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한 통유리를 통해 밖을 바라보고 있는 중이다.
시원해 보이는 밖의 풍경은 잔인한 여름.
그리고 이곳은 잔인한 카페.
지긋지긋한 카페.
지긋지긋한 커피냄새.
이 카페에 아주 오래 있었다.
며칠을 있었더라.
1, 2, 3, 4, 5, 6
그래.
9999일.
아니 정확하게는 표현하자면 '9999번째' 있는 중이다.
내 앞에 놓인 아메리카노, 그란데 사이즈.
목에서 신물이 올라온다.
누가 아메리카노를 고소하고 씁쓸하고 짭조름하면서 달콤한 게 깊은 맛까지 있다고 하던가.
이건 악마가 인간에게 고통을 주기 위해 만들어낸 쓴물이다.
심지어 마시기 짜증나게 뜨겁기 까지 하다.
원산지가 지옥임에 틀림없다.
아니면, 우리 조상들이 고안해 낸 것일지도 모른다.
뭐? 브라질? 에티오피아? 콩고? 아니다.
이 쓴 사약 맛을 구현 할 수 있는 건 우리 선조들 밖에 없다.
아마 조선시대, 아니면 삼국시대에 사약을 받기 전,
예행연습 삼아 홀짝여 보라고 만들었을 것이다.
그리고 너무 써서 아무도 안 먹었겠지.
차라리 사약을 주시오! 차라리 내게 사약을! 하고.
증오한다. 아메리카노.
수 천 잔을 마셨다.
먹을 게 이것 밖에는 없다.
주머니는 탈탈 비었다.
배는 고프나, 역시 먹을 건 아메리카노 뿐.
망할, 아메리카노, 그란데, 사이즈. 뿐.
9999일 전에, 그러니까 9999번째 전에 커피 주문 받았던 여자.
속 비치는 흰 블라우스에 스키니 진 입고 있던,
오늘따라 머리를 뒤로 쫑긋 묶어 여리여리 더 청순하게만 보이던,
그 아르바이트 여자.
그 여자를 꼬셔보려고 나는 카페에 들어왔다.
정확히는 꼬시려했다기 보단, 그저 얼굴이나 좀 보려고 왔었는데,
결과적으로 꼬시려 달려들었으니, 꼬셔보려고 카페에 들어왔다는 것은
원칙적으론 틀린 말이나, 결과적으론 말은 맞는 말이다.
무슨 생각이었는지 나도 잘 모르겠다.
정신머리 없는 놈.
충동억제제를 삼시세끼 전 공복에 필히 복용하고 다녀야 할 놈.
잠깐이라도 나는 그녀를 꼬실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나?
"연락처 좀 얻을 수 있을까요?"
"…."
온 카페 사람들이 모두 나를 쳐다봤다.
힐끔 거리며 보는 사람도 있었고,
웬일이야~ 소리치는 사람도 있었고,
내가 번호를 따는지 못 따는지 내기를 하는 사람도 있었고,
입이 아 벌어져 있는 사람, 눈을 그윽하게 뜨고 있는 사람,
내가 재미나는지 싱글벙글 거리는 사람
그리고
연락처 좀 얻을 수 있을까요? 물어 본 충동적 얼뜨기와,
얼굴이 빨갛게 익어서 휘리릭 도망쳐버린 하얀 블라우스의 여인도 있었다.
그냥 나왔어야 했는데,
괜히, 아 괜히, 아메리카노는 받고 떠나야 할 것 같았다.
창피했으나, 3000원도 돈은 돈이었고, 나는 돈 3000원을 주고 커피를 샀으니까.
고백이랑 커피랑은 아무 관계없으니까….
내가 차인거랑 커피랑은 아무 관계없으니까….
아, 없으니까!
커피 홀짝이는 사람들의 눈총을 맞아가며 전열을 가다듬었다.
나는 이 시간이 흐르면 흐를수록 내가 치명상을 입게 될 것임을 잘 알고 있었다.
이미 피는 질질 흐르고 있었으며,
내가 자릴 잡은 테이블 밑은 흔히들 말하는 피바다, 내 장렬한 패배의 피바다.
바로 그 자체였다.
그렇게 커피는 나왔고, 나는 아직 떠나지 못했다.
문제는 그때부터다.
그러니까 지금, 지금 바로 이 순간부터다.
그러니까, 맨 처음. 맨 처음을 떠올려보자.
맨처음 나는 이곳에서 커피를 한 잔 다 마셨고,
그동안 사람들의 연발총은 거듭 내 등단지를 쑤셨고,
커피를 다 마신 후, 그 총알 세례 속에서 피 흘리고 신음하며 카페를 나갔을 때,
드디어 나는 정신을 차렸고,
멀리멀리 도망치고 싶다는 생각에 사로잡혔다.
서둘러 카페 앞 4차선 도로를 무단횡단으로 건넜다.
어차피 차가 잘 안다니는 도로였다.
