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에 다닐 무렵 이야기다.
당시 나는 집에서 대학까지 먼 거리를 통학하며 다니고 있었다.
당연히 학교 근처에서 자취를 하는 친구 녀석 방에 뻔질나게 드나들며 묵곤 했다.
방 주인인 친구 녀석도 사람이 워낙 좋아서, 방은 더러웠지만 늘 즐거웠다.
다만 아래층 사는 사람이 영 별로였다.
한밤 중이 되면 꼭 혼잣말을 해대는 것이었다.
아래층에서 중얼거리는 게 위층까지 들릴 정도니, 꽤 큰 목소리일 것이다.
무슨 소리를 하는 건지는 도췌 알아 먹을 수가 없지만, 왠지 모르게 뭔가 불평을 하는 건지, 화가 난 듯 영 좋게는 들리지 않는 목소리였다.
하지만 우리도 가끔씩 방에 모여 술을 먹으며 시끄럽게 떠들 때도 있으니, 딱히 불평할 처지는 아니었다.
어느날, 평소처럼 그 녀석의 집에서 술을 퍼마시고 있는데, 한 친구가 여자친구랑 함께 나타났다.
당연히 우리는 신이 나서 술을 더 꺼냈지만, 여자 쪽이 영 분위기가 안 좋다.
남자친구 뒤에 숨는 것처럼 앉아서, [빨리 돌아가자.] 라는 말만 반복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 친구는 차를 타고 온 것이었기에, 차마 음주운전을 할 수는 없어서 그대로 하루 묵고 가게 되었다.
그렇게 다들 골아 떨어졌다.
새벽 4시 무렵이었을 것이다.
문득 눈이 떠져서 주변을 봤더니, 친구놈들은 다들 술에 뻗어 있었다.
아래층에서는 변함없이 중얼중얼 혼잣말이 들려온다.
나는 배가 좀 고파서, 술도 깰 겸 근처 편의점을 찾아 나섰다.
아파트 주차장을 지나가려는데, 친구의 차 안에 친구 여자친구가 타 있었다.
깨어 있는 것 같아 나는 창문을 똑똑 두드렸다.
[왜 이런 데 있어? 잠이 안 와?]
[...저런 곳에 어떻게 있으라는거야...]
[뭐, 남자 혼자 사는 방이니까 좀 더러워도 어쩔 수 없지 뭘.]
하지만 그녀는 [그게 아니야.] 라며 고개를 저었다.
그럼 그 혼잣말 소리가 거슬리는 걸까 싶었다.
[아, 그 소리 때문에 그래? 진짜 거슬리지, 그거.]
아무렇지도 않게 그렇게 말했는데, 정작 그녀는 몹시 놀란 모습이었다.
[너, 그 소리가 들리는거야? 그런데도 그 방에 있을 수 있다고?!]
솔직히 무슨 소리를 하는 건지 몰랐다.
그런데 문득 뒤를 돌아보니 친구네 방 아래층은 불이 꺼진 채였다.
어둠 속에서 혼잣말을 반복하는 아저씨라니...
상상해보니 등골이 오싹해졌다.
그 후, 그녀의 말이 마음에 걸려서, 나는 방 주인인 친구나 그 방에 놀러왔던 친구들에게 혼잣말에 관해 물어봤다.
하지만 아무도 그 혼잣말을 들었다는 사람이 없었다.
게다가 그 여자친구가 영감이 강한 사람이라는 이야기를 들어, 나는 왠지 무서워지기 시작했다.
그 무렵 집 근처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게 되서, 그 친구네 집에 가는 일도 적어졌다.
그렇게 몇개월이 지나 두려움도 옅어질 무렵, 나는 친구네 집에서 술을 마시게 되었다.
오랜만에 친구들과 함께 술을 마시니 무척 즐거워, 나는 과음하고 말았다.
새벽 3시를 넘어가니 정신이 가물가물해져, 슬슬 다들 잠을 청하기로 했다.
하지만 그 무렵 하던 아르바이트가 새벽 시간대였기에, 취기는 돌았지만 영 잠이 오질 않았다.
그리고 다시 혼잣말이 들려오기 시작했다.
누구 하나 일어날 기색은 없었다.
역시 귀신의 목소리인가 싶어 잔뜩 겁에 질려, 나는 천천히 눈을 떴다.
어두운 방 안에, 희뿌연 덩어리가 보였다.
숨을 죽인 채 자세히 보니, 50대 무렵의 아저씨가 정좌를 한 채 방 주인인 친구 곁에 앉아 있었다.
그리고 몸을 숙여 친구 귓가에 입을 대고, 경을 외듯 중얼중얼 혼잣말을 하고 있었다.
친구를 도와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무서워서 몸이 움직이지 않을 뿐더러, 시선을 돌릴 수조차 없었다.
그저 빨리 아침이 와 달라고 마음 속에서 비는 것 뿐이었다.
그리 긴 시간은 아니었으리라.
그 아저씨는 천천히 몸을 돌리더니, 나를 바라보았다.
큰일 났다는 생각에 황급히 눈을 감고 자는 척을 했지만, 귓가로 아저씨의 목소리는 들려 온다.
점차 소리가 커지면서, 뭐라고 말하는 건지 알아들을 수 있게 된다...
괴로워괴로워괴로워괴로워힘들어힘들어힘들어힘들어
아파아파아파아파미끄러워미끄러워미끄러워미끄러워
죽어죽어죽어죽어죽어추워추워추워추워
내가내가내가내가너도너도너도너도
말로 다 전하기 힘들지만, 그런 말을 계속 반복하고 있었다.
그냥 들어도 무서운 말인데, 억양도 없이 그저 계속 그 말만을 반복하고 있으니 까무러칠 정도로 무서웠다.
기를 쓰고 참고 있는데도, 신경이 쓰여 실눈을 떠보니, 아저씨는 바로 내 옆에 얼굴을 들이대고 있었다.
나는 그대로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편의점까지 도망친 후 거기서 밤을 샜다.
그리고 첫차를 타고 바로 집으로 돌아갔다.
나중에 친구들에게 의리 없이 혼자 도망쳤냐는 불평을 들었지만, 아침 일찍 아르바이트가 있던 걸 잊었다고 대충 얼버무렸다.
그 날 어둠 속에서 봤던 아저씨의 얼굴은 평생 잊지 못할 것이다.
마치 흑백 사진 같지만, 무척 선명해서 모공 하나하나가 보일 정도였다.
중얼중얼 말하고 있는데도 입은 꾹 닫힌 채인데, 눈이 없어서 그 자리에는 텅 빈 것처럼 검은 구멍만이 자리잡고 있었다.
그 방 주인 녀석한테는 혹시 이전에 그 아파트에서 무슨 사건이 있지 않았냐고 물어봤지만, 몇 년 전에 행방불명된 학생이 있다느니, 이상한 종교에 빠져 자퇴한 녀석이 있었다느니 하는 딱히 상관 없어보이는 일 뿐이었다.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별 일 아닌 이야기지만, 당시에는 정말 두려워서 오금이 저릴 정도였다.
친구는 그 후 졸업할 때까지 그 방에서 살았고, 지금은 다른 도시에서 일하고 있다.
나는 아직도 이 동네에 살지만, 친구네 방이 있던 아파트 쪽으로는 발도 들여놓지 않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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