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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게시물ID : history_7157
    작성자 : 야매인생
    추천 : 12
    조회수 : 2533
    IP : 121.137.***.77
    댓글 : 2개
    등록시간 : 2013/01/10 01:54:32
    http://todayhumor.com/?history_7157 모바일
    남극탐험사 - 아문센과 스콧 (1)

    (이 글은 퍼온글로 구성되었음을 밝힙니다)



    〈1〉


    유사 이례로 인간의 발길이 닿지 않은 곳에 대한 욕망은 강렬했다. 그 덕분인지 미지의 땅, 인간 한계의 공간에 대한 인간의 집착은 남달랐다. 이런 욕망과 집착 덕분에 수많은 탐험가들과 모험가들이 그들의 지상에서 보낼 수 있었던 남은 생을 버려야 했다. 그들의 이런 희생과 헌신 덕분에 지금 이 땅에 살아 숨쉬고 있는 우리들이 보다 넓은 지구를 확인 할 수 있다는 것을 기억해야 할 것이다.


    이런 희생들 중에서 우리들의 기억 속에 확연히 각인되어 있는 지워지지 않은 희생이 있을 것이다. 지나가는 사람 열명 중 일곱 여덟은 로버트 스콧(Robert F. scott)이란 이름과 로알드 아문센(Roald Amundsen)이란 이름을 들어봤을 것이다. 1911년에 있었던 이 두 명의 남극정복 경쟁은 교과서에 실릴 정도로 유명한 이야기이다.


    분명 승자는 아문젠이건만, 스콧의 드라마틱한 죽음 덕분에 아문젠보다 더 많이 부각된 로버트 스콧…이 둘은 남극점을 정복하기 위해 선의의 경쟁을 하였고 비록 아문센이 이겼지만, 진정한 승자는 죽음 앞에서도 끝까지 굴복하지 않고 최선을 다한 스콧이라는 이야기…우리가 어렸을 적 봤던 위인전에서 한번쯤은 읽어봤을 것이다.


    이 대목에서 궁금한 것이 정말 스콧은 ‘진정한 승리’를 했고, 아문센은 정정당당한 대결에서 승리 하였는가 하는 것이다. 국가와 개인의 영광 여기에 국제정치학적인 배려…그리고 인간의 욕망이 한데 뒤얽혀서 서로 속고 속이고 추잡한(?) 레이스를 벌였다면 믿어지시는가? 단순히 위인전 속에서에 얼음 덩어리로 굳어 있는 탐험가가 아니라, 날 것 그대로의 스콧과 아문센은 어떤 생각으로 남극으로 향했을까? 오늘의 주제는 바로 최초 남극점 정복을 위해 목숨을 걸었던 아문센과 스콧의 ‘남극 레이스’의 진실에 관한 이야기이다.


    1909년 4월 6일…전 세계의 한다하는 탐험가, 모험가들의 뒤통수를 치는 일이 터졌다.


    “미국의 피어리(Robert Edwin Peary)란 놈이 북극점을 찍었대!”


    “진짜? 쉬파 그거 쿡(Frederick Cook)처럼 구라 치는 거 아냐? 쿡이 북극점 찍었다고 설레발 친 게 언젠데…에이, 이번에도 구라 친 거겠지. 미국 놈들 원래 뻥이 쎄잖아.”


    “…이번에는 진짜 같던데?”


    (미국의 피어리와 쿡은 서로 북극점을 먼저 찍었다고 주장했었다. 쿡은 1891년에, 피어리는 1909년에 북극점을 찍었다고 주장했다. 과학적인 조사결과 피어리의 주장이 옳다는 판정이 내려져 세계 최초의 북극점 정복자는 피어리로 기록되게 된다.)


    피어리의 북극점 정복은 전 세계 탐험가들을 절망의 구렁텅이로 몰아넣었다.


    “이런 된장…지들끼리 다 해쳐먹고…뭘 좀 발견 못한 곳이 있어야. 찾을 맛이 있지…죄 몰려가서 깃발 꽂고…더러워서 탐험가 못해 먹겠네.”


    “그러게…우리도 좀 먹고 살아야 할 거 아냐?”


    “그래도 잘 찾아보면, 좀 남아있지 않을까?”


    “어디?”


    “극점이 북극만 있는 건 아니잖아….”


    “설…마…너?”


    “이제 남은 데가 거기밖에 없잖아.”


    “…거기 북극보다 더 위험하지 않냐?”


    “넌 마 그러니까 안 되는 거야. 탐험가가 괜히 탐험가냐? 위험하고, 남들 안가는 곳 찾아가는 게 탐험가 아냐? 이색희는 꼭 날로 먹는 데만 골라 가려고 그래요.”


    “야! 북극이야 대충 악으로 깡으로 밀어붙이면 갈 수 있지만, 남극은 이야기가 다르지! 거기는 거의 안드로메다야!”


    “그래 너 잘났다. 이 덜 자란 육식동물아!”


    북극점이 정복되자, 전 세계의 탐험가들의 머릿속에 공통적으로 떠오른 단어…바로 ‘남극’이었다. 이제까지 인간의 발길을 거부한 유일한 극점. 북극보다 훨씬 더 험준하고, 위험한 곳으로 알려진 남극…마지막으로 남아 있는 왕건이 남극…탐험가들은 침을 흘리고 있었다. 그들 중에는 영국의 영웅인 로버트 스콧(Robert F. scott)도 끼어 있었다.


    “흠…졸라 아깝네. 북극은 나도 가봤지만, 그거 쫌만 더 갔으면…내가 먹을 수 있었는데…이제 남은 건 남극밖에 없으니…까짓 거 남극 내가 먹지 뭐.”


    영국의 영웅…로버트 스콧…그도 한명의 남자였고, 탐험가였다. 이 대목에서 우리가 염두에 두어야 하는 한 가지가 있는데, 스콧은 만들어진 영웅이라는 것이다(만들어졌다는 표현이 좀 께름직하다면…운이 좋았다는 표현을 써도 좋겠다). 툭 까놓고 말해서 스콧이 영국 최고의 탐험가 반열에 올랐었던 이유는 그가 썼던 ‘발견의 여행 The Voyage of the Discovery’라는 책 때문인데,


    “야, 너 스콧이란 탐험가가 쓴 ‘발견의 여행’ 봤냐?”


    “아니? 생활의 발견은 봤는데…발견의 여행은 뭔데?”


    “이색희 이거…이러니까 영국이 발전을 못한다니까. 지금 마 영국 최고 베스트셀러잖아!”


    “그래? 그게 그렇게 대단해?”


    도대체 ‘발견의 여행’이란 책이 어떤 책 이었길래 20세기 초 영국을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것일까? 



    〈2〉


    1899년 해가 지지않는 나라 영국…이 양아치(!) 나라는 남아프리카의 금과 다이아몬드를 획득하기 위해(강탈하기 위한이란 표현이 올바른 표현 같지만) 보어인(Boer : 남아프리카공화국의 네덜란드계 백인을 말하는데, 네덜란드어로 ‘농민’을 뜻한다)들이 만든 트란스발 공화국과 오렌지 자유국을 쳐들어가게 된다. 물론, 실체를 따져보자면 다이아몬드 하면 떠오르는 드비어스社가 보어 전쟁의 바로 뒤에 떡하니 앉아있는 것이지만….


    어쨌든 영국은 이들과 싸운다. 싸웠는데…이기긴 이겼다. 문제는 좀 힘겹게 이겼다는 것이다. 보어인들의 놀라운 사격술 앞에서 영국군은 픽픽 쓰러져갔다.


    “아니 쉬파…해가지지 않는 나라 영국이 저 아프리카 시골 촌구석 놈들한테 질질 끌려가야겠어? 확 밀어버리라니까!”


    “아니…거시기 저놈들이 그래도 저쪽 동네에서는 짱 먹는 놈들이라서….”


    “시꺼! 까라면 깔 것이지, 이게 어디서…빨랑 안가?”


    영국은 보어 민병대의 게릴라 전술. 특히 이들의 저격을 피해보겠다고 카키색 군복까지 개발하며 쌩쑈를 했지만, 이 전쟁은 3년이란 시간 동안 3만 명의 희생자를 내고서야 끝낼 수 있었다. 이기긴 이겼으나, 이겼다고 할 수 없는 전쟁이었다. 당시 영국인들이 받은 충격은 상상 이상이었는데….


    “쉬파, 어떻게 아프리카 촌구석 놈들한테 이렇게 밀릴 수 있어?”


    “이게 이기긴 이긴 전쟁이야? 슈퍼 헤비급이랑 밴텀급이 붙은 거잖아…아니 밴텀급도 아니다. 초등학교 애들 붙잡고 삥 뜯은 거야 이건!”


    자존심이 상했던 영국…이들에게는 보어전쟁의 아픈 상처를 씻어 줄 ‘영웅’이 필요했던 것이다. 이때 등장했던 것이 로버트 스콧(Robert F. scott)이었다.


    “내가 말이쥐…북극을 좀 다녀왔거든? 그러니까 설라무네…1901년에 영국 북극 탐험대에 참가했거든. 언제 왔냐고? 1904년에…뭐 자세한 이야기는 내가 쓴 ‘발견의 여행’(The Voyage of the Discovery)을 읽어보면 될 거야. 야야, 증정본은 무슨…한권 좀 사 봐라! 책값이 얼마나 한다고….”


    1901년부터 1904년까지 영국 북극 탐험대의 일원으로 북극에서 생활한 이야기를 담담하게(?) 풀어 쓴 ‘발견의 여행’의 주 내용은….


    “너 북극이야? 나 스콧이야! 이렇게 말하는 거야…그리고? 그리고 이렇게 뚜벅뚜벅 걸어가. 그럼 북극이 쫄아…쫄면서 팍 이렇게 폼 잡으면 주춤하면서 유빙을 떨어뜨리거든. 거봐 이렇다니까! 북극곰? 네가 북극곰이야? 나 스콧이야! 이렇게 가…가서 째려보면, 팍 쫀다니까! 봐봐! 이렇게 앞다리 들거든…그럼 존나게…존나게 당수로 내려치는 거야. 언제까지? 앞다리 부러질 때 까지!”


    그랬다…이 책의 내용은 처음부터 끝까지 스콧이 잘났다고 떠드는 내용이었다. 혹한의 극한지에서 스콧 혼자 북치고, 장구치고, 랩에 비트박스까지 혼자 다했다는 내용이었다.


    “역쉬! 영국인이야!”


    “그럼 그렇지…달리 영국인이겠어? 스콧은 영국인의 우수성을 온 세계에 알린 영웅 중의 영웅이야!”


    보어 전쟁의 상처를 하루빨리 덮어버리고 싶어 했던, 영국 사회는 이 잘생긴…은 아니고, 이 젊은 대머리 해군 장교에게 열광하게 된다. 패한 전쟁은 영웅을 필요로 한다는 말처럼, 영국은 영웅이 필요했던 것이다. 문제는…영웅의 그늘이 너무도 짙고, 컸다는 것이다. 영웅을 만들기 위해서는 그 옆에 같이 있었던 동료들은 전부 바보가 되어야 했다는 것이다.


