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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게시물ID : humorbest_711238
    작성자 : 미스키튼
    추천 : 15
    조회수 : 1371
    IP : 115.140.***.16
    댓글 : 9개
    베스트 등록시간 : 2013/07/12 01:40:19
    원글작성시간 : 2013/07/11 21:43:44
    http://todayhumor.com/?humorbest_711238 모바일
    친절한 제령 사무소 16
    "네?"
     
    예상치 못한 말에 나는 당황했다.
    나를 쳐다보는 노인의 입은 미소를 짓고 있었지만 눈빛이 진지했다.
    나는 노인이 나를 시험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눈을 피하면 안 된다고, 내 본능이 말하고 있었다.
     
    그렇게 몇 분인가 서로를 마주보고 있었다. 호우도, 은호도, 노인의 아들도, 누구도 우리를 말리지 않았다.
    노인의 눈빛은 갈수록 더 생기를 띠며 빛나고 있었다.
    허벅지부터 소름이 돋기 시작해 등줄기를 타고 목까지 올라왔다. 나는 어떻게 해야 좋을지 알 수가 없었다.
    노인이 나를 보며 씨익 웃었다. 젠장, 모 아니면 도야.
     
    나는 노인과 마주친 눈을 떼지 않은 채 왼팔을 들어 올려 다람쥐 가죽을 벗겼다.
    그러자 감각이 사라진 팔은 툭 하고 떨구어졌다. 나는 오른팔로 왼팔을 들어 올려 노인의 눈 앞에 갔다 댔다.
     
    “이젠 감각도 다 사라졌습니다. 그냥 죽은 팔이에요. 어르신이라면 고칠 수 있다기에 온 것뿐입니다.”
     
    내 왼팔을 가운데 두고 또 노인과 나는 눈싸움을 시작했다. 영안으로 본 내 왼팔은 이미 끔찍한 상황을 넘어서 고름조차 보이지 않았다. 그냥 말라 썩은 나무 밑동처럼, 건조하고 푸석한 곪은 뼈대만 남아 있는 앙상한 가지였다.
     
    “고치실 수 없다면 저도 더 볼일 없습니다. 그럼 그만 가겠습니다.”
     
    나는 눈을 거두고 고개를 깊이 숙여 인사 했다. 그러자 노인은 한쪽 눈썹을 올리며 말했다.
     
    "제법 쓸만한 애완동물을 데리고 다니는 구만. 쓸모가 있겠어."
     
    아직도 털이 곤두선 채 인 호우를 보며 한 말이었다.
     
    "술이나 한잔 하고 가시오. 지금 나가 봐야 좋을 것 없지 않겠소?"
     
    노인은 아들의 등짝을 한 대 때리며 부엌으로 밀어 넣었다. 아들은 투덜거리며 들어갔다.
    다리가 후들거렸다. 떨리는 손으로 다람쥐 가죽을 다시 팔에 감고 노인을 따라 평상으로 올라갔다.
     
    *
     
    우리는 동그란 나무상을 가운데 두고 모여 앉았다.
    호우는 마당 가운데에서 우리를 지켜보며 앉아 있었다. 눈빛이 한결 더 붉어진 것을 보니 아직도 경계를 풀지 않는 모양이었다.
    막걸리와 함께 내온 큼직하게 썬 김치와 석박지가 제법 군침 돌게 보였다. 하지만 먹고 싶은 생각이 들진 않았다.
    노인은 아들의 잔을 가득 채웠다. 아들은 볼멘 얼굴이었지만 시원하게 잔을 비웠다.
     
    "마셔라."
     
    노인은 아들의 잔을 다시 채웠다.
     
    한 잔, 두 잔, 세 잔...
     
    "끄윽- 이쯤 되면 공평하겠지."
     
    노인은 자리에서 갑자기 일어나 광에 가 나무 몽둥이를 두 개 꺼내어 하나는 내 앞에 던졌다.
     
    "팔을 고쳐주겠소."
     
    나는 그 말에 눈이 번쩍 뜨였다.
     
    "단, 조건이 있어."
     
