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성아..."
혜진은 아주 작은 그리고 떨리는 목소리로 내 이름을 불렀다. 나는 대답을 하는 대신 물음끼를 담은 눈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런 나의 태도에 혜진은 주저하면서 다시 떨리는 목소리로 내게 이상한 질문을 던졌다.
"혹시...흡혈귀를...믿니?"
혜진의 질문은 황당하면서 한참을 주저하던 것이 이상할만큼 어이없는 내용을 담고있었다. 나는 그런 질문에 황당하다는 기색을 가득 담아서 그녀를 바라보았다.
혜진은 그런 나의 표정을 보면서 복잡한,그리고 슬픈 표정을 지으며 한숨을 내쉬었다.
그런 혜진의 심각한 태도와 표정을 보고 나는 무언가 사정이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어서 조금 진지하게 답변에 대답하였다.
"흡혈귀에 관한 전설이라면 믿지 않아 내가 알기로 흡혈귀는 일종의 병이래 피부가 약해지고 여러가지로 흡혈귀와 비슷한 특성을 지니지만 허황된 전설처럼 불로불사에 박쥐로 변하거나 하는 그런건 아니라더라 예전에 서프라이즈에서 봤어"
내 대답에 혜진은 또다시 짧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는 무언가를 결심했다는 듯이 정색을 했다.
"흡혈귀는 진짜 있어...지금 니 앞에 있는 나도 흡혈귀야"
혜진의 폭탄 선언에 나는 그저 멍청하게 그녀를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달리 무슨 말을 해야 할 지도 몰랐고 어떻게 반응을 해야 할 지 몰랐다.
그러다 나는 그녀의 정신이 이상해진 것인지 걱정이 되기시작했고 그 걱정을 그대로 드러내 그녀에게 표현했다.
"너 아프냐?"
화를 낼 것이라 예상했지만 오히려 그녀는 살짝 웃으면서 아무렇지 않게 대꾸했다.
"물론 니 반응 이해해 나도 아직까지 믿기 힘드니까 우리...자리 좀 옮길까?"
그녀는 내가 무어라 대답을 하기도 전에 먼저 일어났고 카페를 나섰다. 나는 그녀의 뒷모습을 조긍 더 바라보다가 일어서서 그녀의 뒤를 따랐다.
혜진은 어두운 분위기의 술집에 들어가 주문을 하고 안주가 나오기 전까지 침묵을 유지한 채로 내 얼굴을 빤히 들여다 보았다.
나는 이 상황이 매우 불편하게 느껴졌다. 혜진에게서 오랜만에 만나자고 연락이 왔을 때 반가움과 기쁜 마음이 들었다. 그래서 제대로 단장을 하고 나왔는데 그녀는 엉뚱한 질문을 하나 던져놓고는 계속 불편한 침묵을 유지하다니... 너무 싫었다.
불만감과 불편함이 커져서 내가 무언가 터트리려는 찰나에 혜진이 다시 입을 열었다.
"봐"
그녀는 짧게 보라는 말을 내뱉고는 입을 크게 벌렸다.
그 입 안을 들여다 본 나는 충격에 빠질 수 밖에 없었다.
보통 사람과 같은 이빨 외에 잇몸에서 마치 상어의 이빨과도 같은 날카로운 치아들이 돋아나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 모습은 영화 에일리언에 나오는 괴물이 입안에 또 다른 입이 있는 것과도 매우 흡사한 모습이었다.
내가 충격에 빠져 말을 잇지 못하자 혜진은 다시 입을 닫고는 조용히 말했다.
"이제는 믿어?"
그러나 나는 이번에도 혜진에게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나는 그녀에게 물어보았다.
"언제부터 그랬어?"
혜진은 그 질문에 미안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이내 곧 눈시울을 붉혔다. 혜진은 붉어진 눈으로 나를 보면서 울음기 섞인 목소리로 대답했다.
"너랑 헤어지고나서 한동안 미친듯이 놀았어"
머리가 띵했다. 나는 지난 6개월을 괴롭게 지냈었다. 혜진과 헤어진 사실로 인해서 밥도 제대로 먹지 못했고 잠도 편하게 잘 수 없었다. 그런데 그녀는 나와 헤어지고 미친듯이 놀았다고 말했다. 그녀가 말하는 '놀았다'라는 표현이 뜻하는 바를 이해한 나는 미친듯이 분노가 솟구쳤다. 그러나 앞에서 눈시울을 붉힌 채 말하는 혜진의 모습에 나는 차마 화를 내지 못했다. 나는 아직도 그녀를 좋아하고 있었다.