그래서 무심결에 차가 오는지, 가는지 신경도 쓰지 않고 반 뜀박질로 건너던 중
성난 코뿔소처럼 달려오는 검정색 SUV가 한 대 나를 치고 지나갔다.
순식간이었다.
몸이 하늘을 날았다.
그 육중한 본네트에 부딪힌 어깨와 머리, 아랫배부터 꺾여 진 다리,
뼈가 괴성 치며 바스러지던 그 굉음,
SUV가 스키드마크를 긋던 그 소름끼치는 소음.
철덩이가 덮쳐오던 그 무시무시한 묵직함.
그 모든 것들이 섬광처럼 나를 덮치고, 세상이 순식간에 어둠에 휩싸였다고 느꼈을 때.
그리고 다시 시야가 번쩍 돌아왔을 때, 그 상처는 모두 사라지고,
나는 다시 카페 안이었다.
졸은 줄 알았다.
깜빡 졸아서 잠깐 꿈을 꾼 것만 같았다.
그러니까, 내가 잠깐 졸아서, 그리고 지금 이 상황이 너무나 창피해서
눈을 감고 앉아 있었다가 하필 그때 긴장이 풀려 졸았거나,
아니면 일순에 몰려온 극심한 스트레스에 졸도를 했다고 생각했다.
그게 아니라면 그 끔찍했던 장면들을 설명할 길이 없었다.
머리를 흔들어 털고, 정신을 가다듬었다.
나는 다시 뜨거운 아메리카노를 쥔 채 서둘러 카페를 나섰다.
걸음이 급해졌다.
서둘러 도로를 건널까하며 슬쩍 반대 차선을 보는데, 아니나 다를까,
성난 코뿔소 같은 SUV가 호랑이 같은 포효를 하며 지나가는 것이 아닌가.
놀라서 뒤돌아섰다.
조심성 없는 행동이었다.
손에 뜨거운 것을 들고 있었다면, 조심했어야 했는데,
나는 지금 꿈같지만 마치 현실 같은 죽음을 경험한 것과 같은 상황이었고,
그래서 경황이 없었고, 조심성을 부릴 여유가 없었다.
그래서 웬 떡대와 부딪혔다.
손에 들고 있던 아메리카노가 그의 넓대대한 가슴팍과 내 손을 뜨겁게 달궜다.
그의 하얀 티셔츠는 갈색으로 예쁘게 물들었고,
내 손은 커피의 고소한 향과 함께 치지직 볶아지고 있었다.
"앗! 씨발…."
물론 손이 뜨거워서 한 말이었다.
그 남자에겐 그렇게 들리지 않은 모양이겠지만.
그 남자는 "이 개새끼가." 라는 짧은 말을 남기며 대뜸 내 턱을 정확히 가격했다.
거짓말 하나 보태지 않고, SUV와 충돌하던 것만큼 강렬한 충격을 받았다.
하늘이 뱅글 급회전 하는 것이 느껴졌고,
땅이 이마로 돌진해 오는 게 보였다.
도로 측 아스팔트 위에 코를 박는 그 순간,
나는 다시 카페 안이었다.
사람들은 아직 나를 보고 있었다.
악마의 쓴물은 아직도 뜨거운지 김이 펄펄 피어올랐다.
묘했다. 꿈만 같았다.
SUV에 치었을 고통도, 땅바닥에 코를 찧었을 고통도 느껴지지 않는다.
그렇게 생생했는데.
꿈이 아니라, 현실만 같은데.
그때 내 정면에 있던 전자시계의 빨간 점들이 눈에 들어왔다.
점들이 이뤄 놓은 숫자들.
-00:02
또 졸았나?
분명히 졸았어.
그러니까 두 번 졸아서 두 번 다 현실 같은 꿈을 꾼거야.
눈동자를 굴렸다.
이상했다.
카페의 통유리로 도로를 내다보니,
SUV가 다시 미친 듯 달려 나가는 모습이 보였다.
잠시 후 타이트한 흰 색 티셔츠를 입은 근육질 남자도 지나갔다.
좀 전에 내 턱에 핵주먹를 날려 준 그 남자였다.
데자부? 기시감? 뭐든 좋았다.
아직 카페 사람들의 호기심이 빗발치고 있었다.
빗발은 화살처럼 나를 관통했고,
덕분에 더 혼잡해진 정신은 내 마음을 급하게 만들었다.
사람들이 나를 쳐다본다.
아프다.
몰래몰래 훔쳐보기는…… 뭘 봐, 이 사람들아. 등신 같은 남자 처음 봐?
이제 커피는 아무래도 좋았다.
테이블 위에 아메리카노를 놓아둔 채 서둘러 밖으로 나왔다.
SUV도 지나갔고, 흰 티셔츠 남자도 지나갔다.
꿈이었나?
애초에 나는 언제 졸았었나?
졸은 기억이 없다.