    노인은 다른 나무 몽둥이를 은호 앞에 던졌다.
     
    "이때 온 걸 보면 승계 중이라는 건 알고 왔을 테고.. 아가씨랑 저 쭉정이가 나와 내 아들을 이기면 팔을 고쳐 주겠소."
     
    아무리 노인이 술에 취한 상황이었다지만 나는 엄두가 나질 않았다. 수령술을 쓰는 모피상을 이길 자신은 눈곱만큼도 없었다.
      
    "자신 없으면 조용히 방에 들어가 자고 내일 새벽 기척 없이 떠나시오. 새벽이 되면 암령들도 움직이진 못할 테니."
     
    내 마음을 읽은 듯한 말이었다. 순간 나는 얼굴이 화끈거리며 속이 울컥했다.
    저 노인은 모피상이고, 아까 아들과의 싸움으로 영능력이 대단하다는 것도 알았다.
    하지만 그래서 뭐?
     
    "저도 조건이 있습니다."
     
    내 말에 노인은 뭐냐고 되묻듯 한쪽 눈썹을 찡그리며 올렸다.
    나는 그 앞에서 다시 왼팔의 다람쥐 가죽을 풀었다.
     
    "어르신도 한쪽 팔로만 싸우십시오."
     
    "하하하하하---"
     
    갑자기 노인은 웃음을 터트렸다.
    그 웃음은 짐승의 울부짖음처럼 몸 속 깊이 나와 온 산을 쩌렁쩌렁 울렸다. 저 멀리서 산새들이 후다닥 날아가는 소리가 들렸다.
     
    "아가씨 참 맘에 드는 구만. 내 아들보다도 배짱이 있어. 그래, 내 그러지."
     
    옆에서 아무 말 없던 은호는 상황이 진행될수록 얼굴이 파랗게 질려가고 있었다. 입을 꾹 다물고 있는 모습이 결연해 보였지만, 강한 상대 앞에서 자신도 모르게 식은땀이 나는 건 어쩔 수 없는 모양이었다. 은호나 나나 뱀 앞의 쥐 같은 느낌을 받고 있었다.
     
    "너도 준비해라!"
     
    노인은 아들에게 소리쳤다.
     
    "그래, 아가씨는 지면 어떻게 할 텐가?"
     
    "어르신 원하는 대로 하십시오."
     
    "그럼, 내 며느리 하지. 저놈 자식이 서른이 되도록 여자 한번 못 만나 봤으니 말이야."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노인은 온 몸의 기를 돋구었다.
    안 그래도 노인의 비아냥에 독기가 올라있던 나는 며느리 소리에 속이 뒤집혔다. 아들은 또 그 말에 신이 나서 영기를 키웠다. 저 찌질한 놈과 결혼해서 살라고? 정말 죽기보다 싫었다. 나는 나무 몽둥이를 손에 들고 영기를 모았다. 그러자 몽둥이에 영기가 실려 부풀어 올랐다. 나는 깜짝 놀랐다.
     
    "좋은 나무지? 여기 산의 수호목일세."
     
    노인은 기척도 없이 다가와 팔로 내 왼쪽 어깨를 내리쳤다.
     
    퍽--!
     
    "아악!!"
     
    - 안나!!
     
    나도 모르게 뒤로 물러서며 단말마의 비명이 터졌다. 순간 어깨가 부서진 줄 알고 만져보았다. 다행히 그대로 있었다. 노인은 내 영을 치고 있는 것이다. 호우가 달려들어 내 앞을 가로 막았다.
     
    "내가 아무리 술에 취했어도 고양이 가죽 벗길 기운은 있지."
     
    "호우, 물러서.."
     
    - 이건 네가 감당할 수 있는 싸움이 아니다.
     
    "괜찮아. 내가 할거야."
     
    갑자기 등에 둔탁한 느낌이 느껴졌다. 은호가 아들과 싸우다 밀려 내 등에 등을 맞댄 것이다. 아들은 인정사정 봐주지 않고 은호를 몰아대고 있었다. 노인은 현란하게 움직이는 아들을 보고 외쳤다.
     