    “스콧, 이 개노무시키야! 너 혼자 용 되니까 좋냐? 뭐? 네가 북극곰을 때려 잡어? 네가 사람이야? 구라를 쳐도 좀 개념있게 쳐야지…아주 지랄을 해라, 지랄을!”


    “어휴, 그렇게 잘 나셨어? 그럼 북극에다가 아주 살림을 차리시지 그러셨어요? 혼자서 다 할 수 있는데 영국에는 왜 오셨을까?”


    스콧과 같이 북극을 탐험했던 동료들이 들고 일어났다.


    “억울하면 네들도 책 쓰지 그래? 이것들이 말야. 남 글 쓸 때는 아무 말도 안하더니, 왜? 책이 잘 나가니까 부럽냐? 그러게 미리미리 논술공부를 하지 그랬어.”


    스콧을 건딜 수는 없었다. 이미 스콧은 영국의 영웅이 되었고, 어느 순간 영국 탐험대 중에서 가장 노련하고 용감한 인물이 되어 있었던 것이다. 이런 스콧의 목표는 아주 당연하게도 북극점 정복이었지만…이를 어쩌나? 이미 미국의 피어리가 북극점을 정복한 상황. 남아 있는 나머지 극점을 찍기 위해 스콧은 짱구를 굴리게 되는데….


    “피어리 이 개노무시키…감히 내 밥그릇에 숟가락을 꽂아? 이시키를 그냥…어휴…이걸 그냥 확! 어쨌든…마음을 좀 진정하고, 그래 나한테는 아직 남극이 남아 있잖아? 그래…피어리 그놈이 찝적거리기 전에 먼저 침 발라두자!”


    툭 까놓고 말해, 20세기 초반의 탐험계는 두 명의 짱들이 각각의 나와바리를 가지고, 힘겨루기를 하는 상황이었다. 한명은 북극점을 정복한 피어리(Robert Edwin Peary)였고, 나머지 한명은 책 한권 잘써서 용 된 스콧(Robert F. scott)이었다. 문제는 이들 말고도 수많은 군소 조직(?)들이 ‘남극’이라는 마지막 ‘왕건이’를 바라보며 침을 흘리고 있었다는 것이다. 과연 남극은 누구손에 들어갈 것인가?




    〈3〉




    탐험계를 양분한 피어리(Robert Edwin Peary)와 스콧(Robert F. scott)…이 둘의 자존심은 하늘을 찔렀다. 문제는 이들 중 스콧의 자존심에 약간의 문제가 있었다는 것이다…그렇다 그의 자존심에는 거품이 끼어 있었던 것이다. 생각해 보라. 어쩌다 운이 좋아서 영웅이 된 스콧…그와 같이 북극에서 탐험을 했던 동료들은 그를 인간 취급하지 않았다. 이런 정통성에 기스가 나 있었던 스콧은 자신의 정당성을 끊임없이 확인하려고 압박을 가했다.


    “쉬파…네들 말야. 남극은 내가 먼저 찍을 거거든? 내가 옛날부터 침 발라 놓은 거야! 손 되는 놈 있으면 내가 허리를 접었다 폈다 해서 오징어 덕장에 걸어 둘 테니까 각오들 해!”


    그러나…사건은 터져 버렸다. 남극을 공격하기 위해 맥모도사운드에 기지를 만들었던 스콧…스콧은 남극으로 향하는 탐험대에 신신당부…아니 협박을 했었다.


    “이거는 내가 남극 가려고 만든 거거든? 네들 절대 건드리지 마. 알았어? 이건 나만 쓸 수 있는 겨!”


    스콧의 협박에 선선히 그러겠다고 말한 영국 탐험대…


    “그냥 남극으로 산책 가는 거라니까 그러네…”


    예전에 스콧과 함께 북극 탐험대에서 활동했던 어니스트 섀클턴(Ernest shackleton)…그는 천천히 남극으로 산책(?)을 떠나게 된다. 그리고는 남극점 100마일 전방까지 파고들었다가 퇴각한 것이다. 물론 스콧의 기지를 사용해서 말이다.


    “섀클턴! 이 덜 자란 육식동물 같은 시키야! 네가 사람이야? 내가 분명 사용하지 말랬지? 이시키…너 죄졌어? 몰래 남극점으로 달려가게? 하…이 덜 자란 육식동물같이 생긴 놈이 스팀 돌게 만드네?”


    “허…넌 뭔데? 동료들 다 병신으로 만들고, 혼자 용 된 놈이 어디서 지랄이야? 왜? 또 책 쓰게? 그래 써라. 나도 책 한번 써 보자. 이 재활용 쓰레기로도 분류 안 되는…그래 너는 타는 쓰레기도 안 되는 놈이야! 하긴…네가 남극은 무슨 남극이야? 지랄을 랜덤으로 떨어라. 동료들 배신하고, 지 용 되보겠다고 다 쓰레기로 만든 놈이.”


    섀클턴의 남극 공략을 보면서, 스콧은 충격을 받게 된다.


    “더 늦기 전에 내가 남극점을 찍어야겠다. 애들 당장 모아! 이 참에 남극으로 피크닉이나 갔다 오자!”


    남들이 먼저 남극을 정복 할 거 같다는 불안감과 조급함에 스콧은 황급히 탐험 준비에 들어가게 된다. 그러나…이런 일을 할 때마다 어김없이 등장하는 원초적 문제! 그렇다 바로 돈이었다.


    “해가지지 않는 나라 영국이 남극을 정복하는 거…당연하지 않습니까? 양키놈들이 얍실하게 북극점 찍은 거도 억울한데, 남극점까지 찍어야겠습니까?”


    “…아직 양키 놈들이 남극 간다고 설치지도 않는데…그리고 탐험이란 게, 뭐 떨어지는 거도 없고…또 이런데 예산 썼다가는 국정감사 받을 때 국회의원들이 들고 일어나서…”


    “쉬파…누가 공무원 아니랄까봐…더러워서 나랏돈 안 써!”


    스콧은 영국 정부에서 예산지원에 난색을 표하자 거리로 뛰쳐 나가게 된다.


    “영국의 자존심을 걸고 제가 남극점을 찍겠슴다! 제발 한 푼만 줍쑈…는 아니고, 여하튼 돈이 필요 함다! 여러분이 쫌만 도와주면, 세계최초로 남극점을 찍은 사람은 영국인이 됩니다. 제발 한 푼만 도와…이게 아닌데, 근데…낯설지가 않네? 도와 줍쑈!”


    스콧은 일반인들을 대상으로 모금행사와 강연회를 열어 밑바닥 민심을 후비기 시작했다.


    “글치…대영제국이 아닌 놈들이 남극 땅에 깃발 꽂는 걸 볼 수는 없지!”


    “정치하는 시키들 한테 돈 달라고 하지 마! 우리가 줄게!”


    민심이 움직이자, 언론이 따라 움직이기 시작했다.


    “아니, 우리의 위대한 탐험가이자 모험가인 스콧이 길거리에 앉아서 구걸을 해야 겠냐? 이게 스콧 혼자 잘 먹고 잘살자고 하는 짓도 아니잖아? 대영제국의 영광을 오늘에 되살려 민족중흥의 역사를 이끌어 나가겠다고 하는 거 아냐? 국회의원들 세비 받아 쳐 먹고 맨날 하는 짓이 골프장에 가서 오징어로 관리인 패고, 심심하면 세금으로 해외여행 나가는 거 아냐? 그런데 쓸 돈 있으면 스콧이나 도와줘라!”


    언론이 움직이자, 정부도 더 이상 강 건너 불구경을 할 수가 없었다.


    “…아니 뭐 우리가 안 주려고 한 게 아니라…이게 또 행정조직에는 다 단계가 있는 거라서…”


    정부가 움직이자, 이제 기업들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어이 스콧 선생…우리도 좀 지원을 하려고 하는데….”


    “어이구…정말 감사합니다.”


    “그런데…좀 조건이….”


    “…예?”


    “그 뭐시냐…오는 게 있으면, 가는 것도 있다고…우리가 협찬사에 이름을 올렸으면 하거든….”


    이리하여 스콧은 일반 국민들, 정부, 기업들의 후원으로 탐험에 필요한 경비를 조달할 수 있게 되었다. 슬슬 일이 풀려 나가려고 하는 그 순간…스콧의 뒤통수를 강타한 사건이 터지게 된다.



    〈4〉


    “에…또 그러니까, 원래 북극점을 찍은 건 우리나라여. 우리나라! USA…우리는 우주랑 맞짱 떠서도 이길 수 있는 나라여. 북극점도 찍은 우리나라가, 남극점도 찍어야 뭔가 좀 완결된 느낌이 들지 않냐? 우리는 북극점 정복의 주인공인 피어리(Robert Edwin Peary)를 지원할 거여. 그러니까 일정은 나눠준 보도 자료에 나와 있는데, 일단은 1911년…그러니까 내년이겠지? 내년 12월에 남극 땅에 탐험대를 보낼 거야. 거기서 한 1년 정도 탐험도 하고, 과학조사도 하면서 현지적응을 시킬라고…그런 다음에 남극점을 정복하겠다는 게 우리 계획이여.”


    1910년 2월 3일 미국국립지리학회가 ‘남극점 정복계획’을 발표한 것이다. 세계는 흥분했고, 영국인들은 인상을 구기게 된다.


    “양키노무시키들…이것들 뻑 하면 우리들 딴지를 걸고 지랄이야?”


    “그러게…하긴 양키 놈들 뻥이 워낙 쎄서. 이러다 말겠지.”


    “이번에는 좀 달라 보이는데? 피어리라잖아. 저번에 북극점 찍은 놈.”


    “에이, 우리한테는 스콧이 있잖아! 북극의 영웅!”


    “야…툭 까놓고 말해서. 스콧이 북극점 찍은 건 아니잖아? 아무리 영웅이면 뭐하냐? 뭔가 좀 실적이 있어야지.”


    “에이, 아니라니까…스콧이 좀 운이 없어서 그렇지. 진짜는 스콧이야! 피어리 그놈시키는 그냥 운때가 좋았을 뿐이라니까!”


    미국과 영국 국민들은 서로 자국의 탐험가들이 남극점을 정복할 거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고, 세계 탐험계는 이 흥미진진한 양국의 레이스를 기대하게 된다.


    “하긴…미국과 영국이 붙으면…그림은 좀 나오겠네. 글치?”


    “그렇지. 둘 다 강대국 중에 강대국이잖아. 또, 미국이 영국에서 독립한 나라 아니야? 이거 이야기 되겠는데?”


    상황이 이렇게 돌아가자. 피어리가 나서서 흥을 돋우기 시작했다.


    “이번 레이스가 극지방 탐험사상 가장 긴장되고 가장 흥분되는 시합이 될 것이다.”


    미국과 피어리가 들고 일어나자 스콧은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오케이! 계속 그렇게 떠들어라…흐흐.”


    자신의 경쟁자가 남극정복을 외치고 다니는 것을 보고 좋아하는 스콧…왜 그랬을까? 이유는 간단했다. 바로 영국인들의 ‘감정’ 때문이었다.


