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살 남자입니다.
제게는 아버지 어머니 그리고 2살 아래로 동생이있습니다.
그리고 저는 가족들과 떨어져서삽니다.
네... 고시원에서 살고잇어요....
전 18살때 집을 나갔습니다.
다른이유없었고
그냥 가족이 싫었습니다.
어렸을때야 집이 화목했습니다.
그런데 커가면서 아버지때문에 집이 혼란스러워지기 시작했습니다.
아버지 그러니까... 저의 친가쪽이 굉장히 유교사상이 짙습니다.
무슨말이냐면
할아버지때부터 농사하는거나 장사하는거를 아주 미천하게 여기고
하루하루를 공자왈 맹자왈 하다시피 살았습니다.
그렇다고해서 우리집 가문이 뭐 그렇게 뛰어난것도 아닙니다
조상대대로 둘러봐도 관직에 섰던분 한분 안계시고
심지어는 돌아가신 증조할아버지께서 친일파셨습니다. 전 그사실을 중3때 알았는데 그걸알고 진심으로 족보에서 나오고싶었습니다.
지금이야 돈 한푼없고 별볼일 없는 집안이지만
그 옛날에 얼마나 그짓을 해가며 돈벌이를 했겠습니까?
친일파 였던 증조할아버지 밑에서 자란 할아버지는 돈벌이보다는
유교적 사상이 매우 깊었습니다.
아까도 말했지만 정말 별볼일없는 집안입니다.
그 많은 남매를 낳으시고도 부인하나 돌볼줄 모르셨고 당시 큰아버지과 둘째큰아버지 대학+장가 보낸다고 암에걸린 할머니 재대로 치료도
못해보고 돌아가셨는데 , 장례식 당일날까지 'ㅉㅉ'소리를 했답니다..... 전 제 할아버지가 이정도일줄은 상상도못했습니다.
어릴적 기억의 할아버지는 자주 우리집에 오셔서 저랑 놀아주시던 기억밖에는 없었으니까요
게다가 밑으로 고모 2분 그리고 저희 아버지가 계셨는데
고모분들은 국민학교까지밖에 못나왔습니다... 이유는 할아버지와 첫째,둘째 큰아버지를 위해서
생활비+집안일+학비를 벌어다 바쳐야했기 때문입니다.
그동안 할아버지는 뭘했냐고요?......
오유에서 맨날 씹,선비 씹,선비 그렇죠? 저희 할아버지입니다.
까고말해서 쥐뿔도없는 집안에서 선비 흉내 낸답시고
동네에서 이름좀 있다한 집에 허구언날 놀러가서는 양반행새란 행새는 다해가며
'날좀 봐주쇼~ 우리집고 나름 명문 이라오~' 이소리나 하고 자빠졌답니다.
농사일은 해본적도없고, 친일파였던 증조할아버지가 남긴 작은땅을 빌려준 댓가로 입에 겨우 풀칠이나 하고 살았는데
고생은 개뿔도 안하고 고생이란 고생은 할머니와 고모 2분께서 다 하셨습니다....
당시 늦은 나이에 늦둥이인 저희 아버지를 낳으시고 얼마뒤 암에 걸리셔서 돌아가셨던 할머니를
아버지는 어머니의 사랑도 못받으시고 돌아가셨습니다.
그탓인지는 몰라도 아버지는 할아버지를 거의 '신' 아니 그 이상으로 모십니다
무슨 소리냐면... 할머니께 못받은 사랑때문에 아버지라도 붙들고있는다는 느낌이 매우 강합니다.
그래서 할아버지가 조금만 아프거나 무슨일이생기면 회사에서 말도없이 나가서는 할아버지를 뵈로갔는데
7년전 그런일이 있은직후 회사에서 경고를 받으시고 그거에 기분이 나빳다며 회사를 관두시고 지금은 치킨집을 하십니다
어머니는 하도 어이가없어 하십니다.... 아무리 할아버지가 소중하다지만
자신의 가정은 가정도 아니란겁니다..... 자기가 아니여도 알아서 있을 가정이고 '내가 뭐 이것좀 하는데 뭔일있겠어?'하는 심정일껍니다.
그런집안에서 저는 유년기를 보냈습니다.
13살... 그러니까 초등학교때까지는 그래도 부부싸움이 크게없었는데..