    "이 놈아, 적당히 해라. 새끼여도 호랑이는 호랑이다. 이기기만 하면 그만이지 적을 만들 필요는 없지 않냐."
     
    나는 노인이 아들을 보는 틈을 타 온 몸에서 영기를 끌어 모아 몽둥이에 실어 노인의 옆구리를 가격했다. 하지만 노인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나는 기세를 몰아 머리로 노인의 턱을 쳐 올렸다.
     
    "아이고, 아가씨가 과격하네."
     
    퍽-!!
     
    노인은 한 손으로 턱을 만지작거리며 다른 손으로 아무렇지 않게 내 등을 내리쳤다. 나는 무릎을 꿇고 바닥에 쓰러졌다. 입에서 각혈이 나올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노인은 멈추지 않고 손바닥으로 내 옆구리를 올려 쳤다. 몸 안이 온통 울렸다. 텅 빈 느낌. 몸 안에 모든 것이 빠져나가는 듯한 고통이 느껴졌다.
     
    그래도 노인은 많이 봐주고 있었다. 나를 죽일 생각도 없어 보였고 치사한 공격도 하지 않고 수령술도 쓰지 않았다. 마치 내가 이겨주기를 바라고 있는 것 같았다. 그런데도 너무 버거운 상대였다.
     
    풀썩-
     
    풀린 다리를 부여잡고 일어나는데 바로 옆에 뭔가 쓰러졌다. 은호였다.
     
    "야호! 이겼다!!"
     
    "모자란 놈! 쭉정이를 이긴 게 자랑이냐? 얼른 방에 끌고 들어가 뉘여!"
     
    *
     
    이래라, 저래라 정말 짜증난다. 내가 이겼는데도 잘했다 한마디 할 줄 모른다. 빨리 독립해야 하는데. 내가 천만원만 모으면 당장 서울로 갈 거다. 그리고 이런 시골 따위는 뒤도 돌아보지 말아야지.
     
    저 여자는 제법 곱상하게 생겼다. 키도 적당하고 몸도 날렵하다. 쌍꺼풀 없는 눈이지만 큼지막해서 서늘해 보이는 게 꽤 분위기 있어 보인다. 내 페라리에 태우면 제법 어울릴 것 같다.
     
    근데 아버지는 며느리 삼고 싶다면서 왜 저렇게 싸우는 거지? 그리고, 며느리면 내 부인인데, 부인에게 손을 대려면 하늘같은 지아비의 허락을 받아야지!! 생각해보니 화가 나네. 하다하다못해 이젠 내 부인에게까지 손을 대?!
     
    *
     
    갑자기 짐승의 울부짖는 소리가 들리는가 싶더니 상반신이 곰으로 변한 아들이 노인에게 달려들었다.
     
    "내 부인 건드리지 마요!!"
     
    엉뚱하게 달려드는 아들의 모습에 노인은 기가 찬 표정을 지었다.
     
    "지랄하고 있네. 저리 가, 임마!"
     
    노인은 순간 기를 돋궈 아들을 패대기 쳤다. 그러자 아들은 마당 구석으로 흙먼지를 일으키며 데굴데굴 나뒹굴었다. 그 모습을 보고 나는 확실히 알았다. 노인은 나를 일부러 봐주며 상대하고 있었다. 하지만 왜?
     
    "어린 놈이 생각이 짧아서 꼭 초를 치지."
     
    그리고 노인은 다시 팔을 들어 내 다리를 걸어 넘어뜨렸다. 안 그래도 힘이 거의 빠져가던 나는 속수무책으로 당할 뿐이었다. 얼굴이 바닥에 쓸려 입에서 흙 맛이 났다. 젠장! 어떻게 해야 하는 거지?!
     
    "일어나!!"
     
    노인이 소리쳤다. 하지만 나는 일어날 힘이 없었다. 노인은 바닥에 뒹구는 내 허벅지를 내리 쳤다. 내 몸 속의 무언가 쨍-하며 깨지고 있었다. 정신이 아득해졌다.
     