혜진은 말을 멈추고 내 눈치를 살피다 다시 말을 이어나갔다.
"그렇게 놀다가 한달 쯤 전에...어떤 사람을 만났어 키도 크고 잘생기고 매너도 좋았어 그 사람이랑 하루를 보냈지"
"......"
"아침에 일어나보니 그 남자는 없고 나 혼자 자고있더라 아무튼 샤워를 하는데 목이 따끔해서 보니까 물린 자국이 있더라고...그때는 별 생각이 없었는데...보름 전부터 너무 힘들더라...햇볓도 너무 따갑고 갈증이 너무 심해서 물을 계속 먹어도 소용이 없었고 어지러웠어 갈증을 참지 못해서 스스로 팔을 물어 뜯기도 했어 그러다 지난주에는 정신을 잃었는데...일어나 보니까 내가 고양이를 먹고있었어 흐흐흑흐으으으 근데... 더 최악이었던 건 그 고양이의 피가...살이 너무 맛있었다는 거야...흑흑"
그녀는 그렇게 말하며 결국 눈물을 흘리며 흐느끼기 시작했다. 나는 착잡한 심정으로 반년만에 만나는 옛 여자친구를 바라보았다.
그녀에게 무슨 말을 할 수 있을까?
나를 버리고 함부로 몸을 굴린 대가라고 비웃을까? 아니면 내게 왜 이런 이야기를 하는 것이냐며 무시할까? 그것도 아니면 그녀를 따스하게 감싸줄 것인가?
이성은 이미 예전에 나를 버린 여자의 불행을 비웃고 떠나라고 말을 했으나 내 감정은 그렇게 매몰차지 못했다. 반년전에 내게 신물이 난다며 떠나간 그녀였지만 나는 그녀를 잊지 못해 괴로워했고 지금 내 앞에서 울고있는 혜진의 모습에 나는 또다시 흔들리고 있었다.
나는 결국 그녀의 옆으로 가서 그녀의 어깨를 감싸안았다. 떨리는 혜진의 몸을 꽈악 안으며 아무말 없이 그녀의 머리에 이마를 가져다 댔다.
한참을 흐느끼던 혜진이 울음을 멈추고 떨림이 멈추자 나는 그제서야 혜진을 풀어주었다. 그녀는 눈물로 엉망이 된 얼굴로 애써 웃으며 말했다.
"고마워... 너한테 염치도 없게 연락한 나를 만나고 이렇게 위로도 해 줘서...이제 가 볼게"
그러고는 자신의 가방과 물건을 챙겨서 일어났다. 그러나 나는 이대로 혜진을 보낼 수는 없다고 생각했다. 나는 나가려는 혜진의 손목을 낚아챘다.
혜진의 손목은 아주 차가웠다. 마치 얼음장처럼 그러나 나는 내색하지 않고 그녀를 다시 앉혀놓았다.
"너 갈 곳은 있어?"
"고시원..."
"그러다가 또 정신을 잃으면?"
"......"
혜진은 한숨을 푹 쉬고는 다시 눈시울을 붉혔다.
"나랑 같이가"
나는 그렇게 말하고 그녀가 대답하기도 전에 그녀의 손을 잡고 술집을 나섰다. 조수석에 앉은 그녀는 알 수 없다는 듯한 표정으로 나를 계속 보았지만 나는 말없이 오피스텔로 차를 몰았다.
오피스텔에 도착한 나는 혜진에게 방을 내주었다. 이전에 혜진과 동거할때 사두었던 물건은 아직도 그대로 있었기 때문에 갑자기 혜진을 데리고 왔음에도 불편할 것은 전혀 없었다.
혜진은 아직도 과거에 멈추어 있는 오피스텔의 방을 보고 조금 놀란 눈치였다.
"아직...그대로네?"
"응...정리 못했어...저 방도 너도"
혜진은 또다시 눈시울을 붉히며 내게 안겨들었다. 품안에 혜진을 안고서 나는 그녀의 체취를 느꼈다. 그녀의 몸은 냉기를 품은 듯 차가웠으나 이상하게도 내 가슴은 더운 기운으로 따듯했다.
