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 밀양 집단성폭행 사건의 오해와 진실 그들은 왜 그랬을까?…좌절감과 빗나간 의리 경남 밀양 지역 고교생들의 중고생 집단 성폭행 사건의 사실관계가 상업 논리와 경쟁적 과잉보도, 일부 네티즌의 정체 불명의 유언비어 퍼나르기 등으로 심각하게 왜곡되고 있다. 이 때문에 피해자·가해자 및 이들의 가족들은 물론 가해자가 속한 학교와 지역이 언론에 대해 강한 불신을 드러내고 있다.
<한겨레>는 우리 사회에 충격을 준 이번 사건의 실체적 진실을 찾아 나섰다. 가해자들은 밀양연합 조직원인가? 이번 사건은 울산 남부경찰서가 지난달 울산의 여중생 자매 가족의 신고를 받고 비공개로수사를 하다 지난 7일 밀양 지역 3개 고교생 35명 등 10대 청소년 41명을 피시방 등에서 무더기로 연행하면서 밖으로 드러났다.
울산 남부경찰서는 이날 오후 밀양 지역 4개 고교생들이 결성한 폭력조직 ‘밀양연합’ 소속 고교생들이 5명의 여중고생을 1여년 동안 3~24명이 번갈아가며 10여차례 성폭행을 했다고 보도자료를 냈다.
이에 대부분의 언론들은 피의자·현지 주민 및 경찰 등을 통한 최소한의 확인을 하지 않고 경찰의 보도자료를 여과없이 그대로 보도했다. 다음날 가해 학생들은 모두 인면수심의 조폭으로 변신했다. 아직도 상당수 언론은 밀양연합 조직의 존재를 기정사실화하고 있다.
하지만 이들 가해자 대부분은 밀양연합이란 말도 들어보지 못했다고 항변하고 있다. 지난 7일 ㄱ군은 경찰에서 “친한 친구들과 자주 어울려는 다녔어도 어떤 조직도 만든 적이 없었다”며 손사래를 쳤다.
ㅂ군도 “몸에 장난삼아 새긴 조그만 문신을 보고 담당형사가 ‘밀양연합 아느냐’고 물었다”며 “잘못은 했지만 등에 호랑이 문신을 한 진짜 폭력배와 같이 취급당하는 것 같아 기분이 이상했다”고 말했다.
10년 이상 밀양에서 교편을 잡고 있는 ㅂ씨는 “고작 인구가 11만명인 밀양에서 지역 고교 4곳을 아우르는 범죄조직이 있다면 알 만한 사람은 다 알았을 것”이라며 “학생들이 분명 잘못은 했지만 언론이 마녀사냥식 보도로 학생들을 조폭으로 몰고 있다”고 비난했다.
가해 학생을 한 때 지도했다는 ㅈ씨는 “학생들이 조폭으로 몰리면서 교사들은 물론 1, 2학년 학생들까지 풀이 죽어 수업 분위기가 말이 아니다”며 “학교 안에 폭력 동아리가 있다면 가만 놔둘 학교가 어디 있겠느냐”고 목청을 높였다.
경찰관계자도 “일부 몇몇 학생이 폭력조직과 연루됐을 가능성은 있으나 가해 학생들이 밀양 지역 고교들을 묶은 밀양연합 조직원이란 증거는 아직 없으며 가능성이 낮은 것으로 본다”고 실토했다.
가해자는 41명 뿐이다? 오히려 언론들은 경찰의 보도자료에서 중요한 사실 하나를 빠트렸다. 경찰은 “ㅂ(18)군 등 17명에 대해선 구속영장을 신청하고 ㅇ(18)군 등 24명은 불구속 입건했으며 용의자 75명도 조사하고있다”고 밝혔다. 때문에 앞으로 조사결과에 따라선 성폭행 가담자가 116명까지 불어날 수도있다. 하지만 대부분의 언론은 41명만 보도했고 경찰이 75명에 대해 제대로 조사하고 있는지에 대해선 침묵하고 있다.
