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남 정치인들을 가만히 관찰해보면 어떤 경향성을 발견할 수 있다. 재선 이상이면서 민주당의 특정 계파와 대립하는 순간 곧바로 '호남 구태 토호'가 되는 것이 그것이다. 노무현이 추진한 자유무역협정(
FTA)에 반대한 천정배, 노무현 정부의 신자유주의를 회개한 정동영도 용서받을 길 없는 구태 정치인일 뿐이다. 물론 필자가 이들을 좋아한다는 얘기는 아니다.
지금 각광받는 민주당 호남 정치인들? 조심해라. 특정 계파에 고분고분하지 않으면 그 즉시 호남 토호들은 어쩔 수 없다며 격렬한 비난의 대상이 될 것이다. 그 스펙트럼의 가장 끝에는 거악(巨惡) 트리오인 박지원, 천정배, 정동영이 있고, 중간 즈음에는 송영길이나 정세균이 있다. 종로에서 오세훈을 꺾어 당권은 물론 대권 주자로까지 거론되는 정세균은 특히 위험하다. 한발만 삐끗해도 곧바로 형극의 길이 그의 앞에 놓일 것이다.
호남 토호란 결국 호남 정치인의 성장 자체를 가로막고, 말 잘 듣는 신인으로 항시 물갈이하는 체제를 만들기 위한 구실일 뿐이다. 그러면서 자기들은 지역구에서 4, 5선을 거듭하고, 대선에서 지고도 또 후보로 나서겠다고 한다. 몇 억씩 받아먹는 비리도 '진보 진영의 결벽증'을 한탄하며 끼리끼리 감싸준다. 부산-경남에서 당선된 정치인들은 '노무현 키드'라고 신성시하고, 이제는 충청 대통령이 나와야 한다는 말에는 고개를 끄덕이면서, 호남 정치인이 '호남'을 말하기만 해도 눈을 치켜뜬다.
왜 호남은 더민주를 버렸나?호남이 더민주를 버린 이유는 바로 이런 말도 안 되는 자가당착과 거짓 때문이다. 평소에는 호남 정치의 모든 측면들을 지역주의로 싸잡아 비난하면서, 선거 때가 되면 표를 요구하는 그 패악질을 더 이상 못 참겠다고 들고 일어난 거다. 이른바 '친노 패권주의 호남 홀대론'이란 이러한 비열한 작태를 일컫는 대중적 용어일 뿐이다.
노무현 정부에서 호남 사람들이 장관 몇 자리 한 게 중요한 게 아니다. 문제는 호남 정치의 정당성을 끊임없이 폄하하고 낙인을 찍어 도리어 영남 패권을 강화하고 호남에 대한 공격의 빌미를 주는 그 행태에 있다. 쉽게 말하자면, 진보 개혁의 외피를 쓴 반호남주의다. 이건 어떻게 보면 대놓고 나쁜 반호남주의보다 더 사악한 거다. 민주당에 몰표 주면 일베가 빨갱이, 그 표 받은 민주당이 지역주의라고 하고, 몰표를 안주면 민주당이 또 지역주의(?), 문베충이 콘크리트 붓겠다고 협박한다. 어떤 투표를 해도 무조건 욕을 먹는다. 이게 인간 세계에 있을 수 있는 일이냐?
호남 사람들의 노무현에 대한 감정? 결코 미워하지 않는다. 아직도 그의 죽음을 슬퍼한다. 노무현 조롱에 날을 새는 일베는 대구에 있고, 노무현 탄압한 이명박 정부는 영남 정권이었다. 외면하고 싶겠지만 냉정한 사실이다. 호남에서 말하는 친노 패권주의란 노무현 개인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김대중과 동교동계가 떠난 자리를 메운 노무현 정부의 운동권+진보+통추 집단의 호남 배제 정치를 말하는 거다.
물론 여기에는 '영남 후보론'을 외치는 교묘한 영남 패권주의도 포함된다. 김욱이 말한 '투항적 영남 패권주의'다. 문재인이 굳이 광주까지 와서 "고립"을 말하는 그 기상천외한 광경은 왜 연출되었을까? 신군부의 광주 학살, 그리고 3당 합당이 배태한 호남 고립의 구도를, 타파해야 할 모순이 아닌 활용해야 할 현실로 수용하는 패권적 심리가 무의식에 내재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우리 말 안 들으면 죽는 거 알지?'다. 이런 의식이 뼛속에 가득 차 있는 거다.
그래서 더민주가 수도권을 장악했으니 이제 국민의당과 호남은 고립된 거라는 망발을 일삼는 거다. 신군부가 광주 학살 벌이면서 내세운, 맞는 놈이 병신이라는 '고립' 논리를 더민주당이 받아서 쓰고 있다. 정작 그 인간들, 호남이 민주당 몰표 줄 때는 그 몰표 때문에 '영호남 지역구도'가 생겨 호남이 고립된다고 말했었다. 그러니 '문베충' 소리를 듣는 거다.
