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에겐 딱 하나 모자란 것이 있습니다 “50년 역사가 개 같다고 해도 5천년의 빛을 가릴 수는 없다” 유명하다는 돈까스집을 찾았습니다. 요즈음 통살코기에 튀김가루를 입혀 내는 돈까스는 일본식 돈까스로 예전의 고기를 망치로 두드려 넓고 얇게 퍼진 돈까스의 맛과는 사뭇 다릅니다.
이 집은 바로 그 옛날의 돈까스를 파는 집으로 스프는 묽디묽고, 넓은 접시에 마카로니 조금, 절인 콩 조금, 채 썬 양배추에 케첩과 마요네즈를 섞은 소스를 뿌려 내오는 것이 학교 다닐 때 아주 가끔씩 먹어보던 그 모양과 똑같아 절로 미소가 흘렀습니다.
그런데, 한 가지 눈에 띄는 건 풋고추.
‘하∼ 돈까스에 풋고추라…….’
고거 참 재밌다 생각하면서, 격식을 따지는 사람은 이걸 보고 쓴웃음을 짓겠구나, 하고 생각했습니다. 그러고 보면 가끔 흠칫 놀랄 때가 있습니다. 맞춤법부터가 그렇습니다. 국어의 맞춤법이 틀리는 건 뭐 그럴 수 있는 일이고, 영어의 스펠이 틀리는 건 무슨 교양인으로서의 체통을 잃는 것처럼 얼굴 빨개집니다.
한복 입는 방법은 몰라도 양복 재킷의 투 버튼이냐 쓰리 버튼이냐에 따라 어떻게 단추를 채우느냐는 꽤나 큰 관심거리입니다.
언론에서도 가끔씩 하는 얘기입니다만, 우리나라 관광객들 관광명소에서 자기이름 새겨 넣느라 혈안이라고 얘기들 합니다. 제가 독일 하이델베르그에서 어느 고성에 들러 목격한 바에 의하면 물론, 한국인의 이름이 있습니다. 하지만, 일본사람, 미국사람, 호주사람, 다들 그 오랜 역사적 유물의 벽에다 온통 자기이름이나 흔적을 남겨 놓았습니다.
또, 우리나라 사람들 너무나 자기편의 위주로 산다고들 합니다. 독일의 어느 대도시. 커다란 할인매장에서는 손님들이 쇼핑을 끝내고 카트를 아무데나 방치를 해서 그 카트 정리하는데 필요한 인력 때문에 만만찮게 경비를 지출했다고 합니다.
결국, 카트를 동전을 집어넣고 가져가서 다시 제자리에 가져다 놓으면 동전을 환불해주는 시스템을 도입, 비용을 많이 줄였다고 합니다.
프랑스의 택시는 불친절하기로 유명합니다. 조금 지리를 모르는 외국인이다 싶으면 빙빙돌아 요금 더 받아내는 건 부지기수로 있는 일이고 운전을 하면서 담배를 피우고 그것도 모자라 창밖으로 꽁초를 그냥 버립니다. 왜 그렇게 함부로 버리냐고 물으면 운전사 말하기를 ‘내가 낸 세금이 청소원들의 용역경비로 일부 쓰일텐데, 그들도 일거리가 있어야 하지 않느냐’고 참, 뻔뻔하기도 하고 자신감 있어 보이기도 합니다.
또, 이런 얘기들도 합니다. 아프리카의 오지에 사는 사람들. 그들더러 ‘미개인’이라고 합니다. 하지만, 누구의 시각에서 그들이 미개인일까요? 미국이나 유럽 식의 장례절차가 아니라고 해서 티벳의 장례풍습을 미개하다 말 할 수 있을까요?
티벳에선 사람이 죽으면 제례를 지낸 후 죽은 이의 살을 발라 짐승들이 먹도록하는 장례 풍습이 있습니다. 이들은 죽은 다음의 육신은 덧없다고 생각하는 겁니다.
언제부터인가 우리의 가치관은 서양인의 그것에 맞춰져있습니다. 밥상에 찌개를 올려놓고 아버지부터 아이들까지 숟가락을 한데 담그며 먹는 일을 불결하게 생각하게 되었고, 피아노 소나타에 비해 가야금 산조는 후진 음악이며, 아이들에게 한국무용보다는 발레를 가르치길 원합니다.
열등하거나 우등한 문화가 따로 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누구의 어떤 시각으로 그 문화를 보느냐에 따라 그 평가가 달라질 순 있지만 말입니다. 하지만 그 판단이 절대적이진 않습니다.
세계문화유산 한글 그러니 ‘우리는 안돼’하는 식의 패배주의 가득 찬 생각으로 우리를 보지 말자는 겁니다. 제 생각에 지금껏 살아있는 문화는 다 나름대로 훌륭한 문화입니다. 다들 자기들의 문화를 미화하고 포장해서 세계에 알리려 혈안이 되어있는데 우리만이 주저앉아 ‘안돼, 안돼’라고 자책하는 건 아닌지, 아쉽습니다.
굳이 5천년을 끌어대지 않더라도 우리는 참 잘난 문화를 갖고 있습니다. 서양인의 시각이 아닌 우리들의 시각으로 본다면 말입니다. 그들이 우리를 이해하고 받아들이기에 우리가 살아온 세월이 너무 길기 때문입니다.
일본이라는 나라가 칼로 흥하고 칼로 망하며 이합집산하던 그 때에, 유럽에선 성주가 마을의 시집가는 모든 처녀의 처녀성을 빼앗는 것을 당연한 권리로 여길 때, 이 땅에선 仁 義 禮 智 信의 다섯 가치를 토대로 국가의 통치이념을 세웠던 우리들 문화.
남이 뭐라 하기보다 우리가 우리 스스로 우리의 문화를 퇴물 취급하고 창고에 쌓아놓고 먼지를 뒤집어쓰게 한 건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참 잘났고 따뜻한 마음을 지닌 우리민족에겐 딱하나 모자란 것이 있습니다. 자신감, 그것이 예의인 양 너무나 자신을 낮추려는 겸양. 이제는 우리 잘났다 해도 됩니다. 자신감만 가진다면 우리민족은 세계제일입니다.
“50년 역사가 개 같다고 해도 5천년의 빛을 가릴 수는 없습니다.”
민족주의자도 아니면서 늘 민족과 문화라는 화두에 필요이상으로 핏대를 올리는,
By 해질녘 바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