아버지가 회사를 관두신 이후로는 어머니와 아버지의 싸움이 하루도 가실날이없었습니다....
그러다가 17살..고1이 되고
저는 방황하기 시작했습니다.
담배를 피기 시작했고, 침좀 뱉다시피한 애들하고 몰려다녔고
그리고... 사고도 치고했습니다.... 허구언날 애들하고 몰려다니며 깡패짓 다하고 다니다가
결국 경찰서까지 갔습니다.
그때 제 아버지께서는 자식도 아니라며 경찰서에 오지도않았고
다른 친구들은 보석금물고 집에가는데
저혼자만 철창안에서 하루를 보냈습니다..
그때는 제가 무엇을 잘못해서 반성해야한다는 생각보다는
아무도 ... 아무도 나를 생각해주는사람이없다..
가족조차 나를 없는놈 취급하고 부모님께 사랑받은적또한 없다고... 그생각만 맴돌았습니다.
미처 말하지 못한게있는데..
아버지께서 치킨집을 하시는동안
어머니는 주말동안 공장에서 생산직을 하셨습니다..
2박3일동안 숙박해가면서 하는거였는데.....
당시 어머니는 제가 철창안에 있는줄도모르고
월요일이 되서야 집에와서 경찰으로부터 전화를받고 저를 데리러 오셨습니다.
아버지는 전화가 온줄알면서도
전화를 받지않으셨다고합니다.
동생은 기숙사 학교에 지내고있어서 집안이 어떻게 가는줄도모릅니다..
그리고 고2때..
자퇴를 했습니다.
자퇴를하고
아버지 치킨집에서 배달을 하면서 지내다가
집을 나가게됬습니다.
이유는...
부모님들 때문이었습니다.
허구언날 빛이 얼마네 , 이번달 적금을 깨야하니 어째니 하는 이야기밖에 오고가질않았고..
심지어 배달을 하던 알바생이 저희가게 금고를 들고 튀는 일까지 벌어지면서
아버지와 어머니는 하루가 멀다하고 크게싸우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던중.... 할아버께서 어느날부터인가 잠이잘 오질않는다고하는겁니다.
뜬금없는 전화에 어머니는 '아버님 괞찬아지실꺼예요.. 밖에서 활동도좀 하시고 그러면 몸이 피곤해져서 잠이 잘 오실꺼예요'라며 할아버지를 안심시켰으나
후에 아버지가 그 사실을 알고 어머니의 뺨을 때렸습니다.
할아버지가 조금만 어떻게되면 좌불안석이 되는 아버지는
치킨집을 떄려치고 곧장 할아버지한테로 갔습니다.
할아버지는 그야말로...... 엄살중에 엄살쟁이며
자기 자식들 집안이 어떻게 되든가 말든가 신경도 안썻씁니다.
설령 신경을 썻다해도
자기한테 관심을 더 줬으면하는 그런말밖에하지안았습니다.
병원에서 할아버지는 300여만원의 거금을 들여가면서까지 검사를 했습니다.
전국에서 알아준다는 서울대병원까지가서 각종 검사란 검사는 다했습니다
그것도 모잘라 할아버지가 '우리 막내집에 내가 있으면 며느리가 고생하겠구만..'하는 말에
한달에 몇백을 초과하는 입원실에 입원을했습니다.
후에 알고봤더니 할아버지가 걸린병은 없었고
일종의 우울증이었는데....... 그 병의 원인은......
시골에서 아무것도 안하고
그저 아침에 일어나면 TV를 켜고 뉴스로 하루를 시작하고
그렇게 11시까지 뉴스+드라마 를 보고
또 12시가 되면 밥을먹고
다시 뉴스를 또보고
그러다가 5시가 되면 또 저녁을먹고
또 6시가 되면 뉴스를 보다가
9시가되면 간식을먹고
10시가되면 또 TV를보다가
새벽 1시까지 TV를 켠채로 잠이들고
또 다음날 똑같은 생활이 시작되는겁니다..
이런식으로..
저희 아버지가 장가든이후 그날 이후로..
약 20년을 이런식으로 지내온겁니다
그야말로
백수인거죠
저희 외가할아버지는 안그럽니다
외가 할아버지는 나이 90이 넘어서도
외할머니와 농사를 지으시고
그것도 모잘라 동네 향후회 대장까지 하시면서
주말에는 배에 올라 그물을 던지시며 고기를 잡는 어부가 되기까지합니다.
