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이 진실을 추구한다'는 것은 사실들 속에 숨겨진 사회적 맥락과 의미를 찾아 널리 전달한다는 뜻이 담겨 있다. 그래서 진실보도는 언론의 사명이기도 하다. 그런데 언론이 진실을 전달하기는커녕 단순한 사실조차 은폐 또는 왜곡해서 전달한다면 어떻게 될까? 유감스럽게도 지금 우리사회에서 주류언론임을 자처하는 거대 보수신문들과 공영방송사들은 사실을 왜곡하며 부당한 여론몰이를 오랫동안 저지르고도 언제 그랬느냐는 듯이 시치미를 뚝 떼고 있다. 공영방송과 조중동의 국정원 선거개입 물타기
특히 국기문란을 넘어 민주주의 정체성을 위협하는 국가정보기관의 선거개입에 이은 또 다른 정치개입과 반대 여론에도 무려 22조 원의 혈세 예산을 날치기 통과하며 무리하게 추진했던 4대강 사업이 대국민 사기극으로 드러나 충격을 주고 있는데도 주류언론들은 물타기도 모자라 왜곡·축소보도를 수미일관되게 진행하고 있다. 저널리즘 위기는 말할 것도 없고 민주주의 위기를 가일층 부채질하는 형국이다. 이념적 성향으로 똘똘 뭉친 보수신문들이야 그렇다 치자. 공영방송사들의 일탈된 보도행태는 차마 눈뜨고 볼 수 없을 지경이다.
갈수록 논란이 확산되고 있는 국정원 사태의 본질은 국가정보기관의 선거개입에 관한 것이다. 1970년대 초 미국 제37대 대통령인 닉슨을 최고 권좌에서 끌어내린 '워터게이트 사건'에 버금가는 초대형 사건임에도 공영방송인 KBS와 MBC, 그리고 <조선일보><중앙일보><동아일보> 등 이른바 3대 보수신문인 조중동은 물타기 또는 왜곡·축소보도에 앞장서고 있다.
40여 년 전 언론의 끈질긴 추격보도로 민주주의 전통을 수호할 수 있었던 워터게이트 사건과는 전혀 다른 부끄러운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국정원이 특정 후보를 위해 선거에 개입하는 것은 쿠데타에 준하는 심각한 범죄행위다. 그런데 보수신문들과 공영방송사들은 국정원의 선거개입 의혹의 본질은 외면하고 그 사안의 본질을 여야 간의 정치공방으로 앞다퉈 왜곡하고 그 의미를 축소 보도하는 데만 열을 올리고 있다.
이들 신문과 방송은 '국정원의 선거개입 의혹'과 'NLL 포기발언의 진위' 및 '대화록 공개의 불법부당성' 등 핵심적 이슈들에 대해선 입을 굳게 다무는 대신, 이에 대한 여야의 정치적 공방만을 부각시키며 오히려 냉소주의를 부추기는 양상이다.
특히 KBS와 MBC는 대화록 공개 이전부터 '날조된 발췌문'을 근거로 한 새누리당의 주장을 받아쓰며 노 전 대통령의 'NLL 포기'를 기정사실화 하는 보도를 내보내는 데 집중하고 있다. 내·외부의 따가운 비판에도 반성이나 사과는커녕, 적반하장식의 무책임한 공방몰이에 매진하는 보도행태는 저널리즘의 어떤 가치도 찾아보기 힘들게 만들고 있다.
국정원이 대화록 전문을 여야 합의 없이 무단 공개한 데 대해 KBS는 "대화록 공개의 적법성을 놓고 여야는 오늘도 충돌했다"며 논란을 일상적인 '여야 공방'으로 치부해버리는 놀라운 순발력을 보여줬다. 그런가 하면 MBC는 "국정원이 보관하던 대화록의 법적인 성격을 놓고 새누리당 의원들은 '일반 기록물'이라며 공개의 합법성에 무게를 두어 거듭 강조했고 민주당은 대통령기록물이어서 불법이라고 맞섰다"고 즉각 물타기에 나섰다. 뉴스 내용도 약속이나 한 것처럼 말미에 짤막하게 처리했다.
