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최초의 비컨
비컨이란 한 지역의 사람이나 사물이 다른 지역의 사람이나 사물에게 정보를 전송하기 위한 장치를 말합니다.
오늘날의 비컨은 매우 작아서 CIA가 아프가니스탄에서 옷이나 종이등에 심어서 암살 타겟근처로 보내는데에 사용되기도 하지요.
최초의 비컨은 기원전 4세기 그리스의 전쟁발명가 아이네아스 타키투스가 발명하였습니다.
형태는 안에 물이 가득 들은 항아리였는데요.
이 항아리에는 마개가 박혀있는 구멍이 있었고 그 안에는 숫자가 적힌 막대기가 꽃혀있었습니다.
미리 각각의 숫자가 무슨 정보를 의미하는지 약속해놓고
한 군대의 신호병이 멀리 떨어진 다른 군대의 신호병과 신호를 주고받고자 할때
먼저 자신의 횃불을 흔들어 자신이 보낼 신호가 있다고 의사를 표시합니다.
그러면 다른 군대의 신호병이 대답으로 똑같이 횃불을 흔들어 신호를 받을 준비가 되었다고 표시하구요.
그런후 동시에 항아리의 마개를 뽑아 물을 흘려버립니다.
물이 어느정도 빠져나가 자신이 의도하고자 하는 숫자까지 수면이 내려갔을 때 신호병은 횃불을 흔듭니다.
멀리 떨어진 군대의 신호병은 멀리서 흔들리는 횃불을 목격함과 동시에 항아리의 마개를 닫고 그 안에 수면이 막대의 어느 숫자에 도달했는지를 파악합니다.
이런식으로 멀리 떨어진 군대끼리의 신호병은 서로 어떤 정보를 전달할지 알수 있게 됩니다.
2. 최초의 휴대형 컴퓨터
오스본 1은 세계최초의 휴대형 컴퓨터이자 오늘날 랩탑 컴퓨터의 선조입니다.
1981년 오스본 컴퓨터사의 아담 오스본은 오스본 1을 발명하였는데요.
이 검퓨터는 탈착가능한 키보드와 2개의 디스크 드라이버(ODD) 그리고 5인치 크기의 모니터로 이루어져있습니다.
무기는 약 11kg이었으며 메모리를 64kb를 사용하였고 배터리는 내장형이었으며
당시 가격으로 약 1800달러였다고 합니다.
비싼 가격에도 불구하고 최초의 휴대형 컴퓨터는 대성공을 거두며
1년도 안된 사이에 12만 5천대나 팔려나갔습니다.
하지만 오스본 컴퓨터사가 너무 일찍 후속작인 빅센 개발을 발표하면서
상황은 급격히 나빠지기 시작했습니다.
많은 소비자들이 오스본 1의 환불을 요청하기 시작했는데요.
발표한 후속작 빅센의 성능이 스펙상 훨씬 뛰어났기에
오스본 1을 환불받고 빅센을 사겠다는 속셈이었죠.
안타깝게도 후속작인 빅센은 당시 지나치게 고스펙이었던 관계로
최소 1-2년안에 완성될만한 물건은 아니었습니다.
계속된 환불 및 구매 지연때문에 오스본 컴퓨터사는 재정난에 시달렸고
결국 사업철수를 결정하였습니다.
이후 오스본1 은 마케팅 용어로 남았고
오늘날 오스본 효과는 후속작을 지나치게 빨리 발표함으로서
현재 매출을 책임지는 상품판매의 부진과
기존 기종을 구매한 소비자의 신뢰하락을 불러오는 효과를 뜻하게 됩니다.
3. 바이오 디젤과 바이오 연료
오늘날 기후변화 활동가들이 이야기하는 바이오 연료를 들으면
우리는 흔히 최신기술을 동반한 것으로 착각하기 쉽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사실이 아닙니다.
최초의 디젤엔진은 바이오디젤 연료를 사용했습니다.
특히 콩에서 짜낸 대두유같은 바이오연료로 돌아갔죠.
최초의 디젤엔진은 19세기 루돌프 디젤이 발명하였습니다.
그는 바이오디젤과 석유디젤을 명명한 사람입니다.
그는 낙후되고 도시에서 멀리 떨어진 농촌지역의 농부들이
비싼 석유대신 사용할 수 있도록 바이오디젤 엔진을 개발하였습니다.
안타깝게도 루돌프는 1913년 돌연 급사하는 바람에 바이오디젤 엔진의 개발을 진척시키지 못했습니다.
아무도 그의 죽음에 대해 무엇이 원인이었는지 알지 못했지만
대다수는 독일정부가 루돌프가 그의 신기술을 전쟁상대인 영국정부에 팔아넘기지 못하도록
암살하였다고 믿고 있습니다.
루돌프의 미스테리한 죽음 직후
석유 정제기술이 급격히 발달하여
석유는 가솔린,등유,경유 그리고 기타 연료로 정제되었고
디젤 엔진은 이전보다 훨씬 저렴한 가격으로 작동이 가능해졌습니다.
가격경쟁력에서 뒤떨어지게 된 바이오디젤 기술은 점차 도태되어 사양길에 접어들었지요.
4. 최초의 디지털 카메라
1975년 당시 코닥사의 엔지니어인 스티븐 쌔썬은 최초의 디지털카메라를 발명하였습니다.
이 최초의 디지털카메라는 커다란 덩치에 해상도는 0.01메가 픽셀이었으며
메모리카드 대신 디지털 카세트 레코더를 장착하였습니다.
한장의 디지털 사진을 찍는데 무려 23분이 걸렸다고 합니다.
이 신기술은 무척 전도유망해보였지만
코닥사는 이 프로토타입 디지털카메라를 개선하거나 발전시키는데 전혀 흥미를 보이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신기술이 발전하면 기존 코닥사의 필름 카메라 시장 매출을 위협할 것 이 예상되서였죠.
하지만 코닥사는 기술 특허권신청은 착실히 해두어서
오늘날 디지털카메라에 활용되는 다수의 기술이 코닥사 지적재산권입니다.
2001년 코닥사는 자사 최초의 디지털카메라를 출시하였습니다.
2005년에는 최초의 와이파이 카메라를 출시한 회사가 되었죠.
다만 와이파이 카메라는 매출이 저조하여 곧 철수하였습니다.
한편 경쟁사들은 유사기술을 활용하여 같은 해에 SD 카드를 활용하여 와이파이가 가능하도록
만들어진 카메라를 출시하였습니다.
와이파이 카메라 사업 철수는 코닥사에게 심각한 재정난을 불러왔고 2012년 결국 파산신청을 했습니다.
이후 코닥사는 회생을 거쳐 2013년 프린터 관련 물품과 서비스 판매업으로 돌아왔습니다.
오랫동안 기다려주신 여러분에 대한 미안한 마음으로 올린 시리즈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