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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게시물ID : panic_72210
    작성자 : 비키라짐보
    추천 : 47
    조회수 : 2958
    IP : 211.253.***.34
    댓글 : 13개
    등록시간 : 2014/08/28 14:25:44
    http://todayhumor.com/?panic_72210 모바일
    [단편소설] '괴담과의 인터뷰' 下
     
     
    "자 마지막 기회야... 이제 난 바로 나가서 맥아더장군님 모시는 무당을 부를꺼야
     
    맥아더장군님과 토익공부를 할지 아니면 야식으로 간하고 천엽을 곁들인 곱창전골을 먹으며
     
    대화를 조금 나눌지는 네가 판단해! 대답하기 어려우면 저기 세워놓은 치약 뚜껑을
     
    바닥에 떨어뜨리는걸로 대신해도 좋아!!"
     
     
    나는 이렇게 마지막 카드를 던졌다.
     
    이제 그것을 받아들일지 말지는 오롯이 상대방의 몫인 것이다.
     
     
    '괜찮아! 나는 상대가 침을 흘릴만큼 매력적인 카드를 던졌어! 협상이 결렬된다해도
     
    멋진 협상안으로 협상테이블을 흥미진진하게 끌고 갔던 것에 만족하겠어!!!'
     
     
    나는 이 것을 마지막으로 이 덧없는 괴담 탐구에 대한 미련을 던지기로 마음 먹었다.
     
    그리고 약간의 침묵... 그리고 조금 더 긴 고요함을 뒤로하고
     
    변기위에 올려져있던 치약뚜껑이 조용히 바닥으로 떨어진다.
     
     
    "탁월한 선택이다. 너도 곱창전골을... 간과 천엽을 즐길꺼라고 끝까지 믿은 나의 믿음과
     
    새로운것을 두려워하지 않는 너의 도전정신이 만들어낸 최고의 협상이었어!!!"
     
     
    나는 나직히 치약뚜껑을 바닥으로 떨군 그리고 내가 일순간 눈으로 확인한 그 무엇인가를 향해
     
    칭찬의 그러나 사실상 상대를 통해 나 자신을 더 한껏 추켜세워주는 자뻑 화법을 펼친다.
     
     
    "정말 내가 보였어?"
     
     
    나직한 음성이 나의 귓가에 날아와 꽂힌다. 역시 나의 고막은 눈보다 빠르다.
     
    나는 밑장을 빼어 아귀에게 한장, 그리고 정마담에게 한장을 던져주던 만화 주인공의 심정으로
     
    상대 심리의 밑장을 빼어 나직히 던져본다.
     
     
    "보지않고, 아무 확신도 없이 이 난리를 쳤겠어? 아주 잘... 똑똑히 보인다구!"
     
    "신기하네... 등뒤에만 콱 달라 붙게 되어 있어서 나조차 불편한데 내가 보인다니..."
     
     
    나는 상대의 목소리와 어투 그리고 내용으로 미루어 짐작해
     
    상대가 여자이고, 어린편이며, 내 등뒤에 바짝 붙어 있다는 세가지 누구나 바로 알 수 있을
     
    사실들을 분석(?) 해내고, 연쇄살인마를 연구하는 프로파일러처럼 상대를 확신시키려 노력했다.
     
     
    "나보다 어려보이던데? 등뒤에 바짝 붙어 있잖아 그치?"
     
    "맞아... 정말 신기하네... 몇 년 안됐지만 날 봤다는 사람 처음이야"
     
    "나는 뭐랄까 일반인하고는... 음 뭐 좀 다르달까? 아까 말한 그 무당도 나를 처음 보는 순간
     
    탁 알아보더라니까? 맥아더 장군 모신다고해서 첫 마디를 하이 헬로우 아임 파인 땡큐 앤드유?
     
    라고해주니 뭔가 말문이 탁 막힌 표정으로 점괘 안나온다고 당장 썩 꺼지라고 할 정도였으니..."
     
    "그거 진짜 였나보네?"
     
    ""
     
    "맥 아더 장군 얘기... 지어낸 얘긴줄 알았어 황당해서"
     
    "노노! 그때 이후로 나하고도 영적인 교류를 하고 계시는 분이셔! 막말하지마 노하신다구
    맥아더 장군님은 귀에 레이다가 달려 있으셔서 누가 자기 험담하는걸 싫어하셔!"
     
