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손에는 [축 개업]이라고 써진 작은 리본이 붙어있는 화분을, 또 다른 손에는 동생들에게 줄 선물을 들고 기분 좋은 발걸음을 옮긴다.
어제 저녁, 이모가 횟집을 개업한다는 소식을 듣고 아침에 부랴부랴 준비해서 나온터라 작은 화분 하나 밖에 준비 할 수 없었지만 그래도 이모가 개업한다고 이 먼곳까지 달려와주는 조카가 어디 있겠는가.
가게에 도착하면 이모에게 가게에서 제일 비싼 메뉴를 내 달라고 해야지.
나는 조금은 뻔뻔한 상상을 하며 작게 쿡쿡,하고 웃고는 설레는 마음으로 가게 문을 열었다.
그러나 즐거움도 잠시. 내 눈에 들어온 건 밝게 웃으며 나를 반겨주는 이모가 아니라, 잔뜩 화가 난 채로 녹이 슨 엽총을 들고 있는 이모부였다.
"이모부, 지금 뭐하시는거에요??"
나는 깜짝놀라 화분과 선물들을 다 쏟아버리곤, 이모부를 향해 뛰쳐갔다.
이모부는 어찌나 흥분해 있는지 이까지 악 물고 거친 숨을 내쉬며 말했다.
"저 더러운 고양이 새끼가 개업하는데 재수없게 가게 안에 떡하니 앉아서 나갈 생각을 안하잖아."
이모부의 시선 끝을 따라가 보니, 그곳엔 오랫동안 거리를 떠돈 듯 아주 지저분하고 못생긴 고양이 한마리가 날이 잔뜩 선채 하악질을 하며 꼿꼿하게 서 있었다.
확실히 소름이 돋을 정도로 기분이 나쁜 고양이였다. 나는 떨리는 마음을 진정시키며 침착하게 말했다.
"그렇다고 총을 들고 계시면 어떡해요??"
"아무리 쫓아내도 나가질 않으니까 그렇지. 그냥 겁만 줄테니까 저리 떨어져있어."
"안돼요, 그러지 마세요. 제가 잡아올게요. 쏘지 마세요."
나는 이모부가 쥐고 있는 엽총의 총구를 아래로 내리게 한 뒤 조심스럽게 고양이에게 다가갔다.
이모부는 못마땅한 표정을 지으며 끝까지 총에서 손을 떼지 않았다.
"착하지, 이리온.“
그런 이모부의 표정에도 아랑곳하지않고, 나는 한 발, 한 발. 차분하게 발걸음을 옮겨갔다.
그리곤 재빨리 몸을 날려 고양이를 품에 안았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일 뿐, 고양이는 괴상한 울음을 쏟아내며 내 품을 빠져나갔고, 그와 동시에 커다란 총성이 울렸다.
[타-앙!!!!!!!!!!!!]
총알은 정확히 고양이의 몸통을 관통했다.
깔끔했던 가게 안은 순식간에 새빨간 피로 물들었고, 고양이의 내장이 이리저리 삐져나오며 사방에 흩뿌려졌다.
방금 전까지만해도 생기가 돌던 고양이의 눈빛은 뿌옇게 초점을 잃고, 차갑게 식어버린 몸뚱이는 차가운 대리석 바닥에 곤두박칠쳤다.
나는 그대로 정신을 잃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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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득 정신을 차려보니 나는 커다란 역사 한복판에 서 있었다.
그런데 내가 왜 이곳에 서 있는지, 도무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방금전까지 내가 무얼하고 있었는지, 처음보는 이 곳엔 대체 어떻게 온 것인지.
아무것도 생각이 나지 않는다.
그러나 단 한가지, 내가 지금 뭘 해야할지는 확실하게 알 것 같았다.
나는 지금 당장 집에 가야한다.
빨리 집에 돌아가야한다고, 본능이 내게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나는 불안한 마음을 최대한 진정시키고, 이성적으로 생각하기로 마음 먹었다.
우선 집에 가기 위해선 이 곳이 어딘지를 알아야 하겠지.
기차역인지, 전철역인지, 전철역이라면 수도권 전철인지, 지방 전철인지.
