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선 후에도 총성이 그치지 않는다. SNS에서, 인터넷 댓글 창에서, 여의도 술자리에서 총성은 점점 크게 들린다.
4·13 총선이 야권의 동반 승리로 막을 내렸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야권 내부의 증오와 적대는 더욱 깊어가고 있다.
국민의당 지지자는 약속대로 호남 패배의 책임을 지고 문재인 전 대표가 정계 은퇴해야 한다고 공격하고,
더민주 지지자는 안철수 대표가 대통령이 되느니 박근혜 대통령이 연임하는 게 낫다고 치받는다.
급기야 국민의당 안철수·천정배 공동대표를 향해 5월23일 노무현 전 대통령 7주기 행사에 오지 말라고 주장하는 더민주 지지자까지 나타났다.
국민의당이 친노 세력을 패권주의자로 몰아갔다는 이유에서다.
익숙한 싸움이니 그냥 넘어갈까? 하지만 최근 양상은 좀 달라졌다. 총선 전 야권 내전의 핵심 주체가 문재인과 안철수 지지자들이었다면
20대 총선을 거치면서 갈등 전선이 더민주 내부에서도 자리를 잡는 모양새다.
굳이 도식화하자면 또다시 문재인 대 반(反)문재인 구도다.
이 갈등 구도에서 반문재인 진영의 한 축으로 김종인·이종걸·박영선·이철희 같은 정치인이 등장한다.
이상한 일이다. 더민주 열혈 지지자에게 눈엣가시 같았던 안철수 의원과 호남 지역 현역 의원들이 대거 탈당했음에도 갈등은 수그러들지 않는다.
지난 2월 정동영 전 장관이 결국 국민의당에 합류하자 문재인 전 대표가 “잘 됐습니다. 구도가 간명해졌습니다”라고 말한 것과는 다르다.
문 전 대표의 발언은 비단 선거 구도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었다. 반노 진영의 선봉장들이 사라졌음에도 친노 대 비노 구도는 되살아났다.
갈등을 촉발한 쪽이 누구인가는 논란이 분분하지만, 확실한 것은 이 갈등의 한가운데 더민주 지지자, 특히 문재인 열혈 지지자들이 있다는 점이다.
이들은 누가 뭐래도 최대의 정치 고관여 집단이다. 진보 성향이 뚜렷하면서 정치권 사정에 밝다. 여론전에도 능하다.
일부 진보 성향 팟캐스트에서 쟁점에 불을 붙이면 이들이 SNS 공간 등에서 이를 확대 재생산하는 방식으로 이슈를 이끌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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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류에 속하지 않은 정치인의 고민은 깊어질 수밖에 없다. 이들의 선택지는 거칠게 정리하면 두 가지다.
주류를 따르거나, 당을 박차고 나오거나. 전자를 택한다면 주류의 주장에 타협하거나 침묵하게 된다.
그럴 경우 당의 외형은 축소될 가능성이 크다. ‘표의 확장력’이 사라지는 것이다. 후자의 가능성도 아주 없지는 않다.
사석에서 “절이 싫으면 중이 떠나야지”라고 말하는 정치인도 하나둘 나오고 있다.
이는 역설적인 상황이다. 문재인 전 대표는 강력한 지지자에게 둘러싸인 채 서서히 고립되는 상황을 맞을 수도 있다.
안철수를 잃고, 호남을 잃고, 당내 비주류마저 등을 돌린 뒤에도 문 전 대표에게 대권의 길이 열릴까.
손혜원 홍보위원장의 말처럼 친노는 ‘아프고 슬픈 사람’들인지도 모른다. 노 전 대통령을 지키지 못한 상처를 지닌 이들끼리 뭉치면서
자신도 모르게 특유의 배타성을 길러왔는지도 모른다. 친노 패권주의라는 정치 공격을 오랜 시간 견뎌내면서 배타성은 더욱 견고해졌을 것이다.
그럼에도 분명한 것은 이들이 지금 야권의 최대 정파이자, 제1당의 ‘주류’라는 점이다.
역대 정치사에서 보듯 포용력을 잃은 주류는 생명력이 길지 않았다. 지지자들끼리만 열광하는 뺄셈의 정치로는 10년 만의 정권 탈환도 무망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