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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게시물ID : humorbest_716104
    작성자 : 희대의역작
    추천 : 32
    조회수 : 3215
    IP : 175.197.***.181
    댓글 : 0개
    베스트 등록시간 : 2013/07/20 23:43:38
    원글작성시간 : 2013/07/20 10:21:07
    http://todayhumor.com/?humorbest_716104 모바일
    [단편] 12시 25분의 객실
    허술하기 짝이 없는 호텔이기는 했다.

    마치 도둑이 경찰에게 잡히기 직전 환풍구에 다이아라도 넣어 놨을 법한 그런 비쥬얼이었다. 크게 지어놓은 호텔에 손님이 없으니 넓은 라운지엔 청소할 사람도 없어 바닥엔 먼지만 쌓여있고, 얼마나 장사가 안되었는지, 구석에 있는 고풍스러운 흔들의자도 거미에게 세를 내 주고 있었다.


    시침은 11이란 숫자를 막 넘어가고 있었고, 이 주변엔 건물도 거의 없다.

    카운터에는 "잠시 자리 비웠습니다." 라는 팻말과 함께 전화번호가 적혀 있었다. 마음이야 당장 자리를 박차고 다른 숙소를 알아보고 싶었으나, 그나마 이 주변에서는 가장 나은 환경이다 싶어 마음을 접고 전화를 걸었다.



    [전화주셔서 감사합니다. 즐거운 하루되세요.]

    호텔의 광고가 아닌, 개인 핸드폰의 연결음이 들리고, 바로 잠깐 후에 딸각하는 소리와 함께 전화를 받는다.

    "여보세요?"

    약간 굵은 톤의 목소리다. 어디인지 주변엔 꽤 시끄러운 소리가 들린다.

    "네, 하루 묵고 싶은데 자리에 안 계셔서 전화드렸습니다."

    "아아~ 근데 제가 지금 조금 멀리 나와 있어서요~ 평소에 예약손님 이외에는 거의 오지 않으시거든요~ 정말 죄송합니다. 그런데 그 주변엔 쉴 곳이 마땅치 않은데.. 제가 카운터 비밀번호를 알려드릴 테니 아무 방이나 들어가 쉬시고 내일 계산하시겠습니까?"

    남자는 조용조용, 점잖은 말투로 정중히 사과하고 내게 호의를 베풀었다.

    "그래 주신다면 저야 감사하지만.. 비밀번호를 그렇게 막 알려줘도 됩니까?"

    "네 괜찮습니다. 현금 카운터와 키 카운터가 따로 있거든요. 열쇠 가져가셔 봐야 몰래 와서 자고 가실 거 아니면 쓸모도 없습니다~ 원하시면 기념으로 하나 드릴 수도 있어요. 하하."

    "그럼 그렇게 하도록 하겠습니다."

    남자에게 비밀번호를 듣고, 남자는 유의사항 몇 가지를 알려주었다. 그것은 새벽에는 가끔 전파가 안 터질 때도 있으며, 다른 투숙객들에게 피해를 줄 정도로 소란을 피워서는 안 된다는 것 따위의 것들이었다.


    친절하고 정중하고, 예의 바른 남자라 낡은 호텔마저 운치 있어 보였고, 방문을 열고 들어가자 정돈된 방은 가격에 어울리지 않게 비싼 방 같았다.


    아니, 기분탓이 아니라 강원 시내 어디를 가도 이 가격에 이 정도 방은 찾을 수 없을 터였다.

    라운지는 낡아빠진 데 반해, 방은 낡긴 했으나 일반 객실인데도 불구하고 넓고 깨끗했다. 낡은 건물과 어울리지 않기는 하지만 가구들은 모두 거의 새것이었고, 테라스까지 있었다. 역시 새것인 냉장고에는 간단한 음료와 샴페인까지 있어 TV를 켜고 테이블에 앉아 혼자 은은한 나무 향을 맡으며 샴페인을 땄다.

    늦은 시간이라 주로 보는 프로그램도 하지 않았고, 이상하게 몇몇 채널은 신호가 잡히지도 않았다.

    TV 역시 새것이라 고장 난 것은 아닌듯했는데, 주변에 산이 많아서 그런가 보다 했다.

    적당히 채널을 돌리다 볼 프로그램이 없자 TV는 꺼버렸고, 한 잔을 채 안 마신 샴페인은 그대로 두고 침대에 누웠다.


    '기분이 묘하다.'

