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2년 3월 2일, 경상남도 고성군 개천면 옥천사에서는 윤회가 분명히 있다는 것을 입증해 보인 한 사건이 일어났습니다.
이 절에서 나무를 하던 부목 진재열이 몇 사람의 일꾼들과 함께 산에 나무를 베러 갔다가, 굴러내리는 통나무에 치어 질식사를 하였습니다.
시체는 즉시 옥천사로 옮겨졌으나, 진재열의 영혼은 옛 고향 집으로 갔습니다. 배가 많이 고픈 상태에서 죽었기 때문에, 그의 혼은 집에 오자마자 길쌈을 하고 있는 누나의 등을 짚으며 밥을 달라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이게 어찌된 일입니까? 어머니와 함께 길쌈을 짓던 누나가 갑자기 펄펄 뛰며 머리가 아파 죽겠다는 것이었습니다. 누나가 아프다고 하자 면목이 없어진 그는 한 쪽에 우두커니 서 있었는데, 어머니가 보리밥과 풋나물을 된장국에 풀어 바가지에 담아 와서, 시퍼런 칼을 들고 이리저리 내두르며 벼락같이 고함을 지르는 것이었습니다. ‘네 이놈 객귀야, 어서 먹고 물러가라.” 기겁을 한 재열은 “그래도 절 인심이 좋구나” 생각하며 옥천사로 올라왔습니다.
얼마를 오다 보니 아리따운 기생들이 녹색 옷에 홍색 띠를 두르고 장구를 치며 노는 모습이 가히 볼 만하였습니다. 더군다나 한 젊은 여자가 다가와서 같이 놀자며 옷자락을 잡아 끌었습니다. 그 때 재열은 “환락에 빠진 여인들을 가까이 하지 말라”는 스님의 말씀이 떠올라 다시 발걸음을 옮겼습니다.
절문 앞에 이르렀을 때, 평소와는 달리 수건을 머리에 질끈 동여맨 수십명의 무인들이 활을 쏘아 잡은 노루를 구워 먹으면서 함께 먹을 것을 권하였습니다. 재열은 이를 간신히 뿌리치고 옥천사의 자기방으로 돌아왔고, 그와 동시에 죽었던 재열은 다시 살아났습니다.
그런데 조금 전에 집에서 보았던 누나와 어머니는 물론 여러 조객들이 자기를 앞에 놓고 슬피 울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영문을 알 수 없었던 재열은 울다 말고 기절초풍을 하는 어머니에게 물었습니다. “어머니, 왜 여기 와서 울고 계십니까?” “네 놈이 어제 오후 산에 나무하러 갔다가 죽었지 않았느냐! 그래서 지금 초상을 치를 준비를 하고 있었다.” 세상은 진정 일장춘몽이었습니다. 하도 어이가 없어 재열은 다시 어머니에게 물었습니다. “어제 누나가 집에서 아픈일이 있었습니까?” “그럼, 멀쩡하던 년이 갑자기 죽는다고 하여 밥을 바가지에 풀어서 버렸더니 다시 살아나더구나.” 재열은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그리고 잠시 후 기생들이 놀던 곳을 가 보았습니다. 그랬더니 비단 개구리들이 물장구를 치며 놀고 있지 않겠습니까? 또 절 문 앞의 무인들이 활 쏘던 곳으로 가 보니 벌들이 집을 짓느라고 날아다니고 있었습니다.
그제서야 비로소 무릎을 쳤습니다. “윤회생사가 바로 이러한 것이로구나. 내가 만일 그 기생 틈에 끼었으면 나는 분명 비단 개구리가 되었을 것이요. 무인의 틈에 끼었으면 벌 새끼가 되고 말았을 게 아닌가?” 이 때 재열은 윤회전생을 분명히 깨달았고, 그 뒤 열심히 불도를 닦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