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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딴지일보 / 김어준) 2009.7.6.월요일 각하께서 쉴 틈을 주지 않는다. 틈새논평 나간다.
지난 6월28일 한일정상회담에서 이명박이 도쿄 올림픽 지원발언을 했단 논란이 있었다.
본지 일본통신원 테츠에 따르면 29일자 <니혼게이자이>는,
“ 한국의 이명박 대통령은 28일의 한일정상회담에서 2016년 하계올림픽 도쿄유치를 지원하겠다는 생각을 내비췄다. (중략) 이 대통령은 '가까운 나라인 일본에서 올림픽이 열리는 것이 한국에 있어 좋지 않을 리 있느냐?'라는 반어적 표현으로 지원의사를 밝혔다고 표명. 스포츠에 관해서는 강한 라이벌 의식을 봉인하고, 우호관계를 연출할 의향을 보였다"(니혼게이자이, 6월 29일자 2면)
고 보도했고, <교도통신>은 이렇게 보도했다.
"한국 대통령 보도관에 따르면 이명박 대통령은 28일 한일정상회담에서 2016년 하계 올림픽 도쿄 유치를 적극적으로 지원할 의사를 표명했다" (교도통신, 6월 28일 19시 09분)
이외에도 여러 일본 매체들이 표현을 조금씩 달리해 이 사실을 보도했다.
이에 청와대는 발언사실을 전면 부인한다. 이유는 둘 중 하나다. 정말 그런 말을 하지 않았거나 혹은 그때는 그렇게 말을 했는데 알고 보니 2018년 동계올림픽과 2020년 하계올림픽을 유치하려는 평창과 부산의 노력을,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방해한 꼴이 됐다는 걸 뒤늦게야 깨닫고 발뺌하는 경우.
어느 쪽이냐. 현장에 있지 않고서야 이 정도 정보량만으로는 어느 쪽도 단정할 수 없다. 올림픽 유치에 있어 유리한 고지에 서기 위해 우리 대통령의 발언을 일본 정부나 일본 언론이 왜곡했을 가능성도 염두에 둬야 하는 거니까. 하여 지난 1년 5개월 동안 이와 유사한 사례들을 뒤져보기 시작했다.
대통령은 그런 말 안 했다고 했는데 실제로는 했다는 논란, 1년 남짓 사이 제법 많다. 가까이로는 한 달도 안 된다. 청와대는 오바마와의 정상회담 전과 후, 아프칸 파병과 관련해 각각 다음과 같은 공식 입장을 내놨었다.
“아프간 문제는 이번 회담의 의제가 아니다”
그런데 귀국 다음 날인 20일, 자유선진당 대변인 박선영이 이런 내용의 브리핑 한다.
“아프가니스탄 문제와 관련해 오바마 대통령은 한국이 자진해서 파병해줄 것을 요청하는 발언을 했고, 나는 전투병력 파병은 불가능하고 평화유지군 방식으로 파병하는 것은 고려해보겠다고 했다”
고 이명박이 이회창과의 회동에서 말했다는 거다. 이렇게 거짓말이 탄로 나자 청와대는 이런 해명을 급히 내놓는다.
“오바마 대통령이 ‘한국의 정치현실에 비춰볼 때 파병 요구를 하는 것은 맞지 않다’며 다만 ‘한국 정부가 스스로 결정해준다면 모르지만’이라는 얘기는 했다” 고. 이에 대해 이명박은,
“전 정부 때의 평화사업과 재건사업을 좀 확장하면 되지 않겠나 생각하고 있다”
고 답했단다. 그러면서 이런 토를 달았다.
“오바마 대통령이 공식 요청한 것은 아니다.”
거짓말, 했었던 게다. 아프칸 문제, 거론됐었던 게다. 그럼에도 거짓말이 아니라 공식요청은 아니었단다. 변명 참, 옹색하다. 그게 요청이 아니면 뭔가. 오바마가 혼자 생각한 걸 독심술로 읽었다는 건가, 오바마 혼자 소곤소곤 독백한 걸 귀뚜라미 보청기로 들었다는 건가. 당장 보내주시오, 해야만 요청인가. 화법이 뭐가 중요한가. 그리고 여기서 공식 비공식이 대체 무슨 의미가 있나. 대통령 둘이 직접 만났는데. 아프칸 파병 요청이, 어떤 방식으로든, 있었느냐 하는 것만이 중요한 거지.
그런데 더 재밌는 건 소위 청와대 핵심 관계자의 이런 해명이 있자, 자유선진당 대변인 박선영은 “내가 애초에 한 브리핑 내용이 맞다”, “나는 이회창 총재의 메모를 토대로 브리핑했고 청와대에서 전화가 와 이 총재에게 다시 확인해보니 ‘메모대로다’라고 하시더라”고 말했단 사실이다. 그런 후 서면 브리핑에선 아프칸 부분이 통째로 빠져 버렸는데 이에 대해선 “이 총재가 (청와대에서)한-미간 문제가 생긴다고 하면 아프간 문제 부분은 일부만 고치지 말고 다 들어내고 올려라 라고 하셨다”는 거다. (한겨레, 6월 21)
게다가 청와대 핵심 관계자라는 자는 여기서 한 발 더 나가, 지들 살려고 이회창을 엿까지 먹인다.
“이 대통령의 ‘평화사업’ 발언을 이회창 총재가 PKO(평화유지군)로 잘못 이해하신 것 같다”
면서. 그래도 대한민국 역대 대법관 중 가장 난 인물로 꼽히는 이회창을, 평화사업과 PKO도 구분 못하는 얼간이로 만들어 버린 거다. 이회창은 다음 날인 22일, 불교방송 '김재원의 아침저널'과의 인터뷰에서 이에 대해 이런 말을 한다.
