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초등학교 교사로 있는
동창이 들려준 이야기를 써보려한다.
따라서 오늘의 신파는 초등학교 1학년 여교사인 셈이다.
뿔테 안경에 평범한 인상에
치마정장을 즐겨입는 단정한 선생님..
보다는
기왕이면 지적이고 원숙한 섹시함이 있는
여교사를 상상해주기 바란다.
실제로도 스타일리쉬하고 보기드문 술꾼이자
놀기도 잘하는 멋진 친구니까........ 하하
1.
내가 가르치고 있는 아이 중에
정신지체3급 판정을 받은 아이가 한명 있다.
서로 말 트는 데 여섯달 걸리고
손 한번 잡는데 여덟달이나 걸린 까다로운 아이..
제이름이나 친한 친구이름 정도는 한글로 쓰고
수에 대한 개념도 약간은 있는 것 같다.(5까지는 확실히 아는듯...;)
아이의 이름은 대언이다.
마치 내게 교사적 소명을 일깨워주기 위한 설정처럼 느껴지는 아이 대언이.
첫 학기 출석을 부를 때였다.
"김철수"
"네..."
"박영희."
"네...
"최대언"
"응?.."
'머야? 응?...........
왜 부르냐는 것도 아니구....머 이런 녀석이 다있담?'
난 버르장머리 없는 초딩을 혼내줄 생각으로
(머든 초반이 중요하니까..^^;)
대답한 녀석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어딘가 얼굴의 균형이 맞지 않는 아이
나를 향하고는 있으나
내 얼굴보다 훨씬 뒷쪽에 맞춰진듯한 촛점.
쉴새 없이 움직이고 있는 턱관절....
'얘.. 머야? 이거 일년간 골치좀 썩게 생겼네.....'
첫 대면에 내가 느낀 솔직한 감정이었다.
2.
예상은 틀리지 않았다.
급식시간엔 수저질이 서툴어 밥을 먹여주어야 했고
화장실도 데려다 주어야 했으며
옷에 풀 물이 들었다며 팬티만 입은채
화장실 세면대에서 제 옷을 빠는 모습을 본 뒤로는
세면장에도 같이 가줘야했다.
초딩의 누드는 그다지 흥미롭지 못하다.
어쩜 난 원하지 않던 대언이란 짐을 대하며
교사적 딜레마에 빠져들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대언이의 시중을 드느라 몸이 피곤할수록
'아 역시 난 훌륭한 교사야.' 하는 자기만족..
지금까지도 종종 자신에게 던지는 의문이다..-_-
대언이는 자기만의 세계를 갖고있는 아이였다.
어떤 아이와도 어울리려하지 않았고
무엇에도 관심이 없는듯 보였다.
어찌보면 모든 일에 초연해 보이기까지 했다.
모르겠다... 어쩜 대언이는 선생인 나를 포함해
다른 친구들을 장애우를 보는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었는지도..
교사적 의무감 반 호기심 반으로
반학기 동안 대언이의 시녀 역할을 자처했지만
늘 원사이드 러브일 뿐이었다.
비굴할 정도로 온갖 아양을 다 떨어가며
대언이의 닫힌 마음을 열어보려 했지만 부질없었고
내 허망한 프로포즈는
시선한번 마주쳐주지 않는 대언이에 의해 번번히 거절당했다.
저 애가 내가 지 선생이란걸 인식하고는 있나?
하는 의구심 마저 들던 어느 날 아침
조회시간에 눈이 마주친 대언이가
"안녕?" 하고 말했다.
놀라움과 기쁨 때문에 교단에서 떨어질 뻔 했다...
첫 인사 이후
그 거만하고 위세 당당한 대언이는
슬슬 나랑 놀아주기로 마음 먹은듯 보였다.
마주치면 가끔
"어디가? 뭐야?" 등의 질문을 해왔다.
물론 여지없이 반말이고
질문은 질문일 뿐.. 내 답은 전혀 바라지 않는....
감격먹은 내가
기쁨에 찬 표정으로 대답을 할 때쯤이면
무심한 대언이는 이미 저만큼 자기의 세계로 멀어져가고 있었다.