    갑자기 그런 기분이 든 건 왜였을까? 아무도 없는 라운지? 친절한 주인? 아니면 TV에 흥미있는 프로그램이 나오지 않아서?

    이유를 찾다 멈칫했다.





    기분이 묘했던 이유는 바로 '너무 조용했기 때문'이었다.



    라운지에서부터 복도, 테라스 쪽 창문도 열려있는 방 안에서까지.


    들렸던 소리는 그저 전화 연결음과 TV소리, 내가 샴페인을 따는 소리.


    낡아빠진 호텔에 방음이 그리 완벽할 리 없었다. 가구가 전부 새것인 것을 보아 의외로 방음처리가 잘 되어 있을 수도 있었으나, 벽을 두드려 보니 그건 절대 아닌 것 같았다.

    벽에 귀를 대 보았다. 역시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우연일 지도 몰라. 라운지에, 내가 걸어왔던 3층 복도에, 내 옆, 아래, 윗 객실에 아무도 묵지 않았을 수도 있지. 하긴 이렇게 낡은 호텔이 꼭 꽉 차야 한다는 법이 있나?

    그렇게 생각하는 찰나, 갑자기 등골이 오싹해졌다.


    친절한 남자가 알려준 비밀번호로 열었던 키 카운터에는, 내가 꺼낸 열쇠의 빈자리만 있었을 뿐이었다.

    이 건물에 나 혼자다?

    아니다. 아무리 이렇게 낡은 호텔이라도, 모든 방이 안 나갔을 리는 없다. 그 카운터의 키들은 보조키들이다. 그렇지 않을 리 없다. 여기선 내 이상한 추측이 틀린 것이다.


    핸드폰을 보자 한두 칸 떠있던 전파는 아예 끊어져 버렸고, 벗어놓은 탁자 위 시계는 이제 막 숫자 12를 가리키고 있었다.

    조용히 묵고 갈 수도 있었으나, 갑자기 이 호텔이 의심스러워 졌다.

    친절한 남자는 분명히 '다른 투숙객들에게 피해가 가지 않게'해달라고 했다.

    형식적인 대사일 수도 있었으나, 나는 확인해야 했다.


    305호의 방문을 열고 복도를 걷는다. 계단의 위아래로는 아무도 없다.


    라운지와는 다르게 복도와 계단은 청소가 잘 되어있다.


    들리는 소리는? 여전히 내가 계단을 내려가는 발걸음 소리뿐이다.


    오싹오싹한 기분을 애써 떨치며, 라운지에 도착했다.


    다른 각도에서 봐서 그런가, 라운지는 처음 봤을 때보다 훨씬 음산한 기운이 차있는 것 같았다.


    유리로 된 회전문을 통해 보이는 바깥은 불빛 한 점 없이 빨려들 것 같은 완전한 검정이다.

    아까보다 자세히 보게 되니, 바닥은 더럽고 물건들 하나하나는 모두 깨끗했다. 카운터 위에 올려져 있는 명함상자와 전화기, 숯, 그리고 뒤로 팩스와 도자기, 화분.

    들리는 건 내 구두 소리. 천천히 한 걸음, 한 걸음.

    키 카운터를 연다. 비어있는 칸이 한 칸.. 아니, 전부 볼 수 있게 카운터를 당기자 비어있는 칸이 총 두 칸.

    '205'

    바로 아래층이었다.

    그렇다면 이 카운터는 보조키가 아니라 진짜 방이 205호와 305호 두 개 나간 것이다.

    어이가 없었다. 205호는 말하던 예약 손님인가? 라운지에서는 핸드폰 전파가 다시 두 칸으로 돌아왔다.


    이 불쾌한 기분을 친절한 남자에게 바로 던지려 전화를 걸었지만, 시간은 벌써 열 두 시가 한참 지났다. 어, 시계를 두고 왔네. 하는데, 이상한 점이 하나 늘었다.

    라운지에는 시계가 없다.



    다시 올라가기 싫었다. 오싹한 계단과 복도가 싫었다. 바로 옆으로 보이는 101호나 102호 키를 꺼내서 1층에서 묵고 싶었다.


    그 전에, 딱 한 가지만 확인하기로 하자.

    하며 계단을 오른다.

    한 칸, 한 칸, 조심조심. 다른 투숙객들에게 방해되지 않도록.

    그리고 눈앞에는 '205'


    문을 두드려 본다.

    "계십니까?"

    별로 큰 목소리는 아니었으나, 이 호텔에 들어온 후로 난 가장 큰 소리이다.

    안에는 반응이 없다. 이미 잠들었나?