    “북극점도 양키 놈들한테 뺏겼는데, 남극까지 넘겨주라고? 차라리 나보고 빅벤 위에서 스트립쑈를 하라고 그래라!”


    “더 이상 양키 놈들이 설치는 꼴을 볼 수는 없어!”


    “야! 양키들이 피어리를 내세운다면, 우리는 스콧을 내보내자! 스콧을 남극으로 보내자!”


    “그래! 스콧을 남극으로 보내자!”


    “저번에 보니까 돈 없어서 남극 못 간 다는데…전부 가진 거 다 털어내 봐!”


    그랬다. 피어리가 나서서 남극 정복을 선언하자 영국 국민들의 감정이 격해졌던 것이다. 양키한테는 질 수 없다는 묘한 호승심이 발동하면서 사람들은 너도 나도 주머니를 털어 스콧의 남극탐험 자금을 지원해 주었던 것이다. 이런 걸 두고 전화위복(轉禍爲福)이라고 하는 것일까? 스콧의 가장 큰 경쟁자가 스콧의 가장 큰 후원자가 되어버린 이 아이러니컬한 상황. 이 당시 스콧은 표정관리 하기 바빴었을 것 같다. 어쨌든 돈 때문에 남극을 못가는 상황에서는 벗어난 스콧…이제 세계는 피어리와 스콧이 언제 레이스를 시작할 것인가에 주목하였다. 그러나…이 레이스는 시작도 하지 못했다. 왜? 피어리는 남극점 정복에 뛰어들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스콧의 상대는 따로 있었던 것이다.


    “아문센 들었어? 피어리란 양키 놈이 북극점을 정복했데!”


    “뭐? 그거 사실이야?”


    “지금 장난 아냐! 북극점 정복했다고 신문에서 난리가 났어!”


    “이런 된장….”


    1909년 4월 6일 미국의 피어리가 북극점을 정복한 사실을 확인한 로알드 아문센(Roald Amundsen)이 받은 충격은 상상 그 이상이었다. 앞전에 언급한 스콧의 충격과는 그 차원부터가 달랐다.


    “쉬파…북극은 꼭 내가 정복하려고 했는데…젠장! 빌어먹을 양키시키!”


    아문젠이 북극에 집착한 이유…이유는 간단했다. 바로 그의 조국 때문이었다. 그의 조국 노르웨이가 스웨덴으로부터 독립한 것은 1905년…한때 스웨덴과 전쟁 바로 직전까지 간 상황이었지만, 어쨌든 성공적으로(?) 독립을 이룬 노르웨이…이때 노르웨이 국민들은 영웅을 원했다. 그도 그럴것이 독립을 한 지 얼마 되지 않은 북유럽의 소국…분위기 쇄신이 필요했던 것이다.


    “바로…코앞이 북극인데…배타고 쫌만 가면 북극인데…이걸 양키놈들한테 뺏기다니….”


    어렸을 적부터 북극을 보고 자란 아문센에게 있어서 북극점 정복은 ‘숙명’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그의 숙명을 북극은 받아들이지 않았던 것이다.



    〈5〉


    북극점 정복을 피어리에게 빼앗긴 아문센(Roald Amundsen). 그는 다른 탐험가들이 그랬듯이 아주 자연스럽게 나머지 극점에 눈독을 들이게 된다.


    “이제…남아 있는 극점은 남극밖에 없다. 어쨌든 저걸 정복해야 하는데….”


    이 대목에서 우리가 주목해야 하는 것이 아문젠은 철저한 프로 중의 프로였다는 것이다. 


    미국이 쑈맨십에 취해서 대중을 상대로 분위기를 띄우고, 영국이 패배의 기억을 지우기 위해의도적인 영웅 만들기에 나서는 그 와중에 아문젠은 철저히 남극정복을 위한 준비에 들어갔던 것이다.


    “아문센이요? 프로죠…그 사람 별명이 뭔 줄 알아요? 아테일이에요. 하도 디테일에 신경을 써서. 애들을 완전 잡아요. 탐험가서 쓸 휴지 소요량을 계산하는데, 애들이 DDR 하면서 쓸 소요량까지 계산하드라고요. 완전 괴물이에요.”


    “피어리랑 스콧에 가려져 있어서…솔직히 말해서 걔들이랑 같은 급이에요. 대서양에서 태평양까지 북서항로를 개척한 것만 봐도 대단하잖아요? 북서항로를 횡단한 최초의 인물이 아문센이잖아요…나라가 좀 작아서 부각이 안 된 거지. 알고 보면 아문센도 스페셜 급이죠.”


    아문젠은 아주 조용히, 그리고 은밀하게 남극탐험 준비에 들어가게 된다.


    “아이, 대장! 우리도 스콧이나 피어리처럼 선전도 때리고, 기자회견도 하고…그 뭐시냐? 보도자료도 뿌리면서 탐험대 광고 하죠? 이게 뭡니까? 우리가 간첩질 하는 겁니까? 숨어서 몰래 탐험 준비하고….”


    “이색희가…야 인마 식당 개 3년이면 라면을 끓인다는데, 넌 마 내 밑에서 몇 년인데, 아직까지 얼빵한 소리를 무한반복 재생하고 있냐? 우리가 탐험한다고 나서자? 누가 좋아하겠냐? 응? 그리고…우리가 탐험한다고 발표하면, 그건 스콧이나 피어리 도와주는 짓이야. 우리가 왜 우리 경쟁자들 도와줘야 하는데?”


    “그게 뭔 소리에요? 우리가 남극을 정복하면, 그거 국위선양하고 좋은 거 아닌가요?”


    “…휴 이 자식 이거 개념을 완전히 가출시켜 버렸구만? 야 인마 머리가 있으면, 생각을 좀 해봐! 너 인마 내가 늘 말했지? 머리는 악세사리가 아니라고! 지금 당장 우리가 남극탐험에 들어간다고 치자…그리고 운이 좋아서…아니 아니, 우리가 남극점을 정복했다고 치자. 우리 정부가 좋아하겠냐?”


    “에? 좋아하지 않나요? 좋아해야 하는 거 아닌가?”


    “정상적인 상태면 좋아하겠지…그런데, 우리나라가 독립한 지 얼마나 됐냐? 10년이 됐냐? 20년이 됐냐? 주변국 눈치 보면서 조용히 숨죽이면서 사는 게 지금 현실이잖아. 노르웨이 외교방침이 뭐냐? ‘조용히 숨쉬자’잖아. 근데 우리가 영국이랑 미국이랑 남극점 정복하겠다고 나서는데 꼽사리 껴서 덜컥 남극 정복했다고 치자…걔들이 우리 어떻게 쳐다보겠냐? 우리가 나서서 남극 정복하겠다고 설치면, 정부 애들이 얼씨구나 좋다고, 잘 다녀오세요. 그러겠냐?”


    “아….”


    “그리고, 우리가 나서서 좋은 게 뭐냐? 스콧 봤지? 그 쌩양아치 같은시키…돈 없어서 빌빌거리던 게 엊그제구만, 피어리가 튀어나와서 남극 정복하겠다고 설레발치니까 영국 놈들이 개떼처럼 돈 들고 모여들었잖아. 그런데 우리까지 나서? 그럼 돈 더 모일걸? 왜 우리가 남 좋은 일 해야 하는데? 너도 인마 신문도 좀 보고, 책도 좀 봐라. 애가 어떻게 갈수록 아이큐가 떨어지냐? 너 후천성 아이큐 결핍증 같은 거 걸린 거냐? 이리 오지 마! 멍청한 거 전염돼!”


    역시…아문센은 프로였던 것이다. 그러나 원래 바닥이 좁은 게 또 탐험계였던 것이다. 한 다리 건너면 다 형 동생 하고, 두 다리 건너면 전부 동기동창 먹는 이 동네…아무리 은밀히 준비한다 해도 아문센이 탐험팀을 꾸린다는 소문이 퍼져나갈 수밖에 없는 것이었다. 주변에서 의혹의 시선들이 아문센에게 모아지기 시작했고, 이 시선에는 스콧의 시선도 포함되어 있었다. 결국 아문센은 공식 입장을 발표하게 되는데….


    “에…그러니까, 우리가 지금 꾸리는 탐험 팀은 북극의 과학적 연구조사를 위한 것입니다. 아무리 피어리가 북극점을 정복했다고 하지만…그건 그냥 점찍은 거에 불과합니다. 저 엄청난 크기의 북극의 크기를 생각하면, 그야말로 새발의 피…아니 타조 발에 피 입니다! 그리고…우리나라의 지정학적 위치상 북극에 대한 연구는 필수적입니다. 노르웨이의 국익을 위해서라도 저는 북극으로 갈 겁니다.”


    아문젠의 발표에 스콧은 안심하게 되는데….


    “좋았어! 이제 남극으로 갈 수 있는 탐험 팀은 우리밖에 없는 거야!”


    이 무렵 남극정복을 외쳤던 피어리는 남극탐험 계획 자체가 유야무야 된 상황이었다. 이제 남극점 정복은 스콧의 결단에 달려 있는 것처럼 보였다. 상황이 이렇게 돌아가자 스콧은 한껏 분위기가 업 되어버렸다.


    “어이 아문센…야, 네가 그렇게 나라를 걱정하고, 북극을 생각하는 줄 몰랐다. 우리 그러면 북극에 대한 과학 자료를 나눠 쓰는 거 어때? 우리도 몇 번 북극 갔다 와서 자료 많거든? 우리가 좀 도와줄까? 응?”


    스콧은 아문센에게 과도한 ‘친절’을 보이며, 자신의 ‘업’된 마음을 보여주는데…그러나, 아문센은 아무런 대답을 하지 않았다.



    〈6〉


    아문센(Roald Amundsen)이 남극이 아니라 북극의 과학탐사를 위해 탐험대를 꾸린다는 소식에 한껏 업 된 스콧(Robert F. scott). 그는 아문센에게 계속해 ‘친절’을 날리는데….


    “야야, 뭘 또 그렇게 부끄럽게 해? 서로 돕고 살자는 거잖아? 안 그래? 네가 그렇게 북극을 사랑하는 줄 몰라서…그래도 또 북극하면 내가 또 전문가 소리 듣잖아. 아 혹시 내 책 봤냐? ‘발견의 여행’(The Voyage of the Discovery)이라고…이런 말 하긴 그렇지만, 꽤 괜찮은 책이거든? 뭐…책 선전하자는 건 아니고, 어때? 너 과학연구 하러 간다고 했지? 나도 그쪽 자료는 꽤 가지고 있거든? 필요하면 내 자료 줄게. 그리고 너도 거기서 연구하다가 좋은 거 있으면 좀 줘라. 탐험가끼리 서로 돕고 살아야지.”


    스콧의 이런 반응에 당황한 건 아문젠이었다.


    “저시키 저거 왜 저렇게 오바하는 거야? 남 이사 과학탐험을 하든 말든…뭘 저렇게 과도하게 관심을 보이는 거야?”


    “우리가 남극 안간다니까 신나서 오바하는 거 같은데요?”


    “하긴…단순한 노무시키….”


    “어쩌죠? 벌써 몇 번째인지 모르겠습니다. 편지도 계속 보내고 있고….”