    *
     
    저 빌어먹을 노인네! 툭하면 나를 패대기 친다. 내가 정말 성격이 좋으니까 참고 살지. ..뭐, 좀 능력이 세긴 하지만 내가 맘만 먹으면 못 이길 정도는 아니다. ..그냥 봐주는 거다. 내가 좀 착하니까!
    그런데.. 저 여자는 대체 뭐지? 상대도 안 되는데 왜 자꾸 덤비는 거야?
    아버지에게 흠씬 두들겨 맞고 정신을 잃은 건가? 근데 몸에서 나오는 저건 또 뭐야?
     
    *
     
    드디어 아이에게서 호령이 나오고 있었다.
    아직 대단한 모습을 하고 있지는 않지만 그래도 주인이 죽지 않게 보호할만한 능력은 충분히 갖춘 것 같았다.
     
    이 아이가 문을 들어설 때, 나는 알 수 있었다.
    나처럼 이 아이도 몸 안에 혼을 하나 담고 있다는 것을.
     
    아마도 이 호령은 몸 안의 혼이 부리던 녀석인 것 같다.
    그러니 깨우는 법을 몰라 이 지경이 되야 강제로 나오는 거겠지.
     
    나는 오래 전부터 모피상이었다.
     
    내가 원해서 된 것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열심히 나의 삶을 살았다.
     
    사람이나 혼들은 모피상의 대단한 힘을 겁낸다.
    인간으로서는 불가능한 영능력을 갖추었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모피상이 어떻게 그 힘을 갖게 되는지 아는 이들은 없다.
     
    *
     
    눈을 떠 보니 방 안이었다.
    ‘어떻게 된 거지?’
    간신히 고개를 들어 보니 노인과 호우가 곁에 앉아 있었다.
    노인은 내 왼편에 앉아 내 팔을 끌 같은 걸로 긁어 내고 있었다.
     
    -일어 났나?
    “이게 무슨..”
    “기억이 안 나시오? 그럴 만도 하지만.”
     
    무명수건으로 손을 닦던 노인이 말했다.
     
    “일단 생기를 빨아먹던 마물을 다 긁어냈소. 거 참. 지독한 놈에게 걸렸더군. 나도 처음 보는 놈이었소.”
    “어떤 사람이 만들어낸 마물이었어요. 다 죽고 저만 살아 남았죠.”
    “이대로 하루 두어야 하오. 내일 마무리를 할 테니 느긋하게 쉬시오.”
    “감사합니다.. 어르신.”
     
    두 평 남짓한 방은 반듯하게 풀 바른 한지로 벽을 메우고 있었다. 창 하나와 문 하나뿐인 정갈한 한식 방이었다.
     
    "이 집은 안주인이 없어 집 꼬락서니가 변변찮소.”
     
    담배를 꺼내 물던 노인이 말했다.
     
    “그래, 아가씬 몇 명을 잡아 먹었소?”
    “네? 그게 무슨..”
    “제령 하는 사람은 팔자가 드세고, 한 몸에 혼이 두 개인 사람도 팔자가 드센데, 아가씬 둘 다 잖소.”
    “..........”
     
    노인은 말없이 담배를 두어 모금 태우고 말을 이었다.
     
    “나는 한 명을 잡아 먹었소. 이 정도면 양호한 거지.”
     
    그렇게 노인은 이야기를 시작했다.
     
    *
     
    나는 모피상을 잘 알진 못한다. 모피장인이라는 사람들에 대해 알고 있는 거라고는 영능력이 세다는 것, 영물들을 이용해 가죽을 만든다는 것, 그리고 무성한 소문들뿐이었다.
     
    노인은 담담한 목소리로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모피상이라는 업에 대한 것이었다. 노인은 업이라는 표현을 썼다. 달아날 수 없는 운명이라고 했다.
     
