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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사회복지를 전공하며 여성복지를 배울 때였다. 여성운동의 대부였고 여성의 전화까지
만드셨던 (여)교수님이, 남자는 나 혼자 밖에 없고 나머지 30명이 다 여자인 우리 수업시간에
들어와서 대뜸 하시는 말.
"강간 당했으면 그냥 따뜻한 물로 씻으면 돼. 그게 뭐~"라고 투덜대셨다.
이 말이 남자의 강간을 별것 아닌 것으로 여겨 면죄부로 주려는 얘기였을까?
아니다. 전형적인 가부장제 전통 사회에서 필요 이상의 '정조관념'에 매달려서 스스로를 절망
으로 몰고 가는 여성들에 대한 어퍼컷 펀치였다. 교수님은 평생을 여성운동에 매진해 오시던
끝에 여성해방의 실질적인 실마리를 줄 수 있는 고리를 그렇게 발견해서 제자들에게 그렇게
툭툭 던지신 것이었다.
그런면에서 나는 그 정 반대의 길을 가고 있는 이들의 모습에 우려를 금하지 않을 수 없어 예
전부터 몇 차례 거론 한 바 있다. 물론 여성폭력, 강간은 정말로 큰 죄이고, 이는 처벌받아야
마땅하다. 하지만 과연 그런 사건으로 마치 세상이 무너질 것 같이 떠벌리면서 모든 여성들에
게 극한의 공포감과 절망감을 확대시키는 것이 과연 여성들을 위한 것일까?
내가 보기에 그러한 목소리를 크게 외치는 이들 일수록 남녀를 가리지 않고 ‘가부장제적인 정
조관념’을 맹신하는 것으로 보인다. 그들은 이러한 여성 폭력 사건이 발생하는 것을 가부장제
사회의 특성으로 규정하며 이에 맹공을 퍼붓는다. 물론 정확한 진단이다 가부장제 사회의 특
성 때문에 이러한 사건이 외국보다 훨씬 더 많이 발생한다. 하지만 실은 그런 얘기를 하는 이
들 조차 가부장제적인 정조관념을 맹신하는 사람 중의 하나일 가능성이 높다.
일 예로 외국에서도 그런 성폭행 사건이 자주 발생한다. 그런데 성폭행을 당한 여성이 1인 시
위 하면서 성폭행 집단들을 규탄하는 언론 기사 등이 가끔 눈에 띈다는 것이다. 나는 그 모습
에 상당히 놀랐다. 이는 그야 말로 여권신장을 위한 최고의 모습이라고 여겨지는데, 외국에서
그것이 가능할 수 있었던 것은 ‘성폭행’ 사건에 아시아계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정조관념 같
은 것이 없는 결과였다. ‘내가 내 몸 도둑질 당해서 당당히 나서서 피해를 회복하겠다.’는 것
이다. 이러한 모습은 (우리 눈에는 낯설지만)지극히 상식적인 처사인 것이다. 그렇다보니 외국
선진국에서는 이러한 성폭행의 문제가 보다 합리적이고 구체적인 공론의 장에서 논의 되면서
해결의 기미가 보이는 것이다.
반면 한국에서는 이런 사건이 빚어지면 무슨 화산이 폭발하고, 세계가 무너지는 것처럼 난리
가 난다. ‘강간당하느니 죽어야 한다.’ 정서마저 아직 머릿속에 남아 있는 상황에서 ‘죽음보다
더한 일’을 겪었는데, 당연히 세계가 무너진 반응이 나오지 않겠는가? 특히나 이러한 정서가
과해, 증오와 분노가 무지막지하게 누적된 ‘목소리 큰 이들’이 앞장서서 남성 일반을 잠재적
가해자로까지 다루며 노골적인 남성 혐오의 발언을 퍼트려 남녀과의 대결의 장까지 만드는 희
한한 분위기까지 만들어 낸다. 합리적이고 구체적인 공론의 장은 커녕 엉뚱하게 남녀 대결의
장이 세워지다보니 문제는 해결의 길은 더더욱 어려워지고 복잡하게 꼬인다.