강렬했던 통증들이 성난 파도처럼 밀려들었다.
해괴한 일이었다.
카페를 나서며 헛웃음이 터졌다.
이게 웬일이람.
여자한테 대뜸 연락처나 달라고 하다 단호박처럼 차이고,
개꿈이나 꾸고 있는 꼴이람.
"위험해요!"
응?
어떤 대머리 아저씨가 나를 똑바로 보고 소리쳤다.
아저씨와 눈이 마주치는 순간 아주 찰나 같은 순간, 뭔가가 정수리를 호되게 강타했다.
목이 납작하게 들어간 것 같은 기분이었다.
몸은 땅으로 푹 꺼져버리고,
쓰러지며 몸의 감각이 정전된 것처럼 사라져버렸다.
몸이 안 움직였다.
목이 돌아가질 않았다.
목이 부러진 모양이었다.
넘어지며 시야에 들어 온 것은 간판.
악마의 쓴물을 만들고 있는 이 악마 같은 카페의 간판.
"괜찮아요? 괜찮아요?! 이봐요!"
나를 향해 달려오는 대머리 아저씨와 간판이 동시에 시야에 들어왔다.
그리고… 다시 나는 카페에 앉아 있었다.
침을 삼켰다.
전자시계가 다시 눈에 들어왔다.
-00:03
시계가 이상하다.
지금은 대낮이다.
전자시계가 00:03을 가리키고 있다면,
시계는 24:00을 따르는 24시간 형식의 전자시계란 뜻이다.
그렇다면 00:03이 아니라 12:03이라 표시되는 것이 맞았다.
00:03이라면 밤 12시 03분이란 뜻이 아니던가?
낮에는 12:03이어야 맞지.
뭔가 이상해.
그리고 지금 00:03은 무엇인가.
아까 00:02를 본 기억이 있었다.
1분이 늘었다.
어째서 1분?
가만히 앉아 시계를 쳐다보고 있었다.
속으로 60초를 세었다.
-00:03
-00:03
-00:03
-00:03
-00:03
…116.
…117.
…118.
…119.
…120.
60초는커녕 120초를 셌다.
1분이 이리도 길었던가?
사람들은 아직 나를 구경꺼리 삼고 있다.
쇼는 끝난 지 오래다.
아니다. 나에게만 그런 것인가?
마치 우리 속에 갇혀있는 원숭이가 된 기분이다.
사람들은 나를 재밌어라 보고 있는 듯했다.
그때 등 뒤에서 누군가 그랬다.
쪽팔려서 못 움직이나봐? 하고 말했다.
말하곤 깔깔깔 하고 웃었다.
그 웃음소리가 거슬렸다.
목소리를 향해 눈을 돌리자, 한 무리의 남녀들이 커피를 마시고 있었다.
남자 셋, 여자 셋.
90년대 시트콤이냐?
그들에게서 눈을 돌렸다.
오싹해져왔다.
남자 셋, 여자 셋 때문이 아니다.
죽음이 다가오는 불안감 때문에서였다.
나는 왜 계속해서 죽는 것만 같은 헛것을 보고 있는가.
기분이, 기분이 이상했다.
이상하게 허기가 밀려왔다.
이곳에서 아주 오래 있었던 것만 같았다.
테이블 앞에 있는 건 달랑 아메리카노 커피 한 잔.
지갑엔 돈이 없었다.
카드로 베이글을 주문했는데, 한도가 지났다는 말을 듣고 되돌아와 앉았다.
집에 돌아가서 뭐라도 먹고 싶었다.
또, 뒤에서 그 남자 셋 여자 셋이 목청을 높였다.
"돈도 없어."
깔.깔.깔.
다시 그들을 돌아봤다.
남자 셋 여자 셋은 내 눈길이 같잖았는지, 아니꼬운 눈빛을 내게 돌려주고 있었다.
피차일반이었다.
하지만 그건 남자 셋 여자 셋의 탓만은 아니었다.
기분이 안 좋았다.
급격하게 우울함이 나를 덮쳤다.
아까 그 SUV처럼.
맹렬하게.
뭔가 이상했다.
당장 배가 고픈 대로 커피를 들이마신 뒤 일어섰다.
절로 겁이나, 위를 올려 보았으나, 간판은 떨어지지 않는다.
카페를 지나, 횡단보도를 건너, 한가한 큰 거리로 나왔을 때.
누군가 뒤에서 소리쳤다.
깜짝 놀랐다.
무심결에 놀라며 또 위를 올려다봤다.
간판은 아니었다.
물론 대머리 아저씨도 아니었다.
"야!"
야?
뒤를 돌아보니, 남자 셋 여자 셋이 보였다.
뭐야?
"너 아까 왜 우리 쳐다봤냐?"
나한테 하는 말인가?
그럴 리 없다.
그럴 리 있을 수도 있지만, 그럴 리 없다.
혹시나 그렇다면 나는 참, 어처구니가 없다.