    한 번 더 방문을 두드린다.

    "아무도 안 계신 가요?"


    어쩔 수 없다 생각하고 아무 생각 없이 문고리를 돌려보는데,




    열려 있다.



    어떡하지? 들어가? 말아? 들어갔는데 아무도 없으면? 그저 키를 주인이 갖고 있던 거라면? 정말로 난 이 호텔의 유일한 투숙객이며, 당장 뭔가 튀어나와도 어색하지 않을 이런 호텔에 묵어야 하는 건가? 안 들어가면? 편하게 쉬고 내일 아침 일어나서 친절한 남자와 농담을 주고받으며 나가서 집으로 돌아갈 수 있나?


    평생 분의 우유부단함을 살짝 열린 문 앞에서 전부 쓰던 중, 갑자기 전화벨이 울린다.


    쪽팔리게도, 기절할 뻔했다. 그래, 사실 악 소리도 질렀다.


    마음의 안정을 되찾고, 전화를 받았다. 친절한 남자다.

    "예 여보세요, 전화하셨습니까?"

    친절한 남자는 아까보다는 더 들떠있는 목소리였는데, 주변은 여전히 시끄러웠다. 아마 밤새 놀고 오려는 모양인데, 저렇게 늦게까지 놀아서야 이따 아침에 볼 수나 있을까?

    "예, 저기.. 뭐라고 말씀드려야 할지.. 혹시 저 말고 다른 투숙객은 없는 건가요?"

    내가 물어놓고도 이상한 질문이다. 돌아오는 건 의아한 목소리.

    "아, 예. 오늘 들어오기로 하신 분이 두 분 계시는데 사실 평소에도 잘 안 들어오는 분들이시라 크게 신경은 안 쓰는 편입니다만.. 혹시 불편하신 점이라도 있으신가요?"


    그래? 그럼 205호는 잠깐 화장실에라도 간 건가? 내가 문 앞에 서 있는 10여 분 동안?

    "그게, 305호에 묵으려 했는데 아래층이 좀 시끄러워서요. 그런데 키가 없길래 찾아가 보니 문은 잠겨 있는데 안에선 아무도 안 나오시고.."

    슬쩍 거짓말을 해본다.

    "205호요? 흠... 음.. 손님, 1시간 안에 가겠습니다. 죄송하지만 그때까지 라운지에서 가만히 기다려주시길 바랍니다. 방값은 받지 않겠습니다. 1시간입니다. 기다려주세요."

    약간 취한 듯한 남자의 목소리는 갑자기 진지한 톤으로 바뀌었다. 기다려달라는 말에는 힘이 들어가 있었다.

    뭔가 있다. 205호에.


    난 공포영화 한 편도 제대로 못 보는 남자다. 하지만 그렇다고 이런 데서 겁먹을 필요는 없지.

    아까의 오싹함은 친절한 남자와의 통화로 조금 누그러들었고, 그 기세를 타서 문을 활짝 열었다.


    그리고 보이는 205호는 305호였다.

    아무것도 다를 게 없었다. 신발을 벗지도 않은 채, 조용조용 살금살금 깊숙이 들어간다.


    부엌, 싱크대, 한쪽에는 데스크탑. 역시 새것인 냉장고에는 음료는 들어있지 않았다.


    다시 바닥에는 카페트, 저 편 거울에 비치는 내 모습은 불이 켜져있는 데도 어두워 보였다.


    긴장이 어느 정도 풀려 침실 안쪽을 보는데, 온몸이 굳어버렸다.





    영화나 드라마에서나 본 노란 테이프. 저게 이름이 뭐더라?


    모두 305호와 똑같았지만, 결정적으로 다른 점이었다.



    침대와 옆 테이블은 흐트러져 있었고 노란 테이프의 정 중앙에는 위로는 샹들리에. 바로 아래엔 거기에 묶여있는 튼튼한 밧줄이, 그 아래로는 의자가 쓰러져 있었다.

    거울로 비치는 밧줄에는 희끗희끗한 게 비쳐 보인다.



    심장이 더 빠르게 뛴다.

    심장은 점점 더 빨리 뛰어만 가는데 몸은 움직이질 않는다.


    숨도 턱턱 막혀온다. 숨소리조차 낼 수 없다.


    부르르 떨리는 양손과 이빨, 이빨이 딱딱 하며 떨리는 소리가 이렇게도 크던가?

    뒤를 돌아서, 들어왔을 때와 똑같이 천천히 나간다.


    한 걸음, 한 걸음.

