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하, 기다린다는 것
기약없이 누군가를 기다리는
그 쓸쓸하고 허탈한 마음을 아는가
지금 할 수 있는 일이
막연히 기다리는 일밖에 없을 때
그 누군가가 더 보고 싶어지는 것을 아는가
한 자리에 있지 못하고 서성거리다
창문을 두드리는 바람 소리라도 들릴라치면
그 자리에 멈추고 귀를 곤두세우는
그 안절부절 못하는 마음을 아는가
끝내 그가 오지 않았을 때
오지 않을거라는 것을 미리 알았으면서도
왜 가슴은 속절없이 무너지는 것인지
온다는 기별이 없었는데도
다음에는 꼭 올거라고 믿고 싶은 마음을 아는가
그를 기다린다는 것은
마음에 그가 있다는 것을 확인하는 일
그를 위해 마음 한 구석을 비워 두는 일
비워둔 자리만큼 고여드는 슬픔을
아는가 모르는가, 그대여
이외수, 점등인의 노래
이 하룻밤을 살고서
죽는 한이 있더라도
헤어진 사람들은 다시 돌아와
이 등불 가에서 만나게 하라
바람부는 눈밭을 홀로 걸어와
회한만 삽질하던
부질 없는 생애여
그래도 그리운 사람 하나 있었더라
밤이면 잠결마다 찾아와 쓰라리게 보고싶던 그대
살속 깊이 박히는 사금파리도
지나간 한 생애 모진 흔적도
이제는 용서하며 지우게 하라
김선굉, 그리움의 시
널 위하여 한 채의 섬을 사고 싶었다
파도에 흰 발목을 묻을 수 있는
해안이 낮은 섬을 사고 싶었다
널 위하여 오늘은 눈이 내리고
그 속을 내가 걷고 있다
옛날엔 내 어깨가 아름다워서
흰 달빛을 무겁게 얹을 수 있었고
머리채에 푸른 바람을 잉잉 머물게 할 수도 있었다
온 몸으로 눈을 받으며 눈길을 걷는 것은
참 쉬운 일이었다
마른 풀잎과 잔 가지에 내리는 눈발을 보며
나는 지금 서툴게 걷고 있다
흰 눈 속에서 홀로 붉고 붉어서
부끄러워라
천천히 멈추어 서서 천천히 눈을 감는다
잠시 후, 눈이 그치면 금오산은
한 채의 희디 흰 섬으로 떠오를 것이고
내 눈은 아름다운 섬을 아름답게 볼 수 있으리라
그걸 네게 주겠다
아아, 너무 작은 내가
너무 큰 그리움을 너에게 주리라
조현설, 겨울 사랑
사랑은 널뛰기와 같아
평평한 널판 고루 나누어
조심스레 올라 서로를 마주하며
우리들 목숨 높이 뛰어오르는
널뛰기와 같아
내가 낮아지면 그대는 높아지고
끝내는 누구나 그렇게 높아지는
우리들 사랑은 널뛰기와 같아
내가 땅에서 땅을 다지는 사이
그대는 하늘에서 푸른 하늘을 열고
내가 열린 하늘로 지붕을 엮는 사이
그대는 다진 땅에 기둥을 세우는
오늘 우리 사랑은 널뛰기와 같아
누가 먼저 내려선 안될
널뛰기와 같아
권말선, 내가 가끔 쓸쓸한 이유
소리도 없이 이름 불러 보면
가슴에
그윽한 아픔으로 젖어 드는 그대
빛나는 그 눈빛 때문에
환희와
절망 사이를 헤매이게 하는
두렵고 고통스런
그대 향하는 사랑 때문에
식어버린 차를 마시고도
온도를 느끼지 못하게 만드는
멍한 그리움
주체못할 그리움 때문에
내가 사랑하기엔 그대가 너무 아름답고
그대를 사랑하기엔 내가 너무 초라한
축복에서 멀어진 인연
아쉬운 인연 때문에
내 안에서 자라나는 사랑
다 못 건네 주고는
하루를 보내고 십년을 보내고
그리하여 마지막 삶을 보낼 어느 즈음에도
그대를 연연해 할까하는
모질지 못한 마음
어쩌면
그것 때문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