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 이거야! 바로 여기야!!”
의뢰가 들어오자 마자 바로 이거다 싶었다. 갑자기 외친 내 목소리에 호우, 은수, 은호, 천시와 망량은 모두 눈을 동그랗게 뜨고 나를 쳐다 보았다.
“천인동에서 폐가 제령건이 들어왔어.”
“천인동에서?”
“그래, 기억나지?”
천인(天寅)동은 서울에서 한 시간 가량 떨어진 곳에 위치한 마을이었다. 수도권이긴 하지만 들어서는 순간 고즈넉한 시골의 느낌을 풍기는 소박한 곳이었는데, 예전에 은수와 함께 간 곳이었다.
“그 왜, 약초 캔다고 거기 산에 갔다가 죽는 줄 알았잖아.”
“자자, 다들 짐 싸. 여긴 다 같이 가야 해. 살 집은 함께 구경해야지.”
“뭐? 폐가에서 살려고요? 누나 미쳤어요?”
“일단 짐부터 싸.”
우리는 지난 지박령 사건 이후로 우리는 벌써 한달 가량을 병원에서 보내고 있었다. 다들 몸이 회복되어 사실 일주일 전쯤부터는 퇴원을 해도 괜찮았지만 아직도 새 집을 찾지 못해 갈 곳이 없어 조금 더 버텨야 하나 고민하던 참이었다. 그리고 3인실은 의외로 아늑했다.
은수나 나나 주변정리를 새롭게 하는 일은 쉽지 않았다. 이런 서류, 저런 서류, 공과금, 전화 등 이전할 것도 많았고 정리할 것도 많았다.
“윽.. 이런 거 대신 해주는 귀신은 없나?”
“없을걸...”
요즘 은수와 내가 가장 많이 하는 대화였다.
휴대폰도 죄다 새로 개통해야 했고 사무실 전화도 착신전환으로 돌려야 했다. 은행 통장 재발급은 물론 지갑에 미처 넣지 않았던 카드들도 정리해야 했다. 한 달간 우리는 열심히 아팠고, 열심히 일했다. 게다가 망량이 여기저기 다니며 내기를 하거나 장난을 치는 바람에 그 것들을 수습하는 것도 머리가 아팠다.
-정말 폐가에서 살 작정인 거냐?
“너까지 못 믿고 왜이래. 나 여기 어딘지 알아. 그러니 모두들 짐 싸.”
나의 닦달에 은수와 은호는 얼마 되지 않는 짐을 꾸렸고 호우는 문가에 서 기다렸다. 천시는 뒤뚱거리며 그 뒤로 가 서 있었고 망량은 반은 벌거벗은 채로 따라 나섰다.
“잠깐! 망량! 너 이리와! 너 그러고 갈 거야?”
“왜?”
“내가 옷 사줬잖아. 그리고 모자도 써. 너는 도깨비라 사람들 눈에 보이니까 차림을 좀 신경 써야 한다고 누누이 말했잖아.”
“하지만 더운걸.”
“얼른 옷 꺼내!”
망량과 내가 눈을 부라리며 기 싸움을 시작하자 은수가 말리기 시작했다.
“넌 왜 성질을 부리고 그래. 그리고 망량, 안나 말이 틀린 건 없으니까 어서 옷 입어.”
은수의 말에 망량은 입을 한번 삐죽이고는 허리 춤에 찬 주머니에 손을 넣어 옷을 꺼내 입었다.
“자, 됐지?”
“그래. 그리고 은수야, 너 물류에 연락해서 내가 말하는 부적 좀 챙겨줘. 많이 필요할거야.”
“알았어.”
“나 부적 그릴 줄 아는데.”
“정말?”
“근데 안 그려줄 거야.”
망량의 도발에 나는 순간 머리 꼭대기까지 뜨거운 것이 올라갔다 내려왔다. 안 그래도 요즘 저 자식 사고친거 뒷수습하느라 골이 지끈거리는데.
