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구에도 야풍 불었다... ‘바보 노무현’ 따라 험지 남구만 12년 파온 박재호, “이번에 떨어지면 더 이상 안나오겠다” 못박은 네번째 출마서 끝내 승전고 울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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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재호 부산 남구을 당선인.(사진제공=박재호 선거사무소) |
“3분의 1만 주십시오.” 간절하던 호소가 현실이 됐다.
여당 텃밭으로 불리던 부산에는 지난밤 기적처럼 야풍이 불었고, 그 강한 바람에 새누리 아성에는 금이 갔다.
부산 뿐 아니라 영남권, 그리고 전국에 곳곳에서 이변과 기적이 속출했지만 투표율이 전국 최하위권을 웃돈 것을 감안해도 이번 부산 선거는 승패를 넘어 과연 ‘대한민국 변화의 중심’이었다.
여당 친박계의 공천 학살에 돌아선 민심, 그 중에서도 여성(與性)이 강한 50~60대의 투표의지가 급격히 떨어졌고, 상대적으로 20~30대 유권자들의 투표 참여가 높아진 것이 주요인이었다는 분석도 나온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변화의 바람을 간절하게 바랐기 때문에 그저 ‘열심히 하는 사람을 찍어줬다’는 것이 시민 대부분의 의견이다.
여야를 떠나 ‘인물경쟁’의 가장 이상적인 결과를 탄생시킨 부산. 정치 신인부터 수차례 꼬꾸라졌던 장수생들까지, 부산 야당 당선인의 승리 요인을 들여다보자.
◆ 부산 남구을에 빛난 박재호 당선인의 뜻... “이웃의 종 되세요” 지난해 사별한 아내의 마지막 당부 결국 이뤄내
마지막 선거운동일인 12일 남구을 지역에는 시멘트 바닥에 무릎을 꿇은 박재호 후보의 ‘마지막’ 호소가 울려 퍼졌다.
부산 친노의 대표인사로 꼽히는 박재호 당선인은 여당강세의 험지인 남구에 터를 내린 후 16년째 힘든 싸움을 계속해 왔다.
17, 18대 총선에서 김무성 여당대표에 좌절했고 19대에는 김무성에게 바통을 넘겨받은 서용교 후보와 맞붙어 8%p 차로 패했다.
김영삼 정부 대통령 비서실 정무국장, 참여정부 때는 노무현 전 대통령의 정무2비서관을 지냈으며, 지난 2005년 최연소 국민체육진흥공단 이사장을 맡은 바도 있다.
정부서 실무자로 일하며 지역주의 타파의 꿈을 키웠고, 당선 보장권을 버리고 부산에 출마했던 ‘바보 노무현’의 뜻에 따라 정치적 신념을 이어왔다.
지난 총선 때 지역구를 바꾸자는 당의 제안에 "지역민에게 예의가 아니다"고 거절한 이유도 그 때문이었다.
십년을 넘게 선거에 나온 박 후보, 그를 모르는 남구 주민은 없었을 것이다.
패배했지만 지난 총선에서 41.46%의 득표를 받은 것으로 봐서 남구 주민 절반가량은 지지층이 됐다는 희망이 보였다.
워낙 꿋꿋한 양반이기에 될 때까지 나올 것 같다는 이들도 있었지만 이번 총선에서 그는 거듭 ‘마지막’을 외쳤다.
이유인즉, 20대 총선을 앞두고 부인상을 당한 박 후보에게는 이번이 정말 마지막일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30년 정치, 12년을 못 붙는 선거 활동을 지지하고 보듬어준 아내 이미선 씨가 지난해 11월 직장암으로 유명을 달리했다.
아내를 자신의 보물이자 선물이라 소개할 만큼 각별한 부부사이를 자랑한 박 후보는 “아내를 떠나보낸 날, 내가 왜 이렇게까지 해야 했을까 싶어 통곡했다”고 털어놨다.
안 해도 될 마음고생을 수십년이나 시킨 데 비해 아내에게 제대로 보답한 기억이 없어 가슴을 쳤다.
힘들어 할 박 후보가 눈에 선했던 지 아내 미선 씨는 생전에 편지를 남겼다.
그는 편지로 “승종이 아빠, 부디 힘내서 내년 봄에 나를 찾아올 때는 기쁜 소식 전해달라”고 청했다.
“이웃들이 당신의 웃는 모습을 좋아하니 아무리 힘들어도 밖에서는 밝은 모습 보여줘야 한다. 이웃들에게 보물 같고 선물 같은 사람이 돼라”고 당부하기도 했다.
아내는 고통의 순간에도 박 후보의 정치적 뜻을 응원했던 것이다.
길바닥에 무릎을 꿇고 간절하게 호소할 때, 12년 터를 닦아왔음에도 여론조사에서 참패가 점쳐졌을 떄, 김무성계 현역의원인 서용교 후보를 지원하고자 새누리당이 총공을 퍼부을 때. 박 당선인은 힘들고 지칠 때면 가슴에 품은 아내의 편지를 꺼내봤다고 했다.
애당초 여당 후보의 압승이 예견됐던 이곳이었건만 박 후보의 절절한 호소에 주민들은 조금씩 귀를 기울인 모양이다.
출구조사에서 미세하게 서용교 후보를 앞서더니 개표 종료까지 선두자리를 지켰다.
쓴 술을 세 번이나 마신 끝에 마침내 쾌거를 이뤄냈지만 가장 축하받고 싶었던 아내는 옆에 없었다.
대신 박 당선인은 아내에게 보낼 공까지 싹 쓸어 유권자에게 돌렸다.
“사람보고 뽑아달라, 밥 값하는 정치 이루겠다”고 쉰 목소리로 내내 외쳐대던 박 당선인은 “민생보다 큰 정치는 없다”며 “기득권을 지키는 정치가 아닌 평범한 사람을 지키는 정치를 하겠다”고 당선소감을 전했다.
박 당선인은 이번 총선에서 전국에서 가장 비싼 수준의 쓰레기봉투 값을 반으로 줄이고 노동소득 분배율을 70%대로 높여 노동자에게 올바른 소득이 분배되도록 하겠다는 약속을 했다.
가덕 신공항, 부산 경제자유구역청 유치 등의 공약도 내걸었다.
밥 먹여주는 정치, 국민이 체감할 수 있는 정치가 가장 필요하다는 그의 외침에 남구 유권자들은 손을 내밀었다.
아내의 생전 편지가 공개되면서 적잖은 유권자들이 눈시울을 붉히기도 했다.
때문에 가장 낮은 자리에서 국민을 섬기는 종이 돼라, 부탁하고 떠난 아내를 실망시키지 않도록 잘 사는 남구, 잘 사는 부산, 잘 사는 대한민국 건설의 최선봉에 박 당선인이 있기를 남구 주민들도 간절히 바라고 있다.
막판까지도 ‘그래도 새누리지..’가 공공연한 분위기였다. 그러나 뚜껑을 열어보니 완전히 달랐다.
강남을, 대구 수성갑에서 무려 야당의원이 당선됐고 전남 순천에서는 새누리당 후보가 재선에 성공했다.
그리고 부산 3분의 1석은 기적처럼 야당, 그리고 무소속 후보들이 가져갔다.
의석수를 떠나 대부분 지역에서 2파전으로 갈린 치열한 득표율이 바뀐 부산의 민심을 증명했다.
수십년 만에 ‘여소야대의 3당 체제’라는 이상적 구도를 형성한 20대 국회.
각 당이 펼치는 건강한 견제와 토론의 중심에 부산 여야 의원들이 있기를, 부산 시민 모두가 크나큰 기대를 보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