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도 없고 여자친구도 없으므로 음슴체로 갈게요. 스타트!
본인은 2000년대 중반 평범한 육군의 말단 중대에서 계원 일을 했음.
독립중대...... 군대 가기 전에 읽었던 이영도의 피마새에 나온 독립중대는 멋있었지만 현실은...ㅋㅋㅋㅋ
대대급 부지를 관리하다보니 작업은 쌓여있고, 대대급의 근무수요(위병소, 탄약고, 동초 등)을 감당하다보니 병사들은 항상 피로에 쩔어 있었음.
본인은 짬이 미천한 시절에 계원이 되어 작업에 차출된 적은 별로 없지만 인원이 부족하다보니 야근이랑 야간근무가 없는 날이 없었음.
그렇게 어리버리하며 일병이 되고 난 얼마 후. 사단에서 '대적관 퀴즈대회'를 열테니 대대 별로 2명씩 뽑아서 보내라는 공문이 내려옴.
군대 다녀오신 분들은 알겠지만 대적관이란 즉 북한에 대한 것임. 우리의 주적에 대하여 잘 알고 있는가, 북한에 대해 어떤 자세를 보여야 하는가.
이런 사단급 대회는 병사 입장에서는 포상휴가증을 따낼 기회가 되고, 간부 입장에서는 '우리 부대에서는 정신교육도 잘 시키고 있습니다'를 어필할 수 있기 때문에 중요함.
......물론 평소에 정신교육이 수요일마다 잡혀 있지만 보통은 작업이 많아 제대로 하는 경우는 거의 없음... 최소한 본인이 있던 곳은 그랬음.
쨌든 다른 대대에서는 고학력자를 뽑아 보내는 식이었던 것 같은데, 우리 대대는 대대장님께서 이벤트를 좋아하심.
'대회 출전할 두 명을 뽑기 위해 우리도 퀴즈대회를 열자!!'라는 식이 됨. 그리고 동기부여를 위해 대대장님도 휴가증을 걸었음.
그리고 본인은 계원...... 정확히는 통신병 겸 정훈병 겸 작전병이었음. 말단중대라 한 명이 참 여러 가지 일을 해야했지만 어쨌든 정훈병이었음.
ㅋㅋㅋ정훈병ㅋㅋㅋㅋ 평소에 하는 일이라곤 국방일보 정리와 병영도서 관리 정도지만 어쨌든 정훈병ㅋㅋㅋㅋㅋ
대대의 대회에서 어쩌다보니 일등을 함. 포상휴가증 한 장 겟!!
그리고 며칠 뒤 연대에서 배차 나온 차를 타고 사단으로 갔음.
같은 차에 타고 있던 다른 아저씨들은 다들 학력이 짱짱맨이었음. 우습게도 병사들은 가만히 있는데 인솔 간부들끼리 묘한 신경전이 벌어짐.
'어이쿠, 김 중사님. 얘가 저희 대대 대표인데 글쎄 얘가 연세대랍니다.'
'어 그래? 우연이네. 우리 애는 고려대여ㅋㅋㅋ'
'야야야야, X밥들은 조용히 있어. 우리는 서울대임ㅋㅋㅋㅋ'
......대체 왜 이러는 걸까요.
정작 우리 병사들은 서로 멋쩍은 미소로 왠지 서로를 안타까운 눈빛으로 마주봐 주었음.
그렇게 사단에 도착했는데, 전 사단에서 각 대대 별로 2명씩 모이니 생각보다 은근히 숫자가 되었음.
그제서야 괜히 대회 나가게 된 걸 후회했음.
가뜩이나 할 일이 많아서 사수한테 일 안하고 놀러 간다고 갈굼 먹으며 나왔는데, 이렇게 많은 사람들 중에서 3등 안에 들기는 힘들어 보였음.
하지만 이미 대회는 시작되었고... 들어갈 때도 마음대로는 아니었지만 나갈 때도 마음대로는 아닌 것이 군대잖슴? ㅋㅋㅋㅋ
참고로 대적관 퀴즈대회였는데도 불구하고 문제는 생각보다 대적관에 관계된 게 적었던 걸로 기억됨.
도수체조 8번 이름이 뭔질 어떻게 알아ㅋㅋㅋㅋㅋㅋ 피티 8번도 이름은 잘 모르겠구만ㅋㅋㅋㅋㅋ
그런데ㅋㅋㅋ 그런뎈ㅋㅋㅋㅋㅋㅋㅋㅋㅋ 골든벨 형식으로 진행되던 퀴즈대회에서 본인이 정신을 차려보니 본인만 남았던 것임.
일등ㅋㅋㅋㅋㅋㅋㅋㅋㅋ 사단대회에섴ㅋㅋㅋㅋㅋㅋㅋ 내가?ㅋㅋㅋㅋㅋㅋㅋ
사단장님 이름이 박힌 표창장을 들고 자대로 금의환향했음.
내 2년의 군 생활 중에서 행보관이 그렇게 기분 좋게 웃는 것을 본 적이 없음ㅋㅋㅋㅋㅋㅋ
'이야~ 난 네가 언젠가 한 건 할 줄 알았다!!'
.......정말? 그런데 나한테 왜 그랬어요. 말해봐요......
뭐쨌든 대대장님의 포상휴가증에 이어 사단장님으로부터도 포상휴가증을 받았음.
사단에서 받은 포상휴가증이 들어있는 봉투는 흰 봉투 안에 파란 속지가 붙어있었던 것이 묘하게 기억에 선명히 남아있음.
그렇게 중대로 돌아와서 여느 때처럼 야근을 마치고 내무실로 자러 갔음.
마지막 세 번째 포상휴가증에 관한 전말은 이렇습니다.
본인은 환복할 틈도 없이 돌아온 그 차림대로 행정반에서 일을 해야만 했음. 표창장과 포상휴가증을 관물대에 두러 갈 틈도 없이.
그리고 야근을 마치고 지친 나머지 그 귀한 표창장님을 행정반에 두고 내무실로 돌아갔던 거임.
그런데 마침 그 날 따라 괴상하게도 운수가 좋았던 날이었는지, 밤새 연대장님이 부대를 기습방문하셨던 것임.
그리고 책상 위에 놓여 있던 표창장을 발견하심.
'왜 이런 일이 있었는데 나한테 보고하질 않았나'
...이런 식으로 본인은 한 번의 대적관 퀴즈대회를 통해 3장의 포상휴가증을 얻을 수 있었음.
아직 어린 일병이었던 본인은 '군 생활은 타이밍'이라는 교훈을 얻을 좋은 기회가 되었음.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