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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을 졸업한 지도 얼마 안 되었지만 다들 사는 게 바빠 그동안 얼굴 보기가 참 힘들었다.
그러던 어느 날, 동기 중 한 명이 오늘 쉬는 날이라고 집에서 잉여 노릇하며 눈칫밥 배불리 먹고 날로 야위어가는 나를 비롯한 다른 한 명에게 여름은 진작에 지나갔다는 것을 몸소 깨닫게 해 줄 기회를 주었다.
따뜻한 햇볕이 내리쬐고 차가운 바람이 부는 정오. 내가 먼저 도착한 듯하다. 조금 더워져 외투를 벗고 기다리고 있으니 곧 저기 전철역 입구 계단 아래 인파 사이로 반가운 얼굴들이 눈에 띄었다.
영화관에 갔다.
영화가 끝나고 멍한 표정으로 눈을 몇 번 끔뻑이고는 천천히 일어나서는 바로 앞자리에 앉아본다.
"여기서 볼걸.."
그리고는 이미 밖으로 나간 일행은 아랑곳하지 않고, 벗어서 들고 있던 외투를 옆자리에 내려놓은 채 영화를 되짚어본다. 새카만 화면을 타고 올라가는 하얀 글씨를 보며, 텅 빈 상영관에 혼자서.
비장한 음악과 함께 엔딩크레딧마져 끝이 나고 스크린이 닫힌다. 밖으로 나가는 그 발걸음이 가볍다. 너무 몰입한 탓에 뜨거워진 손바닥을 후후 불며 긴장했던 마음을 추스르고 여유를 되찾는다.
이미 점심을 훌쩍 넘긴 시간이었기 때문에 서둘러 미리 봐두었던 레스토랑으로 향했다. 서울 촌놈답게 적당히 길을 헤맨 끝에 도착한 레스토랑은 다행히 브레이크 타임이 아니었다.
모두 처음 와본 곳이라 적당히 웨이트리스에게 메뉴를 추천받아 주문하고, 가게 인테리어에 대해 얘기하는 동안 금세 첫 번째 요리가 나왔다.
그러자 한 명이 외투를 벗으며
"이게 무슨 만원이나 해? 원가 2천 원쯤..? 15분이면 만들겠네..."라고 가장 먼저 포크를 들이대며 말했다.
하여간 그놈의 직업병이 문제다. 게다가 귀찮아서 실제로 만들어 먹지도 않는 주제에 그런 말 할 자격이나 있나 싶다.
얻어먹는 터라 눈치가 보여서 주문한 양은 좀 적었지만, 아무튼 얻어먹는 터라 나름대로 만족스러웠던 식사를 마치고 밖으로 나왔다.
해가 건물 숲에 가려져 차가운 바람만이 부는 대로변을 걷는다.
"어디 가지?"
"글쎄"
더 놀 생각이라면 차라리 밤에 만나는 편이 나았겠지.
애매한 시간도 시간이고, 슬슬 헤어지기로 암묵적인 합의를 나누고는 네 시간 전 처음 모였던 곳을 향해 걷는다.
이리저리 두리번거리며 걷던 중 바로 앞 벤치에 앉아있는 한 여성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평일의 어중간한 시간에 한산한 거리를 남자 셋은 비교적 빠르게 걷고 있었고, 뒤를 돌아보며 그 모습에 시선을 고정시키기엔 왠지모를 약간의 자존심과 무엇보다 무안한 마음이 들어 그저 슬쩍 옆을 보는 정도로 지나쳐버렸지만, 내 뇌리에 그 모습이 각인되기에는 충분한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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