미안하다며 울먹이는 그녀를 진정시키고 잠들때까지 옆을 지키던 나는 혜진이 완전히 잠이 들고 나서야 방의 문을 닫고 나와 내 방에서 잠을 청했다. 혜진이 다시 돌아왔다는 사실에 오피스텔이 가득 찬듯한 뿌듯함이 느껴졌다. 좋은 꿈을 꿀 수 있을 것 같았고 나는 잠에 빠져들었다.
잠이 든지 얼마나 지났을까? 나는 이상한 느낌에 살며시 눈을 떴다. 내 눈에 가장 먼저 들어온 것은 혜진의 얼굴이었다. 정상적인 상황이라면 자다깨어 사랑하는 사람의 얼굴을 본다는 것이 낭만적인 일이지만 혜진의 모습은 정상과 거리가 멀었다.
그녀는 피가 쏟아질듯 충혈된 눈으로 나를 보고있었다. 사랑하는 사람을 보는 눈빛이 아닌 뱀이 개구리를 보는듯한 그런 먹잇감을 보는 굶주린 눈빛이었다. 혜진의 입이 벌어졌고 잇몸에서 날카로운 송곳니들이 순식간에 돋아났다. 혜진의 입은 더운 숨결을 내뱉으며 내 목덜미로 다가왔다.
목덜미에 더운 숨결이 느껴지며 간지러운 느낌을 주었다. 그러나 나는 움직여 벗어날 생각이 없었다. 나는 혜진과 같이 있고 싶을 뿐이었다. 그러나 목덜미에서 느껴지던 더운 숨결은 점점 멀어지고 대신 흐느껴 우는 소리가 귀를 자극했다.
"흐으윽...으으으"
혜진은 어느새 정상적인 모습으로 돌아와 울고있었다.
"왜 가만있었어?!"
흐느끼던 혜진이 갑자기 발작하든 소리를 질렀다. 나는 슬픈 눈으로 혜진을 보며 말했다.
"그냥..."
나는 울고있는 혜진을 두고 부엌으로 가서 칼을 꺼냈다. 칼을 들고 다시 혜진의 앞에 온 나는 아무 말 없이 스스로의 팔뚝을 베었다.
피가 팔뚝을 타고 흘러내렸다. 나는 피가 흐르는 팔을 혜진의 앞에 내밀었다. 혜진은 눈물이 가득한 눈으로 나를 노려보았다.
"지난주에 피를 먹고 굶었지? 아까도 음식에 손도 안대던데..."
혜진은 정곡을 찔린듯 흠칫 놀라더니 이내 표정을 풀고는 혀를 내밀어 팔을 핥았다. 기묘한 느낌이 들었다. 알 수 없는 쾌락이 느껴지며 성욕이 일었으나 간신히 참았다. 나는 혜진의 식사를 방해하면 안된다는 생각으로 속으로 애국가를 부르면서 스스로의 욕망을 달랬다.
팔에서 피가 멎을 때쯤 혜진도 피를 핥는 것을 그만두고 일어섰다.
그리고는 내 볼에 입을 맞추고는 다시 방으로 들어갔다. 피를 흘려서인지 조금 어지러운 기분을 느끼면서 나도 다시 침대로 돌아가 쓰러지듯 누워서 잠에 빠져들었다.
아침이 되어 일어나자 맛있는 냄새가 코를 자극했다. 혜진은 나를 위한 아침식사를 준비하고 있었다. 나는 다시 6개월전의 행복했던 일상으로 돌아온듯한 느낌을 받았다.
혜진의 음식솜씨는 변함없이 훌륭했다. 예전과 달리 변한 것은 혜진은 자신이 차린 음식에 전혀 손을 대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나는 그 작은 차이가 주는 씁쓸함에 서글프게 아침을 들었다. 식사를 마치고 출근 준비를 마친 나는 혜진에게 외출은 삼가는 것이 좋겠다고 말하고 출근길에 올랐다.
나를 배웅하는 혜진을 보면서 나는 퇴근할 때에는 혜진이 함께 식사를 할 수 있도록 신선한 고기를 사야겠다고 생각했다.
