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효율의 쾌감 중독으로부터 벗어나라 열린우리당의 지지도 하락에는 이유가 있다 「가지 않은 길」이라는 시를 배운 적이 있다. 살면서 갈림길을 만나는데, 한쪽 길은 발자국이 많은 길이고 다른 길은 발자국이 없는 길인데 어떤 것을 선택할 것인지에 대한 시다.
2달 전 쯤 노대통령이 러시아 방문을 위해서 비행기 타고 나갔을 때 박근혜는 중요한 말을 했다. “국보법의 대체입법을 받아들일 수 있다”고 말했다. 물론 번복했지만 말이다.
나는 이때가 중요한 갈림길이라고 본다. 박근혜는 수구꼴통으로 남을 것인가 아니면 한나라당을 꼬셔서 건전한 보수세력으로 다시 태어나는 길을 갈 것인지를 선택할 상황을 만들었고, 새로운 길을 가려고 시도한 것이라고 본다.
역시 박근혜는 노무현이 될 수 없었다. 공주로 실크 잠옷 입고 푹신한 침대에서 살던 사람이 어느 날 나뭇가지 옷 입고 거친 바람이 부는 산에서 낙엽 덮고 잔다는 것은 어쩌면 불가능한 것인지 모른다.
어쨌든 「국보법」 사수에 당과 자신의 명운을 걸었기 때문에 이제 새로운 길로는 갈 수 없다. 박근혜는 왜 그랬을까?
나는 사람이 어떻게 생각하느냐에 따라 삶이 달라진다고 하는 것은 잘못된 것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살고 싶은 대로 살려면 마음속으로 “어떻게 살자!”라고 되새기는 것이 아니라 내가 원하는 삶의 조건들을 노력해서 갖추어야만 그렇게 될 수 있다.
나의 몸과 마음(관념이 아니라 물질적 변화에 의한 뇌의 활동이다. 감성과 직관이라고 말할 수도 있다.)은 나에게 주어지는 삶의 조건에 맞춰서 만들어지기 때문에 그것으로부터 온갖 쾌감을 얻는 ‘나’는 만들어진 조건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무슨 말인가 하면, 모든 생명체는 살아가기 위해서 최선을 다하는 존재고, 자신의 삶이 다하는 것을 대비해서 자손을 퍼뜨리는 데 노력하는 존재다. 그런 존재의 가치를 실현하기 위해서 생명체의 몸과 마음은 어떤 정보를 통해서 움직이도록 설계되어 있다.
어떤 정보는 바로 ‘쾌락’을 말한다. 삶을 유지하고 자손을 퍼뜨리는 성행위라는 삶의 가치를 위해서 우리의 몸과 마음을 움직이는 동기로, 신호로, 정보로써 쾌락을 이용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좋아야 적극적으로 하니까…….
한나라당으로 대표되는 이 땅의 집권세력들은 바로 1998년까지 반세기 동안 철저히 국민에게 군림하는 지배자였다. 헌법의 ‘모든 권력은 국민에게 있다’는 조항은 무의미한 것이었다.
이렇게 일방적인 권력은 어떤 쾌감을 불러올까?
아까 말한 것처럼 사람은 쾌감을 통해서 움직이도록 설계되어 있다. 민주적이지 않은 봉건 왕조나 이 후의 독재사회에서의 일방적인 권력은 자기의 에너지를 아주 적게 쓰고 최고의 쾌감을 얻는 방식 쾌감이다. 아주 고효율의 즐거움을 얻게 되는 방식이다.
이것은 정제된 백설탕, 소금 등을 먹는 것과 같다. 또한 어느 한 쪽이 일방적으로 해주는 식의 섹스와 같다. 그리고 주사 한방의 마약이나 한 모금의 대마초, 몇 병의 술, 경마나 로또, 포커 같은 단 시간에 주어지는 짜릿함이다.
이것은 많은 노력과 섬세한 배려가 필요한 부부간의 정상적인 섹스나 오랜 동안 연습을 하고 마지막 한 방울의 땀까지 흘려야 하는 마라톤처럼 에너지를 많이 써서 한 번하고 나면 장시간의 휴식이 필요한 것들은, 쾌감은 크지만 그것을 얻기 위해서 힘을 많이 써야하는 아주 비효율적인 쾌감이다.
다르게 말하면, 우리의 조상들이 먹어왔던 굵은 소금, 흑 설탕 그리고 자연에서 얻는 조미료와 재료로 맛을 낸 인스턴트나 패스트푸드가 아닌 갓 만든 음식(슬로우 푸드)을 먹는 것과 같다.
“당신들이 부르는 애국가는 진심인가” ⓒ 데일리서프 민원기 기자 무엇이 좋은지는 다 알 것이다.
