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쇼미더머니4 논란을 보면서 생각하고 있던 것들을 정리하여 적어봅니다.
미국에서 지낸지가 5년이 넘어 글 쓰는 데에 다소 어색함이 있는데 너그러이 이해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다음은 제가 켄드릭 라마의 곡 중에서 가장 좋아하는 The Blacker the Berry의 가사입니다.
미국에서 굉장한 호평을 받은 곡입니다.
제가 직접 번역한 것이라 좀 어색한 부분이 있고 의역을 많이 했습니다. 생략한 부분도 있구요.
[Verse 1]
나는 2015년 최대의 위선자
이 버스 (verse) 가 끝나면 목격자들이 내 말을 증명해줄거야
16살에 정신을 차리고서부터 이런 생각들을 하기 시작했어
어차피 너희는 우릴 좋아하지 않잖아, 네 선의 따윈 개나 줘버려
나는 아프리카인이자 미국인이야, 아, 사실 아프리카인일 뿐인가
나는 달의 표면만큼이나 까맣지, 작은 마을 출신일 뿐이고
내 존재를 용서해
인류 밑바닥 출신이니까
머리는 곱슬거리고 좆은 크고 코는 납작하지
넌 나를 혐오하지?
넌 우리 모두를 혐오하잖아, 우리의 문화를 말살시키는 것이 너의 계획
너는 씨발 악마야 난 자랑스러운 원숭이란 걸 기억해 (원숭이=흑인 비하 용어)
넌 우리 문화를 훔쳐가지만 간지는 훔칠 수 없지 (백인들이 흑인 문화 (e.g. 레게 머리, 힙합)을 멋대로 차용하는 것을 비판)
이건 단순한 고백이 아니야
너가 내가 진심이라는 걸 알 수 있도록 방아쇠를 당길 수도 있어
내가 이 감정을 숨겨도 넌 다 느낄테지만
넌 우리 사회를 파괴함으로써 떼돈을 벌었지
넌 날 살인자로 만들었어, 이게 진정한 노예 해방인가
[Pre-Hook]
x3
열매가 검을 수록 과즙이 달지
내가 검기 때문에 그들은 나를 노예 취급해
내가 검기 때문에 난 매일 고통에 시달려
내가 검기 때문에 사슬에 묶여있다고들해
보석이 잔뜩 박힌 금사슬 말이야 (아무리 돈을 많이 벌고 금목걸이에 스포츠카를 몰고 다녀도 인종차별주의에서 벗어나지 못함을 표현)
왜 너는 채찍을 보지 못하는거야, 이렇게 내 등에 흉터를 남겼잖아
그래, 우린 이제 값비싼 차를 몰고 다닐 수 있어
그래봤자 우린 흑인이라 파멸을 피할 수 없대
하지만 기억해, 모든 인종은 밑바닥부터 시작했다는걸
[Verse 2]
생략
[Verse 3]
나는 2015년 최대의 위선자
이 verse가 끝나면 비로소 너도 동의할거야
지금 일어나는 일은 내 통제 밖의 일이야, 몇백년간 전해내려온 갈등인걸
더럽고 기반 없는 차별주의
그래 난 아프리카인이자 미국인이야, 아니, 사실 아프리카인일 뿐이야
난 아리아인의 가슴만큼 까맣다 (히틀러가 아리아인 우월주의 정책을 펼쳤죠)
타이론과 다리우스라는 이름만큼 까맣다
거칠게 말해서 미안한데 좆까 - 다 좆까라고
너무 직설적이었나, 넌 날 혐오하니까
넌 내 사람들을 혐오해, 널 볼 때마다 위협을 느껴
너의 방식은 거짓으로 가득 차있어
나도 알아 너가 내 스포츠카를 동경한다는걸
네 머리는 악의로 가득 차있어, 내 금목걸이를 뺏기 위해 날 죽일 생각이겠지
줄루와 도사 부족이 언제라도 전쟁을 일으킬 수 있다는 게 참 웃기지 않아? (줄루와 도사 부족은 역사적으로 갈등이 많았던 남아프리카의 두 흑인 부족)
짓고 부수고를 반복하는 두 부족의 군대
캄튼 크립 조직 멤버들과 비슷하지 않아?