김재원: 근데 대국민 담화 말씀하셨는데요. 막상 그 청와대와 자유선진당 대변인의 발표가 좀 서로 달라서 국민들은 사실 좀 알고 싶은데요. 어떻게 된 겁니까?
이회창 의원: 여야회담 하고 나서 이러쿵저러쿵 이 말했다, 안했다, 말 나오는 게 참 좀스러워요. 제가보기에는. 그래서 저는 끝나고 나서 일체 거기에 대해서 가타부타 얘기를 안 해왔습니다. (중략) 이번에도 그래서 뭐 구절구절 얘기하고 싶은 생각은 없구요.
김재원: 공당의 대변인이 직접발표를 한 것인데요. 그에 대해서 다른 보도가 나오거나 주장이 나오면 참 당혹하시겠어요?
이회창 의원: 그렇죠. 그런 일이 있어서는 안 되죠. 전 가급적 과거에도 그랬지만, 그런 회담 하면 그 취지만큼은 정확하게 제가 기억을 하고 전달을 해왔습니다. 그 정도만 말씀을 드리죠.
해당 부분 듣기
이 아프칸 파병 관련해 했다 안했다 논란으론, 오바마 건보다 수 만 배는 더 웃긴 사건이 있었다. 2008년 8월 5일 부시 방한 때다. 사실 당시 부시의 방한은, 임기 말 가족여행이나 하고 돌아다니던 부시를 불러 쇼 하고 있다는 비난을 받았어야 마땅한 이벤트에 불과했다. 백악관 기록물로 남겨진 당시 소위 정상회담의 분위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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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 부시는 이명박과 만난 날 오후 방콕에 들렀다가 바로 아버지 부시와 함께 베이징 개막식에 참석하러 간다. 올림픽 구경하러 온 임기 말 대통령과 마주 앉아 심각한 국가대사를 논한다는 자체가 넌센스라는 걸 모를 리 없는 중국 후진타오 주석은 부시와 따로 정상회담을 하기는커녕 인민대회당에서 있었던 올림픽기념 점심행사에 손님 중 하나로 참석했다 밥 먹고 나가는 부시와 사진 한 장 같이 찍은 게 전부였다. 둘은 따로 다시 만나지도 않는다. 그런 후 부시는 미국 대사관에 들렀다 올림픽 개막식에 참석한 게 중국가서 한 일의 전부였고. 그런 부시를 중간에 불러 정상회담이라고 거창한 연출을 한 게다. 여하간 사건이 벌어진 건, 정상회담 후 공동기자회견장에서였다. 기자가 이명박에게 묻는다. 아프가니스탄 파병문제는 논의 했냐고. 이에 이명박은 이렇게 답한다.
"아프가니스탄 파견 문제, 이것은 부시 대통령 답변해야 하잖아요. 내가 할 것이 아니고. 그러나 그런 논의는 없었다는 걸 말씀 드립니다. "
그런데 이 말을 동시통역으로 듣고 있던 부시가 무슨 소리냐는 표정으로 쳐다보더니 자신이 이어 답한다. 아래의 동영상으로 확인하시라. 아는 사람은 이미 다 아는 영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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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국의 대통령이 공식기자회견에서 한 말이 겨우 5초 만에 거짓말로 탄로 난다. 이 장면을 가만 보고 있자면 부시가 심지어는 지적으로 보이기까지 한다. 임기 내내 그렇게 전세계적 조롱을 당하며 멍청해 보이던 부시가 말이다. 부시를 지적으로 보이게 만들 수 있는 우리 각하. 참, 훌륭하다. 그러나 더 웃긴 건, 그 와중에 잡힌 이 장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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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시가 자신의 말을 뒤집자, 혼자 “아 논의 했구나...”고 중얼거린다. 이 대목이야 말로 이명박의 문제해결 방식을 있는 그대로 드러내는 상징적 장면이다.
“아 논의 했구나...” 이 말은 생각을 하고 누구 들으라고 한 게 아니다. 자신의 거짓말이 탄로 나자마자 바로 튀어나온 반사적 멘트다. 그 심리적 메커니즘의 작동은 이런 식이다.
난 거짓말쟁이가 아니다. 그럴 리가 없다. 난 나쁜 사람이 아니니까. 해명을 해야 겠다. 잠깐 잊었을 뿐이었다고. 해명한다. 혼자 중얼거리는 걸로.
자신의 과오와 오류에 대한 자기합리화가 즉각적이고 자동적으로 이뤄진다. 게다가 그걸로 족하다. 대단한 방어기제다. 자기성찰이라곤 없단 소리다. 이 장면은 이명박에게 사과나 반성을 요구하는 게 얼마나 무의미한지를 일깨워 준다.
결국 청와대의 반복되는 거짓말 패턴은 이런 토대 위에 완성된다.
불리한 문제는 일단 거짓말 한다. 그게 드러나면 부인한다. 부인할 수 없을 때는 합리화한다. 그리고 옹색한 말로 변명한다. 모든 게 오해였다고.
일본 언론 오보 논란이라면 지금으로부터 1년 전, 위의 부시 방한 사건 바로 한 달 전, 큼직한 게 또 하나 있었다.