    “어쩌긴 뭘 어째? 쌩 까버려. 말 섞었다가는 나중에 귀찮아 질 거야.”


    그랬다. 남극점 정복을 위한 탐사란 걸 숨기기 위해 대외적으로 ‘북극 과학탐사’란 타이틀을 달고 움직이고 있는 아문젠…만약 여기서 스콧의 자료를 받거나 했다가는 나중에 수습하기가 어려워지는 것이었다. 문제는 스콧이 좀처럼 자신의 ‘친절’을 거두려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아문센 이 자식…사내새끼가 부끄러워하기는…에이 부끄럼쟁이 같으니라구…하긴, 북쪽 애들이 좀 과묵하긴 하지…좋아 이럴 때는 마음 넓은 내가 먼저 움직여야지. 어이 교환! 노르웨이로 연결 해 줘…음 수신자 부담으로! 엄마가 국제전화 쓰지 말래서…”


    그러나 아문센은 스콧의 전화까지 거절했다. 보통 이 정도면 뭔가 좀 이상하다고 느낄 법도 한데, 스콧은 끝까지 아문센을 믿었다…뭐 믿고 마시고 할 것도 없었다. 아문센은 이미 북극으로 간다고 발표하지 않았는가? 스콧은 아문센이 과도하게 부끄럼을 탄다고 믿었고, 그래도 북극에 대해서는 많이 알고 있는 자기가 아문센을 도와야겠다는…쓸데없는 ‘친절’을 계속해 발휘하기 시작했다.


    “에…이건 말이지. 내가 북극 가서 썼던 북극 측정용 도구거든? 나도 이걸로 남극 가서 측정할 거거든…우리 서로 사이좋게 남극과 북극의 통계를 맞춰보는 거야. 좋지? 그리고…이거 착불이다. 국제 택배는 좀 비싸서…그럼 뭐 열씌미 북극 갈 준비 하고…조심해서 갔다 와. 알았지?”


    스콧의 과도한 친절을 받아 든 아문젠 탐사대는 측정기를 멀뚱히 바라볼 뿐이었다.


    “이거 어쩌죠?”


    “…어쩌긴 뭘 어째? 준거니까 일단 잘 챙겨 둬.”


    “거시기…지금이라도 자수하고, 광명을 찾는 게….”


    “우리가 간첩질 했냐? 자수하게?”


    “…일이 점점 커지는데, 이렇게 그냥 쌩 까고 있다가 나중에 뒷감당을 어떻게 하려구요?”


    “지금…우리가 원래는 남극 가려고 한 건데, 뺑끼 쳤어요. 그러면 어떻게 될 거 같냐?”


    “아니 뭐…그래 열심히 해라라고….”


    “지랄을 랜덤으로 떨어라. 우리 스폰서가 누구냐?”


    “스폰지요? 보글보글 스폰지 밥은…요즘 어디서 하더라? EBS에서….”


    “…이색희 묻어버려.”


    “아…아니 그게…분위기가 하도 심각해서…조…조크입니다!”


    “…휴 나도 인마 남극 간다고 당당히 기자회견하고 그렇게 가고 싶어. 알아? 근데 현실이 안 그렇잖아. 당장 우리 스폰서가 누구냐? 정부 꼰대들 아니냐? 이 아저씨들 독립한지 얼마 안돼서 정신 하나도 없어. 근데, 영국 애들이 목숨 걸고 덤벼드는 남극탐험에 우리가 끼어들겠다고 덤빈다면 걔들이 뭐라 하겠냐? 당근 영국 애들 표정 굳어지지. 그럼 외국 눈치 보는 울 나라 정부 애들이 뭐라 그러겠냐? 당장 꼬리 말고는 아예 잘못했습니다…애들이 철이 없어서요. 당연히 영국 형님들이 먼저 가셔야죠. 그럴 거 아냐?”


    “악으로 깡으로 달려가면 안됩니까?”


    “…너 남극에 내복 한 장 입고 갈래? 거기까지 가는 배는? 장비는? 무선은? 그거 다 돈이야 자식아.”


    “…영국 이 개노무시키들!”


    그랬다. 당시 유럽은…아니 전 세계에서 영국과 맞짱 뜨고 싶어 하던 나라는 거의 없었다. 전 세계에서 제일 잘 나가는 나라…이런 나라와 불편한 관계를 가지고 싶은 나라는 별로 없었다. 더구나 신생국가 노르웨이라면 영국이 죽으라면 죽는 시늉이라도 해야 하는 것이었다. 아문센과 탐험대는 모든 준비가 될 때까지 남극점 정복이라는 목적을 감추고 최대한 신속하게, 그리고 정확하게 일을 추진하겠다고 결심하게 된다. 그들에게 두 번째 탐험은 없었던 것이다.



    〈7〉


    전 세계를 상대로 사기를 치면서까지 남극 탐험을 준비하고 있는 아문센의 탐험대. 이들이 가장 신경을 썼던 탐험 장비는…개였다.


    “북극에서 에스키모들이 개 썰매 몰고 다니잖아? 이거…남극에서 통한다. 똑같은 얼음 덩어리인데, 환경도 비슷하고…이게 제일 낫아. 괜히 엄한 동물 데려갔다가는 개죽음 당하기 십상이야. 이번 탐험의 성패는 얼마나 좋은 개를 많이 확보 하냐는 것이다.”


    아문센은 개장사에게 신신당부를 했었다.


    “살이 바짝 오른 놈으로…튼튼하고, 힘 좋은 걸루다가 최대한 많이 준비해. 괜히 비실비실한 똥개 줬다가는…아주 개 박살을 만들아 줄 테니까.”


    “아니…복날 지난지가 언젠데…”


    “…야 지금 장난해? 누가 먹으려고 개 사냐?”


    “알았으니까 신경 끄쇼.”


    “아, 그리고 혹시나 해서 하는 말인데…누가 또 나처럼 개를 대량으로 사려고 한다면…내가 먼저 찜했다는 거 잊지 마쑈.”


    “누가 또 개를 산다고 그래? 복날도 다 지났구만…어디 TV에 개장국이 맛있다고, 방송 탔나?”


    “하여튼 난 말했어! 딴 놈이 개 달라고 하면, 내거 챙겨주고 나서 팔아야 할 거요.”


    아문센은 스콧이 좋은 개를 먼저 차지할까봐 미리부터 개를 확보하는데 온 신경을 집중했던 것이다. 그러나…이런 아문센의 걱정은 기우에 그쳤다.


    “대장! 들었어요? 스콧은 개를 안 쓴답니다!”


    “그게 뭔 개소리야? 개를 안 쓰다니?”


    “진짜라니까요! 스콧은…말을 쓴답니다.”


    “…이 미친놈이 남극 가서 애마부인…아니 애마탐험대 찍겠다는 소리야?”


    그랬다. 스콧은 개를 쓰지 않기로 결정한 것이다.


    “개? 참 개만도 못한 것들이지…내가 말야. 북극에서 몇년 간 탐험을 했었잖아? 그때의 기억들을 모아서 책으로 낸 게 ‘발견의 여행’(The Voyage of the Discovery)이라는 책인데, 책들은 다 샀지? 아직도 안 샀어? 이런 개만도 못 한…음음 아니 뭐 천천히 읽으라고…어쨌든 그때 내가 개 썰매를 타봤거든, 이거 정말 개판이었어. 개들이 훈련을 제대로 못 받아서 그런 건지…아니면, 원래 성격이 개판인 건지 고생을 무지하게 했거든.”


    “그래서 개를 포기하신 겁니까?”


    “음 뭐 그렇지. 미지의 땅 남극을 가기 위해서는 안정성이 최우선이라서…”


    “그래도 너무 무모한 게 아닙니까? 그래도 개만한 것도 없는데?”


    “그 개가 아주 개판이라니까 그러네…”


    “그럼 개 대신 뭘 사용하실 예정입니까?”


    “굿 쾌스천! 내가 개 대신 사용할 동물은…추위에도 강하고, 끈기도 있고, 나중에는 식용으로도 쓸 수 있는…”


    “개도 가능한데…”


    “…개는 근수가 얼마 안되잖아! 흠흠…소개하겠습니다! 영국 탐험대의 선봉장이 될 만주 조랑말입니다.”


    “……”


    스콧이 주목했던 동물은 만주 벌판에서 뛰어 놀던 조랑말 들이었다. 한때 칭기즈칸과 그의 부하들을 태우고 전 세계를 주름 잡았던 만주산 조랑말…만주의 추위 속에서도 꿋꿋이 주인을 태우고 목적지를 향해 끝까지 달려갔던 조랑말…스콧은 이 조랑말이 자신과 탐험대를 남극점에 데려다 줄거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이 만주 조랑말은 추위에 강할 뿐만 아니라, 체격 대비 힘과 끈기가 장난이 아닙니다. 더구나 그 힘이 다한 조랑말들은 탐험대의 비상식량으로서 최후를 맞이 할 겁니다.”


    “…아무리 그래도 이거는 좀…말의 식량은 어쩔 겁니까? 무게가 만만찮을 텐데요?”


    “조랑말은 덜 먹습니다!”


    “…거시기…이게 말굽이 갈라져 있어서 눈밭을 헤쳐 나가기에는 좀 문제가 있지 않을까요?”


    “전혀, 네버 문제 안됩니다!”


    “…만주 조랑말이 아무리 추위에 강하더라도 남극에서는…좀 위험하지 않을까요?”


    “후후, 걱정 마십시오. 이 만주 조랑말의 털 색깔을 보십시오. 하얀색 아닙니까? 이게 뭘 의미하는 걸까요? 그렇습니다. 이 하얀 털은 남극의 하얀 눈밭의 색깔과 똑같은 겁니다. 즉, 남극에서도 적응을 잘 할 수 있다는 의미인 겁니다.”


    “…저기…털 색깔하고 적응은…”


    “이 사람이…이거 왜 이래? 나 스콧이야! 극지방에 있어서는 내가 최고야! 알아?”


    스콧의 소식을 들은 아문젠은 좀체로 이 사실을 믿으려 하지 않았다.


    “야야…아무리 개념을 가출시킨 놈이라도 그런 헛소리는 하지 않아. 이색희 처음에는 말 쓴다고 그랬다가 나중에 출발할 때는 분명 개 끌고 갈 거야. 야, 우리 개 뺏기지 않도록 개 단속 잘해! 개장수한테 최고 A급 아니면 안 받을 테니까 알아서 준비하고 확인하고!”



    〈8〉


    개 대신 만주산 조랑말을 선택한 스콧…머리가 달린 탐험가들은 그를 설득하려고 나섰지만, 그의 설명을 듣고 나서는 말을 더 이상의 설득을 포기하게 된다.


    “말은 탐험의 전반부까지만 쓸 거야. 그러니까…그레이트아이스 보빙을 건너서 비어드모어 빙하까지만 말을 타고 가는 거야. 이때쯤 가면 말도 거의 탈진상태거든? 그럼 이때 말을 잡아먹는 거야. 말고기로 체력을 비축한 다음 말고기 파워로 힘을 내서 썰매를 끌고 가는 거야.”


    “…사람보고 끌라고?”