“그리고 내 이름은 망량이 아냐. 무식하긴. 넌 호우한테 백호라고 안 부르면서 나는 왜 망량이라고 부르냐?”
“뭐?? 그럼 네 이름이 뭔데?”
“안 가르쳐 줄 건데?”
결국 나는 화가 폭발해 망량의 엉덩이라도 때려줄 심산으로 망량을 잡으려는데 은수가 황급히 말렸다.
“둘 다 왜이래, 애처럼. 망량, 너도 그러는 거 아냐.”
“누나, 짐 다 챙겼어요.”
“안나야, 진정하고 가자. 부적도 챙기도록 내가 연락해 놓을게. 응? 가자.”
은수는 씩씩대는 내 어깨를 만지며 망량에게 어서 가라고 눈짓을 했다. 망량은 못이기는 척 모자를 눌러쓰고 천시를 번쩍 들고는 호우와 함께 나갔다.
*
천인동은 백여 가구가 사는 마을이었는데 뒤에 산을 품고 있었다. 높진 않았지만 능선이 제법 수려하였고 산 봉우리는 깎아지른 돌로 이루어져 있었다. 하지만 돌이 불안해 보이거나 기괴해 보이진 않았다. 한쪽이 절벽에 가깝게 가파른데도 되려 포근한 인상을 주었다. 마을의 이름은 그 돌과 능선 때문에 붙여진 것이었다. 그 돌은 마치 호랑이의 머리 같았고, 능선은 마치 호랑이의 등줄기처럼 보였기 때문이었다. 산에서 내려오는 물은 마을을 감싸고 돌았는데 물줄기가 가파르지 않고 부드러웠고, 물은 맑고 풍부하였다. 딱 보기에도 자리를 잘 잡은 마을이었다. 입구에 마을 이장이 나와 있었다.
"여기까지 오시느라 수고 많으셨습니다. 길 찾기 어렵진 않으셨는지?"
"아뇨, 괜찮습니다."
나는 사람 좋은 웃음을 지으며 손사래를 쳤지만 실제로는 찾느라 고생을 했다. 나름 수도권인 지역이었지만 이상하게 이 동네는 네비게이션에도, 지도에도 나와 있지 않았다. 이렇게 온 것도 이장과 전화통화만 네댓 번을 한 끝에 간신히 찾은 것이다.
천인동은 영기가 솟는 지역의 한 가운데 이루어진 마을이었다. 그래서 이 곳에서는 좋은 일도 많았지만 그에 못지않게 궂은 일들도 많이 생겼다. 하지만 마을 사람들은 그게 이 마을에 고인 영기 탓인지 모르고 있었다. 내가 은수와 함께 왔을 때에는 이 마을의 뒷산에 자라는 약초를 캐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사흘에 걸쳐 찾던 약초는 한 뿌리도 캐지 못한 채 영기에 짓눌려 둘 다 녹초가 되어 돌아온 기억이 난다.
이번 제령건은 폐가에 붙은 귀신들을 쫓는 것이었다. 이장이 우리를 데려간 곳은 내가 기억하는 바로 그 집이었다.
“이 곳 때문에 동네 땅값이 형편없어 졌습니다. 아무도 오려고 하지 않으니 이사를 나가려 해도 나갈 수 없는 상황입니다. 그래서 마을 사람들이 십시일반으로 돈을 모아 제령을 하려 하니 부디 잘 해주시길 부탁 드립니다.”
눈 앞에 있는 그 집은 예전의 기억과는 다소 다른 모습을 하고 있었다. 예전에 은수와 내가 왔을 때, 우리는 이 집에서 이틀 밤을 머물렀다. 당시에도 이 집은 빈집이었고 마을 내에 마땅히 머물 숙소도 없었기 때문이다. 산 속 냇가에서 씻고 싸온 음식을 대충 해먹으며 약초를 찾던 모습이 떠올라 웃음이 났다.