당시 교도통신은, 7월 9일의 일본 도야코 G8 정상회의에서 후쿠다 총리가 이명박 대통령에게 독도가 일본영토임을 해설서에 명기하겠다고 전달했다는 내용을, 7월 13일 보도한다. NHK, 마이니치 역시 관련 사실을 보도한다. 일본 언론이 4일이나 지난 후 이런 보도를 갑자기 한 이유를 이해하려면, 그 보도 나기 3일전 한국의 청와대로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청와대는 그 보도가 있기 3일 전인 7월 10일, 돌연 독도 관련 브리핑을 한다. 이명박이 G8에서 후쿠다를 만나 "일본 정부가 역사교과서 해설서에 독도영유권을 명기하는 것에 대해 강한 유감을 표명했다“고. 그리고 그 유감 표명에 후쿠다는 "한국 국민의 입장을 충분히 이해한다"고 답 했다는 거다. 당시 브리핑엔 후쿠다가 독도영유권 명기하겠다고 이명박에게 통보했단 내용은 전혀 없었다.
청와대가 브리핑한 대로라면, 이명박이 이슈를 제기하고 후쿠다는 수긍한 것이 된다. 사실 이 말을 누가 먼저 꺼냈느냐 하는 건 평상시라면 양국 모두에 쟁점이 안 된다. 누가 먼저 꺼냈든 독도문제에 대한 각자의 입장표명만 확실히 하면 되는 거니까. 그런데 당시 청와대 입장에선 이명박이 먼저 이슈를 제기했단 브리핑을 했어야만 하는 이유가 있었다.
하필이면 김장훈의 뉴욕타임스 광고게재가 있었기 때문이다. 청와대의 브리핑 바로 전날인 7월 9일에.
이에 국내 언론들은 일제히 정부가 할 일을 개인이 했단 보도를 쏟아낸다. 정부는 뭐하고 있었냐는 거다. 실용외교를 천명한 이명박에 대한 비판도 더해졌다. 그렇잖아도 쇠고기 문제로 지지율 10퍼센트 대를 오르내리던 이명박, 독도까지 겹치면 정말 큰일이다. 하여 청와대가 독도에 관한 노력을 진작부터 하고 있었단 브리핑을 해야만 할, 절실한 필요가 당시 있었던 게다. 그리고 그걸 입증하자면 논리적으로 이명박이 해당 이슈를 먼저 제기하고 우려를 전달했다고 했어야 했던 게고. 청와대가 일개 가수에게조차 꿀려서는 안되는 거니까.
그런데 청와대 브리핑의 뉘앙스대로라면, 이건 이명박이 후쿠다를 훈계한 게 된다. 그리고 그에 후쿠다가 한국 입장을 이해한다고 답 했다면, 그건 일본 정부가 독도 문제에 관해 유화적이고 심지어는 반성적 자세를 취했다는 소리가 되는 셈이다.
그래서 갑자기 일본 언론이 나섰던 게다. G8 회담이 있고나서 며칠이 지나도록 독도 관해선 한 마디도 않던 일본 언론이 그 사실관계를 확인하지 않을 수 없게 된 거다. 그런데 확인해보니 후쿠다 총리가 독도 이슈를 꺼낸 거였단 거다. 그걸 이렇게 표현한다.
“후쿠다 총리가 이 대통령에게 독도가 일본 영토임을 해설서에 명기한다는 방침을 전한 것으로 알려졌다” (교도통신, 7월 13일)
그럼 실제로는 누가 과연 독도 이슈를 먼저 제기했을까. 개인적으로 후쿠다가 먼저 했을 개연성이 훨씬 크다 본다. 왜냐. 우리는 G8에 포함되지 않는다. 그래서 그전까진 한 번도 G8정상회담에 참가하지 못했다. 2008년은 의장국인 일본의 초대에 의해 참석한 거다. 일본이 한국을 초대한 데는 여러 노림수가 있었겠지만 새로 취임한 이명박의 실용외교 천명이 한 몫 했다. 노무현정부와 고이즈미, 아베 시절의 일본정부는, 야스쿠니 문제와 독도 문제로 관계가 순탄하지 못했으니까. 아니 사실상 정상외교는 단절되었었으니까.
그런데 관계회복과 실용외교를 외쳤던 이명박이, 일본에 G8 초대받아 갔으면서, G8 이슈도 아닌 독도문제를, 그것도 정상회담 직전 15분간 서서 환담하는 자리에서, 갑자기 거론한다는 거, 이건 아무래도 부자연스럽다.
더구나 그 해 4월 18일, 이명박의 측근인 권철현 주일대사는 이런 발언을 했었다.
"이명박 대통령으로부터 과거에 속박당하지도, 작은 것에 천착하지도 말라는 당부를 받았다" "낡은 과제이면서도 현안인 독도, 교과서 문제는 다소 일본 쪽에서 도발하는 경우가 있어도 호주머니에 넣어두고 드러내지 말자" 주일대사에게 이런 말을 당부했던 이명박이다. 게다가 그 사흘 후인 4월 21, 이명박 역시 후쿠다와 첫 정상회담 후 공동기자회견 자리에서 기자가 “독도나 과거사 문제가 다시 불거질 경우 미래지향적 한일관계가 실효성을 거둘 수 있겠는가?"라고 묻자 이렇게 답했었다.
“ 그 질문이 안 나왔으면 했는데 나왔다. 한일 관계는 먼 과거 역사를 우리가 항상 기억을 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과거에 얽매여 미래로 가는 데 지장을 받아서는 안 된다. 역사 인식에 대한 문제는 일본이 할 일이고 우리가 미래로 가는데 제약을 받아서는 안 되고 일본도 충분히 그 점을 이해하리라 본다."