예의 먼산을 바라보는 듯한 특유의 시선으로
턱 관절을 좌우로 실룩이면서....
어찌보면..
나를 정말 자기 시녀쯤으로 여기고 있었던 건지도 모르겠다.
3.
대언이는 만난지 8개월이 지날 무렵에야
처음으로 자기 손을 잡는걸 허락해주었다.
드디어 자기 부모님 이외에 유일하게
나를 믿을만한 사람이라고 생각한걸까.....
대언이는 나와 눈이 마주치면
흡족한 표정으로 씨익~하고 웃곤했다.
마치 자기 여자를 바라보는 짖궂은 연하의 연인처럼...ㅡㅡ;
그리고 난 조금더 피곤해지기 시작했다.
철딱서니 없는 어린 연인을 사귄 댓가라고나 할까..?
우리 교실 앞에 여교사용 화장실이 있다.
물론 난 거길 이용항는데
언젠가부터 대언이는 그림자처럼 따라오곤했다.
(남자 임에도 불구하고 여자 화장실에 들어올 수 있는 유일한 녀석..)
그리곤 화장실 앞에서 쭈그리고 앉아
화장실이 떠나가도록 소리를 질러댔다.
"빨리나와!"
"빨리나와!"..............-_-;
마치 지 마누라 핸드백을 들고
화장실 문에서 기다리는 남편같은 말투로..;;
그럴때마다 난 화장실 안에서
마음속으로 애처롭게 외치곤 했다.
"대언아! 내가 교사로서 심각하게 얘기하는데 말야
중간에 끊는게 쉬운일은 아니야...-_-;; "
어느 날인가 대언이가 내게 편지를 쓴적이 있다.
구깃 구깃한 색종이에...
"선생님 사랑해요"
한글자도 틀림없이 또박또박 그렇게 쓴 편지를
내 책상 위에 슬며시 얹어 놓고는 나를 보며 히죽 웃었다.
WOW!!! ^0^/
난 너무 좋아서 책상 위 유리판 밑에 깔아 놓고는
입을 다물 수가 없었다.
첫사랑한테 받았던 연애편지보다도 더 가슴이 싸했다.
그게 끝이 아니었다.
그날.. 대언이는
아주 제대로 내게 감동을 먹일 심산이었나 보다.
대언이한테 받은 편지땜에
거의 정신을 못 차리고 있다가 화장실을 갔다.
그런데..
화장실 벽 여기저기에
그 편지랑 똑같은 편지가 다섯장이나
아무렇게나 뜯은 스카치테이프로 붙여져 있었다.
"선생님 사랑해요"
"선생님 사랑해요"
"선생님 사랑해요"
"선생님 사랑해요"
"선생님 사랑해요"
너무 놀라서 볼 일도 못보고 한참을 우두커니 서 있었다.
코 끝이 아려왔다.....
교실로 와서 정말 연인을 포옹하듯 대언이를 꼬옥 안아주었다.
놀라움과 질투로 눈이 둥그래진
아이들의 시선은 잠시 모르는체 버려두고......
4.
학년말 쯤의 일이었다.
몸이 아파 출근을 하지 않은 적이 있었다.
몸은 좀 나았지만 엎어진 김에 쉬어가잔 요량으로
이틀째 학교를 나가지 않고 있었다.
커피 한 잔을 만들어
내가 제일 좋아하는 의자에 앉으려는데 핸드폰이 울렸다.
이 시간에 누가...?
폰을 통해 들려오는 목소리.
귀에 익은 어눌한......
"응 나 1학년 3반이야!"
잠깐 누굴까? 하는 생각이 스쳤으나
금새 그 어눌한 소리가 1년동안 들어오던
익숙한 연인의 음성이라는 걸 알았다.
그래 '나 1학년 3반이야'말하는 아이......
대언이었다.
너무 놀랍기도 하고
무슨 일이 있기라도 한가 불안한 생각이 앞섰다.
"뭐해?" (1년내내 일관성있게 제 친구다. 아니.시년지도..)
나에게 존대를 할 때는
제가 아쉬워 갖고 싶은 것이 내게 있거나,
노트북이 만지고 싶을때 뿐이다.
" 응 차 마실려고 해" 하는 내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커피?"하는 녀석의 목소리에 가슴이 싸하다.