회사에서의 일이 끝나고 굶고 있을 혜진을 생각하자 가슴이 아팠다. 나는 마트에서 신선한 소고기를 몇근 사서 오피스텔로 날듯이 차를 몰았다.
혜진은 다행히도 멀쩡한 모습으로 저녁을 준비하고 있었다. 나는 그런 그녀를 뒤에서 껴안고 사온 싱싱한 한우를 내밀었다.
"아침도 못먹고 배고팠지?"
"아니 괜찮았어"
"저녁은 같이 먹으려고 사왔어 같이 먹자"
예상대로 혜진은 핏기가 가득한 싱싱한 고기는 먹을 수 있는 모양이었다. 저녁을 먹는 동안은 아무 걱정없이 혜진과 즐거운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그날 이후 나는 혜진의 식사를 위해 항상 냉장고에 싱싱한 생육을 준비해 놓았고 혜진은 정상적인 사람처럼 잘 지내는듯 보였다.
그러나 생고기로 혜진의 갈증을 막는 것에는 한계가 있었다. 혜진과의 동거가 3개월을 넘어가면서 그녀는 급격하게 변화하기 시작했다.
생고기만으로 연명하던 혜진은 잘 버티는가 싶더니 3개월이 지나면서 마치 병에 걸린 사람처럼 말라가기 시작했다. 아름답고 생기있던 머리카락은 윤기가 사라졌고 빗자루처럼 푸석푸석하게 변해갔다. 또 호수처럼 맑고 깊던 검은색의 눈동자는 백내장 환자처럼 흐릿하고 안개가 낀 듯한 회색빛으로 죽어갔다. 매끈하고 잡티 하나 없던 피부도 메마르고 가뭄처럼 갈라져갔다.
그녀는 하루가 다르게 죽어가고 있었다. 그럼에도 그녀는 애써 미소지으며 걱정하지 말라는 말만을 앵무새처럼 되풀이했다.
결국 보다못한 나는 인간의 혈액팩을 구하기로 마음 먹었다. 혈액팩을 구하는 것은 생각보다 어려운 일이었다. 혈액은 장기로 분류되어 사고 파는 것이 불법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사실 돈이 있으면 못살것은 없었다. 결국 나는 돈을 많이 들이긴 했으나 어느정도의 혈액팩을 구할 수 있었다.
과연 사람의 피는 달랐다. 혜진에게 혈액팩의 피를 먹이자 혜진은 언제 그랬냐는 듯이 빠르게 건강한 모습을 되찾았다. 그러나 확실한 효과만큼 부작용도 있었다.
그것은 전보다 훨씬 자주 그리고 더 많은 양의 피를 필요로 하게 된 것이었다. 그러나 다른 방법이 없었기 때문에 결국 나는 비싼 돈을 계속해서 소비하며 혈액팩을 살 수밖에 없었다. 건강한 혜진을 보는 것만으로도 돈을 지불할 가치는 충분했다.
그러나 꼬리가 길면 잡힌다던가? 매달 꽤 많은 양의 피를 구입하던 나는 결국 경찰에 발각되고 말았다. 물론 현장에서 잡힌 것은 아니었지만 수사를 통해 나와 거래하던 브로커들이 잡히고 말았고 결국 나도 걸리고 만 것이었다.
초인종 소리를 듣고 문을 열었을 때 영장을 제시하는 경찰을 보고 나는 눈앞이 깜깜해지는 것을 느꼈다.
경찰들은 문을 박차고 들어와 강제적으로 집안 이곳저곳을 수색하기 시작했고 냉장고 안에 들어있던 혈액팩을 발견했다. 나는 깊은 절망감에 온 몸에 힘이 풀렸다. 경찰 하나가 내게 다가와 무슨 말을 지껄이며 수갑을 채웠다. 그러나 나는 이미 넋이 나가 무슨 말인지 알아듣지 못했다.
"어 여긴 왜 잠겼어?"
집안을 수색하던 경찰중 한명이 혜진의 방 문을 열려고 하고 있었다. 순간 불길한 생각이 들었고 나는 필사적으로 몸부림 치며 소리쳤다.
"그 방은 안돼!!"
그러나 경찰은 야릇하게 웃으며 비아냥거렸다.
