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일차 : 땅끝은 해남과 상관없다.(08/01)
광주에서 나주 가는 길은 상당히 괜찮았던걸로 기억된다. 왜 확신하지 못하냐하면 그때는 시간을 줄일 요량으로 그냥 가는데 집중해서 딱히 주위를 둘러보거나 하지 않았다. 사실 어두워서 아무것도 안보였기도 했다.
1시 10분 동신대학교 도착. 아마 여행중에 최고로 빨리 달린 구간이 아니었을까... 동신대 앞에 도착해서 물도 좀 마시고, 발도 씻고(피같은 얼음물로) 담배좀 펴주면서 쉬었다. 컨디션이 괜찮아서 오히려 몸은 괜찮았다. 근데 모기가 겁나 많아서 몇군데 물렸다. 모기만 없었어도 좀 더 쉬었을텐데....
다시 출발.
나주 터미널인가? 암튼 어떤 터미널 근처 과일가게. 주무시던 아저씨 깨워서 1000원내고 복숭아 하나 사먹었음. 원샷은 아니지만 쉬지않고 먹었다. 복숭아 너무 좋다.
나주를 빠져나와 영암까지 13번 국도를 타고 갔다. 휴가철이라 그런지 해남쪽으로 향하는 차들이 많아서 혼자 외롭게 달리거나 하지는 않았지만 뭐 그렇다고 해서 편한것도 아니었다. 뒤에서 차 소리가 나면 우선 긴장해야 하니까.
또 뭔놈의 차들은 그렇게 빨리들 달리는지.... 아침에 해남에 들어간다는 목적으로 최대한 쉬지 않고 갔다. 이상하게만큼 컨디션이 괜찮아서 쉬지 않고 달릴 수 있었다. 하지만 점점 피곤이 몰려 오는걸 느낄 수 있었다. 영암을 거쳐서 성전까지 달리고 달리고 또 달렸다.
심야의 13번 국도는 정말 불빛이 하나도 없다. 전조등이 없었으면 못갈정도였다. 그래서 오랜만에 말 그대로 "쏟아질 듯한 별들"을 봤다. 심야 라이딩의 또 다른 별미.
이때 전날 언덕 슈퍼에 할머님이 주신 얼음물이 한몫했다. 그거 없었으면 못갔을 꺼다. 수건으로 꽁꽁 사놔서 그런지 밤새도록 얼음이 안녹고 계속 차가움을 유지할 수 있었다. 진짜 힘들면 그거 한모금 먹고 힘내서 가고, 쉴때는 머리에 대고, 목에 대고 하면서 쉬었다.
그 당시에는 시간도 안보고 계속 달리고 달려서 성전 입구까지 도착했다.
4시 반 가량. 성전 입구 도착. 여기서 해가 뜨기 까지 기다리기로 했다.
슬슬 동쪽이 밝아 온다. 다시 갈때가 되었다.
성전 입구에 들어서자 마자 경광봉이 한뭉태기 보인다. 뭐지? 이 시간에 음주단속인가? 했더니 성결대학교 국토종단 하는 애들이다. 인사라도 할까 하다가 애들 표정이 썩어 있어서 그냥 지나갔다.
5시도 안되었는데 출발 시킨건가? 암튼 무사히 완주 하길 빈다.
성전을 지나 드디어 해남에 들어섰다. 난 이때 다왔다고 생각했다.
해남읍? 시? 암튼 읍내에 들러서 베지밀 하나 쌔려 주시고, 아저씨들이랑 노가리좀 깠다.
아저씨 왈.이제 한 100리 남았응께 금방 가겄네잉.
100리? 잠깐만.. 10리가 4키로니까... 100리면 40키로? 응? 예? 100리요? 10리 아니고?
지옥이 시작되었다.
여행 3일중에 가장 화창한 날씨가 도래했다. 화창하다는 말은 한마디로 끔찍하게 덥다는 말. 남도의 하늘은 맑고도 맑아서 하늘에서 쏟아지는 햇빛을 기냥 통과 시켜주었다. 진짜... 죽음... 이때 긴팔져지로 갈아입었어야 했는데 귀찮아서 그냥 갔다. 대신 선크림을 듬뿍, 첫날 협찬 받은 선글래스도 껴 주고...
77번 도로 타고 가다 보면 나오는 동네 슈퍼. 여기서 포카리 원샷.
담배 피고 있는데 할머님이 "담배 얼마 안남았지? 한갑 사가~" 하셔서 한갑 샀다. 사실 반넘게 남아있었는데...
담배를 강매당한 한일 슈퍼. 할머님이 도로가 새로 뚫린다음 부터 관광객이 줄어서 장사가 안된다고 하셨다. 조금 돌아와도 이 길을 이용해 주세요!!
마을... 하늘봐라... 흐미..
날씨 죽인다~~
날씨 죽인다=더워 죽는다
이런 하늘은 진짜 오랜만에 본것 같았음.
벼들은 자~알 자라겠구나~
문제는 체력이 급속도로 저하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밤새 달려온 상황에서 기온이 급속도로 올라가니까 체력이 떨어디는게 막 느껴지기 시작했다. 또한 전날밤 광주에서 컵라면에 김밥 먹고 나주에서 복숭아 하나 먹고 그 이후 거의 물 이외에는 먹지를 않았으니 허기도 심하게 졌다. 또한 무엇보다 힘들었던 것은 아.. 이제 다왔을거야. 거의 다 왔을꺼야... 하는데도 끝이 보이지 않는 땅끝이라는거다.
이번 여행에서 최고로 힘든 길이었다.
땅끝을 4키로 남긴 시점에서 바다가 보여 그늘에 벌렁 드러누웠다.