실제로 경찰은 “붙잡힌 일부 가해자에게서 울산 여중고생 3명 외에도 창원의 여고생 2명을 집단 성폭행했다는 진술을 받아냈다”고 하면서도 “창원의 여고생 2명의 신원을 알 수 없다”며 애매한 말만 되풀이하고 있다. 또 용의자 75명에 대해 조사를 하고 있는지, 이들 가운데 얼마나 집단 성폭행에 가담했는지에 대해서는 일절 함구하고 있다.
한 경찰청 출입기자는 “성폭행한 가해 남학생 휴대전화 통화내역과 인터넷 아이디를 추적하면 여고생들의 연락처도 바로 알 수 있는데 며칠이 지나도록 신원을 파악하지 못한다는 건 납득이 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한 지역 일간지 기자는 “남부서에 출입하는 후배기자가 경남·울산교육감이 이번 사태에 대해 유감을 표명하려 울산경찰청과 남부경찰서를 방문한 8일 강력반 형사들이 추가 검거를 위해 밀양터널까지 갔다가 돌아오라는 연락을 받고선 투덜대는 걸 옆에서 들었다고 연락해 왔었다”고 말했다.
그는 “경찰은 이날 출동한 사실이 없다고 부인했지만 가담자가 더 늘면 수능부정행위 파문에 기름을 붙는 격이어서 이날 교육감들이 수사 확대를 하지 말아달라고 협조를 요청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경찰 관계자도 “성폭행을 하지 않아도 망을 보거나 여관을 잡아주는 보조역할을 한 사람이 더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며 “그런 애들까지 다 잡아들이면 너무 하지 않느냐는 동정론이 많다”고 말했다.
빗나간 의리 그러면 이들 가해 학생들이 어떻게 범죄단체 뺨치는 집단 성폭행을 저질렀을까?
경남도교육청이 경찰에 구속·불구속된 41명 명단을 받아 밀양여고를 제외한 밀양 지역 남고 및 남여공학 7개 학교에 통보했더니 밀양 지역 고교생은 모두 35명으로 이중 33명이 고3인 것으로 확인됐다. 이들이 속한 학교는 경찰의 발표와 달리 4개 학교가 아니라 3개 학교로 ㄱ고(가명) 15명, ㄴ고(가명) 14명, ㄷ고(가명)가 6명이었다.
이 가운데 ㄱ고는 실업계로 3학년 학생들 대부분이 올해 9월부터 창원, 김해, 구미 등지의 중소기업 공장에 현장실습을 나가 내년 2월 졸업 때 돌아올 예정이다. 이번 범행에 가담한 학생들도 창원 등지의 공장에 5~6명씩 같이 다닌 것으로 밝혀졌다.
ㄴ, ㄷ고는 인문계이나 가정 형편이 어렵거나 성적 부진으로 대학 진학이 어려운 학생들은 3학년 1학기부터 창원 ㅎ직업전문학교에 위탁교육을 보내 기능사 자격증 등을 취득하도록 하고 있다. 실제로 ㄴ고 14명 가운데 10여명과 ㄷ고 5명이 ㅎ직업전문학교 기숙사에서 생활하고 있다.
경남도교육청 관계자는 “이들이 객지에서 지도교사들의 통제를 전혀 받지 않고 날마다 수업을 마친 뒤 피시방과 유흥가 등을 몰려다니며 성인문화에 자연스레 접했을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한 가해학생은 “방과후 옷을 갈아입고 유흥가를 돌아다녀도 아무런 제지를 받지 않았다”며 “인터넷 동영상으로 집단 성폭행 장면 등 자극적인 포르노를 보지 않은 친구들이 거의 없다”고 실토했다.
ㄷ고 한 교사는 “대학 진학을 하지 못한다는 좌절감과 사회에 대한 반감을 갖고 있던 이들이 고향을 떠나 같은 공장과 직업전문학교에 다니면서 친밀감이 더 쌓였을 것”이라며 “친구를 위한다며 여중고생을 서로 소개하는 빗나간 의리가 집단 성폭행으로 나타난 것 같다”고 안타까워했다.