"에이 여기다 뭘 숨겼길래 그렇게 소리를 치실까?"
그리고는 강제로 문을 열었다.
퍼억
문을 발로 걷어차 열었던 경찰은 갑자기 튀어나온 무언가에 맞고 뒤로 넘어가고 말았다.
그것은 혜진이었다.
혜진은 뒤로 넘어간 경찰을 목을 물고 그대로 일어섰다. 목이 꺾인 채로 들어올려진 경찰은 눈을 까 뒤집고 입으로는 침을 질질흘렸고 바지에는 오줌을 지리고 있었다.
혜진은 그 상태로 피를 쭉욱 빨고는 쓰레기를 버리듯 고개를 돌려 경찰의 시체를 던졌다. 그리고나서 나와 함께 멍청하게 그 장면을 보고있던 3명의 경찰을 쳐다보았다.
혜진의 모습은 저번에 나를 물려했을 때보다 더 사나웠다. 머리는 산발하여 하늘로 솟구쳐 저절로 움직이고 있었고 잇몸에서 튀어나온 수많은 송곳니들은 거의 손가락 크기로 자라서 돌출되었다.눈은 붉게 충혈되어 피눈물을 흘리고 있었는데 그 모습에서는 더이상 혜진의 모습 아니 사람의 모습을 찾아 볼 수 없었다.
"뭐,뭐야 저건?!"
"씨발 총,총으로 쏴!"
경찰들은 정신을 차리고 총을 꺼내들었는데 혜진이 더 빨랐다. 혜진은 그들이 총을 겨누기도 전에 이미 달려들어 경찰들을 공격했다.
총을 꺼내려던 경찰은 총을 꺼내기도 전에 혜진의 손에 의해 팔이 뽑혀져 나갔고 비명을 지르며 쓰러져 부들부들 떨다가 움직임을 멈추었다.
또 총을 꺼냈으나 조준에 실패한 경찰은 목을 물렸는데 얼마나 세게 물었는지 목이 잘려져 떨어져 나갔다. 목을 잃은 몸은 비틀거리며 몇걸음 걷다가 허공에다 총질을 하고는 쓰러졌다.
마지막으로 남은 중년의 경찰은 주저앉아 오줌을 지린채 벌벌떨다 목이 없는 경찰의 시체의 총질에 놀라 기절해버렸다.
혜진은 온 몸을 피로 물들인 흉측한 모습으로 천천히 내게 다가왔다.
흉측하고 소름끼치는 모습이었으나 나에게는 한 없이 여리고 상처받은 가녀린 여자로 보였다. 가까이 다가온 혜진의 얼굴은 울고있었다.
나는 혜진의 눈물을 닦아주려 했으나 뒤로 돌려 채워진 수갑 때문에 그럴 수 없었다.
어느새 나의 눈에서도 눈물이 흐르고 있었다.
혜진은 내가 항상 하던 것처럼 나를 꼬옥 안고 내 머리에 자신의 이마를 가져다 댔다.
타앙!
총소리가 들리고 매캐한 화약의 냄새가 코를 자극한다고 느낀 순간 오른쪽 가슴에서 통증이 느껴졌다.
나를 안고있던 혜진의 몸이 힘없이 스러져 내렸다. 혜진의 왼쪽 가슴이 뻥 뚫려 있었다.
혜진이 쓰러진 뒤로 제일 처음 내동댕이 쳐졌던 경찰이 총을 들고있는 모습이 보였다.
그 경찰은 이미 쓰러진 혜진에게 몇번 더 총을 쏘고는 총과 함께고개를 떨구었다.
나는 움직임을 멈추고 쓰러진 혜진에게로 엉금엉금 기어서 다가갔다. 혜진의 힘없는 눈이 그런 나를 안쓰럽게 바라보았다.
이를 악물고 기어서 혜진의 옆에 다가간 나는 마지막으로 온 힘을 다해 소리질렸다. 그러나 폐가 상해서인지 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그래서 대신 혜진이 볼 수 있게 몇번이고 입모양으로 말했다.
'사랑해!'
혜진의 눈에 눈물이 고였다.
나의 눈에도 눈물이 고였다.
혜진이 손을 뻗어 내 볼을 만졌다.
문득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함께 나란히 죽을 수 있어서 말이다.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나와 혜진은 동시에 눈을 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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