독도 문제 이야기하지 말자. 미래를 이야기하자. 그러니 제약이 되지 않도록 일본이 잘 알아서 해라. 뭐 이런 소리다. 그런 이명박이 G8 만남 이전 독도문제를 거론한 건 딱 한 번이다. G8 두 달 전인 5월 19일, 국내 언론을 통해 일본정부가 교과서에 독도를 일본 영토로 명기할 것이란 보도가 있자, 진상을 파악해 시정을 요구하라 했다는 청와대 브리핑이 있었다.
이후로는 독도문제를 거론한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 만약 그런 이야기를 일본과 나눌 필요가 있었다면, 그럼 그 두 달 사이에 공식채널을 통해 의사를 전달하거나 직접 총리와 전화를 해도 된다. 얼마든지. 그런데 두 달이나 지나고 나서 전혀 다른 목적으로 간 G8에서 15분간 서서 환담하는 자리에서 생뚱맞게 독도문제를 강력하게 제기했다고. 게다가 후쿠다는 듣고만 있다가 이해한다고 했다고. 이건 아무래도 어색한 설명이다. 이건 노무현과 고이즈미의 그림이지, 이명박과 후쿠다의 그림이 아니라고.
반면 후쿠다는 독도 이슈를 그 짧은 시간에라도 언급해야 할 만한 분명한 이유가 있었다. 10년에 한 번 개정되는 일본의 교과서 ‘해설서’가 그 회동 바로 5일 뒤인 7월 14일에 발표될 예정이었기 때문이다. 후쿠다는 ‘해설서’에 독도 영유권 주장이 실리게 된다는 걸, 이제 관계 개선을 하자는 한국의 대통령에게 미리 알려줄 필요가 있었다. 그 최종결정이 며칠 후면 나기 때문에. 그리고 정치적 사인인지라 그 결정을 최종적으로 내릴 사람은 문부과학상이 아니라 바로 일본 총리 자신이었기 때문에.
"일본 정부는 14일 오전에도 마치무라 노부다카 관방장관과 도카이 기사부로 문부과학상이 총리 관저에서 중앙설명회와 병행해 조정을 계속했다. (중략) 최종적으로는 후쿠다 총리의 판단에 따라 명기를 확정했다" (산케이, 7월 14일)
이건 고이즈미와 아베가 망쳐놨다며 일본 언론으로부터도 질타를 받았던 대외 관계를, 내가 회복하겠다고 천명해 온 온건파 후쿠다의 스타일이기도 하다. 말하자면 미리 이명박에게 언질을 준, 하나의 배려였던 게다. 실제 후쿠다는 나름대로 한국과의 관계를 고려한 유화 조치를 취한다. 연합뉴스의 보도("일교과서 학습지도요령 해설서란", 7월 13일)에 따르면 당초 일본 정부는 독도에 대한 영유권 주장을 직접 구속력을 가진 '학습지도요령'에 담으려고 했으나 대일관계 개선에 의욕적인 이명박과의 관계를 고려해 보다 구속력이 약한 '해설서'에 기술하는 쪽으로 방침을 바꿨다고 한다. 또한 그 내용이 발표된 7월 14일, 마치무라 노부타카 관방장관은 일본 문부과학성이 주장한 “독도는 일본의 고유 영토”라는 표현 대신 "북방영토(러시아측 쿠릴열도)와 마찬가지로 우리나라의 영토, 영역에 대해 학생들에게 이해를 향상시키게 하는 작업이 필요하다" 정도로 순화되었으며 이에 대해 ”일한 관계를 가능한 한 엉망으로 만들고 싶지 않은 의도의 표현이다"고 브리핑 한다.
정황을 종합하자면, 독도 이슈를 먼저 거론한 건 후쿠다 일 개연성이 높다. 그쪽은 그래야 할 시급한 이유가 있었으니까. 10년만에 교과서의 전체 방침을 결정하는 일을 목전에 두고 있었으니까. 그러나 사실 여기까진 어찌되었건 별 상관없다. 발언의 주체나 그 뉘앙스 정도야 별 게 아니다. 누가 먼저 거론했든 그 강도가 어떠하든, 각자 독도에 관한 입장을 밝혔고 그 입장이 서로 다르다는 자체야 큰 뉴스거리가 못 된다. 언제는 안 그랬나.
그러나 13일 일본 언론의 보도가 전해지자, 청와대는 즉각 후쿠다가 독도 영유권 명기에 대한 통보를 전혀 하지 않았다고, 후쿠다의 발언 자체를 부인한다. 그저 이명박 혼자 독도 문제에 대한 우려를 표했을 뿐이었다는 거다. (YTN, 7월 14일, 뉴스보기)
사실 청와대의 이 설명은 설득력이 대단히 떨어진다. 설혹 이명박이 독도 이야기를 먼저 꺼냈다 하더라도 그리고 강력한 우려를 표명했다 하더라도, 그렇잖아도 며칠 후면 해설서 독도 명기에 대한 최종결정을 해야만 하는 후쿠다가 그에 대해 단 한 마디 언급도 없이 가만히 듣고만 있다 이해한다는 말밖에 안 했다는 건가. 이건 정말 말이 안 된다. 일이 크게 틀어지기 시작한 건 바로 여기서 부터다. 일본총리가 자국 언론에 전한 발언을, 한국 청와대가 전면 부정해버린 거다. 일본총리를 거짓말쟁이로 만들어 버린 셈이다. 그래서 청와대가 부정한 바로 다음 날인 7월 14일 저녁 인터넷판과 15일 조간에서, 문제의 요미우리 보도가 나온다. 이렇게 말했잖아, 하면서.
아래는 요미우리 해당 부문이다.
