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견을 전제로 호남의 투표 성향을 요약하면,
1. 몰표
2. 전략 투표 입니다.
지금부터 문재인 지지자들 입장에서는 서운할 수 있는 글을 씁니다.
만일 호남을 버려도 대선에서 이길 자신 있으니 상관없다 싶으면 무시해도 되는 글, 한 표라도 더 모아야 되겠다 싶으면 생각해 볼만한 글이지 않을까 합니다.
자조적인 표현으로 호남은 약자의 입장에 있었던 과거의 기억에 의해서 "강자에게 보호받겠다."는 DNA가 있습니다.
호남은 곡창지대로 일제시대부터 수탈의 지방이었던 역사와 산업화시대에 소외된 경험을 가지고 있어 타지방 분들의 표현대로 피해의식이 과한 지역입니다. 그래서 우릴 지킬 강한 자를 만들어야 하고, 그를 통해 우리 몫을 지켜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는 우리가 지켜줘야 합니다. 그가 무너지면 우릴 지켜줄 방패가 사라지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1. 몰표의 이유입니다.
누가 강요하지 않아도 알아서 됩니다.
호남출신들은 압니다. 투표소에 내가 찍은 후보, 내 가족도 내 친구도 말하지 않아도 찍고 왔다는 것을... 그냥 그렇게 살아왔으니까요.
이러한 DNA가 현대 정치사에 어떻게 작용되었냐면,
호남이 우릴 지켜줄 강한 대표로 DJ를 지목한 이래 변함없는 지지를 보내줍니다.
71년 7대 대선 신민당 김대중 : 전북(61.52%), 전남(62.80%)
87년 13대 대선 평민당 김대중 : 광주(94.41%), 전북(83.46%), 전남(90.28%)
92년 14대 대선 민주당 김대중 : 광주(95.84%), 전북(89.13%), 전남(92.15%)
그리고, 다 집니다. 그렇게 배웁니다. "절대 우리만으로는 이길 수 없다. 쪽수 적은것 서러워서 아이라도 많이 낳자."
하지만 호남은 새로운 경험을 합니다. 다음 대선에서 충청의 맹주 JP의 힘을 빌렸더니 이기더라는 것입니다.
호남이 처음으로 선거에서 이겨봅니다.
97년 15대 대선 국민회의 김대중 : 광주(97.28%), 전북(92.28%), 전남(94.61%) + 대전(45.02%), 충북(37.43%), 충남(48.25%)
참고로 14대 대선 당시 충청지역 3곳 중 어느 한 곳도 30% 가 넘는 득표를 거두지 못했었습니다. 모두 20%대에 불과했었습니다.
그래서 배운것이 "우리끼리 할 것이 아니었어. 그냥 우리 강한 사람 말고 또 강한 사람 한 명 데려오면 되었어. 이런 방법이 있구나."
이후로 야권에서 "연대"를 강조하게 됩니다. "우린 소수파라 맨날 질 줄 알았는데 합치니까 이기더라."
이미 84년 12대 총선에서 YS-DJ 신한민주당 경험을 통해 연대/연합의 경험이 있던 터라 호남은 타 지역과의 연맹에 배타적이지 않습니다.
그리고 그 경험이 처음 대선에서 승리로 가져왔으며 이를 승리를 위한 유일한 방정식으로 인식합니다.
02년 16대 대선에서 당내 강자는 이인제였습니다. 당시 당 주류의 후원을 받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인제가 끌어올 충청표보다 노무현후보의 새로운 표가 더 크다는 확신은 호남이 노무현을 지지한 이유가 됩니다. 그리고 노무현 후보는 광주에서 압도적인 지지를 받아갑니다.
호남은 2. 전략 투표를 하기 때문입니다. 호남이 극히 싫어하는 사람은 첫째가 5공 세력이었다면 둘째가 선거에서 지는 우리 후보입니다.
이번 선거에도 호남 또는 호남 출신 수도권 유권자의 전략 투표가 나온 것은 그냥 DNA가 그렇습니다. 시키지 않아도 사표를 싫어합니다. 일단 지는게 싫기 때문입니다.
02년 16대 대선 민주당 노무현 : 광주(95.17%), 전북(91.58%), 전남(93.38%)
DJ와 차이가 없을 만큼의 표를 몰아줍니다. 이제 우릴 지켜줄 새로운 강자로 노무현을 택했기 때문입니다.