그들을 무시한 채 다시 뒤돌아 걸었다.
그러자 남자 셋 중 하나가 내게 달려와 어깨를 잡았다.
가까이서 보니, 파릇파릇 한 게 고등학생 아니면 이제 막 대학 들어간 새내기인 것 같았다.
"왜 대답을 안 해?"
무슨 대답?
무슨 대답을 원해?
또 무시하고 걸었다.
"야, 대답하라고!"
대답했다.
"꺼져." 라고 대답했다.
그들이 얼마나 아니꼬운 줄은 모르겠으나,
나는 굉장히 아니꼬았다.
정확히 세 번의 죽음을 경험 했을 정도로 내 기분은 아주 아니꼬았다.
덩달아 배는 고팠고, 왠지 모르게 죽음이 다가오는 것이 느껴지고 있었다.
피할 수 없는 죽음의 그림자.
그 기억 속 생생한 통증들.
구역질이 나올 것 같았다.
걷는데, 남자 셋 여자 셋을 무시하고 걷는데.
갑자기 그들 중 하나가, 다짜고짜 나를 때렸다.
뒤에서 날린 치졸한 급습이었다.
이성이 증발하는 것을 느꼈다.
나는 상대의 얼굴도 보지 않고 멋대로 주먹을 휘둘러 한 방을 돌려줬다.
곧 내게로 날아오는 주먹과 발길질이 한 타이밍에 세 개씩으로 늘었고,
몰매를 못 이기며 바닥에 쓰러졌다.
쓰러진 내 안면으로 그 커다란 운동화의 코가 달려들었을 때,
번쩍 별 빛 같은 플래시가 터졌고,
나는 다시 카페에 앉아 있었다.
곧바로 전자시계부터 보았다.
-00:04
00시 04분?
벼락을 맞는 기분이었다.
1분이 또 늘어났다.
주변이고 커피고 뭐고 총알처럼 튀어나갔다.
무서웠다.
뛰어야했다.
이건, 이건 뭐야?
시야가 저 멀리 도망을 쳤다.
눈에 들어오는 것도 없으면서 행선지도, 동서남북도 없이 무조건 달렸다.
내가 생각 없이 도로로 뛰쳐나갔다고 자각 한 순간,
그 성난 코뿔소 같던 SUV가 내 허리를 들이받고 있었다.
그리고 다시 카페.
-00:05
점점 배가 고파오고 있었다.
허겁지겁 아메리카노를 마셨다.
입천장이 데일정도로 뜨거웠지만, 그 고통이 허기를 이길 수는 없을 것 같았다.
가슴에서 복부로 뜨거운 커피가 쏟아져 내리는 것을 느꼈다.
머리는 오히려 차가와 지고 있었다.
궁리를 시작했다.
대책 없이 나간다면, 분명 또 죽을 것만 같았다.
신중해야 했다.
뒤에서 또 목소리가 들린다.
쪽팔려서 못 움직이나봐?
깔.깔.깔.
목이 반쯤 자동으로 돌아갔으나, 돌아보지 않았다.
그들을 신경 쓸 상황이 아니었다.
카페를 나서며 위를 올려다 보다 얼른 몸을 카페 안으로 다시 넣었다.
아찔한 기운이 등을 타고 올라왔다.
아주 께름칙했다.
께름칙한 느낌은 정확히 맞아 떨어졌다.
곧 카페의 간판이 눈앞으로 떨어져 내렸다.
간판의 쇳덩이가 돌바닥을 사납게 찍어내리며 산산히 조각났다.
굉음이 터졌다.
얼마나 무거웠으면.
여자들의 비명이 빗발치고 있었다.
놀란 모양인 듯.
떨어 질 것을 어렴풋이 예상했던, 나조차도 놀랐다.
유난스럽다고 느껴질 만큼, 비명은 지속적이었다.
뭐야? 왜 그렇게 소리를 치는 거야?
머리가 어지러웠다.
서서히 몸이 뒤로 넘어지는 것을 느꼈다.
완전히 카페 바닥에 누워버리자, 목 주변으로 뜨거운,
그러니까 마치 용암처럼 뜨거운 기운이 느껴졌다.
피비린내가 진동을 했다.
피? 내 피?
이럴 수가 있는가?
플라스틱?
간판이 떨어지며 튕겨 나온 간판 조각이었다.
플라스틱이 내 목에 정확히 날아와 박힌 것이다.
거짓말. 거짓말만 같다.
거짓말이야.
내 목은 계속 쿨럭쿨럭 피를 토해냈다.
남자 셋 여자 셋이 내게 몰려와 나를 흔들었다.
119를 외치는 소리가 저기 멀리서 꿈결처럼 들려온다는 느낌이 들었을 때.
다시, 카페.
-01:10
이번엔 아주 카페에서 안 나가볼 생각이었다.
