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 저희집은 빌라였는데, 반지하 , 1층, 2층, 3층의 구조로 각 층에 두 가구씩 있었어요. 반지하의 계단 밑에는 좁은 공간이 있어서 입주민들의 자전거같은 걸 보관하는 곳이 있었구요. 당시 저는 사교성이 굉장히 좋았기 때문에 반지하의 언니, 오빠, 1층의 할머니와 슈퍼 아줌마, 2층의 동갑내기 친구. 그리고 저희 집도 2층이었고 3층은 주인집이었어요.
그리고 문제의 그 날은 기말고사가 모두 끝난 7월이었어요. 시험도 끝났겠다 친한 친구와 게임약속을 잡아놓고 점심을 먹으러 집에 갔다가 무척이나 들떠서 막 집을 나서려고 했던 순간, 현관문 밖 계단에서 뭔가 이상한 소리가 들리는겁니다. 뭔가 바닥에 천이 끌리는 소리 같기도 하고, 연장을 가는 것마냥 스윽, 스윽 하는 소리. 그때까지 친구랑 전화를 하고 있다가 대충 끊어버리고는 긴장하기 시작했었죠. 당시 저는 귀가 굉장히 밝았어요. 지금은 사오정 소리를 듣지만. 뭔가 이상함을 느낀 저는 신발까지 다 신고 문고리를 잡았다가 귀를 현관에 바짝 대고 쥐죽은듯이 있었어요. 그리고 일부러 신발 신는 소리같은걸 크게 내면서 조용히 보조 문고리까지 걸어잠궜어요. 그 문열면 살짝 열리게 해주는거 말이에요. 그리고 정말 그때는 무슨 생각이었는지 공포심도 없이 그 현관에 쪼그려서 귀를 바짝 대고 있었습니다. 대낮이라지만 집에는 혼자 있고, 그 시간대는 빌라에도 사람들이 거의 다 나가있는 시간인데다 저희집은 인터폰도, 문에 달려있는 그 작은 구멍같은것도 없는 집이었거든요.
그리고 그날 얼마 전에 주인집 언니가 한밤중에 야근하고 돌아오다가 저희집 문을 두드려서 나간적이 있었는데, 굉장히 다급한 목소리로 제 이름을 부르며 언니야-하길래 문을 열어줬더니 현관문을 쾅 닫고 거의 울더라구요. 버스정류장에서부터 어떤 남자가 쫓아오더니 빌라 계단까지 쫓아왔다고. 같이 들어오는걸 보고 너무 무서워서 저희집 문을 두드린거라고. 그소리를 듣고 아빠랑 오빠가 나가봤었지만 찾지 못했었어요.
그런 일도 있었고 해서 겁에 잔뜩 질린 저는 친구한테는 잠깐 일이 있어서 못갈지도 모르겠다고 연락부터 해놓고 다시 문 앞에서 잠복? 하고 있었습니다. 한참을 스윽 스윽 하는 소리가 들렸는데 어느 순간 딱 깨달았어요. 그 소리가 무슨 소리였고, 인기척은 뭐였는지. 사람이 돌로 된 계단 통로에서 돌아다니면서 발을 끄는 소리였던거에요. 직감적으로 아 이건 사람이고, 필히 좋은 의도로 우리 집 앞에서 이러고 있는 건 아니구나 싶었습니다. 그래서 정말 그땐 무슨 생각으로 그랬는지 모르겠는데 저는 냅다 소리를 지르기 시작했습니다.
거기 있는 사람! 거기 있는거 다 아니까 무슨 용건인지 말하라고. 이런 말을 계속 소리쳤는데 당황했는지 소리는 멈추고 정적이 감돌더군요. 그래서 또 소리질렀는데, 계속 거기 그렇게 있으면 경찰에신고할거야! 나 당신 하나도 안 무서워! 대충 이렇게 말했었던 것 같습니다. 나 진짜 경찰에 신고할거야! 이러면서 거의 십분은 있었던 것 같네요.
그리고 드디어 발소리가 나기 시작했어요. 계단을 내려가는 '척' 하는 소리가. 계단이 아무리 울린다고 해도 바로 앞에서 나는 소리와 아래로 내려가면서 점점 줄어드는 소리는 확연한 차이가 있죠. 그걸 알고부터는 갑자기 무서워지기 시작했습니다. 근데 마음과는 다르게 저는 또 정말 패기있게 소리치기 시작했었어요. 아직도 거기 있는거 다 알아! 꺼져! 하고요. 그리고 좀 시간이 지난 뒤에 진짜로 내려가는 소리가 들렸어요. 하지만 저는 공포감과 긴장감때문에 이미 약속을 나가기는 글렀다 싶었고 당시 대학생이었고 근처 서점에서 알바를 하던 오빠한테 전화를 해서 거의 울면서 불렀었어요. 뭐라설명했었는지 기억도 안 나네요; 놀래서 오빠는 알바도 맡기고 뛰어왔었는데 전 이게 참 소름이었습니다. 오빠가 빌라 문을 딱 열고 들어오려하는데 반지하 계단 쪽에서 누가 올라오더랍니다. 그때 저희는 빌라 사람들이 서로 다 알고 있었고 친했는데, 그 남자는 처음 보는 사람이었다고 해요. 하지만 손님이겠거니 하고 별로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던 오빠는 제가 걱정되서 그냥 올라왔다고 합니다. 그리고 나중에 그 사람을 오빠가 또 볼 일이 생겼죠. 주인집 언니를 스토킹하던 그 남자가 같은 사람이었던 거에요. 이후로도 언니를 계속 따라다니다가 덜미가 잡혔고, 그날 저희 집을 언니네 집으로 오해해서 집에 들어가려고 노리고 있었던 겁니다.
지금까지 잊고 살았던 일이라 크게 신경쓰지 않았던 일인데, 요즘 택배강도라거나 하는 얘기를 들어보니까 새삼 그날이 위험했었구나, 하고 써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