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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도라의 상자에서 맨 마지막에 남았던 것은 희망이라고, 희망 없이는 살기 어렵다고 배웠다. 그래서 나도 희망을 가져보기로 했다.
시간 강사 다음 '코스'는 교수이니 만큼, 교수가 되기 위해서는 무엇을 해야 하는지 인터넷을 뒤져 봤다. 어느 학교 사이트에 신규 충원과 관련된 물음과 답변이 떴다.
이 학교에서 교수 신규 채용의 첫 번째 기준은 특정인을 내정한 상태에서 형식적인 채용 절차를 진행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이 학교는 주관적 편견의 영향을 최소화하고 투명하고 객관적인 기준으로 모든 지원자들에게 공정한 기회를 부여한다고 한다.
두 번째 기준은 학교 발전 방향에 부합하는 유능한 교수를 채용하기 위해 국제화에 적합한가 여부를 따진다고 한다. 특히 영어 강의가 가능한 경우에는 채용 심사에 유리하다고 한다.
그리고 그 학교의 특성화를 지원할 수 있는 교수를 확보하는 것이 세 번째 기준이라고 쓰여 있다.
음…. 다른 기준들은 알겠는데 특정인을 내정하지 않는다고 굳이 밝힌 이유는 뭘까?
문학 텍스트 분석 능력을 적용할 절호의 기회다. 그것은 아마도 특정인 내정이 일반적이기 때문에 이 학교에서는 그렇지 않다고 강조한 것은 아닐까? 이상한 일이다. 신규 채용자를 미리 결정했다면 왜 굳이 신문에 교수 채용 광고를 내는 걸까?
교수를 뽑는 사람들은 분명히 그 교수의 능력을 시험할 수 있을 만큼 지식과 경험이 풍부하신 분들일 테니 눈 가리고 아웅하지는 않을 거다. 그러니까 이미 밥이 다 돼 있는데 ‘밥 할 사람’ 하고 부를 만큼 비상식적인 짓을 하지는 않을 분들이라는 것이다. 그런 형식적인 광고를 내는 학교가 있다면 그것은 학교 예산의 광고비 지출 항목을 채우기 위해서가 분명하다.
그렇다면 교수가 되기 위해 고민해 보아야 할 것은 광고를 보고 낯선 학교에 지원을 하는 일이 아니라 미리 채용자로 내정이 되기 위한 조건들이다. 난 정말 모르는 게 많다. 그래서 시간 강사 경력 12년째인 선배에게 물었다.
그 선배 왈,
“교수가 되려면 손발이 부르트도록 일해야 해”.
“김장철에는 교수님 댁을 방문해서 사모님을 도와 손가락이 부르트도록 마늘도 까고 말야.”
아마 이 선배는 마늘을 까지 않았거나 마늘까는 일에 젬병일 것이다. 왜냐하면 그는 아직도 시간 강사이기 때문이다. 아니면 마늘까기는 그 선배가 생각하는 것 만큼 그렇게 중요한 일이 아닐지도 모른다.
혹시 추석과 설에 스승의 은혜에 감복하며 선물 보따리를 챙겨가거나 김장때 마늘을 까서 교수가 된 사람이 있다고 하자. 교수님들은 어려운 일을 마다하지 않고 묵묵하게 마늘을 까는 강사의 착한 심성, 그리고 마늘 까는 도중에 드러나는 학식과 됨됨이를 시험하셨을 것이다.
교수님의 무거운 가방을 대신 들거나, 대리 운전을 하거나 아니면 교수님 강의 듣는 학생들의 리포트를 읽고 점수를 매기는 일 등도 비슷한 맥락이다. 어차피 향후 교수가 되어 해야 할 일이니 미리 연습을 안 해 볼 이유는 없다. 게다가 먼저 교수가 되신 분들의 경험을 전수받는 일이야 말로 학문 발전과 후학 양성에 중요한 과정 아니겠는가?
대학 교수가 되기 위해서는 지식과 외국어 실력, 또 국제화에 적합한 능력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도 교수님들과 원만한 관계를 맺어 인맥을 만드는 게 제 1단계 전략이다.