전자시계는 계속해서 01:10
한참이나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그렇게 계속해서 카페에 머물렀더니,
어디선가 진한 가스 냄새가 피어나기 시작했다.
아주 지독했다.
어디서? 무슨 가스 냄새가 날 수 있지? 라고 생각한 순간, 폭발음이 들렸다.
큰 불길이 내게 달려들고서,
또다시 카페.
-19:42
이번은 생각보다 멀리까지 도망쳤다.
한참 카페를 벗어나는 길, 인도에서 남자들 간에 싸움이 벌어졌다.
살벌한 싸움이었다. 위험했다.
괜히 어설프게 엮였다간 죽을 것이다.
그들을 피해 빙 둘러서 길을 지나는 데, 웬 여자가 나를 붙들고 늘어졌다.
"도와주세요! 저러다 살인나요!"
여자가 내게 매달린 동안 싸우고 있던 남자 중 하나가 사라지고 없었다.
찬물을 끼얹은 듯 소란은 잠잠해졌다.
다행이었다.
어석해질 뻔했다.
이대로 모두 없었던 것처럼 모른 체 지나가야했다.
까딱하면 내가 죽는다.
"괜찮아요. 싸움 끝났어요. 보세요. 남자 한 분 다른 곳으로 가셨잖아요."
여자가 옆을 돌아보며 비명을 질렀다.
식식 숨을 크게 내쉬는 소리가 들리던 순간.
그 순간 나도 여자를 따라 돌아보는데, 배를 관통하는 차가운 무언가가 느껴졌다.
싸우던 남자, 사라졌던 남자였다. 남자와 눈이 마주쳤다.
남자의 광기어린 붉은 얼굴이 가깝게 다가와 있었다.
그리고 점점 광기의 붉은 빛은 당황의 검은 그림자로 탈바꿈 되어갔다.
마치, 찌를 사람을 착각했다는 듯.
그리고 다시….
-34:14
카페 바로 앞에서 택시를 잡았다.
수많은 죽음을 경험하고 비로소 택시가 카페 앞에 잠시잠깐 정차한다는 사실을 알았다.
소중한 정보였다.
놓여선 안 됐다.
잽싸게 택시로 올라탔다.
"아저씨! 상설매장으로 가주세요! 빨리! 빨리요!"
알겠습니다~ 호쾌하게 대답한 기사 아저씨가 핸들을 꺾을 때, 섬뜩한 느낌이 들었다.
상설매장으로 가기엔 U턴을 하는 것이 빨랐다.
텅 빈 도로.
기사는 빠르게 불법 U턴을 시도했다.
택시가 중앙선을 지나려던 순간 그 망할 놈의 SUV가 보조석을 덮쳐왔다.
카페.
-45:94
카페로 돌아왔다는 사실을 지각한 순간,
별안간 심장이 조여 왔다.
누군가 심장을 움켜쥐는 것만 같은 고통이었다.
숨을 쉴 수가 없었다.
고통스러웠다.
그대로 땅바닥으로 몸이 무너져 내렸다.
또, 카페.
-74:08
남자 셋 여자 셋을 때려줬다.
죽을 땐 죽더라도, 너희는 용서할 마음이 없다.
몇 번이라도 때려주마.
-87:86
혼자서 남자 셋을 몽땅 쓰러트렸다.
수 천 번 만에, 장족의 발전.
천 번이 넘게 걸리다니.
하지만, 그들을 쓰러트리자, 문득 죽음 이외의 불안이 몰려오기 시작했다.
전자시계는 99:99까지 밖에는 표현할 수 없으리라.
그렇다면 그 다음은 어찌되는 것인가.
모든 것이 끝나는 건가?
저놈의 전자시계는 내가 몇 번 죽었는지 만을 알려줄 뿐,
그 이상의 정보를 제공할 줄은 몰랐다.
진짜 죽음이 다가오고 있는 게 느껴졌다.
99:99 다음은?
다음은 뭐야?
절망감에 사로잡혀 울음이 터졌다.
허무했다.
왜 이리 허무한가.
내 삶은.
오열을 하는 내게로 당연히도 사람들은 눈을 돌렸다.
카페는 싸움으로 아수라장이 되어 있었다.
내가 이렇게 만든 것이다.
아까 블라우스 입은 여자에게 차이는 광경보다 수백 배는 더 재미있었을 것이다.
싸우고, 펑펑 울고 있는 등신의 모습.
한참을 울다보니 가스냄새가 났다.
-99:42
이렇게 죽을 순 없었다.
이렇게 죽기엔 너무 억울했다.
죽음의 패턴은 나를 중심으로 돌고 있었다.
밖에서 카페를 한참 바라보고 있자면, 카페에 가스폭발은 일어나지 않았다.
요즘 시대에 가스 폭발이라니. 요즘 도시가스가 아닌 곳도 있단 말인가?
제길. 이곳엔 간판들이 너무 많아. 항상 위를 보며 걸어야했다.