하지만 내가 이 집을 기억하는 이유는 따로 있었다. 이 마을은 영기가 센 곳이고, 당시의 나는 정말 영능력이 형편없는 제령사였기 때문에 영기가 솟구치는 여기 산에만 올라가면 낮에도 길을 잃곤 했다. 내가 그 지경이었으니 은수는 말할 것도 없었다. 둘은 체력보다 영력이 딸려 매번 녹초가 되어 잠이 들었는데, 다음 날 아침이면 몸이 언제 그랬냐는 듯 가뿐했던 것이었다. 이 곳은 영기가 흘러 모이는 장소였다.
-바로 저기다.
호우가 바라본 곳에 그 집의 다락이 있었다. 내 생각도 같았다.
(저기서 주변의 영기를 잡아 끌어 당기는 자석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보통 이런 마을엔 무녀가 있어서 마을 전체의 조화를 이루어서 이렇게 잡령이 고이는 일은 없는데.
“이장님, 이 마을에는 무당이 없나요?”
“아, 원래 있었는데 몇 년 전에 돌아가셨습니다.”
“그렇군요.”
그렇다면 이 마을은 조화가 깨진 상황이다. 그 조화만 잘 맞춰주면 별 탈이 없을 것이다. 아니, 오히려 조화가 맞춰진 상태라면 이 곳은 영기의 샘이 될 수도 있는 장소이다. 이번 일의 사례금은 꽤 많았다. 그 액수를 보니 마을 사람들이 이 집 때문에 얼마나 고생을 하고 있는지 알 것 같았다.
“어때?”
“여기 그때 그 집 아냐?”
“응.”
“그 사이에 정말 폐가가 되어 버렸네.”
폐가라는 이름이 무색하지 않게 사방엔 잡초가 무성했고 건물도 음산하기 짝이 없었다. 낮인데도 불구하고 서늘한 기운이 쏟아져 나와 저 현관문 너머에 얼마나 잡령들이 많을지 상상도 되지 않았다.
“맘에 들어?”
“뭐? 난 싫어.”
“하지만 여기가 우리에겐 최선의 선택이 될 거야.”
손사래를 치는 은수를 뒤로 하고 이장에게 다시 말을 걸었다.
“이장님, 제령하기 전에 의논하고 싶은 것이 있는데요.”
혹 못하겠다고 손을 떼려는 게 아닐까 긴장하던 이장이 내 말을 듣자 금방 반색을 하며 내 손을 덥석 잡았다.
“아이고, 그러면 저희도 좋지요! 그렇게 합시다!”
우리는 계약 조건을 바꾸기로 했다. 그 집을 제령하는 조건으로 나에게 넘기기로.
목돈을 쓰지 않아도 되니 이장은 갑자기 싱글벙글해졌다.
“근데 정말 괜찮으시겠습니까? 저 집은 원래도 안 나가서 계속 빈집이었습니다.”
당연히 그럴 거라고 생각한다. 보통 사람들은 부대껴서 살 수가 없을 테니까.
“네. 저는 좋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계약서를 다시 썼고 나는 하루 안에 제령을 끝내고 마을에 평화를 주기로 약속했다.
*
나와 은호, 망량은 바닥에 앉아서 부적을 나누고 있었다. 호우는 옆으로 누워 하품을 했고 은수와 천시는 멀찍이 앉아 짐을 지키고 있었다.
“일단 넌 이걸 손에 감고, 망량, 너는 이걸 챙겨.”
“싫어.”
“너 오늘 왜 자꾸 그러는데?!”
“답답하단 말이야!”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망량은 모자와 웃옷을 벗어 던졌다.
“너 정말!”
“내가 네 말을 왜 들어?! 하고 싶은 대로 할 거야. 자꾸 이러면 나 가만 안 있어!”
망량은 허리춤에 찬 주머니를 뒤져 나무 방망이를 꺼냈다. 그 모습을 본 호우가 벌떡 일어나 내 뒤로 다가와 섰다.