    “왜 안돼?”


    “…야 그게 무슨 지렁이가 탭댄스 추는 토킹 어바웃이야? 사람이 썰매를 끈다고?”


    “후후…네가 몰라서 그러나본데, 요즘 탐험이 어디 탐험이냐? 죄 개가 끌어줘. 세르파가 날라줘…이게 무슨 탐험이야? 탐험 하면 자력으로 짐이랑 장비 들고 가서 끝장을 보는 거! 이게 사나이의 로망 아니겠냐? 개를 끌고 가서 남극점 정복해 봐라. 이게 무슨 플레이냐? 가오 안 서게. 남자라면, 영국신사라면! 진짜 자신의 힘으로 끝까지 밀어붙이는 거야!”


    “짝짝…역쉬…스콧…너 남자야!”


    “브라보!”


    그랬다. 영국이란 나라의 국민성…스포츠 정신 좋아하고, 기사도 따지고, 신사에 대한 믿음에 철저한 이들은 철저한 프로보다는 어설픈 아마추어리즘을 사랑하고 있었다.


    “철저하게 준비해 이리저리 꼼수만 찾아 도망 다니는 프로보다는 당당히 시련에 맞서 싸우고, 열정으로 이를 극복하는 어설픈 아마추어가 훨씬 더 멋지다!”


    이런 생각들이었던 것이다…유감스럽게도 스콧은 이런 아마추어리즘의 열렬한 신봉자였던 것이다. 그는…남극을 정말 산책가려고 했던 것일까? 어쨌든 이런 어설픈 준비로 남극을 정복하겠다는 그의 생각은 변하지 않았고, 하루하루 남극출정의 시간은 다가왔다. 아문센 역시 북극과학탐사…로 위장한 남극출정을 위한 준비를 완료해 가고 있었다.


    “야, 스콧은 언제 출발한다냐?”


    “들리는 소문으로는 6월 달에 출발한다는데요?”


    “6월? 뭐 그렇게 빨리 가는데?”


    “아…그게 남극으로 바로 가는 게 아니라. 영연방 국가를 계속 순방한데요…가서 쇼 좀 하고, 강연도 해서 돈 좀 모은 다음에 남극으로 간다는데요?”


    “쌩쇼를 해라…그만큼 돈 긁었으면 되지. 또 무슨 돈을 긁는데? 어쨌든 그색희들 움직이는 거 잘 주시해. 그색희들이 돈 버는데 정신 팔려 있을 때 우리는 하나라도 더 탐험 준비를 하는 거야.”


    각오와 일정부터가 다른 스콧과 아문센이었다. 그리고…운명의 1910년 6월 15일 영국 탐험대는 영국을 출발하게 된다(이때 스콧은 출발하지 않았다. 스콧은 케이프타운에서 합류하기로 했었다).


    “영국 놈들…좋다고 떠나네….”


    “우리도 슬슬 준비해야 하는 거 아네요?”


    “지랄하지 말고…우리는 계속 준비한다.”


    “아니…그래도….”


    “영국 놈들이 지금 당장 남극 가는 거도 아니잖아. 저것들 돈독이 올라서 지금부터 계속 지구를 뱅글뱅글 돌 거라니까. 우리는 그 사이에 하나라도 더 준비한다.”


    아문센은 모든 탐험준비를 두 번, 세 번 확인 한 다음에서야 엉덩이를 들었다. 영국 탐험대가 떠난 지 두 달이 지난 1910년 8월 9일 아문센의 탐험대는 북극(?)으로 출발하게 된다. 이때까지 아문센은 자신의 계획을 그 누구에게도 알리지 않았다. 선원들은 자신들이 북극으로 가는 줄 알고 있었다. 선원들이 자신들이 지구 반 바퀴를 돌아 남극으로 가야 한다는 걸 깨달은 건 배가 중간보급을 위해 마데이라에 도착한 9월 6일이었다.


    “어이…다들 모여 봐. 어여….”


    “왜요?”


    “왜요는 일본 놈 담요가…토 달지 말고 다 모여 봐. 다 모였어? 음음…내가 중대 발표를 하나 하려고 하는데, 잘 들어…어이 거기 졸지 마 시키야! 이게 무슨 교장 선생이 애국 조회하는 줄 알아? 잘 들어 인마…금방 끝나. 에 그러니까설라무네…우리는 이제 남극으로 간다.”


    “예, 우리도 북극 가는 줄 다 알아요…에? 지금 뭐라셨어요?”


    “남극.”


    “아…말이 잘못 나오셨나보네. 우리도 북극 가는 건 다…”


    “남극 간다고 이시키들아.”


    “…에 그런 말 없었잖아요? 우리는 북극 과학탐사를 하러….”


    “잘 들어. 네들 노르웨이가 어떤 나라인 줄 알아? 우리는 바이킹의 후예야. 알아? 바이킹이 뭐냐? 콜롬보인지 콜럼버스인지 뭔지 하는 놈이 아메리카 대륙을 발견하기 전에 아메리카 대륙을 발견한 사람들이야. 이런 훌륭한 조상을 가진 놈들이 영국…저 생기다 만 놈들이 남극점 정복하는 걸 눈뜨고 봐야 하냐는 거야! 억울하지도 않아? 우리 바로 옆에 있는 북극점은 양키 놈이 찍어버리고, 마지막 남아있는 남극까지도 영국 놈이 가져가 버리면…우리는 뭐냐? 우리는 우리 자손들한테 무슨 말을 해 줄 거야? 가자 남극으로! 저 콧대높은 영국노무시키들 콧대를 뭉개버리자구!”


    아문센이 드디어 본색(?)을 드러낸 것이다. 이제 남극점 정복 레이스는 시작된 것이다. 



    〈9〉





    이제 ‘북극과학탐험대’란 가면을 벗어던지고, 진지하게 남극탐험에 덤벼들게 된 아문센과 그의 탐험대…아문센은 여기서 마지막으로 한 번 더 비열한(?) 수를 쓰게 된다.


    “이제 슬슬 스콧한테 우리도 남극 간다고 알려야 하지 않을까요?”


    “그래야겠지?”


    “그래야죠. 아무리 좋게 말해도 우리가 스콧 뒤통수 친 건 맞잖아요? 아무말 없이 남극 가서는…길을 잃어서 잘못 온 거 같다. 온 김에 남극점이나 둘러보고 올게…어차피 북극이나 남극이나 한 끗발 차이니까…설마 이러려고 한 건 아니죠?”


    “….”


    “진짜요? 대장님! 그랬다가는 맞아 죽어요!”


    “알았어. 알았어….”


    “그럼 제가 전보 칠게요.”


    “아니 됐어. 내가 칠게.”


    “…저기 대장님 이번에는 뺑끼 치면 안돼요. 아무리 영국이라지만…”


    “알았다니까 그러네…뺑끼 안 쳐! ‘프램(Fram : 아문센 탐험대가 타고 있는 배)호로 남극을 향해 가고 있음을 알립니다’ 이렇게 써서 보낼 거야. 됐지? 됐냐?”


    “꼭 그렇게 보내셔야 해요.”


    “찍을까?”


    9월 9일 프램호의 모든 보급이 끝나고 마데이라를 출발하기 직전에 아문센은 동생에게 스콧에게 보내는 전보를 건네며 이렇게 당부한다.


    “지금 당장 이 전보를 스콧에게 보내지 마라. 지금 이 전보 보냈다가는 모든 계획 다 취소하고, 곧장 남극으로 갈 거야…그러니까…그래, 그 놈들이 대서양 한복판에 있어서 무선 연락을 취할 수 없을 때쯤…내 계산으로는 한 10월쯤 되야 할 거 같은데, 그때 스콧에게 보내라. 알았지? 형은 너만 믿고 남극으로 간다.”


    “…형, 꼭 그래야겠어?”


    “어!”


    “….”


    형이지만 참 재수 없다는 생각을 했을 법도 한데…어쨌든 아문센의 동생은 형의 말을 그대로 실행하게 된다. 한편 이런 일이 지구 반대편에서 벌어지고 있다는 사실을 꿈에도 모르는 스콧은 늴리리 맘보를 부르며, 설렁설렁 영연방 국가를 돌아다니며 삥을 뜯고 있었다.


    “대영제국의 영광을 위해~ 우리 탐험대에 한 푼만 줍쑈…가 아니고! 아 쉬파…이거 입에 붙어 버렸네. 여하튼 좀 도와주십쑈. 우리가 멋지게 남극점을 찍을 테니까.”


    이런 스콧의 꽃놀이는 오래가지 못했으니…1911년 10월12일 영연방 순방국 중 하나인 오스트레일리아에 입항하면서 그의 계획은 깨지게 된다.


    “선장님! 아문센이 선장님한테 전보를 보냈는데요?”


    “응? 아문센이? 후후 그 부끄럼쟁이도 이제는 좀 사람이 됐나보지? 잘 갔다오라고 안부편지 부쳤나 보네…어디 보자…프램호로 남극을 향해 가고 있음을 알립니다…그래 이놈도 남극을 가기로…뭔 소리야! 이 놈은 북극을 가기로 했는데? 이거 오탈자 아냐? 원래 북극으로 가는 걸로 되어 있는데….”


    그제서야 뒤통수를 맞은 걸 확인하게 된 스콧!


    “이거…언제 보낸 거야? 10월 초? 우리가 인도양에 있었을 때잖아? 이색희…이 비열한색희…무선을 못 받게 하려고…이 덜 자란 육식동물 같은시키!”


    스콧은 아문센의 치밀한 덫에 걸려든 것이었다.


    “모든 일정을 취소한다. 보급을 마치자마자 남극으로 달려간다!”


    “예? 우리 삥 뜯기…아니 모금 활동 안합니까?”


    “이색희야! 너 탐험대야? 아니면 동네 양아치야? 언제까지 삥 뜯을래? 이 전보 안보여? 후딱 애들 집합시켜!”


    스콧이 부산을 떨 무렵…세계도 발칵 뒤집혔다.


    “아문센…이색희 이거이거…아주 순 사기꾼이잖아? 북극 간다고 안심 시켜놓고 뒤통수나 치고 말야. 노르웨이 촌놈 주제에…”


    “…이러다 스콧이 지는 거 아냐?”


    “어허! 부정타게시리!”


    “…만약 지면, 이게 무슨 개쪽이야? 해가지지 않는 나라가…이제 갓 독립한 쪼메난 북유럽 촌놈들에게 지다니….”


    영국인들이 분노했으며, 또한 불안해했었다. 이러는 사이 아문센과 스콧은 부지런히 남극을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 문제는 아문센이 몇 번의 사기(?)를 통해 스콧을 방심하게 만들었지만, 스콧이 아문센보다 남극에 더 가까웠다는 것이다.


    “일단 우리가 아문센보다 빨라! 예상대로라면…우리가 아문센보다 9일은 빨리 남극에 도착할 거야. 문제는…아문센이 어떤 루트로 남극점을 향해 갈 거냐는 거야. 영국 탐험대가 개척한 영국루트(그레이트아이스 보빙지역에서 출발하는 루트)로는 오지 않을 거야. 벼룩도 낯짝이 있다고…그놈도 사람일 텐데…설마 일루 오겠어?”