괜한 사람과 어깨가 닿지 않도록 경계를 늦출 수 없다.
무슨 시비가 붙을지 모르는 일이다.
남자도 위험했지만, 여자의 경우는 심지어 무섭기까지 했다.
스턴건을 갖고 다니는 여자가 있을 줄이야.
전기로 쇼크사를 한 것이 몇 번이던가.
내가 그렇게 심장이 약한 줄은 몰랐다.
세상이 이렇게 흉기로 가득할 줄은 더더욱 몰랐다.
숨을 곳도 피할 곳도 없었다.
이 잔혹한 여름의 쨍쨍한 햇살을 받고 있는
이 냉담한 도시는 마치 죽음의 페스티벌처럼 보였다.
몇 번 전인지 기억은 나지 않으나,
가까스로 집으로 돌아갔더니 집에 불이 났었다.
타죽는 그 고통.
이루 말 할 수 없는 고통이었다.
친구네 집으로 향했을 땐, 아파트 엘리베이터가 추락했다.
조심성이 부족했다.
계단으로 갔어야 했는데.
하지만 그런들 무슨 소용이랴.
물론 계단으로 가다보면 뭔가가 또 있었겠지.
그래서 굴러 떨어졌겠지.
그래서 죽었겠지.
아무것도 없는 훤한 공원으로 피신하자, 조기축구회의 축구공이 날아왔다.
축구공을 맞고도 뇌진탕을 당할 수 있다는 사실을 처음 알았다.
축구선수를 하지, 왜 남의 머리통을 깨부수는가.
조기축구회. 증오한다.
아니다.
증오할 것 없다.
그들 탓이 아니다.
내 탓이다.
낙엽만 스쳐도 나는 죽는다.
그러니 내 탓이다.
그 공이 날아오는 순간 그 자리에 있던 내 탓이 맞다.
이제 더 이상 무엇을 더 할 수 있는지, 알 수가 없다.
어차피 죽는다면, 고통 없이 죽는 법을 택하고 싶었으나,
그런 것은 없었다.
어째서.
왜 이런 일이 일어나는 거야?
아차, 깜빡 위를 올려다보는 것을 잊었다.
간판 조심해야 했었는데.
쯧, 제자리로 돌아왔다.
-99:99
선택이라고 할 것이 남아 있던가?
한참을 생각에 잠겨있었지만, 아직 가스 냄새는 나지 않는다.
애초에 나는 이곳에 왜 왔던가.
블라우스를 입은 여자가 너무 예뻐서.
아주 오래 전부터 눈 여겨 봤는데,
그래서 먹을 줄도 모르는 아메리카노,
그나마 가장 싸기에 마시던 아메리카노,
핑계 삼아, 매일 이 악마 같은 카페에 들러서,
그 사약 같은 놈 매일 마시며,
그냥 아르바이트 하는 아가씨 얼굴 구경이나 좀 하고 싶었는데.
무슨 용기가 갑자기 튀어나와서 고백까지 했다가,
나는… 나는…… 나는 도대체 지금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 건가.
나는 뭔가 죄를 지었는가.
나는 죽어 마땅한 놈인가.
구천구백구십구 번이나?
확실한 건 하나밖에 없었다.
99:99 이다음 숫자는 없다.
이제 내 목숨은 한 번 밖에 남지 않았다.
자리에서 일어났다.
남자 셋 여자 셋이 떠든다.
“오오! 일어났다.”
오오! 그래. 일어났다. 어쩔래.
마지막 한 번이다.
너희 같은 놈들에게 시간을 허비할 순 없다.
카운터를 열고 블라우스 여자가 사라진 곳으로 향했다.
아무도 나를 막아서지 않는다.
다른 아르바이트 녀석이 나를 꼬나봤지만, 무시했다.
이판은… 사판이다.
거울을 볼 순 없었지만, 내 눈에 가득 독기가 담겨있는 건 확실했다.
모두 블라우스 당신 탓이야.
이유는 모르겠지만 왠지 그런 것 같아.
아주 많이, 그런 것 같아.
카운터를 지나니 뒤로 휴게실이 나왔다.
휴게실에는 아무도 없다.
휴게실에 붙어있는 뒷문을 지나자, 작은 공터가 나왔다.
블라우스 여자는 그곳에 있었다.
확 덮쳐서 때릴까?
아니지.
사실 맞은 만큼 죄를 지은 것 그녀가 아니지.
남의 직장서 폐를 끼친 내가 죄지?
그지?
웃음이 나왔다.
이제와 그녀를 봐서 뭘 어찌하겠는가.
그녀는 나를 뚫어져라 보고 있다.
놀랐나보다.
내가 여기까지 올 줄은 몰랐겠지.
나도 9999번 만에 여기 올 생각이 들었다.
눈이 마주치는데 이상하게 피가 끓는 기분이다.
다가가서 그녀의 어깨를 쥐었다.