"記述の調整が大詰めを迎えた今月9日、李大統領は北海道洞爺湖サミット?場のホテルで福田首相と立ち話をした際、憂慮の念を表明。?係者によると、首相が「竹島を書かざるを得ない」と告げると、大統領は「今は困る。待ってほしい」と求めたという。
교과서 기술 조정이 막바지였던 금월 9일, 이 대통령은 홋카이도 토우야호 서미트 회장의 호텔에서 후쿠다 수상과 서서 이야기를 나누었을 때, 우려를 표명. 관계자에 의하면, 수상이 “타케시마를 해설서에 쓰지 않을 수 없게 됐다”고 하자, 이 대통령은 “지금은 곤란하다. 기다려 줬으면 좋겠다”라고 요구했다고 한다. 이제 이야기가 완전히 달라졌다.
단순히 발언의 선후나 뉘앙스, 표현의 강도 문제가 아닌 게 됐다. 이건 이명박이 훈계하고 후쿠다가 수긍했다거나 양자가 각자의 사정을 설명했다거나 하는 게 아니라, 후쿠다가 통보하자 이명박은 나중에 해달라고 말한 게 된다.
여기서부턴 문제의 차원이 달라지는 거다.
보도가 사실이라면, 극단적으로 말해 한국 대통령이 자국의 영토를 포기할 수도 있단 발언을 한 셈이니까. 거꾸로 요미우리의 보도가 사실이 아니라면 한국 정부로부터 소송을 당해도 아주 초대형으로 당할 일이니까. 하여 바야흐로 거대한 충돌이 임박한 줄 알았다. 둘 중 하나는 치명상을 입을 만한 사안이니까. 누군가는 명백히 거짓말을 하고 있었으니까.
그러나 “결코 용납하지 않겠다”던 청와대의 법적대응도 요미우리의 오보인정도 없이 기사 게재 4일 후인 17일, 요미우리 사이트에서 해당 기사가 삭제된다. 아무런 고지도 없이. 이어 청와대는 기사 삭제가 곧 오보인정이라 주장한다. 이에 국내에선 그래도 청와대를 믿을 수 없단 주장과 일본의 언론플레이란 주장이 동시에 제기되었으나, 결국 흐지부지되고 말았다. 요미우리 역시 입을 다물어 버렸으니까.
<<삭제된 기사>> 그러나 한 가지는 분명하다.
요미우리가 오보를 인정했단 청와대의 주장은 택도 없는 소리라는 거다. 요미우리는 발행부수가 천만 부가 넘는 일본 최대 매체다. 하루 천만 명의 일본인이 본다. 그런데 그 기사가 나간 지 4일 만에 그저 인터넷에서만 해당 기사 삭제한 게 어떻게 오보를 인정한 게 되는가. 오보를 인정한다는 건, 다시 한 번 천만 명에게 이전의 보도가 사실이 아니었음을 명확하게 고지하는 과정이 반드시 포함되어야 하는 거다. 4일 후에 그 기사가 인터넷에서 삭제됐다는 사실조차, 그 천만 명 중 아는 사람이 거의 전무한데 대체 뭐가 오보 인정이란 건가.
그럼 제대로 된 오보 인정과 후속 조치란 게 어떤 거냐. 일반적인 오보 정정이야 어느 나라 어느 매체도 있다. 그러나 구체적으로, 요미우리와 한국의 청와대와 격돌했던 적이 과거에도 있었던가. 그래서 요미우리가 오보 인정을 한 적이 있었던가. 다행히 명백한 선례가 존재한다. 2006년 3월 17일, 요미우리는 “한국 ‘수사권’을 놓고 크게 대립” 이란 제하의 나까무라 기자의 서울발 기사를 낸다. "노 대통령은 변호사였던 1987년, 과격한 노동쟁의를 지휘해 검찰당국에 체포된 적도 있어 검찰을 싫어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면서 "노 대통령은 검찰인사에도 이례적으로 개입해 승진하는 간부를 청와대로 불러들여 가족관계나 금융거래 등을 묻는 등 이례적 조사까지 실시했다"는 내용이었다.
이에 한국 대검찰청은 당일 즉시 해명자료를 내고 청와대는 요미우리에 정정 보도를 요청한다. 요미우리는 국제면 기사에 대한 정정보도는 유래가 드물다며 이를 거부한다. 그러나 그로부터 2주 후인 4월 4일, 사실관계를 확인한 요미우리는 결국 국제 면에 정정 보도를 게재한다. '3월17일자 ‘한국 수사권 놓고 대립’의 기사에서 노무현 대통령이 “변호사였던 1987년, 과격한 노동쟁의를 지휘해 검찰당국에 체포됐다”고 했던 것은 “노동쟁의에 관여해 체포됐다”의 잘못이었습니다. 또 검찰 인사를 둘러싸고 “이례적인 조사까지 실시”라고 했던 것은 “특정직 고위공직자를 대상으로 작년 10월부터 도입된 조사”를 한 것으로 “이례적인 개입”이나 “간부 승진자를 청와대로 불렀다”는 사실이 아니었습니다. 관계자에게 사과드립니다.'
간단한 사실관계 몇 줄이 아니라 위와 같이 정정의 구체적 내용을 상세히 적시했다. 또한 이 정정보도 후에는 담당 부장과 담당 데스크가 주일 한국대사관을 직접 방문해 유감의 뜻을 표하기도 했다. 위 내용은 한국 대검찰정 보도자료 방에 지금도 남아 있다. 이런 게 진짜 정정보도요, 후속조치다. 그렇다고 요미우리가 노무현을 좋아했느냐. 그래서 이렇게 정정보도 내고 깍듯이 사과 했느냐. 일본의 우익매체가 그럴 리가 있겠나.