    모피상은 모두 수령술을 쓸 수 있다고 한다. 그 이유는 간단했다. 영물과 혼인을 해서 그 영물을 흡수한다는 것이었다. 모피상이 가죽을 만들 때 조화를 위해 사람 한둘을 갈아 넣는 다는 소문은 이런 이야기를 어설프게 아는 사람들이 대충 껴 맞춘 이야기라고 했다. 영물과 혼인을 하니 당연히 영물을 잘 다루게 된다는 것이었다. 모피상은 사실 뛰어난 영매로 봐도 틀림이 없다고 했다.
     
    “아가씨도 영매지? 딱 보고 알았소. 영매가 아니고서는 혼을 여러 개 가질 순 없지.”
     
    모피상은 신과 혼과 인간을 조화시키는 사람이라고 한다. 또한 산신을 악령과 인간들로부터 보호하는 수호자라고도 한다. 일종의 중개자인 셈인데 그 역할을 하면서 산신의 가호를 받기 때문에 먹고 살 걱정은 없다고 한다. 대신 돈을 다루어서는 안 된다고 한다. 그렇기 때문에 가죽을 돈을 받고 팔지 않는 것이다.
     
    모피상의 세대교체는 산신이 정하는 시기에 이루어진다고 한다. 때가 되면 산에서 인간 모습을 한 영물을 내려 보내 짝을 맺어 준다고 한다. 그리고 후손을 보고 난 후에는 영물을 죽여 그 혼을 먹어야만 한다고 한다.
     
    “어떤 영물이 내려올지는 모르오. 그건 산신의 뜻이니. 내 경우는 곰이었소. 내 아들 녀석도 아직 영물과 짝을 맺기 전이니 어머니인 곰의 모습으로 수령술을 하지만 이제 곧 짝을 맺고 나면 어떤 영물의 모습을 하게 될지는 모르는 일이지.. 문제는 아직 그 녀석이 수령술을 완전히 익히지 못했다는 거요. 완전히 익혀야 산이 짝을 내려 보내 줄 텐데. 그래야 후대로 승계도 되고..”
     
    “그럼 저에게 며느리 하라고 하셨던 이야기는..”
     
    “..뭐, 그냥 한 소리요. 흘려 들으시오.”
     
    그렇게 모피상은 수도승 아닌 수도승으로 산다고 한다. 이 것 또한 일종의 신내림과 같은 거라 일반 여자를 만나 사는 삶은 불가능하다고 한다. 하지만 어차피 노인은 다른 여자를 만나고 싶다는 생각을 안 했다고 한다.
     
    “내 가장 큰 실수는 그 곰을 사랑하게 된 거지.”
     
    그리고 텅 빈 눈빛으로 아들이 태어나고 백일째 되는 밤, 아내인 곰을 죽여 혼을 먹던 이야기를 나지막한 목소리로 들려주었다.
     
    “아직도 기억나오. 내가 방에 들어서니 아내는 목침을 내려다 놓고 그 위에 옷깃을 열어 놓은 채로 누워 있었소. 추운 겨울이었는데.. 그 목이 얼마나 투명하게 보였는지.. 나는 문 밖에 세워둔 도끼를 쳐다보았소. 아내는 다 알고 있었소.”
     
    그래도 아내의 꿈을 자주 꾸어서 다행이라고 덧붙였다.
     
    “꿈에선 참 행복하오. 그래서 나는 이 나이에도 잠이 많소.”
     
    *
     
    나는 어머니의 이야기를 한번도 들어본 적이 없다. 그리고 모피상이 어떻게 되는지도 알지 못했다. 아버지는 그저 나에게 수령술을 익혀야 한다고 말했을 뿐이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이 벗어날 수 없는 굴레라고만 했었다.
     
    내 부인을 혹시 괴롭힐까 걱정되어 문 앞에 몰래 지키고 있었는데..
    나는 이 운명을 받아들이고 싶지 않다. 아니, 받아들일 수 없다. 난 서울로 가서 실컷 놀면서 한 평생 살 거다. 예쁜 색시를 페라리에 태우고 세상을 돌아다니며 자유롭게 살 거다. 아버지의 생각 따위 알게 뭐람. 근데.. 자꾸 눈 앞이 뿌옇다.
     
