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오키나와에서 옻칠을 공부하고 있는 유학생입니다.
시사에 맞을거 같아서 글을 써봅니다. 저는 이번 주말에 아카섬 아리랑평화제라는 행사를 다녀왔습니다. 아카섬은 오키나와의 부속섬이구요.
오키나와는 일본 최남단의 부속섬과 본섬으로 이루어진 일본의 현입니다. 저는 여기서 옻칠공예를 공부하고 있습니다.
유학중 알게된 일본인 친구에게 아카섬(아카지마)이라는 곳에서 '아카섬아리랑 평화제'라는 조선인위안부와 조선인부들 오키나와주민 피해자들을 위한 위령제를 하는
행사라고 해서 가게 되었습니다. 주체는 일본의 魂魄の会(혼백회)라는 단체에서 했습니다. 정치적인 입장보다는 인간의 도리로서 아타까운 사건의 피해자들을 위로하는 의미에서
한다고 합니다. 그래서 한국사람들 많이 늘었으면 하지만, 이슈화되는건 싫다고 하시네요 . 너무 사람이 많아지면 이상한 정치적으로 이용하는 사람들 많이 온다면서....
이렇게 먼곳까지 조선인 위안부와 조선인 인부들이 일본군들의 의해 끌려 왔습니다. 그림에서 나온것 처럼 조선인위안부가 아카섬까지 온 루트입니다. 아카섬은 오키나와 나하시에서 배를 타고 1시간이상 가야되는 작은 섬입니다.
아카섬은 주로 어업과 관광업이 주요 산업인 섬입니다. 바다는 아름다웠어요. 하지만 그당시 조선인들은 그럴 여유조차 없었을텐데, 마음이 썩 편하지 않네요.
아카섬 주민인 80대 할머니신데요 이분이 증언을 많이 해주신 덕분에 그때 당시 조선인위안부의 상황에 대해 많이알게 되었다고 합니다. 많은 나이드신 분들은 기억을 많이 잊어버리는데 이분은 머리가 좋으셔서 많이 기억하고 계신다고 ... 그때 당시
조선인 위안부는 민간인을 만날수 없었는데 , 이 할머니는 초등학생4학년쯤 되었고, 키도 작고 어리니까 일본군이 별다른 제재를 하지 않아서 조선인위안부언니들을 줄곧 만났다고 합니다. 그때 조선인위안부언니가 아리랑을 가르쳐 주었는데 너무 잘한다며 칭찬받았다고 하네요. 실제로 아리랑을 직접 불러주셨는데 너무 잘하셔서 깜짝놀랐습니다. 발음과 음이 정확하셨어요 . 살짝 울컥하더라구요. 아까 그할머님 하고 다른 할머님은 90대이신데요 조선인 위안부들에게 식사를 만들어 주셨데요, 아카섬 주변에 섬 3개정도가 더 있는데 그곳 통틀어서 당시시대 상을 아시는 사람은 아마 두분만 계실거 같다고 합니다. 뒤에 계신분들은 제주도 에서 오신 무속인들과 제주대학선생님, 전통공연하시는 분들이에요. 올려도 되는지 모르겠지만, 할머님들 나온 사진이 이것밖에 없네요.
여기는 조선인 위안부가 쉬었던 집입니다. 지금은 사람이 살고있어서 옛모습은 아니지만, 위안부 전부는 아니고 3명가량 같이 지냈다고 하네요.
이 길은 아리랑 고개라고 불리우는 곳입니다. 이 길은 예전에 민간인이 다닐수 없는 길이라 사람들이 별로 없어서 조선인위안부들이 자주 아리랑을 불렀다고 해서 마을사람들이 아리랑 고개라고 불리우고 있다고 합니다. 지금은 시멘트길이지만 얼마전까지만 해도 흙길이라 비가 오면 위에서 다 쓸려내려오는 안좋은 길이었다고 하네요 .
위령제의 모습입니다. 조선인위안부 ,인부들 아카섬주민들 피해자들 모두를 위한 위령제였습니다.위령제는 제주도에서 오신 무속인 들이 하셨어요. 무속인이 마지막에 일본인이고 경상도 사람도 (피해자들이 경상도에서왔음)아니고 관계가 있는 사람들도 아닌데 이렇게 도와주셔서 일본의 혼백회 회원들에게 감사하다는 말로 위령제는 무사히 마쳤습니다. 무속인말로는 위령제하면서 지역신들이랑 피해자 혼령(?)이 많이 기뻐했다고 하네요. 또, 아카섬은 관광업이 주요산업이라 정치적인 행사하는걸 꺼리는 주민도 있습니다만, 아카섬 주민들이 이런 행사도 반대안하고 환영해주고 친절한 모습을 보면서 많이 감사했습니다.
시간은 많이 흘렀지만, 아직 잊지 않으려는 노력을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단순 정치적인 이슈몰이를 하기위해 하는것이 아닌 정말 가슴이 아파서 인간적인 도리로 이런 행사를 하는 곳도 있습니다. 이런마음을 갖고 있다면 정말 이들이 원하는 평화에 진정 다가갈수 있을거 같습니다.
참고로 혼백회 회장인 나카타씨는 제주4.3 한라산회 라는 단체의 회장이시기도 합니다. 이것도 일본단체에요.
하고싶은 말은 많지만, 말을 잘 못하고 자료도 부족해서 여기서 마침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