘사했고 세 자리수를 넘어선 덧글에서는 자작이다 아니다, 자신도 지금 막 실행해 봤지만 실패했다, 자신은 성공했다 설왕설래를 펼치는 사람부터 작성자에게 좀 더 세세하게 얘기해달라는 덧글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져있었다.
K는 다시 맥주를 마시며 설전이 오가는 덧글들을 비웃으며 덧글로 말을 보탤 필요조차 없을 만큼 작위적 냄새가 나는 글임이라 생각하곤 일말의 주저 없이, 페이지를 벗어났다. 그 후로도 종종, 괴담 커뮤니티엔 ‘거울 너머의 세계’에 관한 글들이 큰 이슈처럼 K의 눈에 띄곤 했지만 K의 흥미를 이끌기는 충분하지 못했다.
장마에 접어든 휴일에는 여지없이 비가 내렸고 K는 느지막이 일어나 한참 재미를 붙인 온라인 게임으로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다 매일같이 들락거리는 괴담 사이트로 들어가 엉덩이를 붙이고 앉았다. 무서운 이야기가 호황인 시즌인 탓에 게시판은 언제나 새 글 알림으로 가득했다. 개중에는 본적이 없는 것들도 있었고 매해 단물을 빨아내듯 등장하는 이야기들도 있었기 때문에 K는 새로운 것은 새로운 맛에 오래된 것은 오래된 맛에 먹어치우듯 읽어나갔다.
그러다 K는 ‘거울 너머의 세계를 보는 법’이라는 제목을 단 글을 발견했다. ‘[펌]’이라는 말머리가 달려있는 것으로 보아, 작성자가 어느 다른 사이트에서 보고 긁어왔을 것이 분명한 그 제목을 봤을 때, K는 콧방귀를 끼면서도 흥미에 이끌렸다. 도대체 무엇이 이 글에 있기에 사람들이 그토록 열광했는지 궁금하기도 했고 동시에, 정말로 너머의 세계를 볼 수 있을까 하는 본능적인 흥미가 솟았기 때문이었다. 화면이 깜빡이듯 페이지가 넘어갔고 K의 눈에 간결하게 ‘방법’만이 적힌 페이지가 나타났다.
1. 자주 사용하는 거울을 깨트려 그 조각을 이용할 것
2. 조각을 눈앞에 가까이, 벽에 난 구멍을 통해 벽 너머로 보듯 가져다 댈 것
3. 음악소리나 TV를 끄고, 어두운 방안에서 혼자서 할 것
4. 어둠 속에서 거울 조각을 통해 들여다보다 빛이 보이면 너머에 들어 선 것
5. 너무 오랫동안 훔쳐보지 말 것
세차게 비가 내리는 소리가 창밖에서 들렸고 낮은 소리를 내며 바깥에서 가전제품들이 돌아갔다. 글자를 읽던 K는 마우스를 손에 쥐고 눈길을 돌려 모니터 구석에 날짜와 시간을 표시가 된 곳을 바라봤다. 아직 열한시 반, 보통 때 2시 무렵에야 잠에 들었고 온라인게임은 이미 피곤할 만큼 할 상태였다. 보고 싶은 영화도 딱히 떠오르지 않았고 괴담 사이트에도 더 이상 K에게 새로움을 가져다 줄 글은 더 이상 없었다.
K가 화면을 바라보는 동안 화면에 나타난 숫자가 바뀌었고 K는 스킨같은 화장품을 올려두는 책장 위의 거울을 바라보았다.
거울은 생각보다 잘 깨지지 않아서, K는 결국 신발장 구석에 넣어둔 공구 통에서 망치까지 꺼내 써야 했다. 신중하게 조각이 나도록 깨트린 거울에서 그럭저럭 쓸 만한 조각을 손안에 쥐었을 때는 K는 등에 땀이나 찝찝함에 혀를 찼다. 어둠속에 집이 파묻히도록 스위치를 모두 내렸지만 건너편 건물에서 새어나오는 불빛에 집안은 생각만큼 어둡지 않았고, 노트북을 덮어 모니터에서 나오는 빛까지 차단한 K는 방 한가운데 엉덩이를 깔고 주저앉았다.
장판에 정강이 피부가 기분 나쁘게 들러붙었지만 K는 상관하지 않고 거울조각을 들어올렸다. 무슨 한심한 짓인가 싶었지만 K는 깨트린 거울이 아까워서라도 하자는 심정으로 거울조각을 얼굴 가까이로 가져와, 조그마한 구멍을 통해 벽 너머를 훔쳐보듯 한쪽 눈을 감고 거울 조각을 바라보기 시작했다. 빛이 있다면 거울 안에 K의 눈동자라도 보였을 테지만, 어두운 탓에 거울 조각에는 아무것도 비춰지지 않았다.
게시글에서는 얼마나 들여다보면 된다는 내용 같은 것은 없었고 K가 어둠을 응시하는 바보 같은 지루함에 못 이겨 역시 그저 사람들을 낚기 위한 글이라고 체념했을 때, K는 거울 조각 안에서 빛을 발견했다. 점점이 나타난 빛의 틈새로 얼룩덜룩하게 색들이 나타났고 K는 이상하게 가슴이 울렁거렸다.