    “그럼?”


    “정반대 루트겠지. 웨델(Weddel)해에서 남극점을 향해 달려오겠지.”


    초조하게 아문센의 남극 공략루트를 점검하는 스콧…그는 과연 아문센을 이길 수 있을 것인가?



    〈10〉


    스콧은 아문센보다 먼저 남극에 도착하게 된다. 스콧은 일단 맥머도사운드의 베이스캠프에서 머물면서 보급소 설치작업을 준비하게 된다.


    “일단 그레이트아이스(Great ice)에 보급소를 설치 할 준비를 하자! 보급소만 설치하면, 언제든지 남극점 공략에 들어갈 수 있어! 시간이 별로 없어! 여름이 다 지나가기 전에 보급소를 준비하는 거다!”


    스콧은 초조했다. 빨리 중간 보급소를 만들고 그 안에다가 식량을 채워 넣어야 했다. 언제 아문센이 남극에 도착해 남극점 공략에 나설지 불안했던 것이다.


    “야! 빨랑빨랑 움직여!”


    스콧은 남위 79도 30분 지점에 엄청난 식량을 집적시켰는데, 영국 탐험대를 이를 두고 ‘1톤 보급소’라고 불렀다. 그 정도로 식량을 많이 쌓아놨던 것이다. 스콧도 어느 정도 자신감을 되찾을 무렵…그는 다시 한 번 뒤통수를 맞게 된다.


    “아문센이…아문센이….”


    “아문센이 뭘 어쨌다고?”


    “아문센이…우리 옆에다가 베이스캠프를 쳤습니다!”


    “!”


    스콧보다 9일 늦은 1911년 1월 14일 남극에 도착한 아문센…아문센은 스콧의 예상처럼 웨델(Weddel)해에서 남극점을 공략하는 코스를 선택하지 않았다. 그는 대담하게도 영국 탐험대가 개척한 영국루트인 그레이트아이스(Great ice) 보빙 근처에 베이스캠프를 쳤던 것이다.


    “이색희가 보자보자 하니까 누굴 보자기로 보나…이색희 어딨어? 엉?”


    “…여기서 400마일 떨어진 곳에다 캠프를 쳤습니다.”


    “이색희…끝까지 해보자 이거지? 이 사기꾼노무시키….”


    이때 아문센은 모든 계산을 끝마치고, 훼일스만에 베이스캠프를 차렸던 것이다.


    “…대장, 꼭 영국놈들 옆에다 베이스캠프 차려야 해요? 좀 껄적지근 하지 않아요?”


    “여기가…남극점 공략하기에는 딱이야.”


    “아니 뭐…어차피 걸어가는 건 똑같은데, 그레이트아이스 루트나 웨델루트나 똑같을 거 같은데….”


    “멍청한시키…네 눈은 살가죽이 모자라서 쭉 찢어놓은 거야? 지도를 봐 시키야! 여기서 남극점까지는…영국놈들 베이스캠프인 맥머도사운드보다 남극점에서 60마일이나 가까워. 편도 60마일이면, 왕복 120마일이잖아. 후후…선빵은 우리가 날리고 들어가는 거야.”


    “오!”


    “거기다가 여기 봐봐라. 지천으로 깔린 게 펭귄하고 물개다. 좀 있으면 남극도 겨울에 들어가잖아. 펭귄이나 물개 사냥하면 식량해결에도 도움이 될 거야. 기왕 욕 먹을 만큼 먹었고, 앞으로도 먹을 거라면 욕 좀 더 먹고 영국 놈 옆에 있는 게 낫지. 안 그래?”


    “…대장은 참 오래 살 거 같아.”


    훼일스 만에 베이스 캠프인 프램하임을 설치한 아문센은 즉시 남극점 공략 계획에 들어가게 된다.


    “가장 중요한 건 식량 보급소를 설치하는 거다! 좀 있으면 여름도 끝나! 여름 끝나기 전에 모두 달려 나가서 식량 보급소를 설치한다! 빨랑!”


    여기서 아문센과 스콧의 결정적 차이가 드러나게 된다. 스콧은 1톤 보급소라고 커다란 보급소 하나를 덜렁 만들어 놓았을 뿐인데, 그 사이 아문센은 남위 80·81·82도 등에 주요 보급소를 설치했던 것이다.


    “남극 전체에 1.5톤의 보급품을 흩뿌려 놓는 거다. 한군데 몰빵으로 몰아넣는 거 위험해! 중간 중간 들러서 보급을 받을 수 있어야 해! 자기 몸 하나 가누기도 힘든데, 보급소 하나 바라보고 왔다갔다 하다가는 지치기 딱 이야!”


    포트폴리오에 신경을 쓴 아문센의 보급소 배치 전략이었다. 두 팀 다 보급소 설치를 마치자. 이제 기다리는 일밖에 남지 않았다. 남극의 기나긴 밤이 지나가기를 말이다. 아문센은 남극의 밤 기간 동안 아문센은 자신들의 장비를 점검하고 또 점검했다…에스키모 털옷, 영국탐험대보다 훨씬 가벼운 썰매, 등유와 식량 등등…그럼에도 아문센은 불안감을 지울 수밖에 없었다.


    “그노무…모터 썰매…그게 참…걸리네.”


    스콧은 개 대신 말을 선택했다. 그러나 일말의 불안감 때문인지, 당시 새로 개발된 모터 썰매를 준비했던 것이다. 노르웨이의 프램하임 베이스캠프를 발견한 영국탐험대가 방문했을 때 아문센이 처음 물어 본 것이 바로 이 모터 썰매였다.


    “…그거 좀 쓸만 해요?”


    “후후…이미 한대가 남극에 도착했죠. 이것만 있으면 남극점까지 그냥 내달릴 수 있다니까요.”


    “….”


    침착한 성격의 아문센도 조급해지기 시작했다(사실 이때 남극에는 모터썰매가 없었다. 하역 과정에서 실수로 바다로 떨어뜨렸던 것이다). 과연 아문센은 영국탐험대를 누르고 남극점에 도착할 수 있을까?



    〈11〉


    1911년 4월 21일 시작된 남극의 밤…아문센 팀과 스콧 팀은 그저 남극의 밤이 지나가기를 기다렸다. 인고의 시간이 찾아왔던 것이다. 그러기를 4개월…드디어 남극에 햇살이 비추기 시작했다. 1911년 8월 24일의 일이었다.


    “쉬파…지금 나갈까? 영국 애들이 벌써 출발한 거 아냐?”


    아문센은 고민하게 된다…스콧도 마찬가지였지만, 조급증은 아문센이 조금 더 했다. 모터 썰매 때문이었을까? 고민을 하던 아문센은 9월 8일 남극 공략에 들어가기로 결심한다.


    “영하 2도면 해볼만 하지? 좋아 출발하자!”


    그러나 이 결정은 아문센 탐험대를 죽음 직전까지 몰아가게 된다. 기온은 계속 떨어졌고, 나중에는 영하 21도까지 떨어졌다.


    “쉬파…쫌 지나면 온도가 올라갈 거야…젠장!”


    “대…대장 개들이…개들이 죽어가요!”


    “발에 동상이 걸렸어요.”


    결국 아문센은 남극점 1차 공격을 포기하고 베이스캠프로 돌아오게 된다. 아문센은 다시 팀을 정비하고, 공략날짜를 다시 저울질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운명의 10월20일 아문센 탐험대는 남극점 정복에 나서게 된다. 그리고 그들이 출발한 지 일주일 뒤 스콧도 남극점 공략에 나서게 된다. 이들의 출발은 비슷했으나, 그들이 처한 상황은 극과 극이었다.


    “야…이거 너무 쉬운데? 그냥 가만히 있으면 되잖아?”


    “야…이렇게 쉬운 거면 진즉에 남극에 올걸…괜히 쫄았잖아?”


    아문센의 팀은 개 썰매 위에서 개가 끄는 데로 몸을 맡기면 됐다. 그들은 출발한 지 4일 만에 남위 80도의 보급소에 도착하게 된다. 반면에 스콧은 출발부터 삐걱거리기 시작했다.


    “이노무 모터썰매…야 이거 왜 이러냐? 시동이 안 걸려?”


    “…이거 부동액이 얼어버린 거 같은데요?”


    스콧의 히든카드 모터썰매는 출발부터 말썽을 부렸고, 결국 5일 만에 모터 썰매를 버려야 했다.


    “자자, 원래 기계가 그렇지 뭐! 우리한테는 무적의 조랑말 부대가 있어! 조랑말만 있으면 어디든 갈 수 있어! 나도 원래 모터썰매는 기대도 안했거든….”


    조랑말…스콧 탐험대는 조랑말에 짐을 싣고 가는 게 아니라 조랑말을 모셔가고 있었다. 조랑말의 발굽은 눈 속에 푹푹 파묻혔고, 덕분에 균형 잡기가 힘들었다. 몇 발자국 가다가 자빠지는 조랑말…문제는 이때부터였다. 당장 조랑말을 눈 속에서 꺼내는 것도 힘들었지만, 조랑말 옆구리에 붙어있는 눈을 대원들이 일일이 털어내야 했다. 안 그러면 눈이 딱딱하게 굳어 버렸기 때문이다. 하루 일정을 끝내더라도 대원들은 할 일이 있었다. 조랑말의 몸에 붙어 있는 눈을 털어 내 주고, 눈으로 방벽을 만들어 조랑말 숙소를 지어야 했다. 그런 뒤에 조랑말에게 담요를 씌어주고 나서야 쉴 수 있었다. 대원들은 뭔가 잘못되어 간다고 생각했다.


    “스콧 대장! 언제까지 조랑말을 모셔가야 합니까? 우리도 거칠게 몰고 갑시다. 못가겠다고 버티면 두들겨 패고…”


    “아니 신사가 어떻게 동물을 학대 할 수 있어? 동물 학대는 신사가 할 일이 아니야!”


    “지금 신사 따질 때입니까?”


    “이럴 때일수록 신사의 품의를 지켜야 하는 거야!”


    “…그럼 이렇게 합시다. 가다가 쓰러지는 조랑말은 그 자리에서 죽여서 식량으로 씁시다. 끝까지 이 말들을 모셔가는 건 미친 짓입니다!”


    “이색희 이거이거…너 그렇게 안 봤는데, 인간이 덜 됐구만? 말 못하는 조랑말이 무슨 힘이 있어서 그러겠냐? 걔들도 힘들어서 그런 거 아냐…그걸 잡아먹겠다고?”


    “원래 잡아먹기로 했잖습니까?”


    “그거야…계획에 따라서….”


    “지금 계획대로 진행되는 게 아무것도 없잖습니까!”


    “그래도 안돼!”


    동물 애호가인 스콧의 계획은 점점 헝클어져 갔었다. 반면 아문센은 몇 년간 치밀하게 짠 남극점 공략계획에 따라 차근차근 단계를 밟아가고 있었다.


    “32킬로미터 달려왔다. 스톱! 오늘 할당량은 다 채웠으니까 여기서 휴식이다!”


    “대장! 오늘 개 잡는 날인데요?”


    “그래?”