사실 아프게 비틀 듯 꽉 쥐어 짤 마음이었지만,
잔뜩 몸이 움츠러든 여자를 보자 마음이 약해졌다.
저절로 낮은 목소리가 나왔다.
"이거 봐요."
"…."
"대답해요."
"…."
대답이 없다.
상관하지 않겠다.
하고 싶은 말이나 해주고 죽어야겠다.
"싫으면 싫다고 대답이라도 해줘야 하는 것 아닌가요? 도망치는 게 싫다는 답이 될 순 있지만, 있겠지만. 그래도 예의라는 게 있잖아요. 우리가 아무리 모르는 사이이고 생판 남이라지만, 남자 대 여자로서, 인간 대 인간으로서 내가 당신을 좋아한다고 말을 했으면, 최소한의 의리라는 건 있는 거 아닌가요? 싫어요. 죄송해요. 남자친구 있어요. 할 수 있는 말 많잖아요. 왜 그냥 도망가요. 사람 무안하게. 예? 말 해봐요. 내가 그렇게 싫어요? 내가 왜 싫어. 어? 당신은? 그러는 당신은 그렇게 잘났어? 예쁘면 다야? 나는 뭐. 못생겨서 그래? 그래서 그런 거야? 이상한 놈이 고백해서 창피해서 도망쳤어?"
갑자기 반말이 나왔다.
화를 내 본 것도 몇 년 만인지 모르겠다.
논리가 하나도 맞지 않는다.
순전한 개소리였다.
그나마 다행히도 기분은 개운해졌다.
목소리가 떨렸다.
여자를 잡고 있는 손도 떨렸다.
"그런 게 아니라…."
드디어 여자가 입을 열었다.
"그런 게 아니라…."
그런 게 아니라, 그런 게 아니라, 뭐.
응? 그런 게 아니라?
"이런 일이 처음이라, 너무 놀라서."
"예?"
"너무 놀랐어요. 저도 사실 손님 매일 오는 거 기다리고 있었어요. 정말이에요! 정말로. 정말이에요."
"…."
말문이 막힌다.
여자는 얼른 앞치마에서 볼펜을 꺼냈다.
그리곤 내 손바닥을 낚아 그 위에 빠르게 숫자를 적어 나갔다.
무엇인가. 이 열한자리 번호의 조합은.
0103414………….
전화번호?
분명 전화번호다.
뭐야 이거?
손바닥에 전화번호를 적다니. 20세기 스타일?
"저 이따 다섯 시에 끝나요."
"예?"
"전화주세요."
여자는 도망치듯 가게 안으로 사라졌다.
가짜 번호?
그래.
가짜 번호다.
내가 무서워서 가짜 번호를 미끼로 던져 주고 경찰을 부르러 간 것이다.
그리고 나는 경찰에게 호송당하다, 경찰차는 U턴을 꺾겠지,
그리고 그 망할 코뿔소 같은 SUV가 또 나를 덮치겠지.
그렇게 죽는 게 나의 마지막 시나리오인가?
씨발.
어떻게 죽으면 어떻단 말인가. 이제 와서.
죽어주마.
죽기 전에, 담배 한 대만 더 피우고 죽어주마.
잠깐.
혹시 내가 라이터를 켜는 순간, 가스 폭발이 일어나는 건가?
그게 시나리온가?
그렇다면,
라이터를 켜서 가스폭발이 일어난다면,
그녀가 내게 준 이 번호는 진짜 번호인가?
모르겠다.
멋지게 담배를 피우고 장렬히 죽고 싶었으나, 라이터를 켜는 게 겁이 났다.
잔뜩 쫄아서 라이터를 살살 켜봤다.
불이 켜질 때는 소스라쳤다.
등신처럼.
담배를 한 대 필터 끝까지 피웠다.
담배를 땅바닥에 비벼 끄며, 마음의 정리를 끝냈다.
죽자.
죽으러가자.
휴게실을 지나, 카운터로 나왔다.
남자 셋 여자 셋이 소리친다.
“나왔다!”
그래. 나, 왔다. 어쩔래.
그리고 박수.
그리고 갈채.
응?
갈채?
사람들이 자리를 차고 일어나 박수를 쳤다.
카페가 떠나가라 환호성이 멈추지 않는다.
웬 여자 눈에는 그렁그렁 눈물까지 맺혀있다.
블라우스 여자가 총총걸음으로 다가와 귓속말을 했다.
"이따 전화 줘요."
경찰은?
안 와?
경찰 안 올 거야?
카페를 벗어나, 하늘을 보며 걸었다.
아직 간판은 떨어지지 않는다.
횡단보도. SUV는 지나가지 않았다.
공원을 지나며, 조기축구회도 없다.
아직 안 죽나보다.
집에 도착해, 샤워를 했다.
샤워를 하다가, 아참, 내가 지금, 배가 지금, 엄청 고프지? 라는 생각이 들었다.
라면을 끓이지도 않고 생것을 마구 부숴먹었다.