    "당신은 내가 조금도 무섭지 않나봐? 마치 친구랑 대화하는것 같아 그것도 아주 웃기고
     
    괴상한 친구"
     
    "그런 소리 많이 들었지. 보통 한반에 한명씩은 특이한 애들 있잖아... 나는 전교에 한명 있을까 말까한
     
    아니 지역내에서 몇 손가락안에 꼽을 독창적인 마인드를 가진 사람이라고 자부해!"
     
    "그래서 이렇게 이야기 나눠보는거야"
     
    "역시 나의 독창적인 모습에 반했구나? 노노 곤란해~"
     
    "아니 당신이라면 지금 우리가 만난 이야기를 어디가서 떠벌리고 다닌다해도 아무도 믿어주지 않을것 같아서
     
    살아있을때도 그렇지만 나 그다지 주목받는걸 좋아하는 타입은 아니거든"
     
    "오 그 말은 죽었다는걸 본인 스스로 자각은 하고 있다는 이야기네?"
     
    "그렇지... 모르고 있다면 아마 스스로 살고 싶다는 욕망이 강했기 때문에 인정하지 못할뿐 아닐까?"
     
    "아하!! 어떤 괴담에선가 비슷한 이야기를 읽은것 같기도 해. 참 그나저나 일단 약속은 지켜야지...
     
    이렇게 스스로를 밝혔으니, 기쁜 마음으로 무려 17천원이나 하는 곱창전골 소자에 간천엽 3000
    짜리를 추가하여 배달시키는 것이 응당 내가 지켜야 할 도리겠지?"
     
    "... 당신은 정말 특이해... 내가 그런게 먹고 싶어서 당신과 이야기하고 있다고 생각해?"
     
    "아니야? 아니란 말이야? 내가 지금 주문하려고하는 곱창집은 상상정보통, 맛집원정대등을 두루 섭렵한
     
    동네 야식계를 주름잡는 야식계의 잔다르크란 말이지!!!"
     
    "내가 그런 음식을 먹을리 없잖아? 보통은 내가 다른쪽에 관심을 가지고 있을꺼라고 생각하지 않아?"
     
    "다른 쪽이라면 어떤?"
     
    "그쪽의 육체라든가, 영혼, 아니면 피?"
     
    "... 어차피 여자 경험이 없는것도 아니고, 한번쯤 당해줄 용의도 있어, 보다시피 내 영혼은
     
    특이해서 그닥 땡기는 취향은 아닐꺼 같고... ! 나 담배 술 많이해서 피가 혼탁해!
     
    폐암, 간암 내 끝은 늘 그거라고 생각하는 사람이야 날 위해서가 아니라 당신을 위해서
     
    그닥 권하고 싶지 않네... 그러니까 난 곱창전골로 합의를 봤으면 해!!"
     
    "그 권유 받아들일께... 거짓말 같진 않으니까 물론 곱창전골도 사양하겠지만"
     
    "후회할꺼야! 역삼동 불곱창을 만나지 못한 당신 소중한 것 하나를 잃고 계신겁니다!!
     
    좋아 그렇다면 나가서 차라도 한잔 마시는건 어때? 진지하고 깊은 대화는 역시 차지...
     
    내가 오늘 좋은 홍차를 사왔다구, 우유를 넣어서 밀크티를 만들어줄께!"
     
    "차라... 그런걸 딱히 마시거나 하는 행위를 하진 않지만 그걸로 곱창전골 이야기를 그만둬 준다면
     
    나쁘지 않겠다고 생각해, 단 나가는건 안되니까 만들어서 가지고 오는게 좋겠어"
     
    "! 나 알아 나 알아! 이를테면 전문용어로 지박령이라고 하는거구나? 그치 맞지?"
     
    "날 뭐라고 부르던 그건 뭐 상관없지만, 이 곳 밖으로 나가지 않는건 사실이야"
     
    "이야... 맞네 지박령, 나 뭔가 좀 대화가 통하지 않아? 하하하하"
     
     
    나는 천천히 몸을 돌려 욕실 바깥으로 향했다.
     
    상대가 누구던간에 뭐랄까? 이야기가 통하는 제법 재미있는 친구를 만난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문득 예전에 읽었던 앤 라이스의 소설 '뱀파이어와의 인터뷰'가 떠올랐다.
     
    나는 지금 어쩌면 '괴담과의 인터뷰'를 하고 있는지도 몰랐다.
     
