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남북조시대의 양나라 무제는 불심이 뛰어나고 불사도 많이 하여 ‘불심천자’라는 호를 얻은 분입니다.
그는 중국 제일의 신승으로 전해지는 지공화상을 지극히 존중하여 귀의하였고, 달마대사와는 인연이맞지않아 헤어진 것으로도 유명합니다.
그런데 양무제가 스승으로 존경한 승려 중에 합두스님이라는 분이 계셨습니다. 어느 날 양무제는 자문을 구할 일이 있어 합두스님을 모셔오도록 하였습니다.
사신이 합두스님을 모시러 간 사이, 양무제는 다른 신하와 바둑을 두었습니다. 황제와 두는 바둑이라 하여 일부러 져 주면 아첨배라 하여 감점을 당하고, 소신껏 두는 신하에게는 칭찬과 함께 상을 내리는 양무제의 성품을 잘 아는 신하들이었으므로 자신의 실력을 다하여 승부를 가리게 마련이었습니다.
그런데 이날 따라 상대의 바둑실력이 만만치 않아 양무제는 열이 오를대로 올랐습니다. 한 판을 두고 두 판째 들어간 양무제는 자기 알이 자꾸만 죽게 되자 열이 올라 소리쳤습니다.
“에잇, 죽여라.” 자신의 알이 죽는 것이 아까웠으므로 화가 나서 “에잇, 죽여라!”하고 크게 외쳤던 것입니다.
그러나 양무제는 이 한 마디의 외침이 엄청난 결과를 안겨다 준 저주의 고함이 될 줄 미쳐 알지 못했습니다. 그 고함 소리로 인해 양무제 자신이 지극히 존경해 마지 않던 합두스님의 목숨이 끊어져야 했기 때문입니다.
합두스님을 모시고 온 사신이 문 밖에서 국궁배례하여, “폐하, 합두스님을 모셔왔습니다.”라고 아뢰자마자 대전에서 “에잇, 죽여라” 하는 진노한 양무제의 고함소리가 들려왔습니다. ‘ 합두스님께 어떤 잘못이 있을 리는 없고, 누구인가 모함을 했을 것임에 틀림없다.
폐하의 목소리가 저다지 진노한 터에 시간을 지체하여명을 거역하게 되면 나에게까지 무서운 벌이 내려질 것이다.” 생각이 여기에까지 미친 사신은 다시 진언할 엄두조차 내지 못한채 백배 사죄하면서 합두스님을 형장으로 데리고 갔습니다.
“스님, 대단히 죄송합니다. 무슨 영문인지는 알 수 없으나 스님을 모시고 왔다는 말씀을 사뢰오니 크게 진노하시면서 ‘ 죽여라’고 하셨습니다. 어찌해야 하옵니까.?"
“걱정 말고 어서 가세. 어느 명이라고 거역하시겠는가.” 합두스님은 허허 웃으면서 단두대로 스스로 올라가 가부좌를 하고 앉으신 다음 게송을 읊었습니다.
사대는 본래가 공이요 오온은 본래의 나가 아닐세 머리를 들어 봄바람에 나아가니 칼로 봄바람을 베는 것 같도다. ‘지.수.화.풍’의 4대 구성요소로 이루어진 육신은 본래 공한 것이요, 생명체를 구성하고 있는 정신적 작용과 물질적 요소를 다섯 가지로 분류한 오온 또한 본래 내가 아니다. 내 이제 이 머리를 가지고 칼날 앞에 임하니, 날카로운 칼이 머리를 베는 것은 마치 봄바람을 베는 것과 다름이 없다.
내 몸뚱이랄 것도 없고 산다. 죽는다고 할 것도 없으니 조금도 괘념하지 말라는 뜻으로 이 게송을 외우신 것입니다.
그리고는 다시 태연한 자세로 웃으시면서 업보를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먼 전생에 조그만 동자승으로 있었을 때, 산골 밭을 매다가 나도 모르는 사이에 쾡이로 두꺼비 한 마리를 찍어 죽인 일이 있었는데, 그 때 죽은 두꺼비가 오늘의 양무제가 된 것이라네. 그 때 내가 일부러 죽일려고 해서 두꺼비를 죽인 것이 아니듯이, 오늘의 양무제는 스스로 조차도 알지 못하는 사이에 나를 죽이는 것이다. 이 모두가 전생의 과보를 받는 것일뿐……………..”
이 말을 마치고 합두스님은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습니다. 바둑을 다 두고 난 양무제는 다시 합두스님 생각이 나서 승지에게 물었습니다. “스님을 모셔오라 하였는데 어찌 소식이 없느냐? 스님께서 어디 가셨다더냐?” “아니옵니다. 폐하께서 ‘죽여라’는 하명을 내리시와 분부대로 시행했습니다.” “무엇이! 처형을! 짐이 언제 그런 명을 내렸단 말이냐?” “아까 바둑을 두시면서 ‘죽여라’고 크게 엄명하셨나이다.”
양무제는 그 소리를 듣고 그만 넋을 잃고 말았습니다. 그만큼 존경하던 스님이었기에 더더욱 정신을 잃고 끝없이 뉘우쳤습니다. 그러나 한 번 가신 스님을 살려 낼 수는 없는 일이었습니다. 땅이 꺼질 듯한 한숨과 함께 양무제는 한탄조를 물었습니다.
“그래 스님께서 마지막으로 하신 말씀이 없었더냐?” 자세한 이야기를 듣고 난 양무제는 하염없는 눈물을 흘리며 깊이 참회하고, 그 뒤 다시는 바둑을 두지 않았다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