나는 몸을 움직여 내가 있는 역의 정보를 얻기 위해 역 구석구석을 뒤져보기 시작했다.
그러나 아무리 돌아다녀봐도 이 역은 무언가 많이 이상했다.
이 곳은 개찰구도 없고, 출구도 없고, 심지어 사람조차 한명도 보이지 않았다.
매표소가 있었지만 문은 굳게 닫혀져 있었고, 노선도가 그려져 있어야 할 곳에는 그냥 비어있는 철판이 붙어 있을 뿐이었다.
그 어디를 둘러봐도, 도저히 사람이 이용할 만한 역이라고는 생각 할 수가 없었다.
만일 여기서 벗어나지 못한다면, 나는 이대로 이 역에 갖혀 살아야 하는 것인가.
나는 공포심과 좌절감에 그만 바닥에 주저 앉고 말았다.
그 때 내 눈에 작은 팻말 하나가 들어왔다.
[갈아타는 곳]
나는 벌떡 일어났다.
갈아타는 곳이라면, 분명히 열차가 들어오는 곳이다.
저기로 가면 분명 무엇인가 있을 것이다.
나는 그대로 팻말이 있는 곳을 향해 달려갔다.
팻말 옆에는 지하로 내려가는 계단이 있었는데 그 계단을 반쯤 내려가니, 아주 익숙한 플랫폼이 눈에 들어왔다. 그리고 안내 전광판도.
나는 그 플랫폼을 한 눈에 알아볼 수 있었다.
정말 다행이다. 이 곳은 전철역이다. 그것도 수도권.
내가 아주 자주 이용하는, 수도권 전철이 확실했다.
이제 정말 집으로 돌아갈 수 있다.
이 곳이 정말로 수도권 전철역이라면, 반드시 우리집으로 돌아가는 열차가 있을 것이다.
나는 그렇게 생각하며 계단을 완전히 내려간 뒤, 안내 전광판을 뚫어져라 쳐다보기 시작했다.
그런데 안내 전광판도 무언가 이상했다.
그저 작은 전철 모양의 불빛이 전광판 아래에서 움직이기만 할 뿐, 이번 열차 행선지도, 다음 열차의 행선지도 전혀 써져 있지 않았다.
이래서는 이번 열차는 전전역에서 출발했다는 사실만 알 수 있을 뿐, 전전역은 어디이고, 또 이번역은 어디인지 전혀 알 수가 없었다.
나는 불안한 마음에 다시 플랫폼을 쳐다보았다.
그런데 이럴수가.
아까는 미처 보지 못했는데, 이 곳은 철도가 하나 뿐이었다.
이렇게 된다면 상행, 하행을 구분 할 수가 없다.
열차가 그냥 한 쪽 방향으로만 쭉 가게 되는 것이다.
플랫폼도 하나 뿐이고, 열차가 가는 방향도 하나 뿐이고.
타는 사람에게 선택의 여지란 없다.
이 열차가 가는 방향이 우리집과 반대방향이라면, 나는 집으로 돌아갈 수가 없는 것이다.
나는 다시 불안감에 휩싸이기 시작했다.
그 때였다.
“야! 너 진짜 오랜만이다!”
전혀 내 또래로는 보이지 않는, 초등학생 쯤 돼 보이는 녀석이 내게 말을 걸었다.
“누구....?”
“이야, 나도 못알아보다니 되게 섭섭한데? 하긴, 내가 여기 조금 오래있긴 했지.”
이 자식이, 내가 아무리 키가 작아서 성인처럼 안보인다지만 아무리 그래도 초등학생이 맞먹을 정도는 아닐텐데.
뻔뻔하게 반말을 짓거리는 꼬마녀석을 보고 있자니 나는 왠지 모를 불쾌함이 들어 눈에 힘을 빡 주고 녀석의 얼굴을 빤히 쳐다봤다.
어....? 그런데 이 녀석, 분명히 아는 얼굴이다.
어디선가 분명히 본적이 있는 얼굴이다.
기억나진 않지만 분명히 어디선가 본 듯한, 그러나 기억하면 안될 것 같은 그런 얼굴이다.