    물론 정확히 말하면 '내 원룸 오피스텔 화장실에서 거주중인 어느 여성 지박령과의 대담'
     
    보다 정확한 명칭이기는 하겠지만 뭐 그런 소소한 부분이 중요하다고는 생각지 않았기에
     
    새로 산 인도산 홍차에 따듯하게 뎁힌 우유와 꿀을 넣어 내 생애 다시 없을
     
    가장 맛 좋은 밀크티를 두 잔 만들어 서둘러 화장실을 향했다.
     
     
     
    "자 마드모아젤... 세상에서 가장 달콤하고 따듯하면서 또 영혼까지 뎁혀줄 맛좋은 밀크티를 가져왔습니다"
     
    "내가 등뒤에 있다고 말하지 않았나?"
     
    "아 실수 이 뭐 저 어떻게... 등 뒤로 넘겨줘야 되나? 이 잔 이거 비싼거라구 한정판이야!!"
     
    "위쪽으로 들어서 넘기기보다는 옆쪽으로 해서 넘겨주는게 좋을 것 같아 그리고 걱정마
     
    무슨일이 있어도 절대 떨어뜨리진 않을테니까"
     
    "오오..."
     
     
    나의 손끝에서 놓여진 커피잔이 무언가 보이진 않았지만, 아무 느낌도 없이 바닥에 떨어져 깨지는
     
    그 흔한 소리도 없이 고요하다.
     
    이것이 무슨 말이냐 하면...
     
    요컨데 내가 아는 사람들중 괴담의 대상인 영혼에게 밀크티를 건넨 최초의 인간이 바로 나란 말씀이었다.
     
    기네스북 위원회에서 부디 나의 이 기묘한 신청을 꼭 받아주어야 할텐데... 라는 생각을 할 즈음
     
    그녀가 말했다.
     
     
     
    "잘은 모르겠지만 따듯해보여... 여긴 춥거든"
     
    "아놔! 내일 힛터 설치할게"
     
    "그런 뜻은 아니야"
     
    "뭔가 심정적으로 춥고 외롭다는 뜻?"
     
    "비슷한 부분도 있고 다른 부분도 있어"
     
    "어렵네... 그나저나 어쩌다가 이곳에 머물게 된거야?"
     
    "그거야 이곳에서 죽었으니까"
     
    "여기서 죽으면 그냥 여기 있는거야? 사람들 모두 죽게되면 자신이 죽은 그 장소에 있게 된다는 뜻?"
     
    "... 그럼 세상 여기저기 어디에나 나같은 존재가 꽉 차있어서 포화상태가 된다구"
     
    "그래? 그럼 뭐지? 너는 왜 여기 있는거야?"
     
    "다들 어디론가 떠나간다고 생각해... 딱히 나와 같은 다른 누군가를 본적이 없으니까 말이야
     
    살아있을때도 외로웠으니 죽고 난 뒤에도 날 챙겨줄 누군가가 없어서 아니면 나란 존재를
     
    그냥 잊어버리고 놔두었을지도 모르지... 사실 이유는 나도 몰라 그냥 그 날이후 여기에
     
    남겨졌을뿐"
     
    "... 어디에선가 본 괴담과는 달리 안내인이라든가 저승까지 데려가주는 저승사자 같은건
    실제하지 않는다는 얘기네?"
     
    "말했지만 알 수 없어, 모두들 어디론가 데려가주는 이가 있을지도, 없을지도 몰라
    있는데 날 깜빡하고 간건지, 아니면 그런게 없어서 다들 그 자리에 있는건지
    나로서는 알 수 없어, 그저 난 여기에 있고, 당신과 이야기하고 있고,
     
    앞으로의 일도, 무엇을 해야하는지도 모를뿐이야"
     
    ".. 막막하네... 걱정하지마, 만약 내가 죽게된다면, 제일 먼저 신속한 저승길을 위한
     
    가이드라든가, 저승길 히치하이커를 위한 안내서 같은 책자를 먼저 저술할테니까 말이야
     
    출간하자마자 곧바로 저세상 베스트셀러가 될꺼야 아마.. 하하하 인세가 나오면 내가
     
    한턱 쏠게!! ! 메뉴는 불곱창에 간 천엽이야!"
     
    "하하하하!"
     