3년전엔가... 외할아버지가 TV에도 나왔습니다..... 건강 노인 어쩌구해서... 나올정도로
젊어서부터 고생이란 고생은 다 해보셨고
늙어서 자식들에게 짐이 되기싫어서 부부가 서로를 의지하며 열심히 살아가는데
이제겨우 나이 75살넘은 친할아버지는
나이 30살 이후로는 한번도 돈을 스스로 번적도 없는데다가
그것도 모잘라 엄살이란 엄살은 다 부리고
명절때마다 한다는말이
'늙으면 죽어야제...' 하면서도
며느리들이 용돈을 섭섭하게 준다며 핀잔식으로 말 한마디를 툭툭 던집니다
그렇면서 그 나이되도록 손에 흙한번 안묻혀보고 살았으면서
어릴적 제게는
'부모에게 효도해야혀!!'
'거짓말 하지 말아야혀!!'
'젊었을때 고생을 해야 늙어서 참된 사람이 되야~'
등등.....
자신하고는 정 모순된 말만 번지르르했던걸 생각하니
할아버지가 가증스럽고 역겹기까지했습니다.
그 이후로......
치킨집도 문을닫고
어머니는 초등학교 급식실에서 조리원으로 일하게됬습니다.
고2 초에.. 자퇴를했고
집을 나가면서 어머니께 받은 200만원으로
전라남도 광주까지 내려오게됬습니다
이곳 광주까지 내려온 이유는, 옛 친구였던 녀석이있는데.....(이 녀석도 학창시절 사고좀 친놈입니다..)
이제는 정신차리고 삼촌네 공장에서 일은 한다기에
저도 그곳에가서 숙박을 하며 일을 하기로했습니다.
한달에 160만원이라는 돈을 받으며
그래도 괞찬은 숙박시설에서 친구와 아저씨들을 포함해서 6명이 묵으면서
술도 배웠고... 나름 괞찬은 생활을했습니다.
1년이 지나고
19살... 원래대로라면 고3이었을 나이에
저와 친구는 공장에서 기름묻은 손으로 생산직을하며 땀을 흘렸습니다.
1년이좀 안된 시기에..
우연히 전남대학교로 물건을 옮기는 일이있었는데
대학교가 참 좋더랍니다...
민주화이 상징이었고
그때 봉고차에 타고오면서 본 건물이
백도란 곳이었는데
큰 하얀색 도서관입니다.
그곳을 보고오면서...많은 생각을했습니다.
그리고 .. 19살 4월달부터
전 공부를 시작했습니다.
자퇴는 했지만
그래도 검정고시는 보자는 마음으로
시험을 보았고
2번의 시험끝에 8월달에 통과를했습니다.
기뻤습니다.
낮에는 일을했고
친구와 아저씨들과 노가리를 까다가도
밤과 새벽, 주말에 시간을 내어 공부한 기쁨을 억제할수가없었습니다.
검정고시를 통과한후로
시간이 많이 흘렀고
어느덪 20살 성인이됬습니다.
그러던중 공장에 어느 누님이 찾아왔습니다.
아주 예쁘지는 않았지만..
오랜만에 보는 여자앞에서 마냥 신났던 일이 기억납니다
아저씨들과 누님은 여러 이야기를 나누다가
얼마전 검정고시를 통과한 녀석이 여기있다며
저를 소개해줬습니다.
그 누님은 저랑 친하게 지내던 공장 아저씨의 딸이었는데... 연세대를 들어간 누님이었습니다.
누님과 2틀동안 여러이야기를했습니다.
검정고시를 하게된 계기... 하고난 후의 성과
앞으로 하고싶은일...되고싶은 꿈
수없이 많은 이야기를 2틀여간 하면서
누님은 제게 대학교를 가라했습니다.
대학교에가면
공부뿐만이 아니라
여러사람과
여러학문과
여러가지일들이 있을꺼라고했습니다.
정말 이 3마디를 해주셨습니다.
누님은 다시 연세대 기숙사로 가셨고
저는 여러가지 생각에 잠기면서 1달을 보냈습니다..
그러던중..
5달만에 동생으로부터 전화가왔습니다.
집에좀 와달라 하더군요
주말에 시간을 내어 집에가기로했습니다..
