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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게시물ID : panic_72555
    작성자 : 쿠밍
    추천 : 21
    조회수 : 2651
    IP : 121.128.***.113
    댓글 : 4개
    등록시간 : 2014/09/09 09:54:35
    http://todayhumor.com/?panic_72555 모바일
    (몽상소설) 고기
    진숙이 눈을 떴을 때는 석양이 비치고 있었다. 무슨 일이 있었더라. 잠시 멍한 상태로 주위를 둘러보았다. 자신은 싱크대에 기댄 채로 쓰러져 있었다. 조금 더 시선을 멀리 두어 그리고 거실 쪽에는 온통 검붉은 색의 물체가 있었다. 천천히 일어나 거실 쪽으로 갔다. 노란 노을빛을 받으며 빛나는 것은 이미 싸늘하게 굳은 남편의 시신이었다.

    그제야 아까 무슨 일이 있었는지 기억났다. 한 달여 만에 돌아온 남편, 평소처럼 돈을 내놓으라고 큰소리를 쳤다. 반항하는 진숙을 향해 폭력을 쓰던 남편은 식탁에 놓여있던 유리컵들을 쳐서 바닥에 떨어뜨렸다. 얼굴을 맞아 정신을 못 차리던 진숙은 깨져서 널브러진 조각들을 밟고 정신을 차렸다. 이러다간 죽겠다 싶어 손에 들린 아무것이나 들고 남편을 향해 휘둘렀다. 남편은 갑자기 비명을 지르고 진숙을 거세게 밀쳐냈다. 그리고는 거실에 엎드려서는 숨을 헉헉거렸다. 그때 진숙은 머리를 부딪혀 잠시 기절했던 것이다.

    남편의 시체를 대하는 진숙은 오히려 침착했다. 슬프지도, 눈물이 나지도 않았다. 심장이 쿵쾅거렸지만 이 상황에서 오히려 신고를 하는 것은 자신에게 불리하다는 생각이 먼저 앞섰다. 예전부터 어차피 인간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머릿속으로 죽이는 상상을 열 번도 넘게 했었다. 그것이 현실로 일어났을 뿐이다. 단지 꿈속에서는 이만큼이나 피비린내가 진동하지는 않았다.

    진숙은 일단 남편의 시신을 화장실로 끌고 갔다. 피에 몸이 달라붙어있다. 진득거린다. 마른 몸매인 것이 다행이라 생각했다. 남편의 시신을 옮기고는 거실청소를 했다. 집안의 걸레를 총동원해서 닦고 또 닦았다. 말라서 검게 변한 핏방울들은 햇빛을 받아 가루처럼 부서지기도 했다. 사람한명에게서 이만큼의 피가 나오는구나. 70%가 물이라더니.

    저녁 9시가 다 되었다. 매일 하던 대로 9시 뉴스를 틀었다. 단지 오늘은 조금 더 볼륨을 높였다. 그리고는 화장실에 갔다.
    시체를 보니 숨이 턱 막혔다. 피 냄새 때문에 어지러웠지만 화장실 문을 열 수 없었다. 겨우 거실을 환기시켰는데 더 이상 냄새가 배이면 안 될 것 같았다. 화장실에서 보이는 남편의 뜬 눈이 무섭게 느껴졌다. 하지만 마음을 다잡았다. 여기 화장실에 있는 것은 짐승이다. 사람이 아니다. 집안의 물건을 훔쳐 먹던 짐승을 잡았으니 파티를 해야지. 어느새 콧노래까지 불렀다.

    예전에 돼지를 잡은 적이 있었다. 경제력 없는 남편 때문에 안 해본 일 없이 일할 때 푸줏간에서 일한적도 있었다. 고기를 해체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넓적다리와 팔뚝, 배같이 살이 많은 부분은 금방 해체했다. 내장은 따로 분리하고 살점만 남겼다. 뼈를 분쇄하는 것이 힘든 일이었는데 지금 할 생각은 없었다. 뼈는 따로 발려 욕조에 넣어놓고 살코기는 큰 덩어리를 세면대에 올려놨다. 내장은 잘게 썰어서 변기에 조금씩 내렸다. 성기는 발로 짓이겨버렸다. 머리가 제일 큰 문제였는데 망치를 가져와 머리를 깬 뒤 뇌를 꺼내 마찬가지로 칼로 잘게 썰었다.

    다 하고나니 새벽이 되었다. 온 몸에 땀이 송골송골 맺혔다. 그 화장실에서 샤워를 하고 피 냄새를 지우려 바디샴푸 한통을 다 썼다. 그렇게 씻고 밖으로 나왔다. 거실로 나와서는 저 고기를 어떻게 처분할까 고민했다. 일단 부피를 줄이고 인간의 형태가 아닌 것으로 만들어야 한다는 생각이 커서 저렇게 해놓은 것인데, 막상 하고나니 막막했다. 인터넷을 검색했다. 강에 버릴까. 하지만 자가용이 없어서 강에 저것을 가져갈 방법이 없었다. 땅에 묻을 곳도 마땅히 없었다. 땅을 깊이 파는 일을 혼자 할 수 없을 것 같았다. 공범을 찾을까. 가까운 지인이 떠오르지 않았다. 만약에 있다고 해도 시신을 매장하는 일에 동참하지는 않을 것 같았다. 문득 자신이 일하던 푸줏간에서 나눴던 이야기가 떠올랐다. 마장동 축산물 시장에는 깡패가 자릿세도 못 받는다는 이야기. 모든 재래시장이 조폭들에게 넘어갔더라도 돼지잡고 소 잡는 마장동에서는 맥도 못 추고, 돈 받으러 왔던 깡패한명은 조용히 묻혔다는 이야기. 하긴 수많은 돼지와 소의 뼈와 살점이 쓰레기로 나가는데 그사이에서 해체된 시신을 찾을 수 있겠는가.