    "~ 잘 웃네 잘 웃어"
     
    "이렇게 웃은거 정말 오래간만이야 그 불곱창 얘기 좀 안하면 안돼? 징그러워서 전에도 한번 먹어본 적
     
    없다구 하물며 생간에 천엽이라니"
     
    "하아~ 고전 설화에서는 도깨비들이 생간을 그렇게 좋아했다는데, 전통의 맥이 끊기네 끊겨...
     
    그치만 뭐 괜찮아 내가 있으니까! 난 죽으면 머리에 뿔을 달아달라고 할 작정이야
     
    방망이도 하나 들고 크크크"
     
    "내가 한가지는 정확히 본거 같아"
     
    "?"
     
    "어디가서 나와 만났던 이야기를 하고 다녀도 절대 믿어줄 사람이 없을꺼라는 거"
     
    "아 이런... 너무 오버했나? 그나저나 이런거 물어봐도 되는지는 모르겠는데
     
    ...가 죽...?"
     
    "너무 긴장하며 물어보지 않아도 돼. 제일 궁금한건 뭐 그런 거겠지
    여러가지야 성적, 부모님의 강요, 친구들과의 불화, 우울증"
     
    "마지막의 넌 학생이었구나? 학생이 왜 이런 오피스텔에서..."
     
    "... 집하고 학교, 학원과의 거리가 멀어서 학원이 늦게 끝나는 날은 여기에서 자고
     
    0교시 수업을 들어러 가야하니까 월수금은 이곳에 있었어"
     
     
    나는 내가 이 오피스텔을 계약할 당시 좋은 위치에 이렇게 깨끗한 방이
     
    저렴하게 나온 이유에 대해 묻는 나게 주저하던 부동산 중개업자의 얼굴이
     
    문득 떠올랐다.
     
     
    "행운 중개소 김사장 개새끼!!! 내가 얼마나 고마워 했는데"
     
    "?"
     
    "... 아니야! 비지니스적 문제야 비지니스 하하하"
     
    "한심하다고 생각하지?"
     
    "아니야! 자고로 학생들의 성적고민, 부모님과의 갈등, 친구들과의 불화는
     
    아주 오래전부터 인간의 근원적 불행을 다룬 이야기의 단골 손님이니까!
     
    그나저나 지금 네 모습은 어때? 죽게 되면 어떤 외형적 변화도 같이 와?
     
    이를테면..."
     
    "이를테면 뭐? 괴기영화에 나오는 괴물이나 귀신같은 모습 말하는거야?"
     
    "... 그렇지...?"
     
    "글쎄 지금의 나는 어떤 모습일까? 거울에 비치는것도 아니고, 내가 나를 볼 수 있는것도 아니니까
     
    나는 잘 모르겠어, 저기 샤워부스가 있던 자리가 원래는 욕조가 있던 곳이고,
     
    그곳에서 손목을 그었으니까 아마 핏기 없이 마른 몸이 아닐까?
     
    나보다는 당신이 더 잘 알잖아? 나는 어때? 나를 봤다고 했잖아!"
     
    "!~ 그게 뭐랄까? 순간적으로 스쳐지나가는 어떤 눈빛 어떤 단편적인 모습을 본거라
     
    나도 정확히 뭐라고 얘기할 수는 없어 그리고 그 순간 너를 정확히 봐야 겠다
     
    내 눈과 기억속에 담아두어야 겠다는 생각보다는 와! 놀라운데 어메이징 서프라이즈
     
    이런 생각 뿐이었으니까"
     
    "역시 날 봤다는건 거짓말이었구나, 볼 수 있을리 없어 내가 앞으로 나가려해도
     
    이안에 들어오는 누군가의 등뒤에 바짝 붙어 움직일수 없으니까 말이야"
     
    "뭐 내가 너를 본것인지, 아니면 간절히 바라는 내 마음이 만들어낸 착각인지는
     
    나도 모르겠어 하지만 지금 이순간 중요한건 우리가 대화를 나누고 있고,
     
    너와 나 모두 이 상황에 흥미를 지니고 있다는 거야"
     
    "그건 그래"
     
    "죽을 떄의 넌 어땠어?"
     
    "?"
     
    "그래 어떤 기분이었는지, 죽고 난 뒤엔 어땠는지가 궁금해"
     
    "글쎄... 그냥 떠나고 싶다. 훌훌 털어버리면 모든것이 끝나지 않을까 하는 마음이 컷던것 같아
     
    더 이상 공부를 해야한다는 강요도 없을꺼고, 내가 사랑하던 엄마 아빠가 성적 때문에 갑자기
     
    악마같은 모습으로 불같이 화를 내는것도, 나를 괴롭히던 친구들도 더 이상 보지 않아도 된다는
     
    그런 기대감 같은것도 조금 있었어... 하지만, 마지막 순간은 그냥 아무것도 없어"
     
    "아무것도?"
     