별로 나쁜 시스템은 아닌 것 같다. 교수 채용에 특별한 심사 기준도 애매하고 누가 채용되었는지 그 근거도 공고되는 일은 없다. ‘우리 이번에는 xxx를 교수로 채용합시다. 괜찮은 사람이에요, 실력도 있고’. 잘 아는 사람들 쓰는게 나쁠 일은 아니다.
만약 사법고시 같은 게 있다면 똑똑하기는 하지만 '꼬장꼬장'하게 원칙 따지는 사람들이 대학 교정에 발을 들일 수도 있다. 그럼 무슨 문제가 일어날 때마다 골치가 아파진다. 그런 불행한 사태를 미연에 방지하는 건 아주 좋은 생각이다. 교육은 백년지대계이니 성격좋은 사람들을 골라야 한다. 시험으로 인간성을 파악할 수는 없는일 아닌가?
전략을 세웠으니 이번에는 전술을 고민할 차례다. 요즘은 정보 피알의 시대이다. 일단 교수 고지를 점령하기만 하면 그 동안 쓴 돈과 시간 따위는 다 충당이 될 것이다. 오랫동안 나를 옆에서 지켜볼 기회를 교수님들께 드리는게 신규 교수로 내정되기 위해서 필요한 일인것 같다.
식사도 자주 대접하고, 학회 뒤풀이에서 장단도 잘 맞추어 드리자. 교수가 되기 위해서는 시간도, 돈도, 팍팍 쓰자. 내가 알아서 안하면 어차피 주문이 들어온다.
언젠가 학과 회의가 있었다. 회의가 끝날 즈음 학과장님은 학교 식당에서 다 같이 점심을 먹자고 제안하셨다. 13명의 강사들은 학과장님의 뒤를 따라 식당으로 향했다. 밥값은 3천500원이었는데 선생님은 그것을 회의비에서 쓰라고 조교에게 일러두셨다.
밥을 다 먹고 학과장님이 하시는 말씀, “그런데 말에요, 다른 과에서는 강사 회의 때 강사들이 돈을 걷어 근사한데 가서 교수들과 회식을 한다는군요, 우리 과에서도 그런 일이 있겠지요?, 껄껄~”
나는 학과장님이 강사들의 '예절'과 '인간성'을 시험하기 위해 이렇게 썰렁하지도, 따뜻하지도 않는 유머를 구사하셨을 것이라 생각한다.
컴퓨터가어쩌구, 정보 강국이 어쩌구 해도 삶은 오프라인에서 이루어진다. 중요한 것은 인맥이다. ‘알음 알음’을 통한 채용 방식은 사람을 옆에서 오랫동안 지켜본 결과를 반영한다.
그것은 참을성, 그리고 경험 많으신 어른께 몸을 낮추고 잡일조차 불사하지 않는 마음가짐이 있는 사람을 대학에 배치하겠다는 발상이다. 어쩌겠는가. 교수가 되기 위한 자질을 연마하여 인맥을 만들자. 그렇다면 마늘 까는 일이 대수일쏘냐. 책은, 혹시 시간이 나면, 읽자. 지금은 열심히 교수님들을 따라 다니며 많이 일해야 한다. 손발이 부르트도록.
ps)이 글은 많은 부분 나의 경험과 주변에 대한 관찰을 토대로 했다. 따라서 글에서 지적한 교수 채용과 관련한 모순점이 우리나라 대학교수 채용 방식 전체에 해당된다고 보지 않는다. 그리고 실력으로 임용된 교수님들이 훨씬 더 많다는 믿음 또한 갖고 있다. 이 점 오해 없기 바란다. 이 글의 많은 반어적 화법이 거슬렸을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 시간강사 문제와 관련, 그 동안 느꼈던 아픔을 드러내는 표현으로 받아들여줬으면 한다. 언젠가 이 아픔들을, 정당하고 합리적인 권리 찾기로 성숙시키도록 노력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