중요한 점은 고효율의 쾌감은 저효율의 쾌감과는 다르게 중독을 일으킨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우리 몸의 에너지를 많이 소모하는 쾌감은 에너지가 채우지는 과정을 꼭 필요로 하기 때문에 중독을 일으킬 수 없지만, 고효율 방식의 쾌감은 한 번에 여러 번의 쾌감을 반복할 수도 있고, 에너지 소모가 없어서 매일 지속적으로 행할 수도 있다. 이것이 중독이 되는 원인이다.
한나라당은 바로 이 고효율의 쾌감에 중독된 사람들의 모임이며, 그 중독 때문에 지속적으로 그런 일방적인 권력이 주는 쾌감을 추구하고 만들어내려고 하는 사람들일 뿐만 아니라 대한민국의 고효율의 쾌감에 중독된 대한민국의 80%의 부를 소유한 20%의 사람들의 대표성을 인정받고 그들의 쾌감까지도 책임지는 사람들이다.
우리는 때때로 ‘정말 이렇게까지 할 수 있는가’라며 이해 못할 때가 있다. 탄핵 때도 그랬지만, 김덕룡의 “부시한테 대들지 걱정된다”는 말을 듣거나 전경련의 “국민연금은 주식은 사도, 의결권은 행사하면 안된다”는 말을 들으면 "이 사람들이 정말 대한민국에서 같이 살아야만 하는 공동체인가?"라고 생각이 든다.
뭐 이런 때가 어디 한두 번이었는가? 지난 100년간 이를 뽀드득 뽀드득 갈면서 가슴이 찢어지고, 눈알이 튀어나오는 것을 경험해야 하는 기나긴 과정이었다.
하지만 우리는 정말 한나라당을 제대로 이해하고 사랑해야 한다. 왜냐하면 그래도 같이 살 수 밖에 없는 공동체이니까 그렇다.
얼굴의 어느 한 부분이 못생겼다고 그 부분을 잘라낼 수는 없지 않은가? 지금은 기술도 발달됐으니 성형수술을 하거나 화장을 해서 못생긴 부분도 나의 일부분이니까 같이 살아가야 한다.
우리는 그들이 갈림길에서의 박근혜처럼 얼마나 스스로 그러한 중독에서 헤어나기 힘든지를 이해해야 한다. 담배를 끊기가 얼마나 힘든지는 많은 사람들이 경험했을 것이다.
더구나 그들의 중독은 「성매매방지법」이 통과된 후에 볼 수도 있는 데 일방적인 권력 자체가 주는 쾌락도 그렇지만, 권력을 통해서 얻을 수 있는 성 자체의 쾌감도 있다.
룸살롱으로 통하는 우리나라의 접대 문화는 익히 잘 아는 것이고, 그것의 중심에 재벌기업이 있고, 재벌기업들이 늘 접대해 왔고, 접대 장소야 당연히 강남의 룸살롱이 있고, 그 룸살롱에는 갓 스물이 넘은 (본 적은 없다) 연예인 뺨치는 늘씬한 몸과 예쁜 얼굴의 여성이 있다. 룸살롱에 불황이 없다는 것은 모두가 아는 사실이다.
거기에는 최고의 서비스로써의 일방적인 성적 쾌감이 있다. 당연히 이런 쾌감에 중독된 사람들은 「성매매방지법」을 반대할 수밖에는 없는 것이다.
그래서 저들과 대화와 타협을 통해서 개혁에 동참하라는 것은 불가능한 것이다. 물론 국회법에 정해진 대로 대화와 타협이라는 과정은 거쳐야 한다. 하지만 그들이 스스로 변화할 때까지 기다리는 것은 마약 중독자가 스스로 마약을 끊고 정상인으로 돌아오는 것을 기다리는 것과 같다. 스스로 될 수 없는 것이다.
이런 경우에는 과감한 조치가 필요하다. 즉, 병원에 강제로 입원시켜서 치료를 받도록 하는 것이다. 마약중독이나 알콜중독, 도박중독, 구타중독, 담배중독, 설탕중독, 일방적 서비스의 성적쾌감의 중독처럼 고효율의 쾌감의 중독을 스스로 치유한다는 것은 정말 힘든 일이다.
그것은 우리의 몸과 마음의 구조를 이미 고효율의 쾌감에 적응하도록 바꿨기 때문이다. 그래서 끊으면, 변화하면, 개혁하면 금단증상이 나타난다. 고통스러운 것이다.
노무현 대통령이 취임 초에 일방적인 제왕적인 권력을 버리면서 아직 낮선 양방향성의 민주적 권력을 갖겠다고 선언한 것은 바로 이러한 고효율의 쾌감으로부터 중독되지 않으려는 것이다.
개혁이란 바로 그러한 중독으로 부터 사회를 벗어나게 하는 것이다.
By 감자사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