1년 반만에 타보는 고속버스..
집으로 가는길이 마냥 무거웠습니다.
가족들은 잘 지내고있을까..
친구들은..
동네 사람들은..
집에 도착했는데
집에는 먼저온 손님들이 있었습니다.
아버지의 친구분들이었습니다.
오랜만에 뵈어서 먼저 깍듯이 인사를 하는데
어릴적 그렇게 저를 예뻐해주시던
아버지 친구분들께서
저를 잡아먹을듯이 쳐다보시며
'지 애비에 지 새끼구만..'하면서 현관을 나가셨습니다.
갑자기 집이 태풍을 맞은것처럼 삭막해졌고
집에온지 5분여만에 저는 어쩔줄을 몰랐습니다.
오랜만에 보는 동생은 키가 훌쩍커있었고
어머니는 야윌때로 야위셨고
아버지도 마찬가지로 건강했던 몸이 훌쩍 말랐습니다..
무슨일이냐며 동생에게 말을했고
동생은 집밖으로 나와 지금껏 이야기를 해줬습니다.
형이 나간뒤로
아버지와 어머니의 싸움은 하루가멀다하고 심해졌고
형없는 동안 이혼서류만 3번을 왔다갔다했다고..
그리고... 할아버지는 그 사실을 아는지 모르는지
호화급 입원실에서 TV나 보면서 에어컨 빵빵 틀어대면서
엄살이란 엄살은 다 부리면서
'에혀...늙으면 죽어야지'이런말만 했다고
참다못한 며느리들과 어머니들이 큰아버지들과 아버지 몰래 할아버지를 찾아가서
이제 적당히 해주시라고
저희도 가정있는 몸이라고 말을했는데
할아버지가 그말을 듣고 알았다며 하시고선
저녁에 아들들을 모아서 며느리들이 이런말을 하고 갔다며
꼰질렀다고...
그날 이후로 어머니는 아버지뿐만 아니라 , 큰아버지들과 아버지한테 거의 죽는것보다 더 심하게 눈치보고 살아야했다고..
그리고 아버지 친구분들이 다녀가신 이유는
형이 나간뒤로 아버지는 친구분들 직장에서 일을 했는데
이 친구 저친구 만나가며 돈빌리러 다녔다고... 그 액수가 합이 3천이 넘는다고....
왜그렇게 많이 돈을 빌리고 다녔냐고하니까
동생이 울더군요
제가 집을 나간 이유를 지금에야 알겠다면서요....
그 많은 돈을 할아버지한테 다썼답니다.
제가 집을 나가고 몇달후에 퇴원을한 할아버지가
시골은 너무 심심하고 혼자있으면 우울증이 도발할것같다면서
자신도 사람많은 도시에서 살고싶다는 말을했다는군요..
아버지는 또 그말을 걱정한다는식으로 받아들여서는
서울에 원룸을 구해서 모셨는데
모시면서 장롱이며 TV며 가구며... 에어컨이며...쓰지도않는 최신식 운동기구들까지...
그동안 모아놨던 돈이며 빌린돈으로
아주 할아버지만의 원룸을 꾸미고있었던겁니다.....
'신'으로 모시는거죠......
이건 효도가 아니라...
병인거라고 그때부터 생각했습니다...
가정을 돌보면서 부모님께 정성을 다하는게 '효'지..
가정을 버리고 있는 돈이란 돈을 할아버지한테 다쓰면서 저러는건......할아버지나 아버지나... 지랄이라고 생각밖에는 안들었습니다.
동생과 여러이야기를 나누고
동생에게 고깃집에가서 갈비를 먹이고
학교 기숙사로 돌려보냈습니다......
동생을 버스에 태워보내는데
눈물이 나더군요..
그날 반나절만에 담배 한갑을 다피웠습니다.......
집에왔는데
어머니가 그동안 보고싶었다는 말한마디없이
야간 편의점 알바하러가야한다고
저를 살짝 안아주고 나가시더라구요..
집에 아버지와 둘이있는데
아버지가 10분뒤에 할말이 있다며 거실로 오라더군요
앉아서 아버지와 대면하고 대화를 시작했습니다.
아버지는....... 한마디도..... 그동안 잘 있었냐는 말도없이.......