국민의당 뽑았다는 이유로 광주 학살이라는 인류사 차원의 '제노사이드'에 대한 부채감의 해방을 운운하는 지경에 이르면 인간에 대한 믿음마저 상실된다. 학살은 가해자 처단과 피해자 보상의 문제지, 멋대로 부채'감'을 가졌다가 마는 선택의 대상이 아니다. 그리고 국민의당이 무장 테러와 보복을 강령에 명시한 호남판 헤즈볼라당이라도 되냐? 자기네들이 적대시하는 '중도 보수' 정당 뽑았다고 '부채감 해방' 운운하는 게 할 짓이냐?
만약 이런 고립 협박에 굴복해 호남이 몰표를 줬다면? 선거 직후 며칠간은 "민주 성지"라고 찬양한 뒤 곧바로 다시 지역주의 타령하면서 "탈호남"을 외치고 "전라인민공화국"이라고 조롱을 퍼부었을 것이다. 그게 지난 30년간 있었던 일이다. 지금 보니까 눈치 없는 인사들은 이번 선거 덕분에 민주당이 '탈호남'해서 '전국 정당'이 될 수 있는 기회를 얻었다고 좋아하더라. 호남색이 빠지니 수도권에서 승리하고 영남 의석을 얻었다며 '희희낙락' 하더라. 정말 더럽게 눈치들도 없다. 아예 분간이 안 되는 거다. 그 얘기는 호남한테 몰표를 받고 난 뒤 하던 얘긴데 말이다.
선거 때만 호남 타령한 게 누구인가?그래서 결론은? 정말로 '지역 관념'을 머릿속에서 버리자는 거다. 진중권 교수는 필자에게 "호적론자"라고 하는데, 선거 기간 내내 호남에 지대한 관심을 보이며 민주당 뽑으라고 한 건 정작 진 교수 본인이었다. 뿐만 아니라 대한민국의 자칭 진보 개혁 진영 전체가 안철수 탈당 후 몇 달 동안 호남을 언급하며 민주당 뽑으라고 협박 및 읍소하더라.
누가 지역론자냐? 먼저 두들겨 패놓고는 호남이 호소하면 지역에 집착한다고 꾸짖는 거, 전형적인 일베 레토릭이다. 이렇게 자신들의 정치적 이익을 위해 호남 공격에 나서는 이들. 21세기 판 신군부에 다름 아닌 폭력적인 인종주의자들이다.
유권자들이 오히려 정치권보다 더 선제적으로 새로운 구도를 만들어주었는데, 진중권 같은 문화 지체자만 '지역에 집착'해 촌스러운 광경 연출하고 있다. 그러면서 논리가 딸리니 '클리엔텔리즘' 같은 특수한 개념을 끌고나온다. 그러지 마시라. 영남 패권, 시대 변화에 따라 자연스럽게 와해될 수 있다. 오히려 교묘한 방식으로 호남 차별 구도를 써먹는 진보 지식인과 민주당 지지자들이 영남 패권을 강화하는 데 일조하고 있다. 지금은 2016년이다. 대한민국 유권자들이 만들어준 여소야대 구도를 바탕으로 미래를 준비하는 정치를 해야 할 때다.
그리고 더민주는 호남표 받고 싶으면 표 줘도 욕하고 안 줘도 욕하는 자가당착부터 반성하라. 김종인 비례 공천 때문에 호남에서 졌다는 망상은 버리고, 일단 진중권 교수와 유시민 전 장관의 "전라인민공화국"과 "호남의 노무현 지지는 암 환자가 모르핀 주사 맞은 것"에 대한 논평부터 내놓아 봐라. 전체 맥락을 봐야한다는 '맥락 타령'은 금지다. 내가 둘 다 전문을 찬찬히 뜯어봤는데 호남 몰표는 망국적인 지역주의란 얘기 맞다. 그리고 이 두 사람, 이번 선거에서 호남한테 그 망국적 지역주의 몰표 내놓으라고 가장 열심히 목소리 높이더라.
마지막으로, 지금 영남 패권과 호남 차별 없다고 주장하는 진중권 교수. 그런데 선거 전에는 민주당이 참패하고 새누리당이 압승하면 호남이 고립되니 국민의당에 기웃거리지 말고 민주당에 올인하라고 했었다. 두 주장이 서로 모순된다는 거, 못 느끼나? 영남 패권도 없고 호남 차별도 없다면 호남이 무엇으로부터 고립된다는 말인가? 정말 왜 이러시나?
윤중대 호남 누리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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