같은 해, 요미우리가 노무현을 바라보는 시각을 고스란히 드러낸 촌평 중 하나다. 기사는 이렇게 시작된다.
“한국의 노무현 대통령의 최근 언동으로부터 보아 예상되었던 결과였다. 요미우리신문과 한국일보가 공동으로 실시한 여론조사 결과 말이다.”
그러면서 한류가 인기고 이승엽이 대활약하고 있지만 일본인의 한국에 대한 인상은 95년 이래로 최악인데, 일본인의 76퍼센트가 이를 일본의 차기수상이 풀어야 한다고 기대한다는 논지다. 그러면서 이렇게 끝을 맺는다.
“ 그러나 아직도 노무현의 임기는 1년 반 남아 있다”
노무현을 이렇게 바라봤던 요미우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실관계가 틀리면, 정정 보도와 후속 조치를 취했다. 정치성향을 떠나 그게 일본 미디어의 기본이다. 그리고 그게 일본 최대 매체의 자존심이다.
그런데 끝까지 사실보도 했다는 주장만 되풀이 하다 정작 일본인들은 아무도 모르게 해당 기사만 인터넷에서 삭제하고 입 다물어 버린 게, 어떻게 요미우리가 오보를 인정한 게 되는 건가. 청와대와 요미우리 사이에 혹은 일본정부와 요미우리 사이에 어떤 이야기가 오고 갔는지는 알 도리가 없다. 그러나 최소한 요미우리가 오보를 인정했다는 청와대의 주장은 어림도 없는 소리다. 요미우리는 오보를 인정한 게 아니라 그냥 문제를 덮었을 뿐이다.
일본 외무성은 요미우리가 보도한 이명박의 발언내용을 “정상회담시 논의 사항에 대한 구체적 내용을 밝히는 것을 삼가고 싶으나 보도된 바와 같은 논의가 이루어진 사실은 없다”고 부인하지 않았냐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일한 관계를 가능한 한 엉망으로 만들고 싶지 않은” 일본정부 입장에선 한국정부의 곤경을 도와줄 이유가 있었다. 하지만 요미우리는 그런 게 없다. 그래서 더욱 청와대는 요미우리에 정정 보도를 요청했어야 했다. 사실관계에 자신만 있었다면, 정정보도를 압박하는 법적조치를 취해서라도. 그렇게 해서 요미우리가 정정 보도만 했더라면, 모든 문제는 깨끗하게 풀렸을 게다. 그런데 요미우리는 결국 정정보도를 안 했다. 그저 누군가의 중재로 타협을 본 게 인터넷에서의 해당기사 삭제다. 사실관계만 확인 되었다면, 요미우리는 정정보도를 했을 게다. 한일관계가 훨씬 더 나빴을 때도, 싫어하던 노무현과 관련된 사안일지라도, 요미우리는 분명한 정정 보도를 했었다.
해서 최소한 요미우리는, 거짓 보도를 한 건 아니라는 게 내 결론이다. 그렇다면 논리적으로 남는 경우의 수는 두 가지다. 이명박이 정말 그런 말을 했든지 아니면 일본 정부가 지어낸 말이든지. 여기서 일본 정부는 후쿠다일 수도 있고 일본 외무성일 수도 있겠다. “독도 문제의 본질을 왜곡하려는 일본 측 언론플레이의 결과라면 결코 용납할 수 없다”던 당시 청와대의 주장대로라면, 일본정부가 만들어 낸 말이 된다. 그런데 그렇다면 일본정부가 그런 말을 굳이 만들어 냈어야 하는 이유가 있어야 한다. 나로선 이 대목에서 막힌다.
고이즈미와 아베 시절 악화된 대외 관계를 자신이 복원시키겠다고 공언했던 후쿠다는, 우리야 당연히 성에 차지 않지만, 해설서의 내용이 발표되는 마지막 순간까지 그 나름대로 한국을 배려했다. 이명박에게 해설서 문제를 사전 언질하고, 일본 문부과학성이 주장한 독도는 일본의 고유 영토라는 표현을 순화시키고, 관방장관으로 하여금 ”일한 관계를 엉망으로 만들고 싶지 않다“고 브리핑하게 했다. 그런데 그렇게 노력해 놓고 그 노력을 물거품으로 만들 두 줄 거짓말을 지어냈다는 건가. 뭐 하러. 그건 납득이 안 가는 상정이다.
해서 난 이명박이 실제 그 말을 했다는 쪽의 개연성이 훨씬 높다 본다. 아마 이명박도 후쿠다도, 각자 독도와 관련한 입장을 이야기했을 게다. 그리고 설혹 이명박이 정말 기다려 달란 말을 했다손 치더라도, 그 말을 니들이 나중에 독도 가져도 된다는 뜻으로 했을 리는 만무하다. 그렇게 몰아가는 건 오바다. 그저 촛불집회에 혼쭐나고 지지율 10퍼센트로 헤매던 그가, 독도 명기한다니 놀라서 지금 그런 이슈 터지면 자신으로선 상당히 곤란하니 걱정이 된단 정도의 의미로 한 말일 게다. 하여 그 발언이 실제 있었다 할지라도, 개인적으로 분노가 치밀거나 하진 않는다. 어차피 이명박에게 그 이상을 기대하는 건 욕심이란 걸 이미 너무나 많이 보아왔으니까. 그런 기대는 예전에 접었으니까.