-장난은 이제 그만해라.
“..쳇.”
망량은 다시 방망이를 넣고 자리에 앉았다.
“하지만 옷은 안 입을 거야.”
“마음대로 해. 지금은 사람도 없으니.”
호우가 폐가 주위를 살핀 결과 딱히 큰 영의 기운이 없었다. 모두 잡령들이었지만 그 수가 많았다. 영능력보다는 체력이 더 필요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집은 2층이었기 때문에 더더욱 그랬다.
“내가 예전에 이 집에 왔을 때 지하실과 다락도 있었어. 그러니 일단,”
나는 결계부적을 꺼내 은호와 망량에게 건넸다.
“들어가서 나와 호우가 시선을 끌 동안 둘이 동쪽과 서쪽으로 난 창에 이 부적을 붙여. 남쪽은 내가 맡을게. 그리고 북쪽으로 결계를 열어 놓을 테니 그 쪽으로 영들을 몰아서 모두 나가게 해야 해. 호우는 지하부터 다락까지 온 집안을 돌아서 영들을 몰아줘. 은호야, 너는 영방을 가지고 가. 나는 영총을 가지고 갈게. 망량, 너는 부적을 붙이고 북쪽으로 가서 나오는 잡령들을 다 때려잡아.”
다들 고개를 끄덕이고 흩어졌다. 은호와 망량이 가는 것을 본 호우가 나에게 말했다.
-안나.
“응?”
-서열정리를 해라.
붉은 눈으로 나를 쳐다보는 호우와 눈이 마주치는 순간, 나는 그 뜻을 읽었다.
“그래.”
호우와 난 현관으로 가 문을 열었다. 열자마자 소름 끼치는 음기가 쏟아져 나와 숨이 막힐 지경이었다. 나는 손에 든 부적을 발화시키고 영총을 손에 쥐었다. 호우는 으르렁 거리며 나를 따라 들어섰다.
안은 고요했다.
아무 것도 없는 것처럼 쥐 죽은 듯 했다. 내가 나의 숨소리를 느낄 정도였다.
밖에 부적을 붙인 은호와 망량이 안에도 붙이기 위해 따라 들어온 순간,
끼에에에에에엑!!!!!
“아아아악!!!”
피범벅이 된 쥐 한 마리가 천장에서 떨어져 은호의 머리가죽을 잡아 당겼다. 눈을 들어 보니 세상에, 저급 악령들이 마치 피부에 돋은 수포처럼 다닥다닥 붙어 핏물을 떨어뜨리고 있었다. 갑자기 스산한 기분이 들어 주위를 보니 사방의 벽 들도 꿈틀대고 있었다. 사람을 먹을 힘이 없는 악령들이 지하실에서부터 쥐들을 꾀어내 먹이로 쓴 것이다.
“우웁!”
일도 일이지만 그 모습에 비위가 확 틀렸다. 몇 년에 걸쳐 잡령들이 쌓이고 쌓여서 진액처럼 삭혀진 모습에 토악질이 날 지경이었다. 나는 발화 부적을 꺼내 불을 붙여 바닥에 놓았다. 그러자 멀쩡하게 보였던 바닥도 꿈틀거렸다. 젠장! 징그러워서 못해먹겠네!
호우는 옆에서 발을 터는 시늉을 했다. 어지간히 싫긴 싫은 모양이었다.
"호우, 잡령들을 모아줘.”
미간을 잔뜩 찌푸린 호우가 지하실로 내려갔다. 나는 그 사이 남쪽으로 난 창에 부적을 붙였다.
부적을 붙인지 채 일분도 지나지 않아 지하실 계단을 타고 악령 덩어리들이 뭉쳐서 1층으로 올라오기 시작했다. 백호의 기세에 놀라 화들짝 올라오는데 서로 뭉개져 수포들이 터지면서 끼이-하는 징그러운 소리가 들렸다. 은호는 호우를 뒤따라가며 영방을 휘두르고 있었다. ..근데 망량, 망량은 어디 있지?