    “제일 빌빌거리는 놈으로 하나 잡아!”


    아문센은 하루 32킬로미터라는 일정을 무리 없이 소화해 내고 있었다. 그는 몇 월 몇 일이면, 어디에 위치해 있을 것이고 일정에 따라 개를 한 마리 잡아 신선한 식량으로 사용한다는 구체적인 ‘개 도살’계획까지 짜서 움직였던 것이다. 아문센은 진정한 프로였던 것이다.


    “대…대장 우리 제대로 오는 거 맞아요?”


    “…으음”


    “대장!”


    “…거시기…여기가 아닌갑다?”


    “예?”


    “저쪽으로 돌아가야 하는 건데…미안하다. 좀 돌아왔다 야. 지금이라도 방향을 틀면 될 거 같은데?”


    스콧…그는 현장에서 너무 오래 물러나 있었다. 그는 자주 실수를 했고, 그때마다 영국 탐험대는 길을 돌아가야 했다.



    〈12〉





    스콧이 계측 실패로 헤매고 있을 무렵, 아문센은 마침내 남위 82도에 최후 보급소를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 이때 아문센 팀의 휴대식량은 100일치였었다.


    “저기 스콧팀은…보통 10일치를 들고 움직인다는데…”


    “그럼 스콧팀 가!”


    “아니…그게 아니라….”


    “이 허허벌판에 만약에 뭔 일이라도 터져봐. 그길로 우리는 죽는 거다. 식량과 연료만이 우리 생명을 지켜줄 거야. 군소리 말고 살고 싶으면 최대한 많이 들고 따라와!”


    아문센이 남극점을 향해 가까워져 가던 그때 스콧은 마지막 조랑말을 잡아먹고, 앞으로 그들이 끌게 될 썰매를 바라보고 있었다.


    “…이게 모두 몇 킬로에요?”


    “일인당 700파운드…그러니까 킬로로 치면, 일인당 315킬로그램이구먼….”


    “쉬파…이걸 우리가 끌고 가야 하는 거야?”


    스콧의 탐험대는 315킬로그램짜리 썰매를 힘겹게 끌어가며, 남극점을 향해 걸어가게 된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스콧팀 내부에서도 패배의 말이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우리가 졌어.”


    “아문센네 장비 봤어? 그놈들은 지금쯤 개썰매 타고 신나게 달려가고 있겠지?”


    “에스키모 털옷…그거 엄청 따뜻하다던데….”


    “걔들은 지금 뭘 먹고 있을까?”


    여기서 스콧의 결정적 실수 한 가지가 드러나게 된다. 그는 700파운드짜리 썰매를 끌고 갈 때 소요되는 칼로리 계산을 잘못 했던 것이다. 이 엄청난 노동량을 생각한다면, 좀 더 식량을 가져와야 했었는데 그는 훨씬 적은 양을 가져온 것이다. 이제 영국 탐험대원들은 추위와 엄청난 노동과 함께 영양부족과도 싸워야 했다.


    “…저기 눈보라가 많이 치니까 오늘은 좀 쉬죠?”


    “그…그럴까?”


    “지금 우리 체력으로는 못 뚫고 나갑니다….”


    그들은 점점 지쳐갔고, 눈보라가 치면, 일단 텐트를 치고 쉴 생각을 하게 됐다. 스콧팀과 아문센팀의 격차는 점점 벌어졌다.


    “쉬파…영국 놈들이 먼저 도착할 수도 있어! 일단 무조건 달려!”


    “저기 눈보라가….”


    “하루 32킬로씩 달려야 한댔지? 너 여기까지 와서 영국놈들한테 질래?”


    아문센은 영국 탐험대가 먼저 남극점에 도착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에 탐험대를 재촉했다. 그에게는 100일치의 식량과 연료…그리고 개들이 있었다. 그리고 이 계획은 몇 년에 걸쳐 그가 짠 계획이 아니던가? 그는 겁 없이 앞으로 달려 나갔다. 그리고 1911년 12월 15일 오후 3시…마침내 아문센은 남극점에 도착하게 된다.


    “야야! 주변 샅샅이 훑어봐! 유니온 잭(영국 국기) 있는지…사람이 머물다 간 흔적 있는지 다 확인 해봐!”


    “왜요?”


    “이색희가…왜요는 일본 놈 담요랬지? 지금…여기가 남극점이다.”


    “정말요? 리얼리? 혼또니?”


    “너 잘난 거 아니까 빨랑 주변 살펴봐! 우리가 제일 먼저 도착했는지 확인 해야 해!”


    주변을 샅샅이 확인하는 노르웨이 탐험대…


    “없는데요?”


    “아무것도 없슴다.”


    “그래…쉬파…우리가 결국 여기까지 왔구나. 우리가 지금…남극점에 왔다!”


    “우아아아아!”


    노르웨이 탐험대…아문센의 승리였다. 그들은 환호했다. 그러나 환호도 잠시 아문센은 즉시 베이스캠프로 돌아가야 한다고 탐험대를 독촉하기 시작했다.


    “에…왜요? 우리가 이긴 거잖아요.”


    “그래요. 여기까지 왔는데…이제는 좀 천천히 가도….”


    “지랄을 해라…네들 영국이 어떤 나라인지 알아?”


    “해가지지 않는 나라요.”


    “그색희들…해가지지 않으려고 어떤 짓을 하고 다녔는지 알아? 상대방 뒤통수치고, 남의 거 뺏고, 보어 전쟁만 해도 그래…그거 멀쩡히 잘 있는 애들 두들겨 팬 거 아냐?”


    “그…럼?”


    “그색희들 분명 꼼수를 쓸 거야. 우리가 여기 도착했다는 거 누가 증명했냐고 우기면…너 어쩔래? 영국 애들이 나중에 도착했어도. 우리 깃발 빼고, 지들 깃발 세운 다음에 돌아오면?”


    “…어떡하죠?”


    “그러니까 당장 여기를 떠야 한다는 거야. 가서 전보를 날려야 해! 온 세계에다가 우리 노르웨이 탐험대가…이 아문센이 세계 최초로 남극점을 찍었다고 말야.”


    “쉬파…영국시키들….”


    “그만 투덜거리고 짐 싸! 사진 잘 찍었지?”


    “예!”


    “우리 삼색기 잘 나오도록 한방 더 박아! 그리고…후딱 뜨자!”


    1911년 12월18일 아문센은 하루라도 빨리 자신의 남극정복 사실을 알리기 위해 해외전보 발송기지를 목표로 발길을 재촉하게 된다.


    “대장 텐트는 어째요?”


    “…텐트 남겨 놔. 우리 장비도 필요한 거만 빼놓고 다 놓고 가자…무게도 무게지만…영국 애들이 쓸 수 있게. 그리고…우리 흔적을 남겨 놔야 하니까. 하긴 말 끌고…여기까지 올 수나 있을는지….”


    아문센은 텐트에 스콧에게 남긴 편지 한 장을 남기고는 서둘러 남극점을 떠났다. 레이스는 끝난 상태…이제 남은 일은 무사히 살아서 이 소식을 전하는 것 뿐이었다.



    〈13〉


    남극점을 찍자마자 황급히 베이스캠프로 달려가던 그 순간 스콧은 아직도 남극점을 향해 걸어가고 있었다. 어느새 해는 바뀌어 1912년이 되었다. 대원들의 건강상태는 최악이었다. 괴혈병에 걸려 잇몸이 물렁거렸고, 동상에 걸려 제대로 몸을 움직이는 것조차 힘들었다. 그리고 마침내 남극점에서 240킬로미터 떨어진 지점에서 스콧은 일생일대 최대의 실수를 저지르게 된다.


    “음…이번에 남극점 공격조는…4명이 간다.”


    “그…그게 뭔 소립니까? 원래 3명만 가는 거 아닙니까? 아…대장 포함해서 4명이라구요?”


    “아니…나 빼고 4명이다. 그러니까 나 포함해서는 5명이지.”


    “…그…그게 말이 됩니까? 지금 우리 식량 사정으로는 택도 없는 소립니다!”


    “쉬파 대장이 까라면 깔 것이지 뭔 잔소리야!”


    애초 최종 남극점 공격조는 스콧을 포함해 4명으로 정한 상태였다. 이 지점에서 나머지 4명은 기지로 귀환하고, 4명이 남극점 공략에 들어가는 것이다. 만약 식량사정이 넉넉하다면, 5명이 가도 상관은 없는 것이겠지만, 지금 갑자기 한명을 늘려서 간다는 건 가뜩이나 부족한 식량사정을 감안한다면 자살행위였다.


    “다시 생각해 보십쑈! 이러다 우리 다 죽습니다!”


    “…다 죽기 전에 내 손에 먼저 죽어볼래?”


    “….”


    스콧의 고집 덕분에 이들은 어쩔 수 없이 다섯 명으로 공격조를 짜 남극점을 향해 걸어가게 된다. 이들은 하루하루 죽어가면서도 남극점에 대한 집착(이때쯤 이들은 이미 자신들이 졌다는 걸 알고 있었다)으로 무겁게 발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그리고 1912년 1월17일…이들은 노르웨이 국기가 펄럭이는 남극점에 도착하게 된다.


    “…이런 된장!”


    “이 개노무시키들….”


    영국 탐험대는 아문센이 놓고 간 텐트와 장비들을 살펴보기 시작한다. 그리고 이들이 여기까지 개 썰매를 타고 왔다는 걸 확인하게 되는데…


    “이색희들 장비는…상처가 거의 없슴다.”


    “…사람 손으로 민 게 아니라, 개 썰매에 실어서 온 거야. 그러니 깨끗하지.”


    “….”


    “야! 그래도 우리는 동물이나 기계 힘 빌리지 않고, 여기까지 우리 힘으로 온 거잖아! 이건 마 대단한 거야! 인간의 위대함을 온몸으로 증명한 거잖아! 안 그래? 응?”


    나름대로 의미를 부여하려고 노력하는 그들의 의지를 꺾어버린 건, 아문센이 스콧에게 남긴 편지였었다.


    “당신이 우리 다음으로 이 지역에 도착할 첫 번째 사람 될 거 같으므로 이 편지를 하콘 7세(노르웨이 국왕)께 발송해주시길 부탁드립니다. 텐트 속에 남아 있는 물건들 중에서 소용되는 것이 있으면 부담 가지지 말고 사용하도록 하십시오. 당신의 무사귀환을 빌며…로알드 아문센이…쉬파….”


    “….”


    스콧의 탐험대가 남극점에서 절망하고 있을 그때 아문센은 개 썰매를 몰아 베이스캠프를 향해 한참 달려가고 있었다. 그리고 1월26일 마침내 그들의 베이스캠프인 프램하임에 도착하게 된다.


    “야! 우리가 이겼다! 우리가 남극점을 찍고 왔어!”


    “아문센 만세! 노르웨이 만세!”


    “야야, 지금 이렇게 한가하게 만세 부를 세가 어디 있어? 지금 당장 짐 꾸려! 영국 놈들이 먼저 전보치면 우리가 지는 거야! 영국 놈들이 손 못쓰게 빨리 가서 터트려야 해!”