다만 참으로 쪽팔릴 뿐이다. 이 정도 인물이 내 대통령이라는 게.
이제 이명박의 일본 올림픽 지원발언에 대한 논평을 마무리 짓자. 지난 28일 이명박은 과연 아소다로에게 일본 올림픽을 지원한단 말을 했을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명박은 실제 그런 말을 한 걸로 보인다. 지금까지 살펴본 청와대 거짓말만 봐도 충분히 추정할 수 있긴 하다만, 이 사건은 추정할 필요조차 없이 물증들이 너무 풍부하고 명백하다.
이 날 있었던 이명박의 올림픽 지원 발언은 일본이 아니라 우리가 보도를 주도한 거였다. 청와대는 이날 회담을 두고 2-3일에 할 일을 하루에 끝냈다면서 셔틀외교를 정착시켰다고 자화자찬을 쏟아낸다. 또한 일본에서 가장 먼저 관련 사실을 알린 일본의 통신사, 교도통신도 그 사실을 우리 쪽에서 알려줬다고 보도한다. "한국 대통령 보도관에 따르면... " 이라고. 실제 다음 날 기사가 난 일본 언론들과는 다르게 우리 언론들은, 일본 총리실에서 오후 5시 30분에 있었던 한일 경제인 간담회가 끝나자마자 당일 저녁부터 해당 사실을 바로 보도한다.
“아소 총리는 또 회담에서 오는 2016년 하계올림픽 유치 경쟁에 도쿄가 입후보한 것에 대해 협조를 요청했고, 이 대통령은 "가까운 나라 일본에서 열리는 게 한국에도 좋지 않겠느냐"며 지원 의사를 밝힌 것으로 알려졌다.” (연합뉴스, 2009/06/28 19:38 송고, 기사 보기)
“이 대통령은 또 재일교포에 대한 지방참정권이 부여될 수 있도록 일본에 요청했고, 아소 다로 총리는 10월에 투표하는 2016년 올림픽 동경 개최를 위한 지원을 부탁했습니다.(MBN, 6월 28일 8시 뉴스, 뉴스 보기)
“일본은 여수 엑스포의 성공을 위해, 한국은 2016년 도쿄 올림픽 개최를 위해 협조하기로 하는 등 양국의 인적·문화적 교류도 확대하기로 했습니다.(YTN, 6월 28일 11시 뉴스, 뉴스 보기- 2분 45초부터)
“양국간 인적교류 확대와 관련해 이 대통령은 일본에 여수엑스포 개최와 관련한 협조를, 아소 총리는 우리 측에 2016년 하계올림픽 도쿄 유치에 대한 협조를 각각 요청한 뒤 상호 지원키로 약속했다. (한국일보, 입력시간 2009/06/29 02:46:36, 기사 보기)
이 뉴스들은 일본 언론들이 보도하자, 우리 언론들이 받아 보도한 게 아니었다. 일본 언론이 보도해 문제가 되기 전에, 우리 언론들이 먼저 보도했던 내용들이라고. 일본 언론들은 올림픽 유치에 유리한 고지를 차지하기 위해 거짓말을 했다 치자. 그럼 우리 언론들은 왜 먼저 나서서 그런 거짓말을 지어냈다는 건가. 그래서 “이 대통령이 그런 발언을 한 적이 없다”며 일본언론들의 보도를 전면부인한 청와대의 대응은, 한 두번 본 게 아니다만, 이번에도 역시 구라라는 게 내 결론이다. 여기까진 명백하다.
그런데 난 이 사건을, 지금까지 거론했던 청와대 거짓말 목록에 또 하나의 케이스가 추가된 해프닝 정도로 보지 않는다. 물론 이 정도로 오보를 마구 쏟아내며 끝임 없이 모욕을 주고 있는 일본 언론에, 청와대는 왜 대체 피디수첩에 그랬던 것처럼 소송하고 난리를 치지 않는지 무척이나 궁금하다만, 오늘 이야기하고자 하는 건 그게 아니다. 내가 이 사건에서 주목하는 건 이명박의 발언이 아니라 아소다로의 협조 요청이다. 아소다로의 그 발언을 통해, 이명박을 다루는 일본의 태도가 드러났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충분히 주의깊게 관찰만 한다면. 사실은 이 말을 하려고 이 긴 논평을 일요일 내내 쓰고 있다. 지금까진 구체적 사건과 근거를 기반으로 논증한 거라면, 이제부턴 순수하게 내 생각이다. 무슨 소리를 하려는 거냐. 자, 보자.
아소다로는 뼈 속까지 정치인이다. 증조부 아소 다키치는 일제시대 조선인 강제징용으로 악명 높은 ´아소 탄광´ 주인이자 의원이었고, 부친 아소 다카키치는 후쿠오카 중의원이었으며, 처가의 외조부는 요시다 시게루 전 총리다. 장인 역시 스브키 젠코 전 총리고. 그 역시 아버지 지역구 물려받아 1971년 정계 입문 후 후쿠오카에서 내리 9선을 하며 일본 중의원으로만 26년간 활동했으며 2001년부터는 자민당 총재선거에 3번 연속 입후보했다 실패하고 작년에야 마침내 총리에 오른 인물이다. 이명박이 자신을 정치인이 아니라 여기며 정치 혐오증을 공공연히 드러내는 것과 반대로 아소다로는 정치명문가에서 태어나 평생을 오로지 정치만 하고 살았다. 정치적으로 사고하고 정치적으로 상대를 다루는 데 아소다로가 닳고닳은 프로라면, 이명박은 신출내기 아마추어에 불과하다. 그런 그가 2016년 하계 올림픽 유치를 도와달라고 이명박에게 협조 요청을 했다. 이게 과연 그 자리에서 즉흥적으로 나온 발언일 것인가. 아니라고 본다. 올림픽 개최도시 선정은 대회 개최 7년 전에 열리는 IOC 총회에서 이뤄진다. 2016년으로부터 7년이면 2009년, 바로 올해라는 소리다. 올해 총회는 코펜하겐에서 10월에 열린다. 석 달 밖에 안 남았다. 평창을 놓고 IOC가 개최도시를 선정하기 직전의 우리 분위기를 떠올려 보라. 언론도 난리였다. 아소다로는 당연히 작심하고 말한 거다.