바다 바람 시원하게 불어오는 그늘에 신발 벗고 누워 물 마시며 담배 한대 피우고 있으니 천국이 따로 없었다. 진짜 행복한 20분이었다.
이 맛에 자전거 여행을 다니는 구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정말... 여행 최고의 순간으로 뽑는다.
아~~~ 좋구나~~~
솟대도 있구나~~ 여기서 한잠 잤으면 좋겠다~~~
그러나 여기서 여행을 마무리 할 수는 없는법.... 고작 4키로 남았는데...
다시 썬크림질...
그리고 출발... 4키로 지점에서 체력이 완전 바닥을 드러냈다. 20분 쉬면 한시간은 갈 수 있을 줄 알았는데 5분도 안지나서 어지럽기 시작했다. 체온은 계속 오르고, 썬 크림 바른뒤라 땀은 계속 흐르고 발도, 엉덩이도 참을 수 없을 만큼 통증을 호소 하고 있었다.
무엇보다 가장 큰 문제점은 손이었다. 24시간 넘게, 집에서 출발해서 근 50시간 정도 핸들을 잡고 있었으니 손이 통증을 심하게 호소 하고 있었다.
갈재를 넘을때도 한번 생각해보지 않은 히치하이킹이 계속 떠올랐다. 또 송호리 해수욕장에서 땅끝까지 죽음의 업힐이 하나 있다는 이야길 들어서 더덕욱 간절해갔다. 달려온 거리가 얼마가 되었건 간에 가야할 4키로가 너무 부담스러웠다.
그래도 어쩔 수 없이 가고 또 가고, 또 갔다.
이때는 뭐 아무 생각없이, 내 두다리와 두 바퀴로 땅끝을 찍겠다는 마음으로 버텼다.
송호리에서 땅끝으로 넘어가는 산은 진짜 아트였다. 그 이상 할말이 없다. 무조건 끌바로 끌고 올라갔다. 정말 더워서, 태양빛이 너무 강해서 선글래스를 꼈어도 안쓴것 같은 느낌이었다.4키로 가는데 1시간은 걸린것 같다.
겨우 겨우 가서 땅끝에 도착했다. 나는 땅끝탑이 어디 대충 바닷가에 있는 줄 알았더니 계단 올라가서 한 10분 가야 된다고 하더라...
젠장.. 여기까지 왔는데 또 안갈수야 없지. 어떻게든 가자는 마음으로 갔다. 자전거를 묶어놓고 갈까 하다가 그래도 이자식 나랑 함께 여기까지 왔는데 마지막까지 함께 하자는 생각으로 짊어지고 갔다.
무겁기도 엄청 무겁더라... 그놈의 자식... 그렇게 또 자전거를 짊어지고 10여분을 가서 드디어 땅끝에 도착했다.
그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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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한장의 사진을 얻었다.
송파 출발 이후 56시간 23분
대천 출발 이후 25시간 30분의 무박 라이딩을 통해서.
속도계에 찍힌 475.67km+비와서 속도계 빼놨던 2시간(대략 30km) 더해서 대략 500km를 내 두다리와 두 바퀴로 달려서 드디어 땅끝에 도착했다.
<여행의 끝>
뭔가 목적같은게 있었던 것은 아니다. 그냥 자전거가 좋으니까 자전거 타고 어디든 가고 싶었을 뿐이고, 그곳이 땅끝이었던 것 뿐이다. 스스로 뒤돌아 본다는 목적도, 자신의 한계를 시험하겠다는 의지도 없었다. 그냥 즐기고 싶었다.
출발전 생각했던것 만큼 쉽지는 않았다.
첫날에 생각했던것 만큼 힘들지는 않았다.
무박 라이딩은 생각외로 안전했다. 또 기온도 좋고, 별도 보고 하면서 오히려 좋은 추억이 된것 같다.
이번 여행을 뒤돌아보면 운이 좋았다고 생각된다. 특히 날씨운이 그렇다.
첫날 비를 좀 맞기는 했지만 오다말다 하는 상황이었도, 둘째날 날씨는 마지막날에 비하면 덥다고 할 수 없는 날씨였다.
만약 광주에서 자고 새벽에 출발했다면 완주하지 못했거나 기간이 하루 연장 되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마지막날 만난 날씨가 하루만 일찍 찾아왔어도 분명 문제가 발생했을 것이다.
다시는 여름에 무리하게 라이딩을 하지 않겠다. 이번엔 운빨이 좋았다.
자전거도 나도 당분간 휴식이다. 안장도 그렇고 브레이크도 그렇고 정비를 받아야 하는 상황이지만 조금 쉬었다가 하겠다. 하지만 언젠가 또 저놈을 끌고 어딘가에서 숨을 헐떡이며 목마름에 허덕이고 있겠지.
마지막으로 돌아오는 길에 사진들
해남가는 버스를 타려고 기다리던 중. 날씨 참 좋구나~
땅끝 앞 바다
땅끝 앞 바다2
낚시배? 고기잡이 배?
요즘 내가 좋아라 하는 사과 스퀴즈. 역시 원샷.
총 걸리 2000키로 넘겼다.
해남 터미널에서 내가 타고갈 버스.
터미널 하늘.
사우나 가서 씻고 갈아입은 3메가 티셔츠. 장봉근 화백님. 국민일보때부터 팬이었습니다.
날씨 죽이누나.
버스 탑승.
버스 타고 가다 찍은 하늘.
목말름에 허덕이는 나를 위한 음료수 3종세트. 왼쪽부터 환타, 생수, 두유, 양말. 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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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에는 참 뜨거웠는데.. 직장다니고, 비오고, 춥고 하며 핑계를 대다보니 가슴속에 뛰놀던 짐승은 사라지고, 뱃살 두둑한 다른 의미에 짐승이 있네요. 올해는 그 뜨거운 놈을 다시 끄집어내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