꼬마는 내가 자신의 얼굴을 한참 들여다보는 것도 아랑곳않고, 혼자 계속 말을 이어갔다.
“야 인마, 내가 혼자 가기 싫어서 여기서 얼마나 기다렸는 줄 아냐? 그래도 너라도 와서 다행이다. 빨리 같이 가자.”
쪼끄만게 날 언제 봤다고 다짜고짜 어딜 같이 가자는 거야?
나는 꼬마의 말을 무시해버리고 다시 전광판을 바라봤다.
열차는 전역에 도착하여 곧 출발하려는 모양이었다.
이제 더 이상 이런 꼬맹이 따위에게 신경쓸 겨를이 없다.
나는 한시라도 빨리 이 열차의 목적지를 알아야했다.
그래서 꼬마를 떼어놓기 위해, 다시 한번 꼬마를 쳐다보며 입을 열었다.
“꼬마야, 내가 지금 좀 바쁘니까 나중에 얘ㄱ....”
그러나 나는 말을 끝까지 이을 수가 없었다.
기억하지 말아야 할 것을 떠올려 버린 것이다.
나는 이 꼬마를 알고 있다.
이 꼬마는 내 초등학교 동창이었다.
내가 초등학교를 졸업하기 전에 죽은 동창.
“.....야. 너 죽었잖아.”
내가 정색하며 말하자, 꼬마는 웃으며 대답했다.
“그러니까 같이 가자는 거잖아. 뭐해? 지금 열차 들어온다. 저거 타면 돼.”
나는 다시 전광판을 바라봤다.
[이번 열차가 전역을 출발하였습니다.]
전광판에는 여전히 목적지는 쓰여있지 않았지만, 나는 왠지 이 열차의 목적지를 알수 있을 것 같았다. 아니 확실했다.
이 열차의 목적지는 저승이다.
고개를 들어 주위를 둘러보니, 그제서야 열차를 기다리는 승객들이 눈에 들어왔다.
이 곳에 있는 사람들은 하나 같이 낯빛이 어둡고 표정이 없었다.
도망쳐야한다. 도망쳐야한다. 도망쳐야한다. 도망쳐야한다. 도망쳐야한다.
“야, 이 미친놈아. 내가 거길 왜 가냐? 안가 인마 못가!”
나는 꼬마, 아니 죽은 동창에게 버럭 화를 낸 후에, 내려온 계단으로 죽을 힘을 다해 뛰어올라갔다.
죽은 동창은 황급히 뛰어가는 내 뒷 모습에 대고 나지막히 속삭였다.
“하긴, 너 생일이 코 앞인데 지금 가긴 좀 억울하겠지? 생일 보내고 다시 와.”
나는 필사적으로 계단을 올라온 후, 닫혀있던 매표소로 달려가 미친사람처럼 문을 두드렸다.
왠지 그래야만 할 것 같았다. 그곳이 아무것도 없는 텅 빈 역안에 달린 유일한 문이었으니까.
한참을 두드리자, 그 안에서 역무원 옷을 입은 남자가 나왔다.
“무슨 일이십니까?”
“아저씨, 저 여기서 나가고 싶어요. 나갈래요. 어디로 가야되죠?”
“아 거참. 여기 잘못 들어오셨구만? 그런 사람 종종 있지. 저기로 가보셔. 밖으로 나갈 수 있는 열차가 올거야. 두 번 실수하면 안돼. 알았지?”
역무원 옷을 입은 남자는 내가 방금 전에 필사적으로 도망쳐 나온, 그 [갈아타는 곳] 바로 옆을 손으로 가리키며 말했다.
그곳에는 반대로 올라가는 계단이 있었다.
나는 왜 진작 저 계단을 발견하지 못했는지 내 자신을 자책하며, 힘겹게 계단을 올라갔다.
그곳에는 나말고도 길을 잘못들어온 또 다른 사람들이 있었다.
아까 지하에서 본 사람들과는 다르게 생기가 돌고 있는 사람들이.
나는 공포에 질려 벌벌 떨고 있는 사람들 사이에 섞여들었다.
그러자 왠지 나혼자가 아니라는 생각에 조금 마음이 놓이기 시작했다.