왠 포트폴리오같이 생긴 책자를 꺼내서는
엑스레이 사진인지 뭔지모를 사진들과 그래프로된 여러 종이들을 보여주시고선
'요새 할아버지 건강이 많이 안좋아졌다... 최근에는 전립선이 안좋아 지셔서 오줌도 재대로 못누신다...' 이런말을 하더군요
그냥 듣기만했습니다.
30여분을 할아버지 할아버지 이야기만 하면서
결국에 마지막에 한다는말이
'병원비가 부족하다'였습니다.
그렇더니... 한다는말이
' 니동생 학교비하고 학원비도 대야하고..... 니엄마도 저렇게 힘들게 일하러 가지않았냐.... 니가좀 도와줘야겠다' 이렇더군요
그래서 대놓고 물었습니다.
지금 아버지가 하는일로는 금액이 감당이 안되냐고...
그랬더니
그렇다고 하더군요
그래서 무슨일을 하고있는데 병원비 대출까지 안된다는 거냐고했더니
그건 니가 알게 아니라고 하더군요
1초의 망설임도없이 눈 부릅뜨고 똑바로 한마디한마디 말했습니다.
아버지 뭔일을 하고있는지 모르겠고... 어머니는 도대체 몇개의 직장을 다니는지도 모르겠고
동생은 올해 고3인데 대학교는 가는지도 모르겠는데..... 지금 할아버지일이 더 급한거냐고... 그렇게 심각한거냐고
그랬더니
첨에는 좀 수그러 들다가
1분도 안되서 큰소리 치더군요
'그럼 이새끼야! 어? 너는 니 할아버지가 이렇게 많은 자식들있는데도 불구하고, 어디가서 디져버렸으면 좋겠냐? 어?!?!
개 썩을새끼 오랜만에 집에와서 한다는 말이 지 할아버지 도와주기 싫어서 빨리 디지란 말밖에 안하네 썩을새끼'
이런말을 하더군요
5분뒤에 바로 가방들고 집을 나왔습니다.
엄마한테 전화를해서
엄마 일하는데 어디냐고
지금 간다고해서 갔더니
학원가가 몰집해있는 한 건물 1층 작은 편의점에서
어머니께서 카운터를 보고계시는데
여러분.....여러분은 그게 얼마나 눈물나는지 아십니까?
그렇게 예뻤던 어머니가 하루가 말다하고 야위여서는
이제는 앞머리 탈모증세까지 오시기 시작했고
나이 50살에 검버섯 생기는거 보신적있습니까?....
편의점안에 들어가서 엄마랑 대화하고 5분만에 울었습니다
엄마는 뭐가 그렇게 괜찬다는건지 사내새끼가 운다며 오히려 장난으로 웃었습니다..
그리고 물었습니다
할아버지 많이 아픈거냐고
엄마는 마지못해서 이야기하더군요
엄살이라고
나이들면 전립선 안좋아지는건 다반수고
전립선 암도 아니고 그냥 전립선에 염증이 생긴건데
최근에 기름진 음식을 너무많이먹고 관리를 재대로안해서 그런거라고
그냥 요약하면 ... 먹고 놀기만하고 활동하는게없으니까 그런거라고
니 할아버지하고 니 아버지
내가 피땀흘려서 번돈으로 원룸에서 에어컨키고
둘이 웃으면서 TV보는데
그걸보고 동네사람들이랑 고향 사람들은 효자났다고 하고있다고..
요새 저런효자가 어딨냐면서
그 칭찬 듣는맛에 요새 아버지가 산다고
진심으로
할아버지가 어떤 병이라도 걸려서 죽길 바랬습니다..
악마라 해도좋고
썩을새끼라고해도 좋습니다.
어머니한테 이혼하라고했습니다.
어머니는 밤 10시에서 다음날 6시까지 편의점을하고
집에서 잔깐 쪽잠을자고
8시부터 인근 초등학교 조리원을 하러가셔서
5시에 퇴근하십니다..
그리고 5시에서 10시까지 아버지랑 할아버지 수발을 가끔 들고오거나
집안일을 한다고합니다.......
아버지는 몇년동안 직장하나없으면서 집안일도 한번도 안했다고합니다.......
그 흔한 설거지며 빨래며 청소기 돌린횟수가
합해서 손가락에도 안든다고합니다
글이 너무 길어서 죄송합니다......