국정원이 공개한 대화록 전문과 대화록 발췌문의 내용이 달라 악의적인 짜깁기에 대한 비판여론이 거셌지만 이에 대해서도 공영방송사들은 국정원과 여당 편에서 물타기에 충실했다. KBS와 MBC는 논란의 핵심인 '대화록'을 두고 논란을 제기한 새누리당의 주장이 '허위'로 밝혀졌음에도 이를 제대로 지적하지 않은 채, 여야 주장 모두 거짓으로 드러난 것이라며 진실 밝히기를 꺼려했다.
게다가 사안의 중요성에 비해 관련보도를 일반사건이나 날씨보다 늦은 순서로 배치하는 등 줄곧 '여야 공방'이란 타이틀 속에 버무려 보도해 주목도를 떨어뜨리고 있다. 오죽했으면 지난 9일 전국언론노동조합, 한국기자협회, 민주언론시민연합, 한국언론정보학회 주최로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국정원 사태이후 언론 보도행태를 점검하는 긴급 토론회에서 "KBS와 MBC는 국정원 사태에 적극적으로 물타기와 은폐에 나서 공범자가 됐다"는 따가운 질책을 받았을까.
이날 토론회 발제를 한 이희완 민주언론시민연합 사무처장은 "공영방송사로서 막중한 책무를 지고 있는 KBS와 MBC가 국정원 사태를 제대로 짚어주기는커녕 정권 호위대 역할을 자처하며 정권의 입맛에 맞는 보도에 '올인'했다는 점에서 사태의 심각성이 크다"며 "언론사가 정권호위대 역할을 계속 수행하면서 악의적인 보도 행태를 멈추지 않는다면 국민적 저항에 부딪칠 수밖에 없음을 정부, 새누리당, 국정원 등은 반드시 기억해야 할 것"이라고 뼈아픈 지적을 했다.
이 뿐 아니라 방송사들은 대학생들의 시국선언을 시작으로 확산된 국정원 사건 규탄 시국선언 및 촛불집회에 대해서도 외면하는 양태를 보이고 있다. 시민주도의 국정원 규탄 촛불집회에 대해 함구하는 대신 민주당이 장외집회에 나선 사실에 주목하며, 진상규명을 촉구하는 촛불집회마저 'NLL 대화록 공개를 둘러싼 정치권 여론전' 등으로 호도하는 보도를 내보냈다.
'방송은 인간의 존엄과 가치 및 민주적 기본질서를 존중할 공적 책임이 있고, 방송에 의한 보도는 공정하고 객관적이어야 한다'(방송법 제5조 1항 및 제6조 1항)는 조항은 안중에도 없는 모습이다. 그러면서도 KBS는 '국민의 방송'임을 내세워 시청료를 기습인상 시키려 하다니 참으로 어이가 없는 일이 아닐 수 없다.
"<조중동> 왜곡보도 재앙수준"
이처럼 국정원 선거개입 사건에 대한 비판여론이 거세지고 있는데도 조중동의 왜곡보도는 재앙수준이라는 비판이 나올 정도로 심각하다. 민주언론시민연합은 지난달 20일 ''국기문란' 국정원 선거 개입…조중동, 왜곡 '재앙' 수준'이란 논평에서 보수신문들의 물타기와 사실 왜곡·축소보도에 대해 '재앙'이라며 날선 비판을 가했다.
조중동은 국기문란을 넘어 헌정파괴에 가까운 국정원 선거개입 사건의 본질은 외면한 채, 여야 정치권이 제기하는 의혹에만 초점을 모으면서 '진흙탕 싸움'을 벌이고 있다거나, '여야 정쟁', '공방'으로 몰아가면서 사건의 본질을 흐리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조선일보>는 지난달 20일 사설 '여야, 지금 대선 연장전 하나'에서 "여야가 마치 대선 연장전을 하듯 공방을 이어가고 있다"며 정쟁을 부각시켰다. 그러면서 야권의 문제제기에 대해 "대선 때의 앙금을 삭이지 못하고 있다가 결국 감정 풀이를 하는 모양새"라고 폄훼하는가 하면 대학가와 종교계, 시민사회에서 거세게 제기되고 있는 국정원 선거 개입에 대한 국정조사 요구에 대해서도 "별 관심사도 아닌 문제"라고 치부했다.