파이루 멤버들과 항상 싸우잖아, 죽음만이 그 싸움의 끝
그러니깐 사실 내가 Panthers (흑인 인권 단체)를 얼마나 지지하든 상관없어
내가 마커스 가비 (흑인 인권 운동가) 를 얼마나 지지하든 상관없어
흑인 커뮤니티를 지지하든 말든 상관없어
결국 난 흑인 갱들이 나보다 더 검은 이들을 죽이는 동안 트레이본 마틴만의 죽음을 슬퍼했던 위선자니까
그래 위선자!
The Blacker the Berry를 듣다 보면 본인이 위선자라고 고백하는 화자에 대한 궁금증이 생깁니다.
화자는 누구이며 그는 누구에게 화를 내고 있는 것인가? 화자는 왜 본인을 위선자라고 하는 것인가?
첫번째 버스만 들으면 명백히 흑인인 화자가 흑인 문화를 파괴하고 흑인들을 남몰래 혐오하는 백인 대상에게 분노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하지만 첫번째 버스만 들어서는 왜 화자가 본인을 위선자로 칭하는지 알 수 없습니다.
세번째 버스에 도달해서는 화자를 분노케한 대상이 모호해집니다.
본인의 부와 명예 (금목걸이, 차로 대변되는)를 시기하고 적대적인 갱 멤버를 망설임 없이 죽이는 흑인들을 향해 분노하는 것인가?
히틀러가 아리아인이 아닌 이들을 죽였듯 흑인 문화를 차별하고 파괴하는 백인들을 향해 분노하는 것인가?
마지막 라인이 모든 것을 밝혀줍니다.
켄드릭 라마는 21세기에도 인종차별주의의 희생양으로 살고 있는 흑인들을 위해 분노하지만,
동시에 물질적인 부와 겉보기식 명예만을 중시하고 이에 대한 시기로 인해 살인도 서슴지 않고 저지르는 흑인 문화의 어두운 면을 비판합니다.
백인 경찰의 인종차별주의적인 과잉 진압으로 죽어야만 했던 소년 트레이본 마틴의 죽음에는 분노하지만
백인들의 손에 죽어나가는 흑인들보다 훨씬 많은 수의 흑인 아이들이 조직 폭력으로 죽어나가는 것은 모른 척하는 흑인들의 위선을 지적합니다.
이렇듯 인종차별주의의 단면만 보고 분노하는 것이 아닌
겉으로 보이는 것 이면의 사회 구조를 분석하고 통찰력 있게 풀어나가는 것이 켄드릭 라마의 스타일입니다.
금목걸이를 마음껏 사고 화려한 맨션에 살면서 너보단 내가 잘났어라고 랩하는 아티스트가 아닌
늘 사회 문제에 대해 고민하고 자신의 결론을 시처럼 풀어나가는 버스를 쓰는 아티스트가 켄드릭입니다.
쇼미더머니4가 방영되면서 자기자랑은 원래 본토 스타일이니,
본토 갱스터랩은 이것보다 훨씬 심한데 왜 이 정도가지고 호들갑이냐느니하는 글들을 많이 봤는데요
지금 미국에서 켄드릭이 이 시대 최고의 랩퍼라고 하는 데에는 이유가 있겠죠
정말 본토 스타일을 따라가고 싶다면 표면적인 신분 상승을 마구 자랑하고 스웩 스웩 거리는 갱스터 랩보다는
깊은 자기 성찰, 허를 찌르는 펀치라인이 점차 환영받는 트렌드를 캐치하고 따라갔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덧붙여 미국에 요즘 인기있는 사이트중에 Genius라고 랩 가사에 주석을 달 수 있게 해놓은 사이트가 있는데요,
The Blacker the Berry의 마지막 라인에 풀리처 문학상 수상자인 마이클 차본이 주석을 달아 화제가 되었었죠.
이처럼 한국 힙합도 가사의 미와 예술성으로 소수의 소위 '힙덕'들 뿐만 아닌 여러 사람들을 끌어들일 수 있는 장르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