    아문센의 닦달에 노르웨이 탐험대는 짐을 정리해 프램호에 실었다. 아문센과 함께 했던 130마리의 개들은 이때 39마리로 줄어 있었다. 이 개들은 아문센과 함께 프램호에 타게 된다. 동료들이 탐험대의 뱃속으로 들어가는 걸 보면서도 끈덕지게 그 생명을 유지한 이들은…결국 남극을 떠나게 된 것이다.


    “후딱 가야 한다니까 그러네!”


    아문센의 재촉…프램호는 그야말로 나는 듯이 바다를 갈랐고, 한달여의 항해 끝에 1912년 3월 7일…태즈매이니아(Tasmania)섬에 도착하게 됐다.


    “야! 혹시 영국배…그래, 스콧이 탄 테라노바 혹시 못 봤냐?”


    “아뇨? 그런 배 없는데요?”


    “아싸! 우리가 이겼다!”


    아문센은 그길로 전 세계에 자신이 남극점을 찍었다는 사실을 타전하게 된다.


    “우리가 남극점을 찍었다!”


    전 세계는 아문센의 업적을 신문 일면 톱으로 올렸고, 아문센은 일약 세계 최고의 탐험가 자리에 올라서게 된다. 상황이 이렇게 돌아가자 영국 측은 슬슬 아문센의 딴지를 걸기 시작했다.


    “아니 쉬파…탐험을 하더라도 인간답게 해야 하는 거 아냐? 치사하게 북극 간다면서 스콧을 방심시키더니, 갑자기 뒤통수를 쳐? 그리고…네들이 말하는 그 전문가 정신…그게 뭐냐? 사내가 쪼잔하게 그걸 일일이 계산해서 덤비냐? 스콧 봐라! 통크게 나가잖아? 안되면 불굴의 집념으로 너 남극이야? 나 스콧이야! 이러면서 가는 거…얼마나 보기 좋냐?”


    영국의 딴지 앞에서도 아문센은 떳떳했다. 전 세계에서 영국 한 나라만 빼 놓고, 모든 나라가 아문센의 업적에 박수를 보내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이때 스콧은 무얼 하고 있었던 것일까?



    〈14〉






    아문센이 탐험계의 기린아로 떠오른 그때…스콧은 뭘 하고 있었을까? 그는…죽어가고 있었다. 노르웨이 국기가 펄럭이는 남극점을 바라보던 이들은 살기 위해 지금까지 걸어왔던 길을 다시 되돌아가야 했다. 첫번째 희생자는 에반스였다.


    “야, 이시키야! 여기서 쓰러지면 안돼! 덩치는 제일 큰 놈이 이러면 안돼! 야! 야! 일어나! 에반스! 일어나라니까!”


    1912년 2월16일…그는 쓰러져서는 일어나지 못했다. 이제 4명의 대원만이 남은 상황. 스콧 탐험대는 계속해 눈밭을 헤쳐 나가기 시작했다.


    “야야…쫌만 더 가면 되거든? 쫌만 더 가면…보급소야. 거기 가면 먹을 게 산으로 쌓여있어…쫌만 더 가자 응?”


    “그러게 쉬파…아문센처럼 여기저기 보급소를 분산시켜 놓으면…이럴 때 좋잖아. 괜히 몰빵 했다가 쪽박 차게 생겼잖아.”


    “그래도…큰 거 하나가 좋잖아.”


    “…우리가 지금 필요한 게 식량 1t이 아니잖아…조금이라도 좋으니까…먹을 걸 달란 소리잖아.”


    “쉬파…이색희…개기냐?”


    이제 아문센의 철저한 계획이 옳았음이 증명되었다. 이미 남극점에 꽂혀 있었던 노르웨이 국기로 다 확인된 이야기였지만, 귀환 길에서 다시 한 번 아문센의 위대함을 확인 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때 말 대신에 개를 끌고 가는 거였는데…”


    “….”


    1912년 3월17일 스콧 탐험대의 두 번째 희생자가 나왔다. 다리를 다쳐 걸음이 느렸던 오츠가 결단을 내린 것이었다.


    “잠깐…밖에 나갔다 올게요.”


    “밖에는 왜? 쉬 하러?”


    “…예.”


    그 길로 오츠는 눈보라가 휘날리는 남극의 광활한 벌판으로 걸어 나갔다. 그리고 돌아오지 않았다. 자신의 느린 발이 동료들에게 부담이 되고 있다고 생각한 오츠가 죽음을 결심했던 것이다. 대원들은 할 말이 없었다. 그들에게는 오직 하나…살아서 돌아가야 한다는 절박감만이 남아 있었다.


    “조금…만…조금만 더…가면 보급소다.”


    “….”


    “힘들 내라…조금만 더 가면 돼.”


    그들은 그렇게 2주를 더 걸어갔고, 3월29일…모든 게 끝이 났다. 그들은 그들의 희망이었던 1톤 보급소를 불과 17킬로미터 남겨 둔 상황에서 죽었던 것이다. 스콧 일행이 귀환하지 않자. 영국은 수색대를 파견하게 되는데…문제는 남극이 겨울로 들어가는 시점이었다는 것이다. 결국 남극의 겨울이 끝나는 10월 말이 되서야 수색대는 수색에 나서게 되었다. 그리고 수색 2주만인 11월 12일 스콧과 윌슨, 보워스가 같이 누워 있는 텐트를 발견하게 된다.


    “쉬파…쫌만 더 왔으면 되는데…”






    그들의 죽음은 3개월 뒤 공식적으로 영국에 전해지게 된다(아문센이 남극점 정복 사실을 알리러 간 여정을 생각하면 이해가 빠를 것이다). 문제는…이 당시 영국의 상황이 그렇게 좋지 않았다는 것이다.


    “쉬파…타이타닉은 침몰하고(1912년 4월15일 침몰했다), 유럽에서는 전쟁 터질 거 같고…스콧은 죽고…된장 되는 일이 없냐?”


    “…아예 거꾸로 가는 건 어떻슴까?”


    “거꾸로?”


    “원래 스콧이란 놈이…보어 전쟁 때문에 용 된 케이스 아닙니까? 가는 길에 마지막으로 한번 용 되게 해주죠.”


    “어떻게?”


    “죽음 앞에서도 꺾이지 않는 불굴의 의지! 온전히 사람의 힘으로 죽음의 땅을 거슬러 온 용기! 그리고…동료를 위해 자신의 생명을 포기한 오츠…캬 이거 죽이지 않습니까? 스콧을 용 되게 만들죠? 어차피 스콧이 남긴 일기는(그는 탐험 내내 일기를 썼고, 3월29일을 마지막으로 일기가 끝났다) 출판될 겁니다. 이걸 가지고 분위기 한번 띄우죠. 지금 영국에는 영웅이 필요합니다.”


    “오케이 거기까지! 스콧을 띄우자고!”


    이리하여 스콧은 다시 한 번 영웅의 길을 걷게 된다.


    “너 봤냐? 스콧…진짜 대단하다.”


    “글치? 난 보는 내내 울었다니까…아문센 그 쓰레기 같은 놈은 개 타고 남극 갔다 온 주제에…치사하게 사람 뒤통수나 치고 말야.”


    “하여튼 촌놈들은 안돼요!”


    스콧의 죽음은 영웅을 절실히 필요했던 영국 사회에 단비와 같은 존재였다. 드라마틱한 죽음! 동료를 위한 희생! 불굴의 의지! 스콧과 스콧의 탐험대는 영웅이 되었고, 그들을 통해 영국 사회는 단결하게 된다.


    문제는 말이다…영웅을 만들기 위해서는 영웅에 반하는 희생양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스콧이 첫 번째 영웅이 됐을 경우에는 애매한 그들의 동료들이 바보가 되었지만, 두 번째 영웅이 되었을 경우에는 확신범이 존재했었다. 바로 아문센이었다…아문센은 악이었고, 타도해야 할 적이었다. 결국 남극점 정복이라는 찬란한 영광을 안고 돌아온 아문센이었지만 제대로 된 평가를 받을 수는 없었던 것이다. 산 아문센이 죽은 스콧을 이기지 못했다고 해야 할까? 지독히 운때가 좋아 영웅이 된 스콧…그는 죽음조차도 미화되었던 것이다. (끝)



    〈15〉


    훗날 아문센이 북극횡단비행을 준비할 때, 아문센은 비행기보다는 저렴한 편이었던 비행선을 준비하기로 한다. 1926년 이탈리아의 비행선 제조기술자인 움베르토 노빌레와 함께 노르게 1호라고 이름 붙인 비행선으로 북극 비행에 도전했다. 원래는 이탈리아 측이 그냥 제공한다는 조건을 붙였으나 이탈리아 독재자인 베니토 무솔리니는 이탈리아 국기만 붙이고 가야지 비행선을 제공한다는 요구를 했다. 

    이에 밥맛 떨어진 아문센이 노르웨이 측에 하소연하자 국왕 호콘 7세는 기꺼이 비행선 구입가인 7만 5천 달러를 내줘 비행선을 아예 사 버렸다. 그러나 노르게호가 출발하기도 전에 리처드 버드가 이미 비행기를 타고 북극점 상공을 비행해 버렸다. 1등을 놓친것은 그렇다 쳐도, 아문센과 노빌레는 이 때 엄청난 갈등을 빚어 둘이 원수지간이 되어버렸다.


    1928년 5월, 노빌레는 자신이 제작에 참여한 이탈리아 호라는 비행선을 타고 북극점으로 갔다가 조난당했다. 북극 통과 비행은 마쳤으나 북위 81도 선상에서 이탈리아 호가 추락하여 조난당해 버린 것이다.


    사실 노빌레는 아문센이란 이름에 가려진 것에 불만을 품고 아문센 없더라도 나홀로 대장으로서 얼마든지 북극점에 간다고 하여 무리하게 계획을 추진했다. 무솔리니는 아무래도 너무 성급해하는 것 같으니 일단 보류하라고 요청하지만 이를 묵살하고 노빌레는 출발했다. 그리고 무솔리니는 분노하여 그가 조난당하자 꼴좋다며 아예 모른 척했다.


    1928년 5월 25일, 한 환영파티에서 아문센은 노빌레가 비행선 "이탈리아 호"와 함께 추락했다는 사실과 생존자들이 보내온 최초의 조난 신호에 대해서 알게 된다.


    노빌레의 조난 신호를 보고, 영국과 미국과 노르웨이, 소련까지도 노빌레를 구조하려고 하였다. 약 300척에 달하는 배와 비행기가 실종된 승무원들을 찾는 데 총동원되었다.


    무솔리니도 태도를 바꾼다. 노르웨이 측이 이탈리아와 합동으로 구조대를 보내기로 하지만 무솔리니는 노빌레가 아문센에게 구원받는 건 불쾌해 할 테니 그를 빼 버리지 않으면 같이 못 간다라는 억지 요구를 하여(사실 무솔리니는 아문센을 싫어했기 때문) 아문센이 아닌 라르센이 대신 노르웨이-이탈리아 합동구조대장으로 참여하게 된다.


    그러자 자존심에 금이 간 아문센은 이번에는 자신이 성급하게 일을 서둘렀는데, 이로서 결국 자신이 죽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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