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에게 들은 이야기다. 동아리 친구에게 억지로 끌려나온 미팅은 예상대로 머릿수나 채워주기 위한 것이었다.
같이 나온 친구 2명은 미팅이라고는 하지만 애초에 커플끼리 참석했다. 게다가 상대편 남자들도 그냥 머릿수나 채우려고 나온건지, 전혀 K의 취향이 아니었다.
[2차로 노래방이라도 가자.] 는 친구들의 제안을 거절하고, K는 술집을 나와 역으로 향했다. 바로 그 때, 뒤에서 누군가 말을 걸었다.
[2차는 안 가니?] 같이 미팅에 참가했던 S였다.
미팅에서 처음 만났지만, 같은 학교 선배라기에 말을 몇 마디 섞은 사람이었다. 그녀는 상당히 미인이라, 남자들의 주목을 한껏 끌었었다.
그 S가 둘이서 한 잔 하자는 제안을 하니, K로서도 딱히 거절할 이유가 없었다. 그렇게 두 사람은 같이 역 앞의 술집으로 향했다.
[K씨, T현 출신이라고 그랬지?] 망해버린 미팅을 안주 삼아 떠들고 있던 와중, S가 물었다.
[아까 자기소개할 때 들었어. 여름방학 때는 집으로 돌아가는거야?] 마침 모레부터 여름방학이다.
[어떻게 할지 아직 잘 모르겠어요. 집까지 가는데 워낙 돈이 많이 들어서..]라고 K가 대답했다. 그러자 S는 [마침 T현에서 하이킹 코스 청소하는 자원봉사 프로그램이 있는데, 같이 참가하는 게 어때?] 라고 물었다. S가 가입한 캠핑 동아리가 T현에서 바베큐 캠핑을 계획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그 하이킹 코스 사이에 있는 캠핑장과 계약을 맺고, 청소를 해 주는 대신 캠핑장을 무료로 쓴다는 것이었다. 그 뿐 아니라 바베큐 재료까지 대 준다고 했다.
[어때? 자원봉사 개념이라 따로 돈은 안 나오지만, 내 차로 가면 교통비는 굳잖아. 뭐, 캠핑이 끝나면 우리 동아리도 따로 일정이 있으니까 돌아오는 건 K 네가 알아서 어떻게 해야하지만 말이야.] 사실 T현의 친가에는 2년 가까이 가지 않은 터였다. 왕복하는데 워낙 돈이 많이 들기에 올해도 딱히 돌아갈 계획은 없었다.
하지만 가는 게 공짜인데다, 캠핑도 꽤 재미있을 것 같다. 솔직히 오랜만에 집에 돌아가 가족과 만나고 싶다는 생각도 컸다.
[그럼 저도 가 볼까요?] K가 대답하자, S는 웃으며 말했다.
[그래. 분명 재미있을거야. 그럼 모레 아침 7시에 학교 앞에서 만나자.] K는 휴대폰 번호를 교환하고 S와 헤어졌다.
다음날, 오랫동안 집을 비우니만큼 청소와 세탁을 한 뒤, 캠핑 준비를 하고 있을 때였다. 휴대폰으로 전화가 왔다. 집에서 온 부모님 전화였다. 오랜만에 집에 간다는 말에, 어머니는 무척 기뻐하셨다.
[일단 내일은 근처에 있는 캠핑장에서 아는 선배랑 캠핑했다가 모레 집으로 갈게요.] 그러자 어머니는 의아한 목소리로 되물었다.
[어머, 거기 캠핑장 같은 게 있니?] [하이킹 코스에서 자원봉사를 한다던데요. 그 근처 어디에 있대요.] [얘는.. 하도 집에 안 오니까 동네도 다 까먹었구나, 너? 거긴 시멘트 공장이 들어서서 나무라곤 한 그루도 없잖아.] 그 말을 듣자 K의 머릿 속에도 어린 시절 기차 창문 너머로 보았던 회색 민둥산들이 퍼뜩 떠올랐다. 도저히 S에게 전화해 따질 용기가 안 나서, K는 동아리 친구에게 전화해 S에 대해 물어보기로 했다.
[아, 그 미팅 때 나왔던 예쁜 언니?] 놀랍게도 K 뿐 아니라 그 자리에 있던 모든 사람이 S와는 초면이었다. 주선자에게 알아보니, 원래 나오기로 했던 여자아이가 사정이 생겨서 못 나오게 되었다면서 S가 대신 나타났다는 것이었다.
갑자기 무슨 사정이냐고 물었더니, S는 친구의 친구라 자기는 전화번호도 모른다고 대답해서 그냥 그러려니 했다는 것이었다.
다음날 K는 약속 장소에 나가지 않았다. S가 전화라도 하면 어쩌나 싶어 조마조마했지만, 전화는 오지 않았다.
나중에 친구와 함께 S의 번호로 전화를 걸어 봤지만, 신호음만 이어질 뿐 아무도 받지 않았다. 그나마도 이틀 후에는 없는 번호라는 안내음만 나올 뿐이었다. 지도를 찾아봤지만 S가 말한 하이킹 코스나 캠핑장은 없었다.
그 뿐 아니라 학교에 문의하니 S라는 학생은 없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아직도 S가 누구였는지, K에게 무슨 의도를 가지고 접근했는지는 알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