<조선일보>는 이밖에도 일반기사 등을 통해 국정원 선거개입 사건의 본질은 외면한 채 물타기 보도를 지속적으로 내놓는가 하면 민주당 홍익표 원내대변인의 '귀태' 발언을 집중 보도해 이목을 딴 곳으로 집중시키느라 연일 주력하는 모양새다.
<동아일보>도 초기부터 국정원의 선거개입보다 국정원 직원과 민주당에 대한 의혹이나 제대로 수사하라는 주장을 내놓는가 하면, "6월 임시국회의 모든 현안이 국정원 국정조사 문제로 빨려 들어간 모양새"라며 국정원 사건에 이목이 집중되는 것에 대한 불편한 심기를 드러내기도 했다. 그러다 '귀태' 발언이 나오자마자 사설과 일반기사에서 이 문제를 집중 조명했다.
<중앙일보>도 마찬가지다. 국정원 사건을 두고 "여야 상임위원장들 간의 갈등이 확전 양상"이라거나 국정원 사건 수사를 담당한 주임검사의 학생운동 경력을 두고 설전이 벌어졌다고 부각하며 국정원 사건 본질 가리기에 나섰다. 급기야 13일 '야당 원내대변인 사퇴 부른 막말'이란 사설을 내놓기도 했다.
4대강 비판 보도 외면한 공영방송과 조중동
조중동과 공영방송사들의 물타기 또는 사실 은폐·축소는 현 정권뿐만 아니라 지난 정권시절부터 진행됐으니 그리 새삼스러울 것도 없다. 국민들이 반대했던 4대강 사업에 대해서도 조중동과 양대 공영방송사들은 거센 비판과 저항의 목소리 대신 집권세력의 겁박과 거짓을 더 크게, 더 많이 보도했다. 후안무치의 궤변은 MB정권이 끝날 때까지 이어졌다.
22조 원의 혈세가 투입된 4대강 사업은 추진과정부터 타당성은 물론 위법·편법성을 놓고 논란이 컸다. MB정부가 대운하를 전제로 강행한 4대강 사업의 부작용은 초기부터 속속 드러났다. 강바닥에서 긁어낸 오니토로 인한 수질오염, 막대한 침수피해, 수리모형 실험의 졸속·부실, 세계 유일의 희귀식물 쑥부쟁이 군락지 파괴, 유기농 단지 강제 폐쇄, 수많은 민원 등 셀 수 없는 문제점들이 도출됐다.
그런데도 조중동과 공영방송의 메인뉴스는 4대강 사업의 부작용과 문제점은 거의 보도하지 않았다. 부작용과 문제점, 거센 민원이 불거질 때면 짧은 스트레이트 기사를 내보내는 대신 정부의 해명성 보도 또는 4대강 사업의 홍보성 기사들이 주를 이뤘다. 그러더니 정권이 바뀌고, 지난 10일 감사원이 "지난 정권에서 추진된 4대강 사업은 대운하의 전 단계였다"고 발표하면서 MB정부가 국민을 상대로 거짓말을 했던 것이 드러났다. 이명박 전 대통령은 물론이고 당시 이를 방조하거나 부추긴 세력에 대해서도 책임 추궁해야 하다는 목소리가 비등하다.
그런데 조중동과 공영방송사들의 4대강 찬가(홍보성 기사)는 다 어디로 가고 궁색한 변명만 늘어놓고 있다. 그동안 4대강 사업의 부작용과 문제점이 제기될 때마다 조중동과 공영방송사들의 보도행태는 '정권 눈치보기', '정권 편들기'로 일색, 언론의 역할을 포기한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게 할 정도였다.
조중동과 공영방송사들이 비판과 감시의 기능을 포기했지만 대다수 국민들은 4대강 사업이 '강을 죽이는 일'이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환경파괴를 비롯한 온갖 부작용이 시작부터 제기됐고, 공사가 시작되자마자 우려가 현실로 드러났기 때문이다. 그런데 조중동은 자신들이 지지하는 정권에 불리하니까 모른 척 하고, 방송사들은 정권의 눈치를 살피며 침묵했다. 정권이 바뀐 지금도 민주주의 근간이 뿌리 채 흔들릴 만한 사건 앞에서 똑같은 입장을 취하고 있다. 이제는 언론에도 공범의 책임을 엄중히 물어야 할 차례다.
특 A급 공범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