    "어떤 감정의 응어리도 그냥 다 풀어지는 기분이야 그냥 아무것도 없는 그냥 공허함"
     
    "어렵네"
     
    "확실한건 어떤 미안함 같은건 남는것 같아, 그러나 실제로 홀가분하다던가, 마음이 편해진다던가
     
    하는 기분은 없어"
     
    "자살은 지양해야겠네... 나도 오늘 대머리 부장의 훈계를 듣고나서 0.05초정도 고민을 했었거든"
     
    "그래 하지 않는게 좋겠어, 특히나 이 오피스텔 화장실에서는... 당신도 여기에 머무른다면
     
    꽤나 시끄러울것 같거든"
     
    "하하하하 말 벗도 되고 좋지 않을까?"
     
    "지금이라도 만들어줄까? 내 말 벗?"
     
    "... ... 노노노노 급히 생각해봤는데 지금 당장은 좀 무리인거 같아 무리데스"
     
    "농담이야 뭘 어떻게 할 수 있는 입장이었다면, 벌써 뭔가를 하고 있겠지 그저 바라보고
     
    남은 사람들을 응시하는 것이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전부니까"
     
    "조금 안심이 되네... 그나저나 어머니 아버지를 보고싶진 않아?"
     
    "......"
     
    "괴롭혔던 친구들이라든가..."
     
    "......"
     
    "... 너무 보고싶어... 엄마도... 아빠도... 날 괴롭히던 친구들까지......"
     
    "아 미안... 아픈데를 건드렸네"
     
    "당신에게 응답한거... 그냥 당신이면 어디가서 떠벌려도 아무도 믿지 않을것 같아서
    그랬다고 말했지만, 사실은 나 외로웠는지도 몰라... 매일 같이 학교, 학원, 그리고
    이 아무도 없는 오피스텔에서 하루하루를 보내는게 너무 힘들었어
    그래서 죽고 싶었는지도 몰라... 아무도 나와 이야기해주지 않았어
     
    엄마는 공부, 공부만 이야기하고, 아빠는 아빠가 나온 대학에 가야한다는 이야기만 해
     
    학교나 학원 선생님들은 내 이야기를 듣고 싶어하지 않아 그저 수업만 하지
     
    친구들은 모두 날 경쟁자로 생각해, 그 애들과 한번도 제대로 이야기를 나눈적이 없어
     
    이 오피스텔에서의 난 늘 거울만 보며 이야기했어 나 자신한테
     
    누군가와 이야기하고 싶다고, 누군가에게 내 마음을 털어 놓고 싶다고
     
    나 너무 외롭다고...
     
    누가 내 이야기를 좀 들어달라고...
     
    누군가 나를 좀 따듯하게 안아달라고... "
     
     
    두 눈으로 볼 수 있는 상대가 아니었기에, 정확히 알 수는 없었지만, 나의 오감과
     
    본능은 그녀가 아니 그 아이가 흐느끼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 아이가 이 곳에서 생을 마감해야 했던 이유도, 그 아이가 이 곳을 떠나지 못하고
     
    남아 있어야 하는 이유도 바로 그 것 때문이었겠지...
     
    이 가슴깊이 남은 응어리가 그 앨 이 좁은 공간에 묶어두었던 거겠지...
     
     
    "힘내..."
     
    "미안..."
     
    "? 뭐가?"
     
    "나 이상해... 뭔가 힘이 없고, 가벼워지는듯한 기분이야"
     
    "뭐지? 뭐야! 슬퍼서 그래?"
     
    "아니... 조금 달라 죽는 순간까지 느끼지 못했던 평온한 기분이 지금 들어"
     
    "아 뭐야! 그러니까 이게 그 전문.. 용어로 성불? 뭐 그런건가?"
     
    "모르겠어! 중요한건 나 지금 웃고 있어 내 얼굴 안보이겠지만 나 마음이 조금 편안해졌어"
     
    "~~ 이런 그럼 가는거야? 어디 하늘위로? 아니면 뭐 어딘가로 빨려들어가는 기분인가?"
     
    "모르겠어 그냥 편안해... 그리고 따듯해..."
     