    결심이 선 진숙은 선반에서 김치 통을 꺼냈다. 플라스틱 밀폐용기와 글라스락 김치통, 모두 합하니 6개는 되었다. 고깃점들을 차곡차곡 담았다. 뼈는 일단 놔두기로 했다. 어찌나 많은지 6통을 다 하고서도 남는 부위가 있어 냉동실에 넣었다. 통하나를 들고 집을 나섰다. 비가 오고 있었다.

    침착하게 걸어갔다. 버스로 2정류장정도의 거리. 버스는 타지 않기로 했다. 겨우 걸어서 도착했다. 새벽인데도 마장동은 밝게 불이 켜져 있고 회식을 하러 온 직장인들로 가득 차 있었다. 골목 사이사이로 들어가 가장 허름하고 사람이 없는 고기 집으로 들어갔다. 10명 정도 앉을 수 있는 식당이었는데 청소를 하지 않았는지 테이블이 먼지투성이였다. 주인에게 갈비를 주문했다. 저녁부터 아무것도 먹지 못했던 진숙은 정말 맛있게 먹었다. 술도 한 병 시켰다. 주인은 할 일이 없는지 같이 하겠다고 했다. 서로 소주를 주거니 받거니 하다가 진숙이 물었다.

    “여기 고기나 뼈같은거 폐기물은 어디에 버리죠?”

    주인은 의외의 질문을 받았다는 듯 망설이다가 말했다.

    “어디다 버리긴. 그냥 음식물 쓰레기봉지에 넣어서 밖에 버리지. 뭐 버릴 거 있어?”

    음식점 주인은 진숙이 가져온 비닐안의 물건을 힐끗 보며 말했다. 진숙은 뜨끔했다. 주인의 눈초리가 뭔가를 알고 있다는 듯 보였기 때문이었다.

    “아뇨, 집에 고기가 들어왔는데, 조금 오래되었거든요. 원체 많은 양이라 집에서 내놓긴 그렇고 여기 몰래 버릴 데 없나 했는데 안 되겠네요.”

    주인이 진숙의 표정을 살피며 가까이 다가가 귀에 대고 조용히 말했다.

    “양이 한두 근이 아닐 것 같은데, 내가 버려줄까?”

    “네?”

    “아가씨 몸에서 피가 진동을 하는데, 어디서 들어온 게 아니고 집에서 직접 잡은 듯 하구만.”

    “아저씨.”
    진숙은 긴장이 풀려 그 자리에서 벽에 기대 쓰러졌다. 주인이 진숙의 몸을 받쳐주었다.

    “뼈는 전기톱으로 자르면 되고, 내장은 믹서로 갈면 되. 쉬워. 내장도 가져왔나?”

    주인이 웃으며 말했다. 진숙은 자신이 그동안 했던 행동이 생각나서 그때서야 소름이 끼쳤다. 남자의 품을 벗어나려 했지만 고기 집 주인의 음흉한 눈초리를 보고서는 벗어날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내장은 화…….화장실에 버렸어요.”

    “하. 그거 안타깝구먼.”

    고기 집 주인은 진숙의 허벅지를 만지기 시작했다. 술기운이 올라오고, 피로가 쌓인 진숙은 주인이 자신을 바닥에 넘어뜨리는 순간 스스로 정신을 놓았다.






    “다섯 번 더 올게요.”

    신발을 신으며 진숙이 말했다.

    “그릇은 가지세요. 가져가고 싶지 않네요.”

    “잘 쓸게. 예쁜 아가씨.”

    주인은 김치 통을 받아들고 인사를 했다. 문을 열자 새벽빛이 아스라이 진숙을 비추고 있었다. 아르바이트 하는 곳에는 일주일간 휴가를 내야지. 만약 남편에 대해 물어보면 그날 자신을 때리고 밖으로 나가버렸다고 해야겠다. 집에 가서 피 냄새를 한 번 더 빼고 냉동실에 넣은 나머지 고기를 넣을 김치 통을 하나 더 사야지. 이런저런 생각을 하는데 눈물이 주룩 흘렀다.


    고기 집 주인이 밖으로 나와 인사를 하며 나지막이 뭐라고 했지만 진숙에게는 잘 들리지 않았던 듯하다.

    “신선한 게 갈매기살에 섞어 팔아도 되겠구먼.”








    by. 쿠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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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추석연휴에 보니 제 글들이 베스트에 많이 올라갔네요. 

    부족한 글에 추천해주신 분들. 덧글 달아주신 분들 모두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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