불이 날건가?
아니.
불은 나지 않았다.
-17:00
그녀가 끝났을 시간이다.
전화를 걸자, 통화음 두 번 만에 그녀가 받았다.
"어디에요?"
-17:12
막상 그녀와 대면하니, 몸이 얼어버리는 것 같다.
-17:13
아직 얼어있다.
-17:14
무슨 말이라도 좀 해라, 이 똘추야.
-17:15
그녀가 물었다.
"영화… 좋아해요?"
"예…. 영화, 좋아해요."
좋아한다. 사실이다.
물론 그저 평범한 선에서.
"바톤 핑크, 봤어요?"
"옛날에 했던 건 봤어요."
명작이다.
좋아하는 영화 중 하나다.
"이번 리메이크 보러 갈래요?"
"코엔 형제 좋아하세요?"
영화를 봤다.
영화를 보고 또 쓴 아메리카노를 마셨다.
의외로 달콤한 것 같기도 하다.
이상하다. 왜 달콤하지?
그녀는 잘 웃는다.
코엔 형제의 영화 이야기를 하며, 늦은 시간까지 그녀와 함께 있었다.
-23:02
그녀를 바래다 줬다.
목을 가다듬어, 작별 인사를 했다.
"잘 들어가요."
말없이 고개를 끄덕이던 그녀는 뒤로 돌아 집으로 향했다.
뒤로 돌기 전, 그녀의 입가에 어렴풋한 미소가 보였던 것 같기도 하고.
이것은 뭔가, 뭔가 이상하기도 하고.
이것은 야릇하기도 하고.
이것은 뭔가.
정말로 뭔가.
"연락 또 해요? 꼭 해요 우리?"
그녀가 뒤돌아서 말했다.
건물 안에 그녀의 목소리가 메아리치듯 울렸다.
연락 또 해요. 꼭 해요 우리?
연락 또 해요. 꼭 해요 우리?
연락 또 해요. 꼭 해요 우리?
"당연하죠. 꼭, 연락할게요. 집에 가자마자 할게요. 아니, 집에 가는 길에 할게요."
내 대답에 그녀는 환하게 웃으며 돌아섰다.
-23:47
집에 돌아와서도 계속해 그녀와 메신저를 주고받았다.
아직 얼떨떨하다.
너무 긴 하루였다.
-23:48
졸리다.
-23:49
눈이 감긴다.
-23:50
Zzz………Zzz…………….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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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00
알람소리에 깨어났다.
방이다.
카페가 아니다.
방이다.
살았다!
살았다!
살았나?
모르겠다.
헷갈린다.
가슴 위에 핸드폰이 올라있었다.
그렇다면 어제와 이어지고 있다는 뜻인가?
어제 그녀와 메시지를 주고받았던 일상이 이어지고 있는 것인가?
죽음의 굴레는 벗어난 것인가?
손에 땀이 흥건했다.
양손 가득 핸드폰이 쥐어있다.
핸드폰이 땀에 젖었다.
손에 꼭 쥔 채 잠들었었나 보다.
그녀에게 메세지가 와있다.
'자요?'
'잠든 거예요?"
'잘 자요."
'내일 연락해요? 꼭 이예요?'
어쩌면, 이건 죽기 전에 보이는 환상일지도 모르겠다.
그 여자가 나에게 이럴 리 없어.
나는 사실 애초에 SUV에 치어 죽은 건 아닐까?
모르겠다.
도저히 모르겠다.
어제 봤던 것들은 꿈인가?
9999번의 꿈인가?
이제 더는 카페로 돌아가지 않는 것인가?
역시.
모르겠다.
그녀에게 답장을 했다.
'이제 일어났어요.'
-08:11
그녀에게 답신이 왔다.
'저두요.'
의심이 끊이질 않는다.
과연 이건 꿈이 아닌 건가?
이제 난 죽지 않는 건가?
조금 안심이 되는 것은,
그래도 시간은 계속 흐르고 있다는 것.
시간은 흐른다.
멈추지 않는다.
혹시 또, 언제 죽을지 알 수 없다.
그 전자시계 속 숫자, 99:99를 난 분명 보았다.
이건, 마지막 기회다.
한 번 더 죽는다면 정말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른다.
그때야 말로, 정말 죽을지도 모른다.
아마도….
어차피 죽을 거라면.
그래.
어차피 곧 죽을 지도 모르는 거라면.
그래….
다시 메시지를 보냈다.
'오늘 또 만날래요?'
-08:12
-08:13
-08:14
-08:15
-08:16
-08:17
-08:18
답신이 왔다.
답신을 읽고, 웃었다.
왜냐하면…,
왜냐하면,
내겐 아직 살고 싶은 이유가 하나,
살아 갈 목숨이 하나,
남아 있기 때문이다.
……다신 죽지 않겠다.
-08:18 안승희 님의 메시지
‘♡’
-The End-
출처 : 웃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