    "오 축하해~ 뭔가 응어리같은게 풀어지니까 성불하는구나!! !!! 잘됐어!!!
     
    엄마 아빠도 기뻐하실꺼야"
     
    "그럴까? 날 원망하진 않으실까?"
     
    "그럴리가! 안녕! 이젠 볼 수 없겠네... 반가웠어"
     
    "나도 반가웠어 그리고 고마워"
     
     
    그 애의 목소리가 점차 희미해져간다. 하지만 나는 그애의 마지막 말을 들었다.
     
     
    "고마워"
     
     
     
     
     
     
     
     
     
     
     
    "민호야 정신차려! 민호야!!!"
     
     
    정신이 든 것은 한 낮의 무더위가 창문도 없는 내 원룸 오피스텔의 비좁은 화장실을 엄슴한
     
    정오무렵이었다.
     
    무단결근한 회사에서 대머리 부장님의 성화에 못이겨 여기저기 연락해본 경리담당 미스김이
     
    어머니와 통화를 했다고 한다.
     
    어머니는 혹시나 하는 마음에(사실은 전날 잔뜩 술을 퍼마시고 뻗어있을게 뻔한 망나니 아들놈을
     
    깨우고 혼쭐을 내주겠다는 의도로) 오피스텔을 찾았고, 역시나 술에 취해 쓰러진건 아닌가 싶었지만
     
    술냄새가 전혀 나지 않았기 때문에 실수로 넘어져 의식을 잃은듯 보이는 나를 깨우셨다고 했다.
     
     
    "그러게 혼자 살지말고 집으로 들어오라니까 이놈아!!!"
     
    "아 엄마 싱글 라이프 몰라요? 아놔"
     
    "전화도 안 받고 회사에서는 연락이오지... 이게 뭐니 이게"
     
     
    어머니의 말에 나는 문득 화장실 구석에 세워두었던 내 휴대폰이 떠올랐다.
     
     
    "그래 맞아 녹화!! 녹화해놨지!!!!"
     
     
    그랬다. 지난밤 머리에 샴푸를 하기 전 나는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휴대폰 카메라를
     
    동영상으로 바꾼뒤 녹화 버튼을 눌러놓았던 것을 떠올린것이다.
     
    휴대폰엔 역시나 회사 경리담당 미스김의 부재중 전화 5통과
     
    엄마의 부재중 전화 2통이 표시되어 있었지만 나는 그런 사소한 것들은 넘겨버리고
     
    곧바로 휴대폰 카메라 갤러리를 열어보았다.
     
     
     
    "!!! 있다 있어!!! 동영상"
     
     
    휴대폰에는 장시간에 걸친 녹화동영상 파일이 하나 자동 저장되어 있었다.
     
     
    "오옹!! 인류의 해묵은 숙제를 풀고 사후세계와 종교사적 관점을 모두 뒤엎어줄
     
    세기의 증거가 바로 내 손안에... 오오오!! 고맙다 학생! 고맙다 아이야!! 성불하여라!!"
     
     
    "아니 얘가 갑자기 왜 이래? 너 괜찮니? 화장실 바닥에 넘어지면서 어디 정신이라도 다친게야?"
     
    "어머니!! 자 놀라지 마십시오 이 아들이 발견한 세기의 비밀!! 영혼과 사후세계!
     
    죽은자와의 대담!, 괴담과의 인터뷰!!!"
     
     
     
    나는 기쁜 마음으로 어머니를 끌어 안으며, 동영상의 플레이 버튼을 켠다.
     
    동영상은 즉시 플레이 되었고, 내가 샴푸를 준비하는 모습으로 시작되었다.
     
     
    "뭔데... 니 머리감는 동영상을 왜 날 보여줘"
     
    "아 엄마 쫌! 쫌만 더 봐봐요 이제 깜짝 놀랄테니까!"
     
     
    나는 엄마를 다독이며, 침을 꿀꺽 삼킨 채 영상에 집중한다.
     
    영상속의 나는 곧 샴푸를 잔뜩 뿌려 거품을 낸 후 특유의 모션으로
     
    샴푸 상태에서의 뒤돌아보기 공격을 열심히 펼치고 있었다.
     
     
    "아니 머리 감다말고 왠 뻘짓거리야"
     
    "아 진짜 쫌만 더 진득하게 기다려봐요 이거 살짝 헹구고 난 다음부터가 하이라이트라고
     
    엄마 영광인줄 알아요 이걸 처음으로 보는 사람이라니까 엄마가!!"
     
