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세오서(五書)'라고도 한다. 또 유대교에서는 이를 율법·토라 ·펜타 튜크 등으로 부르기도 한다. 본래 모세가 쓴 것으로 여겨 왔기 때문에 '모세5경'이라고 불렀는데, 지금은 많은 자료를 바탕으로 몇 사람이 편집한 것임이 밝혀졌다. 그러나 그 주인공은 모세이며, 그 정신이 전체에 일관되어 있어 ‘모세 5경’이라는 호칭이 그 의미를 상실하는 것은 아니다. 거의 600년이라는 긴 역사의 흐름 속에서 단계적으로 이루어져, BC 400년경에야 결집이 완성된 것으로 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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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세 오경을 모세의 저작으로 믿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잠깐, 필자가 너무 말을 성급하게 한 것 같다.
사실은 이런 당연한 상식 조차 부정하며, 모세 오경을 모세 한 사람의 독자적 작품(물론 여호와의 영감을 받아)으로 곧이 곧대로 믿는 근본주의 기독교인은 셀 수도 없이 많다. 특히 한국 개신교의 대부분은 이런 미련한 기독교인 근본주의 형태라고 볼 수 있다. 성경 하나면 만사 O.K인 무지한 사람들 말이다.
아무래도 첫 번째 명제를 주장하려면 '세뇌되지 않은 정상인들 중에서' 라는 조건이 붙어야 성립될 듯 싶다.
모세 5경을 모세의 저작이라고 볼 수 없는 사실은 오경 자체의 문헌 비판에서 명백해지는데 아마도 BC 5~6세기경 바빌로니아 유치시대에 기록되고 경전화된 것으로 보여진다.
※ 모세5경이 모세 한 사람의 작품이 아니라는 것을 처음으로 지적한 것은 12세기 유다인 성경 주석가 아브라함 이븐 에즈라(Abraham Ibn Ezra)로, 그는 토라의 몇몇 구절은 모세 시대 이후의 것임을 지적하면서, 모세 오경의 저자가 모세 자신은 아닐 것이라 했다고 한다 (안성림, 조철수, <사람이 없었다 신도 없었다>)
그리고 이미 400여 년 전부터 홉즈가 <리바이어던>에서 여러 가지 이유를 들어 모세가 쓰지 않았다고 밝혀놓은 것을 비롯하여, 학자들의 견해(앞에서 언급)는 모세 오경은 모세에 의해 쓰여진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 나라의 많은 개신교도들은 아직도 모세가 썼다고 순진하게 믿고 있다.
목사들이 아직도 사기를 치고 있다는 증거이다. 1인 깨달음 체제의 교회에서는 목사들부터가 아예 이런 사실들을 전혀 알지 못하고 있다. 그들은 신학대의 자료들을 접할 기회조차 없었기 때문이다 (김용옥 <절차탁마대기만성> 참조)
이 오경을 모세가 전한 율법이라 하여 (신 31:9) 신약에서도 보통 "율법"이라고 부르고 있다.
수메르의 <슈루파크의 가르침>은 히브리 성경 십계명의 5~10조항의 원형이 되었으며 "도둑질, 살인, 간음, 헛된 맹세, 말다툼, 거짓 증거 등을 하지 말라"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이는 십계명 중 6~10계명과 같은 맥락이며, 또한 "도둑질, 살인, 간음, 거짓 증거 등을 하지 말라"는 계명의 내용과 순서는 <출애굽기 21:12~23:8>까지 기록된 모세법의 기본 골자와 같다.
그리고 이 가르침의 전통에서 후대의 법전들이 편찬되었음을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인류 역사상 최초로 편찬된 법전은 BC 2100년경에 공포된 <우르남무 법전>이며, 이것은 이보다 350년 후에 만들어진 고대 바빌론 왕조의 <함무라비 법전>의 모체가 되었다. 이 법전은 히브리 성경에 전해진 모세 계약법이나 십계명과 <잠언>등에서 그 전통을 찾아볼 수 있으며, 인류의 법전 발달사에서 가장 근원적인 뿌리가 되었다.
예를 들면 "눈에는 눈으로, 이에는 이로" 라는 경구로 유명한 <함무라비 법전>의 '동태복수법(同態復讐法)'이 <출애굽기 21장>에 "상해가 생겼을 경우에, 생명은 생명으로 갚아준다. 눈은 눈으로, 이는 이로, 손은 손으로, 발은 발로 갚아야 한다" 는 내용이나 <레위기>의 "사람의 피를 흘리게 한 사람은 그의 피를 흘려야 한다"는 구절에 잘 반영되어 있음을 쉽게 알 수 있다.
결국 성경의 율법은 여호와가 모세 한 사람에게 불러주어서 기록했다는 기독교인의 믿음과는 전혀 다르게 진실은 그저 히브리인 보다 오래된 문화권에 살던 사람들이 스스로 지어낸 부족사회의 규칙이었을 뿐 이었다.
민희식 교수는 모세와 여호와의 이야기는 애급의 아톤신앙(一神敎)과 모세의 관계를 새롭게 편집한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교수의 말이 절대적으로 진실이라고 가정할 수는 없지만, 그는 어떤 교회의 어떤 목사들보다 성경과 그 성경에 연계되어 있는 각종 신화에 정통한 사람이라는 것을 알아두자. 목사의 말솜씨에 세뇌된 충직한 기독교인들은 이 대목에서 성경은 지식으로 아는게 아니라 믿음으로 안다는 뻔한 소리를 늘어놓을테지만, 그 소리는 스스로 불쌍하게 세뇌되었다는 것을 인증하는 것 이외의 다른 의미는 전혀 없다.
그리고 수메르 점토판의 사르곤전설에서도 모세이야기의 원형이 발견되고 있다.
바빌론을 수도로 하는 아카드왕조를 세운 왕이 바로 사르곤1세이며, 이 사르곤의 어머니는 신분이 낮은 여자였는데 아버지가 누구인지도 모르는 아이를 낳은 사실을 숨기기 위해 사르곤을 바구니에 담아 유프라테스 강에 흘러 보냈다. 그 때 마침 물을 길러 나왔던 아츠키라는 여자가 이를 발견하고 물에서 건져 올렸다. 그리고 아츠키가 대지의 여신 이슈타르에게 아이의 가호를 빌자 여신이 직접 맡아 길렀다. 후일 사르곤이 성인이 되자 애인으로 삼음과 동시에 제사장(임금) 자리에 오르게 했다. 이것이 조지 스미스가 발견한 점토판에 기록된 내용이다.
지금 이 글을 읽고있는 기독교인들은 당장 성경을 펼쳐 <출애굽기>를 읽어보길 바란다. 거의 표절급이다.
다른 전설에 따르면 사르곤의 어머니는 이슈타르 신전의 무녀(무녀)였으나 잘못하여 임신을 했고, 신의 벌이 두려워 낳은 아이를 유프라테스강에 버렸다고 한다. 이 전설 역시 물을 길러 나왔던 여인이 아이를 구하여 키운 것으로 되어 있다.
이 사르곤의 전설은 선지자 모세가 나일 강에 버려졌던 아이였으며 이집트 파라오(왕)의 딸이 건져서 궁전에서 길렀다는 전승으로 바뀌었고, 한 걸음 더 나아가서 마리아의 처녀 회임설로까지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나카마루 아키라著 <성서의 미스테리>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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