김옥수 울산생명의전화 부설 가정폭력상담소 소장은 “기성세대가 무분별한 성문화를 방치하고 퍼트린 대가”라며 “여자들이 강하게 반발하지 않으면 괜찮다고 생각하는 비뚤어진 성의식을 바로잡는 체계적인 성교육이 되지 않으면 이런 사건은 다시 생길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부모 ‘백’으로 구속 면했다? 경찰이 애초 구속영장을 3명만 신청하면서 항간에는 가해 학생 부모들이 검·경찰 간부, 의사, 변호사 등 사회지도층과 지역 유지여서 나머지 가해자 38명이 구속을 면했다는 주장이 급속도로 퍼졌다.
하지만 현지 교사들은 밀양의 교육 여건을 너무 모르는 데서 나오는 억측이라고 한 목소리를 내고 있다. ㅇ씨는 “밀양 지역의 교육여건이 열악해 유력 집안 자제는 경남 ㄱ고 등 비평준화 지역 명문고와 부산 자립형 사립고에 유학을 보내 지역 일부 단체들이 우수한 인재를 외지에 보내지 말자고 캠페인을 벌인 적도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번에 연루된 학생 대부분이 어릴 때 부모가 이혼을 하거나 생계곤란으로 편부·편모 상태”라며 “오히려 이들은 정상적인 가정 구성과 따뜻한 가정에 목말라 있다”고덧붙였다.
경찰 관계자는 “유력 집안 자제는 없는 것으로 파악됐다”며 “구속자가 적은 이유는 이들이 고교생들인데다 가담 정도가 차이가 있고 망을 보는 등 단순 가담자도 다수 있었기 때문”이라고 해명했다. 경찰은 10일 추가로 14명의 구속영장을 신청했다.
강미화 울산대 교수(사회학)는 “성폭행은 살인은 아니나 영혼의 살인인데도 우리나라의 성범죄에 대한 처벌 정도가 다른 나라에 견줘 낮은 것이 문제”라며 “이번 사건도 구조적인문제는 틀림없으나 개인적 책임을 면하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모범생이 대거 포함됐다? 41명 가운데 반장 등 모범생들이 얼마나 포함됐을까? 이에 대해 해당 학교 교사들은 학교마다 학생간부 선발 방법이 달라 간부가 모두 모범생이라는 평가를 내릴 수 없다고 주장하고 있다.
실제로 인문계인 ㄴ고는 전교 회장은 상위권 성적을 유지해야 학생회장 선거 출마 자격이 있고 반장은 직선으로 뽑으나 성적이 기준에 미달해도 교장의 동의를 얻어 임명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이들 두 학교에 소속된 가해 학생 20명 가운데는 반장 등 학생 간부가 한명도 없었다.
실업계인 ㄱ고는 성적에 제한을 두지 않고 전교 회장과 반장을 학생 직선으로 뽑고 있다.ㄱ고 교사는 “창원의 한 중소기업체에 실습을 나간 전교 회장이 연루된 것으로 파악됐다”며 “하지만 대학진학을 목적으로 두지 않은 실업계 전교 회장이 반드시 모범생이라고할 수는 없지 않느냐”고 말했다.
왜 신고가 늦었나? 경찰은 집단 성폭행을 당한 피해자는 모두 5명으로 여중생이 2명이고 여고생이 3명이라고 밝혔다. 이들 가운데 울산의 한 여중생은 자신 때문에 자신의 동생과 사촌언니까지 집단 성폭행을 당했는데도 신고를 하지 못했다. 왜일까? 경찰에서 그녀는 가해 남학생들이 동영상을 찍은 뒤 요구에 응하지 않으면 인터넷에 유포시키고 학교 등에도 알리겠다고 협박을 해 신고하지 못했다고 진술했다.
가정폭력 상담소 관계자는 “동영상 협박이 신고를 하지 못한 근본 원인이지만 자녀들이 자신의 고민을 부모에게 빨리 털어놓지 못한 가정 환경도 문제가 됐을 수도 있다”며 “부모들이 자녀들과 대화를 많이 하는 노력이 필요한 것 같다”고 말했다.
울산/<한겨레> 사회부 김광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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