    "아니 난 도대체가..."
     
     
    나는 진지한 표정으로 엄마를 나무라며, 이제 곧 다가올 하이라이트 부분을 집중했다.
     
     
    "어어... 어머 너 이러다가 기절한거니?"
     
     
    엄마는 황당하다는 표정을 지으셨다. 그도 그럴것이 영상속의 나는
     
    마지막 뒤돌아보기 공격을 취하면서 미끄러운 바닥을 헛디디며 욕실 세면대에 머리를 때려박고
     
    나자빠지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 뭐야... 마지막에 과하게 몸 틀다가 들이 받았네... 그러고보니 이마에 혹도 있고...
     
    아 안돼!!! 인류의 역사적인 첫 발이... 영혼과 사후세계에 대한 지침서가!! 안돼!!
     
    그럴리가 없어 돌려보자 녹음된거라도 있을꺼야!! 돌려 돌려"
     
    "얘 너 병원한번 가볼래?"
     
    "아니 엄마 내가 딱 등뒤에서 노려보던 영혼 아니 그 학생애하고 대화를 하다가 막... 아우"
     
    "아니 뭐 끝까지 너 누워있는 모습밖에 없는데 뭔 소리야 너 헛거 봤니? 어디 엄마랑
     
    한의원이라도 갈래? 니가 기가 쇄해서 그래, 그러니까 혼자 살겠다고 이러지 말고
     
    집으로 들어가자니까? 어휴... 엄마가 답답하다 진짜!"
     
    "아니 진짜 답답한거 나라니까 그러네 아우... 뭐야... "
     
     
    안타깝게도 동영상은 아무 소리도 없고, 그저 쓰러진채 의식을 잃은 나의 등만을 비추고 있었다.
     
    나는 애써 엄마를 달래 집으로 보내고 나서도 한참을 그 자리에 주저앉아 동영상을 다시 보고
     
    또 다시 보았지만, 내가 만났던 그애와 그 긴 대화는 그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았다.
     
     
    "꿈인가?"
     
     
    그 후 내 오피스텔에서는 그 일 때문인지, 다시는 머리를 감든 샤워를 하든 등뒤에서 느껴지는
     
    으스스한 기분따위는 느껴지지 않았다.
     
    하지만 포기하지 않은 나의 으름장에 내 오피스텔 앞 행운 공인중개사 김사장은 실제로 내가 계약한
     
    그 오피스텔에서 자살한 학생이 있었다는 사실을 실토하긴 했지만,
     
    그것이 내가 겪은 놀라운 사실의 증거라고 하기엔 너무도 부족했다.
     
    그것이 우연이든, 아니면 놀라운 사실이든 나는 공인중개소 김사장을 닥달해 알아낸 전 임대자의 주소를
     
    알아내 어쩌면 내가 만났을지도 모를 그 아이의 부모님 집을 찾아갔다.
     
     
    "여기가 너에 집이었겠구나... 지금은 좀 편안해졌니?"
     
     
    나는 지금 또 하나의 괴담을 만들어냈다. 그것을 믿든 안 믿든 내가 당신에게 디밀어볼 만한
     
    그 어떤 증거는 하나도 남아 있지 않다.
     
    모든것은 내 머리속에 있고, 그것이 진실인지 꿈인지조차 분간할 수 없다.
     
    하지만 내가 그 아이와 공유했던 많은 이야기와 감정들은 지금도 내 마음속에 남아있다.
     
     
    지난밤 걸려온 엄마의 전화와 함께
     
     
    "얘 너 기절한거 찾으러 간날 화장실에 있던 커피잔 그거 니가 깨먹을까봐
     
    엄마가 찬장위에 두었어 어디갔냐고 찾지말고 젤 위에 찬장 열어봐"
     
     
     
     
     
    "걱정마 무슨일이 있어도 절대 떨어뜨리진 않을테니까"
     
     
     
     
    "정말 깨뜨리지 않았네..."
     
     
     
     
     
     
     
     
     
     
    2ch 뭐 이런거 번역 아니고 자작 소설입니다.
     
    괴담이긴 해도 전혀 무섭진 않다는게 함정이지만
     
    영혼도 나오고 공포장르라고 생각해요.
     
    재밌게 보셨다면 전에 올린 '그게 나의 인생이었다' 시리즈도 한번 읽어보시길 권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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