이 녀석이 ...
나한테는 늘 관심 없는 것처럼 뻐딩기기만 해서
항상 날 주눅들게 하더니 내가 커피 좋아하는 걸 알고 있었단말인가?
쭈볏쭈볏 대답을 못하는 내게 이어지는 대언이의 말...
처음 전화로 듣는 목소리라선지 웬지 더 새롭다.
"왜 학교에 안와?..응?"
"내일은 꼭 와....알았지?"
그리곤 그만이다.
대답을 들을 필요가 없다고 믿는 모양이다.
그는 내일 학교에 당연히 내가 올거라 믿는 것이다.
자기가 오라고 했으므로....
끊긴 핸드폰을 든채 한참을 앉아있었다.
가슴이 뭉클한 것도 같고
웬지 조금 슬픈 것 같기도하고 묘한 기분이들었다.
'대언이가 이젠 전화거는 정도는 하는구나....'
그래 내일보자 대언아...
5.
사실상 대언이는 내 교직 생활에 완강한 벽이었다.
지체 장애 3급 아동을 50명에 육박하는
1학년 철딱서니들과 함께 돌보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다.
대소변도 정확히 가리지 못하는 아이.
화장실까지 따라와 고개 숙여 내 실내화를 확인하며
화장실 문 앞에 쭈그려 앉아 기다리는 아이.
급식 시간마다 김치를 물에 씻어
젓가락으로 잘게 찢어서 수저 위에 올려 놔 주어야 밥을 먹는 아이.
제 몸에 다른 사람이 손 대는 걸 넘 싫어해
손잡는데 8개월도 넘게 걸린 아이.
출근해서 커피 한잔 하려고 연구실에 가면
연구실 창문 유리에 얼굴을 붙이고는
내게 손 흔들며 내가 나갈 때까지 꼼작않고 서 있는 아이.
난 늘 아침커피와 함께 유리창에 비친 대언이의 얼굴도 함께 마셔야했다.
-가끔은 유리창이라는 저 벽만 없으면
저 아이의 세상은 얼마나 밝아질까 하는 생각도 참 많이 했었다.-
행여 아침부터 교무실에서 회의가 있는 날이면
회의 끝나고 교실에 갈 때까지 가방도 그대로 메고,
신발도 갈아신지 않고 그림같이 서있다.
날 확인해야 움직이기 시작하는 아이.
언제나 여하한 일이 있어도 대언이랑 얼굴 도장 찍는 일이
내 하루 일과의 시작이어야 했다.
나름대로는 소명이 있다고 생각하며 콧대를 높이던 내게
대언이는 작은 신앙이었다.
때론 의무감으로,
때론 가슴으로..........
이제 3월이면 대언이는 특수학급에 편입이 된다.
가슴이 아픈 일이지만
그 아이의 인지발달을 위해선 필요한 일이라니..
이제 나는 작은 기적을 소망할 뿐이다.
6.
사람이 죽으면 거쳐가는 역이 있다고 한다.
그 역의 이름은 림보.
그 역에 도착하면 조사관이 나타나
살면서 가장 아름다웠던 순간,
기억에 남는 순간을 이야기 하라고 한단다.
그래서 이야기를 하면
그 순간을 영화로 만들어
비디오테이프에 넣어 준다고 한다.
그러면 망자는
그 비디오테이프를 가지고 저세상으로 간다지.
인생의 가장 아름다웠던 순간만을 가슴에 담고
죽음으로 가도록....
그런데 살면서 가장 기억에 남는
아름다운 순간을 생각해 내지 못하는 사람은
저 세상으로 가지 못하고 림보역에 남아야 한다고 한다.
기억에 남을 만한 인생거리를 만들지 못한 죄로
림보역에 남아 조사관으로 있어야 한단다.
살면서 아름다운 추억을 많이 만들어야 죽어서도 편안한가본데...
철없는 애인과의 추억을 주머니 가득 담고있는 나는
림보의 조사관이 될 팔자는 아닌듯 하다........
◆글쓴이 :신파
http://cafe.daum.net/1gul1sarang
댓글 분란 또는 분쟁 때문에 전체 댓글이 블라인드 처리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