하여 이에 대한 문제를 제기할라치면 벌떼같이 달라들어서 ‘너는 반여권주의자’라는 비난과
폄하, 욕을 서슴치 않는다. 그런데 그것은 앞서도 얘기했듯이 이들이 ‘가부장제 가치’를 맹신
한 때문이다. 여성을 노리개로 여겨서 성폭행 하는 것도 가부장제적 발상이지만 ‘아니 세상에
어떻게 성폭행을?!’이라면서 하늘이 꺼질 것 같은 절망과 상실에 시달리는 것 역시 가부장제
적 정조관념의 발상이라는 것이다.
이 뿐만 아니다. ‘여성이 길에서 남자에게 맞는다.’는 것. 이것이 그렇게 절망적으로 끔찍한
일인가?! 만약 ‘그렇다’고 얘기하는 순간. 당신은 남성으로터 폭행을 당한 여성이 더 이상 온
전히 세상을 살지 못하도록 불안과 공포를 심어주는 역할을 하는 것이다. 이 세상에 해결될
가능성이 없는 푸념뿐인 절망을 하나 더 더하는 사람이 되는 것이다. 그리고 그러한 발상은 '
여성은 보호받아야 하는 한송이 갸날픈 꽃'이라는 가부장적가치로 부터 나오는 것은 두말할
나위 없다. 그렇게 갸냘푼 꽃이 짖밟히는 것에 참을 수 없는 고통을 느끼는 것이다. 특히나
여기에 한국인 특유의 동정의 정서가 끼어들어 당한 사람을 더욱 비참하게 만들어 낸다.
생각해 보라. 여러분의 딸이 길바닥에서 어떤 남자에게 맞고 왔을 때, 그 후로 세상에 대한
신뢰를 잃고 절망에 가득차서 방구석에 처박힌 삶을 원하는가? 아니면 씩씩 거리면서 “아빠
나 오늘부터 권투 배울래”라고 나서는 딸이기를 원하는가? 그것은 지금 당신이 딸에게 어떤
세상을 제공하느냐에 따라 달려 있다. 하지만 작극의 한국 사회에서는 다음 세대의 대부분의
딸들이 전자의 모습을 취할 것이 뻔하다.(이 얘기에 또 ‘여성이 남자에게 맞는 것이 아무렇지
도 않냐?는 정신 나간 비난을 하는 사람이 또 있으리라.)
(여권 신장론자들 한테는 맞아죽을 말이겠지만) 나는 이런 문제가 하루 40명씩의 자살자들 문
제보다는 심각한 문제라고 여기지 않는다. 그런데 하루 40명씩 매일 빠지지 않고 그렇게 사람
들이 자살해 나가는 문제에 대해서는 그렇게 ‘화산 폭발처럼’ 들고 일어나는 그 어떤 분기를
찾아 볼 수 없다. 그런데, 왜 유독 ‘여성폭력’문제에 대해서는 그렇게 화산 폭발하듯 하는 분
기가 표출 되는 것일까? 그것은 누차 얘기하듯 아직도 팽배한 가부장제 정서에서 그러한 ‘정
조관념’을 잃는다는 것은 세상 모든 것을 잃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 반응의 과격함은 이들이
가진 가치의 강렬함을 증거하는 것이다.
내가 만약 나중에 내 딸이 그런 성폭행 사건을 당했다면 우선 담대히 대처하리라 마음 다짐을
할 것이다. 하지만 여전히 내 속에 들어있는 가부장제적 관념들 “우리 딸이... 우리 딸이 강간
을 당하다니...”라는 절망감은 나를 뒤 흔들 것이다. 하지만 내 절망감을 내 딸에게 보이는 순
간 내 딸 역시 똑같은 가부장제적 정조관념의 포로가 될 것이기에 최대한 억제하고 평이하게
얘기할 것이다. “어떤 놈이야. 우선 병원 가서 정자 채취하자...”
병원에서 돌아오며 시무룩해진 딸에게 나는 오래전 교수님에게 들었던 얘기를 전할 것이다. "
뭐? 강간 당했으면 그냥 따뜻한 물로 씻으면 돼. 그게 뭐~" 그리고 딸과 함께 강간범을 잡으
러 가자고 잡아 끌 것이다. 도둑맞은 집주인이 도둑 잡으러 나서듯이! 사기당한 사람이 실마
리를 잡아 사기꾼을 추적하듯이! 주권강탈당한 국민들이 혁명을 꾀하듯이! 딸과 함께 당당히
구시대의 잔재를 끊어내기 위해 나설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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