숨을 집어 삼키고 그 빛과 얼룩덜룩한 색에 K가 더욱 집중하자 반짝, 구멍을 통해 훔쳐보려던 곳에 전등이 들어온 것처럼 방이라고 불러도 될 만한 공간이 눈 안에 들어왔다. 그것만 해도 이미 놀라운 경험이었지만 K는 그곳에 웬 남자 하나가 서 있었다. K의 시야에서 등을 진 채 잠시 서있던 남자는 곧 방의 다른 구석으로 걸음을 옮겨 K의 시야 밖으로 사라졌고, K는 덩그러니 보이는 흰 벽을 한참이나 보다 쥐고 있던 거울 조각을 얼굴에서 멀찍이 떨어트렸다.
K는 까무룩, 그 자리에서 잠이 들었고 다음날 요란하게 울리는 모닝콜소리에 정신을 차렸다. 배터리가 바닥인 휴대전화를 진정시키고 나자 K는 거울조각을 떠올렸고 거울조각을 집어 들어 쓰레기통 앞으로 갔다가 이윽고 거울 조각을 버리는 것을 그만뒀다. K는 다시 방안의 스킨이 놓여있던 책장위에 거울조각을 내려놓고 찝찝한 몸을 씻고 출근길에 나섰다. 짜증스러울 만큼 비가 오던 월요일이었다.
K는 퇴근하자마자 집으로 돌아와 입었던 옷을 벗지도 않은 채 어두운 집을 가로질러 방으로 향했다. 가방을 아무렇게나 구석에 던져두고 K는 거울 조각을 다시 집어 들었고 어제보다 쉽게 거울 너머의 세계를 훔쳐볼 수 있었다. 어제와 똑같이 흰 벽으로 둘러싸인 방이었고 어제 보았던 남자와는 다른 남자 하나, 그리고 여자 하나가 K의 시야에 들어왔다. 둘은 K의 시선을 등진 채 한동안 한 자리에 서 있다가 자리를 옮기곤 했고 K는 그들이 그렇게 방에서 위치를 바꿔가며 서 있는 것을 훔쳐봤다.
다음날도 그 다음날도 K는 퇴근하기 무섭게 거울 조각으로 너머의 세계를 훔쳐보는데 취미를 붙였다. 흰 벽에 둘러싸인 방인 것은 고정적이었지만 그 방에 나타나는 사람들은 언제나 다른 사람이었고 그것은 K에게 꽤 재밌는 일이었다. 거기에 K가 훔쳐볼 때마다 나타나는 사람이 하나 둘, 늘었기 때문에 제법 넓다고 여겼던 흰 방은 곧 사람들로 빼곡히 차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이 되었다.
퇴근하자마자 일과처럼 K의 시선을 등지고 선 사람들의 모습을 훔쳐보던 K는 문득, 거울 너머의 세계를 훔쳐봤다던 후기 글을 떠올렸다. 작성자가 세세하게 자신이 봤던 사람들의 얼굴을 묘사했다는 것을 떠올린 K는 작성자가 어떻게 사람들의 얼굴을 봤는지 궁금해 함과 동시에 K의 시야를 등지고 있던 사람 중 하나가 K를 향해 돌아섰다.
하나, 둘, 파도에 휩쓸리듯 흰 방을 빼곡히 채운 사람들이 K의 시선을 향해 돌아섰고 K는 그곳에서 시선을 뗄 수 없었다. 돌아선 사람들이 느릿느릿 K의 코앞으로 다가오듯 몰려들었고 K는 그렇게 되고나서야 겁에 질려 거울 조각을 집어던졌다.
찜찜한 기분을 떨쳐낼 수 없었고 K는 방바닥에 던져진 거울조각을 쳐다보지 않으려 노력하며 뜬눈으로 밤을 지새웠다. 모닝콜이 요란하게 울 때 까지 꼼짝도 않고 앉아있던 K는 모닝콜이 끝나는 소리와 함께 자리에서 일어나 내던진 거울 조각을 집어 들어 쓰레기통으로 던져 넣었다.
그저 소름끼치는 해프닝으로 나중에 술자리에서 써먹을 만한 경험으로 치자며, K는 거울조각 따위는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 땀 냄새가 나는 옷을 벗어던지고 샤워 뒤에 출근할 요량으로 욕실에 불을 켜고 문을 열었다가 숨을 집어삼키며 돌덩이처럼 제 자리에 멈춰 섰다. 하얗게 질린 얼굴로 K는 욕실 문 정면에 붙은 거울을 쳐다보다 단말마를 토하며 뒤로 나동그라져 주저 앉아버리고 말았다.
욕실 문 정면에 붙은 거울에는 K를 훔쳐보는 것 같은 눈동자들이 거울을 가득 메울 정도로 다닥다닥 달라붙어, 비명조차 지르지 못하고 나동그라진 K를 노려보고 있었다.
죄송합니다. 댓글 작성은 회원만 가능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