잠시 후 열차가 들어오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러나 고개를 들어보니 플랫폼에 들어 온 열차는 평범한 전동차가 아닌, 화물열차였다.
의문을 품을 새도 없이 열차가 완전히 정차하자 열차에서 군복을 입은 몇 명의 사람이 내리기 시작했고, 그 중 한명이 승객들을 보며 큰 소리로 외쳤다.
“어이, 거기 잘못 들어온 사람들. 돌아갈거죠? 분명히 말씀 드리는데 돌아갈 수 있는 열차는 이거 하나 뿐입니다. 타고 싶으면 타고 타기 싫으면 마쇼. 별로 타고 싶진 않겠지만.”
군복 입은 사람의 말이 끝나자, 화물 열차의 화물칸은 일제히 열리기 시작했다.
군복을 입은 사람들은 우리에게 화물칸에 타라는 듯 손을 까딱였지만, 막상 타려고 발을 내딛자 나는 도저히 열차 안에 들어갈 수 없었다.
그 곳에는 시체가 산더미처럼 쌓여있었기 때문이다.
마치 저승에서 혼을 빼낸 뒤 이승으로 시체를 돌려보내주는 열차처럼.
어떤 사람들은 반드시 살아야한다고 시체들 사이에 몸을 구겨넣었지만, 나는 도저히 그러질 못했다.
결국 열차는 떠나버렸고, 더 이상 밖으로 나갈 방법은 없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여기 계속 눌러 앉아 있을수만은 없는 일이었다.
이런 곳에서 죽을 수는 없다.
나는 필사적으로 생각했다. 그리고 마음을 굳게 먹고 선로로 뛰어내렸다.
이 상황에서 내가 할 수 있는 방법이라고는, 열차가 간 방향으로 철도를 따라 걷는 것 밖엔 없었다.
나는 사라진 열차의 뒤를 쫓아 하염엾이 걷고, 또 걸었다.
어두운 찻길은 한치 앞도 보이질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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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을 떴다.
컴컴한 어둠 때문에 앞이 잘 보이지 않는다.
설마 내가 아직도 찻길을 걷고 있는 것인가? 걷다가 지쳐 쓰러지기라도 한 것인가?
아니, 내 몸 위에 고스란히 덮혀진 이불의 감촉이 느껴지는 걸 보면 그건 확실히 아니다.
정말 다행이다. 아무래도 모든게 꿈이었던 것 같다.
나는 손을 더듬거려 자기전에 아무렇게나 내팽겨쳐둔 핸드폰을 찾았다.
핸드폰의 홀드버튼을 누르니, 갑작스러운 밝은 빛에 깜짝 놀라 미간이 찌푸려졌다.
나는 눈을 아주 가늘게 뜨고 핸드폰 화면을 바라보았다.
[AM 3:08 11.11 Tue.]
아 뭐야. 아직 3시밖에 안됐네.
핸드폰을 한쪽에 던져놓고 다시 누워 잠을 청한다.
그런데 참 찜찜한 꿈이네.
곱씹을수록 끔찍하고, 잊으려해도 잊혀지지 않는 꿈이다.
나는 억지로 다른 생각을 하려고 노력하며 눈을 감았다.
그런데 그 때, 문득 죽은 친구의 말이 떠올랐다.
"생일 보내고 다시 와."
나는 도저히 다시 잠을 잘 수가 없었다.
내 생일은 11월 25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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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꾼 꿈은 아니고 며칠전에 꾼 꿈인데, 자꾸 찝찝하게 떠오르길래 한번 올려봅니다.
그냥 무서운 꿈 꾼.SSul 이런식으로 올리려 했는데 공게에선 꿈 얘기 하는 걸 별로 좋게 안보는 것 같아 소설 형식으로 써... 보려했으나
조금 쓰니까 금방 밥할 시간이네요ㅋㅋㅋㅋㅋㅋㅋ 그래서 대충 썼습니다.
차라리 썰로 풀걸 그랬나...
앞부분에 고양이는 왜 나왔는지 아직도 모르겠네요. 설마 고양이랑 제가 같이 총을 맞은 건 아니겠...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