호남이 서운함, 배신감을 드러내는 것도 이 점입니다. 우릴 지켜달라고 몰아줬는데 왜 져버렸지? (호남 사람들 알고보면 단순합니다.)
이미 시작전부터 대세가 기울었던 07년 17대 대선의 후보는 호남 출신 정동영입니다.
대선 후보였던 그가 호남에서 맹주자리를 상실한 이유는 졌기 때문입니다. 상대 후보 다음으로 싫어하는 것은 상대한테 지는 우리 후보입니다.
또한 "역시 우리만으로는 안 돼" 더라는 것입니다.
이미 검증된 연대, 우리 표 외에 다른 표를 가져올 수 있는 인물. 그래서 문재인을 지지합니다.
12년 18대 대선 민주통합당 문재인 : 광주(823,737표 91.97%), 전북(980,322표 86.25%), 전남 (1,038,347표 89.28%)
수도권의 호남계를 제외하고도 무려 2,842,406표 입니다. 총 투표수 30,721,459표의 10%에 육박한 크기이고 문재인 후보자가 득표한 14,692,632표의 20% 입니다.
이번 총선만이 목표가 아니었던 문대표가 김종인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호남을 버리지 못하고 내려왔던 이유입니다. 버리기엔 큽니다.
100만표 정도로 졌는데 200만 표를 포기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호남 분위기는 조금 다릅니다. 이제부터가 진짜네요.
단 한 번도 다른 후보를 지지하지 않았던 팬덤이 형성된 문후보 진영에서는 이해하기 힘들고 배신감이 느낄 수 있지만 호남은 "문을 지지해봤는데 졌더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기는 후보가 좋다는 것입니다. 내가 이기는 것은 둘째고 일단 상대가 이기는 꼴은 못 본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말하지 않아도 1. 몰표를 줄고 2. 전략 투표 도 하는데 또 질 것 같으면 지지 안 합니다. 그게 배신으로 느껴지겠지만 호남은 전략 선택이라 생각하는 인식차이가 생기는 것입니다.
이번 선거에는 안철수를 밀었습니다. 이유는 간단합니다.
안철수는 호남이 손 잡아보지 못했던 전혀 새로운 다른 표를 가져오기 때문입니다. 매번 진보 진영의 표만 함께 해봤는데 보수 진영의 표도 안철수는 가지고 있더라는 것입니다.
우리 표를 빼고 생각하면 안철수 표가 더 많은거 아니야?? 문재인으로는 지난 번에 졌잖아. 일단 한 번 지켜는 봐야하지 않아?
문재인이 싫어서가 아니라 안철수가 이길 것 같으면 안철수를 지지하고, 안철수가 싫어서가 아니라 문재인이 이길 것 같으면 문재인을 지지합니다.
지난 번에 문재인이 졌기에 싫어하는 분들도 많습니다. 박근혜 만큼은 이겨주길 바랬는데... 이런 분들이요.
호남에는 어르신들에겐 이념 프레임이 없습니다. 젊은 사람들의 이념 프레임에 대해 어르신들 생각은 단호합니다.
"이것들아, 너희 태어나기 전부터 수십년간 해봤어. 상대를 설득해서 우리편을 만들기 어렵더라. 그랬더니 맨날 지더라. 그냥 표를 가지고 있는 사람과 손 잡아야 해."
김종인 대표가 이념 프레임으로는 안 된다는 것은 그 나이대의 어르신들의 생각을 알기 때문이라고 봅니다.
진보 프레임을 거두고 보수도 흡입할 수 있어야 합니다.
안철수가 문재인에 비해 우위를 점하는 부분입니다.
새로 표를 흡수할 수 있는 후보에게 호남에서만 300만 표 이상이 돌아갑니다. 하지만 진보 틀 안에서 더 이상의 확장은 없습니다. 이미 진보의 표는 모두 가져왔습니다.
이기기 위해서는 내부 단결이 아니라 외부 포용이 필요합니다.
끝으로 제가 단언하건데 차기는 몰라도 차차기에는 분명 호남은 대구의 김부겸을 주목할 것입니다.
단 한번도 손잡아보지 못한 TK표를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대구 출신이라 하더라도 당선 가능성이 있다면 그에게 몰표를 몰아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