“저 자식이!!”
망량은 한쪽 모퉁이에서 쫓는 듯 마는 듯 축구 하듯이 악령들을 발로 톡톡 차고 있었다.
이제 더는 참을 수 없다.
나는 은호에게서 영방을 빼앗고 대신 영총을 줬다.
“잡령들이 북쪽으로 나가기 시작하면 그 앞에서 쏴!”
그리고 영방에 발화부적을 붙여 바닥에 재빠르게 원을 그렸다. 그러자 불꽃이 일며 결계가 생겼고 미쳐 빠져나가지 못한 채 안에 갇힌 잡령들이 악에 받쳐 비명을 지르며 꿈틀거렸다. 나는 망량에게 달려들어 멱살을 잡아 들어 결계로 밀어 넣었다.
“너! 똑바로 들어!”
나는 잡령 위에 집어 던질 기세로 망량의 멱살을 쥐고 목에 영방을 겨눴다. 망량의 뒤에서 잡령들이 기괴한 소리를 내었다.
“네가 아무리 도깨비여도, 지켜야 할 규칙이 있어. 첫째, 내 말을 따른다.”
망량은 아직 얼굴에 장난기를 머금고 있었다. 나는 멱살을 잡은 손을 흔들어 망량의 발 끝에 잡령이 닿도록 만들고 영방에 기를 모아 키운 다음 망량의 한쪽 볼을 그었다. 그러자 망량의 얼굴에서 웃음기가 사라졌다. 나는 영기를 담아 영방을 망량의 미간으로 옮겨 눌렀다.
“둘째, 내가 하는 일에 적극 협조한다.”
망량이 내 손을 물며 빠져 나오려고 바둥거렸다. 나는 물린 손은 아랑곳하지 않고, 아픈 것도 참으며 영기를 돋궈 더욱 힘을 주었다.
“셋째, 내 허락 없이 단독행동 하지 않는다. 알아듣겠어?”
망량은 계속 버둥거리며 대답을 하지 않았다. 나는 망량을 잡령들 위로 흔들며 미간에 겨눈 영방에 영기를 실어 더욱 세게 눌렀다. 그러자 망량이 단말마의 짧은 비명을 질렀다. 그 소리에 멀리서 잡령을 쫓던 호우가 흘긋 돌아보더니 못 본 체하며 고개를 돌렸다.
“알아 듣겠냐고?!”
다그쳐 묻자 그제야 망량은 고개를 끄덕였다.
“대답 똑바로 해.”
“아, 알았어. 말 들을게.”
나는 대답을 들은 후에야 손아귀의 힘을 풀었다. 망량은 몇 번 캘룩거리다 나를 원망하는 눈으로 쳐다보았다.
“뭘 봐?”
“..쳇.”
“가서 제령이나 도와.”
그 말에 망량은 쪼르륵 일어나 입을 삐죽거리며 호우와 은호에 합류했다.
다행히 그 징그러운 잡령들을 북쪽으로 몰아 제령시킬 수 있었다. 마무리로 은호가 영총을 쏘았다. 탄환에서 쏟아진 기생령들은 잡령들을 깨끗이 다 먹어 치워 흔적조차 남기지 않았다.
*
“다 끝났어. 둘 다 들어와.”
멀찍이 기다리던 은수와 천시가 들어왔다.
(아, 이 곳은 영기가 잘 흐르는 곳이군요.)
“그렇지? 이제 우리 집이 될 곳이야.”
“말끔하네. 제령시킬 영들이 많았어?”
은수의 질문에 은호와 나는 서로 눈을 마주보며 신호를 주고 받았다. 사실대로 얘기하면 은수는 절대 여기에서 살지 않을 것이다.
“아니, 그냥 오래된 영 몇 마리 정도? 그치, 망량?”