    문을 닫고 난 후에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달음박질을 한다.

    라운지까지 허겁지겁 달려와 숨을 고르려 한다.



    근데 아까부터 턱턱 막혔던 숨이 긴장 때문인지 아직도 쉬기가 불편하고, 달려와서 숨이 턱밑까지 차있는 터라 나는 그대로 정신을 잃듯 거미의 흔들의자를 잡고 그대로 쓰러졌다.

    숨이 막힌다. 떨림은 멈추지 않는다.


    맞다, 핸드폰도 두고 왔다. 한심하기 짝이 없게도 다시 찾으러 갈 용기가 나질 않는다.


    친절한 남자는 한 시간이라고 했으니 여기서 적어도 40분은 더 기다려야 할 것이다.


    그리고 '라운지에는 시계가 없다.'는 사실이 나를 더 불편하게 만들었다.




    숨 쉬는 건 아직도 불편하고 계속 긴장된 상태로 계단과 회전문을 주시한다.

    이상하다.

    분명히 40분은 지난 것 같은데.. 너무도 길다. 이 한순간 한순간이 정말 싫고 짜증난다.



    내가 만약 라운지에 들어올 때로 돌아간다면, 주변이 너무도 조용한 것과 키가 전부 제자리인 것을 알아차리지 못할 정도로 둔하지는 않을 텐데.


    후회는 늦었고 그저 친절한 남자를 기다려야 했다. 그것 말고는 다른 방법이 없다.

    짐도 3층에 있었고, 지갑과 휴대폰은 2층에 있었으며, 정신도 어디에 떨어뜨리고 온 모양이니까.


    한참을 기다리다 기다리다 지쳐버렸다.

    절대로 이런 곳에서 잠이 들지는 않을 것 같았는데, 몸의 피곤은 공포보다 먼저인가 보다.

    이상하지? 1시간은 정말로 두 번도 넘게 지난 것 같은데..


    잠에 취해서 기절하듯 눈이 감기는데, 카운터 안쪽엔, 서서는 안 보이는 작은 시계가 하나 있기는 했나 보다.

    시계는 계속 12시 25분을 가리키고 있었다.







    "손님, 손님 괜찮으십니까?"

    아, 잠들었었지. 하고 카운터쪽 시계를 살핀다. 정확히 1시. 남자는 한 시간만에 도착한 게 맞나 보다.


    "저, 실은 205호.. 봤습니다."


    일단 솔직하게 털어놓자. 난 체면도 잊고 어디다 하소연하듯 미친 듯이 있었던 일을 풀어놓았다.


    "흐음.. 역시 다시 한 번 죄송합니다."

    내 얘기가 끝날 때까지 가만히 듣고만 있던 남자는 그렇게 말했다.

    그리고 남자는 그 호텔에 대해 몇 가지를 이야기해 주었고, 나는 남자와 함께 짐을 챙겨 나와 그대로 남자와 함께 시내까지 한참을 걸어, 어느 바에서 취해 떡이 될 때까지 마시고 아침에 기차를 타고 돌아갔다.



    [실은, 저희 호텔뿐 아니라, 이 지역 주변엔 요 앞 강원랜드에서 도박하는 사람들이 와서 묵고 가곤 합니다. 그리고 도박으로 탕진한 사람들이 목매달아 죽는 경우도 많지요. 원래 지리 탓에 전파가 잘 안 잡히는 것도 있었지만 몇 년 새에 건물은 심각하게 낡아가고 전파는 새벽 때만 되면 잘 안 터지더라고요. 무당이 와서 굿도 하고, 소금도 치고 해 봤지만, 건물은 계속 낡아만 가고, 자살하는 사람도 꾸준히 늘어만 가고. 저희 객실은 거의 모든 방이 자살한 사람들이 묵던 방이었습니다. 205호는 엊그제 죽고 수사가 덜 끝나서 저렇게 남아있던 거였고.. 그보다 문은 분명히 잠가놓고 키를 가져갔는데 문이 왜 열려있었는지 모르겠네요. 다시 한 번 죄송하고, 사람 많은 시내까지 모셔다 드리겠습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기차에서 한참을 자고 일어났을 때, 시계는 여전히 12시 25분을 가리키고 움직이지 않고 있었다.

    그리고 건물 자체는 낡았는데 방은 마치 시간이 멈춘 듯 깨끗했던 객실.



    객실에 놓고 왔던 시계는 고장난 것도 아닌데 아직도 움직이지 않는다.
     
     
    출처 : 웃대



    희대의역작의 꼬릿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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