너무 슬프고 역겨워서 글을 길게썼습니다
어머니는 아버지와 이혼하실껍니다..
아버지는 처음에는 그말을 듣고 어머니를 떄릴 기세였다고 하지만
꼴에 자존심은 있었는지 맘대로하라며
서류에 도장까지 분명 찍었다고합니다..
전 다행이라 생각합니다.
이혼하신 이후로는 저와 어머니는 광주에서 살기로했습니다.
그동안 모은돈만 2천만원 가까이됩니다.......
공장에서 돈벌고.....야근수당으로 또벌고
토요일~일요일까지는 새벽 편의점 알바를하면서 짬짬이 돈을 채웠습니다
그냥 이유가없었습니다
돈이라도 실컷 벌어보자는 마음에 번돈이었는데... 한편으론 다행이라는 생각밖에는 안들더라구요..
동생놈도... 대학갈 머리는 안되서..
졸업을 하고나면 어머니와 함께 광주로 내려오겠다는군요
3명이서 힘을합쳐 살려고합니다..
그동안 어머니와 제가 모아온돈으로 작은 분식집을 열어서 살꺼라고..
아직 이혼도 안했고
동생은 졸업도안했지만
저는 얼마나 가슴한편이 편한안지 모릅니다..
차라리 이런 다행이 행복이었으면좋겠습니다..
하지만.... 내년 1월에는 군대를 갑니다.....
어쩔수없는 나라의 부름이라면 차라리 일찍 다녀오려고합니다..
그동안 별탈이없기만을 바라고 또 바랄뿐입니다..
제가 군대에 가고나면
제가 모아둔 돈으로 고시원방을 얻어서 어머니가 알바정도만 하고 계실수있도록 해드리고싶습니다..
그냥 글만 쓰는건데도
마음한편이 왜이리 편한건지 모르겠습니다.
가족이란 사람들은..
친가와 아버지를 이르는말입니다......
그들은..
그들의 가정에게 신경을 안써도
알아서 잘 돌아갈꺼라고 생각하고
자기가 어디를 가든 언제든 그 자리에 있어준다고 생각합니다..
어렸을적에
가족끼리 애버렌드에 가서 손잡고 돌던 사진이랑
제 생일잔치를 열어준 사진들을 보면서
많이 울었습니다
남자는 태어나서 3번 운다는데
가슴 한편이 울떄마다 시원해집니다
담배를 필때보다도 더 시원해집니다..
그래서 담배를 끊고 요새는 많이 웁니다 ^^..... 울보라고 놀림받겠네요 ^^..
그리고... ... 군대를 다녀와서는
재수를 할까 생각중입니다..
사실 그때 공장 아저씨의 따님인 누님과 지금도 연락하며 살아가는데....
지금 돈을 더 모아둬서
나중에 재수학원 다닐때 대비해 두란말을 해주더라구요..
얼마인지는 모르겠는데.. 1년 재수하면 1000만원은 깨진다고하니..
어머니가 이혼을 하실때까지 돈을 더 모아야겠습니다...
방 구하고 가게열고나면 얼마 남지도 않겠네요...
제가 재수를 하는동안 동생과 어머니가 가게를 해줄수있으니....
마음한편으론 너무나 고맙습니다.....
그래도 재수하고싶다는 마음이 들긴합니다
가고싶은 대학의 과가 생겼거든요... (많이 높은 학교지만... 그래도 가고싶네요... 언젠가부터 하고싶으면 꼭 해야겠다는 미련이 강해져서...)
제 고민을 들어주셔서 너무 고맙습니다.
분명 이글을 다 읽어주신분들이 있을꺼예요
너무 고맙습니다... 누군가가 제 이야기를 들어주는건
처음이예요... 제 가족이나 친구도 이렇게 긴 이야기는 들으려고도 안할꺼예요 ..
글 재주가없어서..... 글을 잘 쓰지는못하겠고... 너무 감정적으로만 쓰다보니까 제 중심적으로도 쓴것같에요..
지금은 공장에서 조금 떨어진 고시원에서 출퇴근을 합니다..
젊은 나니에 혼자산다는게 외롭고 힘이듭니다...
그래서 이런글을 쓰고나면 , 잔깐만이라도 마음이 편해집니다..
그래서 읽어주셔서 너무 고맙습니다.....언제나 행복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