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신 5개월 아내 새벽 3시 엉엉 운다
김외현 기자의 남자플랜B
지난 겨울 어느 밤. 아내는 일어나 앉아 엉엉 울고 있었다. 시계를 보니 새벽 3시. 꿈일까. 아니었다. 잠이 덜깬 새벽녘의 울음소리는 더욱 크게 울렸다.
전날 저녁 우리는 막 이사를 마친 참이었다. 대강 치워놓고 마룻바닥에 요만 깔고는 두런두런 이야기를 하다가 잠이 든 터였다. 며칠 짐싸고 이사 준비하느라 잔뜩 긴장했던 몸이 풀려 피곤이 절정일 때였다. 전에 살던 집에서는 누리지 못했던 '따뜻한 방바닥'에 감격해마지 않은 잠자리였다.
아내는 왜 울까. 임신 5개월 아내. 홑몸도 아닌 사람이... 잠이 확 달아났다. "왜 그래, 응? 왜 그래..."
...옷이 없어졌다 했다. 며칠 전 구입한 임부복 전부를 하얀 서랍장 세번째 서랍에 모아놨는데, 모조리 없어졌댔다. 하필이면 이사하면서 유일하게 내다버린 가구였다. 그 서랍장에 있던 다른 옷들은 그대로 있는데 임부복만 없어진 걸로 봐선, 서랍장을 맡은 이삿짐센터 일꾼의 실수로 그 서랍만 놓친 모양이었다.
"당장 옷이 없잖아. 입을 수 있는 게 그 옷들 뿐인데. 이제 다른 옷은 맞지도 않는데..."
아내는 다음날 출근을 해야할 상황이었으니 낭패였다. 임신 중기에 들어 자연히 몸도 불고 배도 나오기 시작해, 임신 전에 입던 옷은 이제 허리가 맞지 않았다. 그 전까지는 어떻게 허리가 좀 큰 옷을 입거나 하며 살아왔지만, 이제 '완연한' 임산부가 됐으니 임부복이 필요했다.
요즘 임부복은 웬만한 곳에선 매장도 없다. 저출산 현실에 수요가 많을 리 없고, 막상 입는 사람도 해 넘기며 오래 입을 게 아니니 좋은 옷을 찾지 않는다. '롱테일 천국'인 인터넷에는 물론 구할 수 있는 곳이 있지만, 옷은 입어보고 사야한다는 게 우리 생각이었다. 결국 며칠 전 이사 준비로 바쁜 와중에 밤시간을 짬내서 동대문시장 임부복 전문매장에 다녀왔던 게다.
그렇게 구해온 '귀한' 옷들이 통째로 사라졌으니, 마냥 타일러서 될 일이 아니었다. 그 밤에 전에 살던 아파트의 경비아저씨를 전화로 깨워 혹시 서랍장을 버렸는지 여쭸다. 잠이 덜 깬 목소리였지만 다행히 버리지 않았다 했다. 그럼 혹시 세번째 서랍에 옷이 있는지 여쭸다. 약간은 짜증섞인 목소리로 확인해보겠다 하기에 잠시 뒤 다시 전화를 걸었더니, 천만 다행히도 옷이 있다고 했다. 눈물 멎은 아내의 눈이 반짝반짝했다. "가자!"
한밤중 고속도로는 차가 많지 않았다. 냉큼 달려갔더니 낮에 이미 작별인사를 나눴던 아저씨가 웃으면서 우리를 반긴다. "허이구 이 사람, 내 보고 싶었던 모양이네!" 중요한 옷이었다고 자초지종을 말씀드리니 "아침에 늦게 알았으면 큰일날 뻔 했네. 아침에 서랍장 수거해가고, 나는 근무교대해버리면 어쩔 뻔 했나"라고 했다.
아내는 서랍에서 꺼낸 옷을 한벌 한벌 보물처럼 끌어안았다. 몇 시간 뒤 아침 출근길, 아내는 걸음이 한결 가벼워 보였다. 마치 '나무꾼에게 강탈당한 날개옷을, 강제 혼인과 두 차례 출산의 고통을 겪은 뒤에야 회수한'(-_-) 선녀라도 되는 듯... 어찌나 기분이 좋아보이던지;;;
...몇달이 또 지났다. 뱃속의 아기가 컸고, 배가 더 불렀고, 이젠 그 옷들마저 치수가 모자라다. 따지고보면 임부복의 수명은 넉 달이 채 못 되는 모양이다. 그래도 그날 새벽에 일어나기를, 또 눈 비비며 고속도로를 질주하기를 천만 잘 했지 싶다. 끝을 모르고 깊어지는 임산부의 우울함 속에서 "이제 전에 입던 옷이 맞지 않아" 하는 안타까운 푸념은 그때부터 한층 깊어지지 않았을까.
동대문에 또 가서 더 큰 치수의 임부복을 사와야 할 시점일까? 아니아니. 어느덧 아내의 출산은 오늘이 될지 내일이 될지 모른다. (계속)
http://babytree.hani.co.kr/61003 김외현 기자
육아휴직으로 전업 육아를 몇달이나마 경험한 <한겨레> 정치부 기자. 일하는 엄마·아빠들이 눈치보지 않아도 되는 세상을 꿈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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