“으, 으응”
망량이 멋쩍게 맞장구를 쳤다. 옆에서 보던 호우가 싱긋 웃음을 지었다.
“아, 그래도 꽤 넓어서 좋다. 우리 모두 다 같이 지낼 수 있겠어.”
“거봐. 마음에 들지?”
다음 날, 이장은 매우 기뻐했다. 영능력이 없는 사람이라도 뭔가 정화된 느낌은 알아차리는 것이었다.
하지만 우리가 그 곳에 살 거라고 하자 순식간에 얼굴이 굳었다. 그 집을 다른 사람에게 세를 놓거나 하라는 것이었다. 이제야 귀신 마을이라는 오명을 벗게 생겼는데 제령사가 이사를 온다니, 말도 안 된다며 펄쩍 뛰었다. 서로 의견차를 좁히지 못한 채 반나절을 실랑이를 하다, 결국 제령 사무소라는 표시를 내지 말고 일반 가정집처럼 살겠다는 조건으로 겨우 합의를 보았다.
“아니, 생각을 해보세요. 귀신이 맨날 들락거리는 집이 마을에 있다는 게 말이 됩니까?”
“그러면 이렇게 하죠. 몇 년 전 마을에 무당이 죽었다고 하셨죠?”
“네, 그렇습니다만.”
“그럼 무당을 대신 할 수호목을 마을 입구에 심어드리겠습니다.”
“서낭당 같은 나무 말씀이십니까?”
“네. 하지만 그것보다 훨씬 나을 거에요. 그리고 마을에 아들이 많이 날 거에요. 땅값이 오를 겁니다.”
“흠.. 요즘은 아들보단 딸이 낫다고 하던데..”
“그럼 딸이 많이 나는 나무로 바꿔드릴게요.”
“그게 정말입니까? 그럼 그럽시다!”
반색하며 악수 손을 내미는 이장을 보며 호우가 물었다.
-정말 그런 나무가 있나?
“그럴리가. 하지만 이 마을의 수호신은 되어 줄 거야.”
며칠 후, 마을에 커다란 수호목이 배달되었다. 나는 나무를 심고 마을 사람들과 함께 제를 올렸는데, 옆에 있던 이장은 마을 사람들에게 책망을 듣고 있었다. 평소 딸에게 흠뻑 빠져 딸 밖에 모르던 이장이 마을의 아들 씨를 말렸다며 할아버지들과 할머니들이 이장을 거의 잡아 먹을 듯 몰아 대는 모습에 터지려는 웃음을 꾹 참고 제를 마쳤다.
*
새 보금자리가 정해지자 나는 은수에게 부탁한 부적들 중에 따로 챙겨둔 몇몇 봉인 부적들을 꺼내 찢었다. 그러자 그 안에서 봉인된 영들이 나오기 시작했다.
“누나, 이게 뭐 하는 거에요?”
“조화를 맞추는 거야.”
영이 너무 깨끗하게 치워진 곳에는 금세 악령들이 들끓기 마련이다. 가뜩이나 이 곳은 영기가 넘쳐 귀신들이 좋아하는 데 괜히 골치 아픈 일들을 만들기 싫어 미리 적당한 영들을 봉인에서 풀어주어 집안에 자리잡게 했다.
(좋은 생각이십니다.)
께름한 표정으로 바라보는 은수에게 천시가 말했다.
(서신도 있군요. 그럼 앞으로 문서 쓰는 일은 서신에게 맡기면 되겠습니다.)
“서신도 부릴 수 있어?”
(그럼요. 얼마나 유용한 녀석인데요. 종종 길들여서 쓰시는 분들이 있습니다.)
천시의 말에 나는 호우를 보았다.
-왜 나를 보나? 길들이는건 네가 해라.
“꼭 같은 말을 해도 그렇게 하지?”
호우와 내가 실랑이를 하거나 말거나 은수와 은호는 집안으로 짐을 옮기고 있었다.
이렇게 우리는 처음으로 ‘우리’의 집을 가지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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