    *
     
    이야기를 마친 노인은 주름진 손으로 마른 얼굴을 쓸어 내렸다.
    “나는 아직 모피상이오. 아들 놈 물려주기 전에 좋은 일 한번 하는 건 나쁘지 않지. 승계가 이루어지면 내 힘은 사라지거든. ..팔은 잘 낫게 해주겠소. 다행히 아가씨에겐 백호도 있으니.”
     
    노인은 일어나 나가다 말고 문고리를 잡고 말했다.
     
    “참, 아가씨도 영을 보는 게 아니라 느끼지?”
    “네, 어르신.”
    “아직 모르는 것 같아 말해주는데.. 영매들이 그렇소. 그러니 밤을 무기로 삼는 영들을 무서워할 필요가 없소. 밤이나 낮이나 상관없이 똑같이 느끼니까. 그리고 영매의 큰 장점은..”
    “..........”
    “흡수한 혼의 능력도 다 자기 것으로 만든 다는 것이오.”
     
    그 말에 나는 나도 모르게 몸이 경직되었다.
     
    “어제 험하게 굴어서 미안하오. 하지만 덕분에 아가씨가 흡수한 혼이 부리던 호령이 잠에서 깼으니 너무 억울할건 없소.”
     
    노인은 벌컥 문을 열고 나갔다. 그러자 문 밖에서 이야기를 엿듣던 아들이 화들짝 놀랐다.
     
    “야 이놈아! 적당히 눈치껏 듣고 가야지, 이런 미련 곰탱이가!”
     
    그 말에 아들이 벌떡 일어나 눈가를 훔치며 소리를 질렀다.
     
    “소리는 왜 질러요, 지르길!”
     
    아들도 같이 냅다 소리를 지르고는 뛰어 가버렸다.
     
    “그런데, 어르신.”
    “뭐, 필요한 게 있소?”
    “아니요, 궁금한 게 있습니다.”
     
    내 말에 노인은 문을 다시 닫고 자리에 앉았다. 그리고 나를 내려다보며 온화한 미소를 지었다.
     
    “왜 저를 도와주시는 거죠?”
     
    “사람이 서로 돕는데 이유가 있소?..아가씨는 내 아내와 기운이 많이 닮았소. 그뿐이오.”
     
    “보답을 하고 싶은데.. 어떻게 해 드리면 좋을까요?”
     
    갑자기 노인은 숨을 내 쉬더니 허탈하게 껄껄 웃어댔다.
     
    “..아가씨가 이런 말을 하는 것도 다 운명이라면 믿겠소?”
    “그게 무슨..”
    “영물과 하나가 된다는 건 사실 반은 신이 된 거나 마찬가지지. 그래서 나는 만나는 사람의 앞날을 어렴풋이 알 수가 있소. ..아가씨는 앞으로 뭘 하고 싶소?”
    “..........”
     
    노인의 질문은 단순했지만 뜻은 그렇지 않았다. 나는 아직 아무에게도 말하지 못한, 내 작은 소망을 말했다.
     
    “그냥, 서른까지 이 일을 하면서 돈을 모으다가 그만두고 평범하게 살고 싶어요.”
     
    말을 하는 내 목소리가 떨렸다. 갑자기 울컥 눈물이 나올 것만 같아 인상을 찌푸려 참아냈다.
     
    “학교도 중간에 그만뒀거든요.. 공부도 마저 하고 싶고, 평범한 직장을 다니며 결혼도 하고 싶어요.”
    “..........”
     
    내 말에 노인은 한참을 조용히 있다 입을 열었다.
     
    “다 잘될 거요. 모든 일이 원하는 대로 다 이루어질 테니 모쪼록 이 일을 하는 동안은 한 순간도 빼놓지 말고 다 누리시오. 사람이 누릴 수 있는 것은 죄다 빼놓지 말고. 그리고 아까 말한 보답.. 내가 바라는 것은 있소. 하지만 그걸 들어주기엔 아직 아가씨의 때가 오지 않았지.. 그리고 훗날 때가 되면 내가 찾아갈 테니 그 때 잊지 말고 들어주시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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