더구나 2018년 동계와 2020년 하계 올림픽 유치를 위해 한국이 나섰다는 걸 모를 리가 없다. 어떻게 모르겠는가. 바로 우리나라가 경쟁 상대국인데. 동일 대륙에서 연속으로 올림픽을 개최하지 않는다는 IOC의 방침으로 인해 일본이 유치하면 우리가 못하는데. 반대로 우리의 올림픽 유치 로비가 강해지면 강해질수록 일본의 동경올림픽 유치는 불리해지는데.
그런데도 우리에게 협조를 요청했다. 이게 무슨 말인가. 말 그대로 해석하자면, 니들은 이번에는 올림픽 하지 말라는 거다. 그 외의 어떤 뜻이 될 수 있나. 둘이 경쟁해 하나가 하면 나머지 하나는 못하는데. 그런 상황에서 자기들 지원해달라는 건 너는 관두라는 거 이외 어떤 뜻도 될 수 없다. 그래서 사실 외교적으로는 대놓고 이런 말 못한다. 이건 저녁 만찬에서 웃으며 농담처럼 이번엔 우리한테 한 번 밀어주시지, 정도로나 할 수 있는 발언이다. 그런데 이걸 공식적으로 대놓고 이야기 했다. 협조해달라고. 난 아소다로의 발언을 보며 그런 생각을 한다.
아소다로는 이명박이 한국 도시들이 올림픽 유치하려고 하는 해가 언제인지도 모를 거라 생각한 게 아닐까. 혹은 동일 대륙에서 연속 개최는 불가능하다는 걸 모를 거라 여긴 게 아닐까. 나아가 이명박이라면 그런 말을 던졌을 때 자국 도시들도 경쟁하고 있다는 사실을 먼저 떠올리기 보다는, 그저 웃으면서 당연히 지원한다는 소리부터 할 공산이 크다고 본 게 아닐까. 그게 예의인 줄 알고. 자기한테 부탁하는 줄 알고 기분 좋아서. 그래서 그 말을 미끼로 던지기로 작정하고 나온 게 아닐까. 그래서 그 미끼를 물면 한국으로부터 일본 올림픽을 지원하기로 했다는 말 끌어냈다고, 이게 정치인 아소 총리의 능력이라고 선전할 기회로 삼으려고. 파격적인 발언으로 대중적 인기를 얻는 방법을 잘 알고 있는 노회한 아소다로라면 능히 그럴 수 있지 않을까. 게다가 일본은 2달 후면 중의원 총선이다. 10퍼센트도 안 되는 지지율에서 헤매고 있는 아소다로 내각과 이미 1년 전 참의원 과반을 민주당에 넘겨준 자민당은, 오는 9월 중의원 선거에서까지 지게 되면, 정권 자체를 넘겨줘야 한다.
물론 이 말에 대한 대한민국 대통령으로서의 정상적인 반응은 “안타깝지만 우리도 올림픽을 유치하려고 하니 서로 정정당당하게 멋진 경쟁 한 번 해 봅시다” 정도다. 한 마디로 우리가 미쳤냐 포기하고 니들 밀어주게 라고 하는 게 당연하고 정상적인 리액션이다. 그리고 그 다음부턴 서로 할 말이 없어진다. 니들은 포기해 그랬더니 미쳤냐 포기하게, 답하고 나면 분위기만 이상해지고 더 이상 서로 할 말이 없게 되어 있다. 그래서 외교에선 이런 말 대놓고 안 한다. 과연 노무현에게라면 이런 말을 대놓고 했겠나. 못 했을 게다. 노무현 스타일, 일본도 아니까.
더구나 계산 없는 외교는 절대 안 하는 게 일본이다. 어차피 상대에게 던져봐야 쫑코만 먹게 되어 있는 말이고, 결국 얻을 게 아무 것도 없는 말을 왜 하겠나. 정상 회담 전에 총리가 어떤 사안을 테이블 위에 꺼내 놓을지 미리 꼼꼼히 체크하지 않았을 리도 없다. 이건 우리도 당연히 한다.
그런데도 이 말을 했다.
둘 중 하나일 수밖에 없다. 아소다로가 대단히 단순무식하거나, 아니면 이명박을 물로 봤거나.
난 이명박을 물로 봤다는 데 한 표 던진다.
일본은 그동안의 경험으로 이제 이명박을 어떻게 다뤄야 하는 지 뻔히 알고 있는 거다. 지금 정리한 몇 사건만 봐도 충분히 드러나는데 외무성처럼 그것만 연구하는 부처의 애들이 이명박이 그 정도라는 걸 왜 모르겠는가. 그저 구경만 하는 우리 같은 일반인도 아는데. 이게 내 생각이다.
하여 이명박의 올림픽 발언에 대한 개인적 결론은, 딱 한 줄이다.
이명박이, 당했다
오늘은 여기까지.
틈새논평 담당 딴지총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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